말라버린 꽃이 다시 피지 않듯이,
얇은 난간 위에 올라섰다. 감검한 하늘 밑에 감검한 사람들 그리고 거뭇거뭇한 내 인생, 이제 다 끝이야. 떨리는 시야에 조금 떨리는 발. 그래도 이제 다 끝났어. 내 차가운 발 위로 고드름 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잔인하게 박히고 있었다. 안녕, 안녕. 불쌍한 도 경수…….
휘청-
"미친놈! 뭐하는 거야!"
그 순간 누가 나를 잡았다. 나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어쩌면 저 이는 저승사자마냥 무서운 존재일 지도 모른다. 나는 죽은 건가 아니면, 산건가. 나는 다 포기해 버렸는데. 죽었겠지, 그래…….
"정신 나갔어? 씨발, 너 죽을 뻔했어. 와아, 씨발……."
"아……."
흐릿한 시야 안으로 누군가의 얼굴이 서서히 젖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나, 죽은 거 맞죠. 그런 거죠? 당신은 천사인 가요, 나의 죽음을 맞이하는.
"여보세요, 여기 미친놈이……."
"……."
"왜?"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그 사이에 상대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것 같다.
"죽, 죽었……."
"야, 정신 차려! 죄송해요, 잘못 걸었습니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 아, 이곳이 천국인가. 혹은, 지옥……. 하얀 빛이 내 얼굴에 강하게 부셔지고 있었다. 아, 아니야! 지옥이다, 여긴! 내가, 안 돼….
"일어났어?"
"……."
"... 너 벙어리야?.. 그런 줄 몰랐는데."
"아, 아……."
"야, 누구나 장애 하나쯤은 있는 거야. 나도, 나도 웃을 때 좀 병신 같긴 한데. 그것도 매력이잖아? 그리고 말 좀 못 하면 어때. 요즘은 어디가도 몸짓 하나면 통해. 나도 저번에 미국 같을 때……."
그는 큰 치아를 들어내며 웃고 있었다. 저 사람은 뭐가 저리 좋을까. 나같이 이렇게 비참한 사람도 있는데.
"저, 살……."
"어? 너 말할 줄 알아? 뭐야, 그럼 어제 너 왜 그런 거야?"
"살았,어... 요…….?"
"... 어. 너 살았어."
"……."
"남자 새끼가 왜 이렇게 질질 짜."
나 살았구나. 살았구나. 와, 정말, 잔인한 하느님. 그렇게, 그렇게 아프게 하시고, 더 찢어지라고 남겨 놓으셨구나. 내 마음대로 죽지도 못 하고. 죽지도 못 하고.
"야, 야 울지 마……."
내 앞에 모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장소는 익숙했지만, 낯선 이었다. 그래, 어제 내가 본 천사야 아니, 악마였던가. 그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오더니 나의 볼을 어루만져 내 눈가 주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랜만에 닿는 체온이었다. 그래서 나는 따뜻한 그의 손에 타들어가,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커다란 눈 사이로 미간을 상스럽게 찡그러트렸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그저 내 눈물을 닦고 또 훔쳐 줄 뿐이었다. 그의 손길은 마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죽은 나에게 오는 마지막 위안인가. 하지만, 살아 버린 듯해. 죽지 못 하고 살아 버린 듯 해. 나는 더 슬플 거야. 죽지 못 했잖아…….
"이것 좀 먹어. 네가 뭐 좋아하지 몰라서 다 사왔어."
"…….“
그가 하얀 봉지를 흔들며 내게 보였다. 난 모든 게 싫어졌다. 모든 게 싫다. 다 끝내버리고 싶다. 내가 그렇게 힘겹게 선택한 길에서 나는 이 못된 사람을 만나 이 지옥 같은 곳에 다시 오게 됐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그렇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죽고 싶어 하는 나를 살렸어.
"야, 너 울지 마. 죽는다, 진짜."
"저, 죽여주시면 안 돼요?"
저 좀 죽여주세요.
"뭐?"
"진심이에요."
"... 병신."
진심이에요. 나 좀 죽여주세요. 제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여기 와서 이거나 먹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아저씨, 제발……."
"내가 아저씨로 보여? 참, 물론 네가 어려보이기는 한데."
식탁에 앉아있던 그가 내 손목을 끌어 의자에 풀썩하고 앉혔다. 나는 또 바보같이 울고 있었는데, 그가 한숨을 쉬며 내 눈물을 닦아주더니 이내 내 입에 뜨거운 죽을 한 스푼 구겨 넣었다. 나는 우느라 그것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해 입 옆으로 흘려버렸는데, 그는 그런 나를 보더니, 애를 키우는 아빠가 된 것 같다며 한탄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 죽을 내게 꾸역꾸역 먹였다.
"잘 먹네. 전복죽 좋아해? 이게 제일 비싼 거야. 너의 입은 고급 입 맛."
"으엉……."
"야, 다 흘리잖아. 아오, 누가 아기 아니랄까봐."
"아니에요... 으엉엉……."
"알았어요. 이 늙은이 씨, 먹자. 우쭈쭈, 착하지, 그래."
그렇게 나는 그가 주는 죽을 다 받아 먹고, 또다시 그의 친절에 의해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그의 품에서 벗어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아버렸다.
"왜, 같이 눕자고?"
"아, 아니……."
나는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나는 그 누구의 손 떼도 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의 체온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알았어. 누워. 요즘 운동해서 침대가 좀 작다."
그가 침대 위에 나를 살포시 얹혀 놓고는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침대가 좁다며 툴툴대던 그가 이내 나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아 자기 품에 뉘었다.
"쏙 들어 오네. 큼, 큼."
"……."
어쩌면 나는 그 상황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혹은, 너무 좋았을 지도.
나는 오랜만에 푹 잠이 들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그랬다.
꿈에서 나는 한 명의 천사를 만났다. 그는 웃고 있었다.
너는 항상 울고 있었는데, 오늘은 왜 웃어주는 거야? 내가 그에게 물었다.
네가 행복한 것 같아서 오늘의 나는 이렇게 웃어. 그가 대답했다.
그의 웃음은 변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모습이 슬펐다.
그럼 이제 내가 계속 행복할 게, 그럼 너도 계속 웃을 수 있잖아. 나는 그의 손을 잡으려 한 발짝 다가갔다.
미안, 나 떠날 거야. 내가 잡으려던 그의 손이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
왜? 어디 가는데? 어디 멀리 떠나는 거야? 나는 안개처럼 풍경 속에 스며들어가는 그를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그는 점점 더 멀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안녕'이라 말했다. 그도 멀리서 '안녕'이라고 대답해 왔다.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귀가 윙윙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친 고개를 돌리니 그는 아직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듯 했다.
어젠 잘 몰랐는데, 아저씨가 아니네. 자세히 보니 그는 내 또래 남자 친구들 같은 생김새였다.
몸체는 나보다 월등히 컸지만, 그의 얼굴은 어렸다. 나는 웃으며 그의 앞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뒤척이는 그의 행동에 화들짝 놀라 그 손을 뗐다.
그리고 더 놀란 건,
"... 이 사람은 백현이가 아니잖아."
찰나 솟았던 태양이 잔혹하게 시들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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