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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샤이니 온앤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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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의 소년들

1. 우린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지






“여주씨! 이거 여주씨 앞으로 온 편진데?”

“편지요?”

“응. 여기 삐뚤삐뚤한 글씨. 김여주.”




부장님이 살갑게 봉투 하나를 건넸다. 끝자락에 정말 내 이름 석자가 쓰였다. 김여주. 부장님 말대로 글씨가 기울였다. 발신인란은 아무개와 우체국 주소가 끝이었다.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가. 부장님이 궁금하단 눈짓을 보냈다. 나는 멋쩍게 웃고 자리에 돌아와 봉투를 뜯었다. 요즘 같이 인터넷과 sns가 판치는 세상에서 편지는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하얀 봉투에 덕지덕지 붙여 놓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새하얀 봉투와 상반되는 종이가 나왔다. 어렸을 때 자주 쓰던 갱지 비슷한 것이었다. 




“어…”




한자 한자 꾹꾹 눌러 담은 편지 속 내용이 점점 흐려졌다. 삽시간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때 날 집어삼킬 것 같던 파도가 눈을 침범했다. 




“여주씨 뭐야? 요 앞 사거리 카페 점장이 여주씨,…어머. 여주씨 울어…?”




찬란했던 날들이었다. 비록 시작은 좋지 못했을지라도 우리는 행복했다. 


18년 전. 그날의 우리들은.




절벽 위의 소년들




지금으로부터 한달 전.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중국에서 왔다는데 생긴 건 한국인과 비슷했다. 한국어도 곧잘 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애의 소문이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애와 말해 본 애들이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말이 아니면 그 애는 입을 여는 일이 드물었다. 반장인 나조차도 고작 두어 번 대화한 게 다였다.



‘선생님이 너 교무실로 오래.’

‘…’

‘황인준?’

‘응.’

‘너 교무실로,’

‘가.’



다시 생각해도 그다지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한달 동안 황인준을 멀리서 지켜본 결과 그 애는 말 수도 적었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체육시간에도 혼자 스탠드에 앉아 있는 걸 자주 봤다. 체육 선생님이 무어라 말을 걸면 황인준은 중국어로 대신 답했다. 내가 이걸 일일이 아는 이유는 체육 선생님이 동네방네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9반에 전학 온 남자애. 걔 중국어를 엄청 잘한다고. 비꼬는 어투였다. 역시 체육 선생님은 만인의 비호감이 틀림 없다.





[NCT/인준제노동혁재민] 절벽 위의 소년들 1 | 인스티즈






“진짜 가?”

“응. 게다가 담임이 야자도 빼준대.”

“헐 대박. 담임이 웬일이야?”

“그러니까. 그냥 걔네 집 가서 서류만 전달해주고 빨리 줄 서러 가게.”




홍림이가 선망의 눈길을 보냈다. 그도 그럴 게 3학년 부장을 맡은 담임은 야자를 빼주는 일이 대게 드물었다. 어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날 교무실로 부른 담임이 대뜸 물었다. 인준이 학교 오늘도 안 왔지? 하고. 며칠 새 황인준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딱히 그 애와 친밀한 사이도 아니었기에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뜬금없는 물음 뒤에 담임이 건네는 말은 상당히 담임 같지 않았다. 



‘이거. 네가 인준이한테 갖다 줘야겠다.’

‘네?’

‘선생님이 인준이네 집 주소 알려줄 테니까. 갖다 주라고.’

‘저 야자…’

‘오늘은 하지 말고 가.’



나로서는 이득이었다. 더군다나 오늘 내가 좋아하는 HOT의 콘서트 표를 팔았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집에 가야 했다. 담임이 준 서류가 한없이 가벼웠다. 뭐냐고 묻지도 않았는데 담임은 당부했다. 



‘보지는 말고. 그냥 고지서 같은 거야. 걔네 집 우편이 안 간대서.’ 



따위의 변명도 덧붙였다. 홍림이의 배웅을 받고 교문을 나오면서 담임이 일러준 주소지를 빤히 보았다. 생전 처음 듣는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 결국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았다. 




“여기에 사람이 사능교?”

“예?”




택시 기사님이 황인준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60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 분이셨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벅벅 긁다가 마침내 택시 기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지 알겠구먼. 말을 끝으로 택시가 출발했다. 19년 학교 생활을 하면서 남자애의 집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별다른 말 한번 해보지 않은 황인준의 집이라니. 택시가 빨라질수록 기사님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름마을. 황인준이 살고 있는 그 곳의 이름을 입 안에서 되뇌었다. 



이제 곧 여름이 온다.




절벽 위의 소년들




“인준아 근데 학교 왜 안 갔어?”

“대장이 가지 말래.”




아 그렇구나. 이제노가 바가지를 들고 고개를 끄덕인다. 황인준은 마루에 앉아 이제노를 지켜본다. 이제노는 쌀뜨물을 마당 곳곳에 뿌렸다. 메마르던 땅이 물기에 젖어 진한 색을 띤다. 황인준은 그만 고개를 돌려 거실에 놓여 있는 벽시계를 바라봤다. 시계바늘이 이제 막 5시를 나타냈다. 때마침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노가 환히 웃으며 들고 있던 바가지를 흔들댔다.




“이제 와?”

“엉. 나재민은? 야 근데 나 오늘은 별로 못 벌었어.”




낡은 스텐 양동이 안에 지폐 몇 장이 섞였다. 이동혁이 오늘 하루 사람들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얻은 대가였다. 여름이 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복면 안의 이동혁은 땀에 절여 머리카락이 촉촉했다. 이제노가 양동이를 받아 들고 이동혁의 굽은 등을 쓸었다. 그래도 고생했어 동혁아. 이동혁이 씩 웃고는 곧장 수도로 향했다. 꼭지를 능숙하게 돌려 물을 틀었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물줄기를 이동혁은 좋다고 받았다. 




“쟤 얼마 벌었는데?”

“5천원. 인준아 저녁 뭐 먹을까?”

“몰라. 너 하고 싶은 거로 해.”




퉁명스러운 황인준의 어조에도 이제노는 사람 좋게 웃었다. 양동이를 방 깊숙이 가져갔다. 황인준이 잠시 이제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고갤 돌렸다. 아 깜짝이야. 愚蠢(바보). 황인준이 느닷없이 중국어 욕을 내뱉었다. 이동혁이 코 앞에서 낄낄거렸다. 물이 지나간 얼굴이 금세 뽀송해졌다. 이동혁이 얄밉게 웃는다. 황인준의 속도 모르고.




“너는 애가 왜 이렇게 잘 놀래.”

“그런 얼굴 들이밀면 안 놀라는 사람이 있어?”

“내 얼굴이 뭐 어때서. 나 복면 안 쓰고 노래하잖아? 그럼 그 뭐냐. 기획사에서 데려간다 할걸.”

“疯狂的(미친)”




어지간히 욕해라 인중아. 이동혁이 황인준의 어깨를 토닥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밥 다 되면 깨워. 말도 덧붙였다. 황인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노가 어련히 깨워줄 터였다.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묻던 이제노는 된장찌개를 끓였다. 황인준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었다.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자 된장 냄새가 물씬 풍겼다. 황인준은 다시 벽시계로 시선을 두었다. 5시 10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왠지 초조하게 느껴졌다. 늦봄과 초여름의 중간 사이 내음이 났다. 황인준이 제일 좋아하는 냄새가.





절벽 위의 소년들





그러니까, 황당했다. 뭐가 황당했냐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내 눈 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그랬다. 아무렇게나 나부라져있는 철제물들과 폐허가 된 채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 걸음을 내디딜수록 의문이 생겼다. 이런 곳에 황인준이 산다고? 왜 택시 기사님이 그러한 물음을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여기에 사람이 사능교?’



그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군데군데 거미줄이 쳐져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나마 멀쩡한 구멍가게를 지나면 간판이 너덜너덜한 건물이 보였다. 아무래도 재개발 지역이 틀림없다. 나는 담임이 대강 그려준 약도를 따라갔다. 이제 곧 여름이라 다행인 건, 해가 길어 아직 밝다는 점이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으면 속으로 담임을 저주했을지도 모른다.



아. 찾았다. 약도대로 골목 하나를 꺾자마자 기와지붕의 집이 나타났다. 담임이 그려준 그림과 비교해보니 언뜻 비슷했다. 빨간색 부저가 벽에 붙어있었다. 저게 초인종인가. 손에 쥔 서류 봉투를 한번 바라보다 부저를 꾹 눌렀다. 대문 가까이 귀를 기울여도 어떠한 소음도 들려오지 않는다. 뭐야. 아무도 없어?




“도둑이다!”

“악!”




난데없이 들린 쩌렁쩌렁한 음성에 그만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서류 봉투가 바닥을 굴렀다. 큰 손이 단번에 그걸 집어 들었다. 웬 남자애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갈 뻔 했다. 그만큼 놀랐다는 거다.




“미안. 많이 놀랐어요?”

“아 예.. 괜찮아요.”




대략 내 또래로 보였다. 남자애가 서류 봉투를 건네길래 냉큼 받았다.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네?”



남자애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동시에 손목에 걸려 있는 양동이가 달그락거렸다. 초록색 지폐가 살짝 보였다. 일순 양동이 소리가 멈췄다. 남자애가 열쇠를 꺼내 또 웃었다. 입꼬리가 시원스레 올라갔다. 부럽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 나 열쇠 찾았는데 왜 아직도 답이 없어요.”

“아. 여기 황인준 집 맞아요..?”




자신 없는 손가락으로 대문을 가리켰다. 물음이 끝나자마자 남자애가 눈을 크게 뜨고 반가운 표정을 드러낸다. 정확히 황인준이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우리 인준이 보러 왔구나. 아. 그럼 열아홉?”




나는 대답 없이 눈만 굴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별안간 남자애가 손을 내밀었다. 손목에 걸린 양동이가 꽤 녹슬었다. 양동이를 보라는 건 아닐 테고. 갑자기 손을 내민다는 건 혹시.




“나도 열아홉. 우리 동갑. 고로 친구.”




문득 얘는 사막에 가도 살아남을 거란 확신이 섰다. 본지 겨우 10분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안에 인준이 있는데 불러줘? 악수는 다음에 하는 걸로 치지 뭐.”




철컥. 과감히 열쇠를 돌려 남자애가 대문을 밀었다. 뒤돌아 내게 잠시 기다리라는 손동작까지 하는 여유도 부렸다. 참 성격 좋다. 어디 학교 애지? 홍림이가 딱 좋아할 성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친구 같았다. 한없이 능글맞은.




“……”




슬슬 닫히려는 대문을 누군가 잡았다. 황인준이 교복이 아닌 추리닝을 입고 대문 앞에 섰다. 약 4일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평상시에도 학교에서 별다른 말 나눠본 적 없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서 있자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다 못한 황인준이 먼저 입을 벌렸다.




“왜.”




세 번째의 대화도 역시 유쾌하지 않았다. 황인준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NCT/인준제노동혁재민] 절벽 위의 소년들 1 | 인스티즈





“걔 뭐야?”

“뭐가.”

“귀엽게 생겼던데.”




황인준이 쓰레기통에 연갈색 봉투를 집어 넣었다. 자꾸 제게 말을 거는 나재민의 목소리가 부쩍 신이 났다. 무언가 건 수를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나재민은 숟가락 앞부분을 턱에 갖다 댔다. 시선은 이제노의 옆에 앉는 황인준을 가리켰다. 이제노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건넸다. 황인준은 말없이 그걸 받아 들고 고갤 쳐들었다. 나재민이 입 꼬리를 씩 당겨 웃는다. 나재민의 시선이 계속하여 황인준을 향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이동혁이 소시지를 집었다. 나재민이 보기 전에 얼른 제 입으로 가져갔다. 




“우리 동혁이 소시지 먹고 싶었어요?”

“뭐래. 소시지 안 먹었는데.”

“귀여운 놈.”




나재민이 둥그런 이동혁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야 짜증나게 하지마? 이동혁이 툴툴거리면서 다정한 손을 쳐내었다. 둥근 식탁 앞에선 늘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웃는 얼굴의 이제노만 둘의 투닥임을 지켜봤다. 황인준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밥을 깨작거렸다. 




“그래서 걔는 누구야 인준아.”

“뭐가. 같은 반 애야.”

“오호. 같은 반 애가 너 찾으러 집까지 왜 와?”




나재민은 무엇이든 간에 끈질긴 면이 있었다. 혹은 잠깐 보았던 그 얼굴이 자꾸만 생각나서일 수도 있다. 남자 넷이 사는 갑갑한 곳에 누군가 직접 찾아온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외람 된 이야기지만 나재민은 새로운 삶을 꿈꿨다. 오늘 양동이 가득 색 지폐를 가득 담아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줄 거 있어서 왔나 보지. 걔 반장이야.”

“반장? 야 그게 뭐냐. 짱 같은 건가.”




무시가 상책이다. 황인준은 고갤 숙이고 다시 밥을 먹었다. 나재민은 끅끅 대면서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영문 모를 이동혁만 이제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야 내가 틀린 말 했냐. 반장이 짱 아니야? 이제노는 대답 없이 소시지를 더 얹어 주었다. 




“나 밥 다 먹었는데.”

“그럼 소시지 버려야 해 동혁아.”

“그럼 어쩔 수 없네. 야 이거 내가 먹는다.”




모두 숨죽여 이동혁의 말에 동의했다. 젓가락 하나를 들어 이동혁이 소시지를 콕 집는다. 가끔 나재민은 그런 생각을 했다. 대장이 왜 인준이만 학교를 보냈을까. 우리 모두가 학교를 가고 싶어하는 걸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인데. 저가 학교를 갔다면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있던 일을 애들에게 주구장창 말해줬을 거다. 황인준은 학교를 다녀오면 일절 끝이었다. 학교의 ‘학’ 자도 꺼내지 않았다.



한 달이 다 지나가도록 황인준에게 들은 학교 이야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대문 앞에서 만난 그 여자애가 반장이라는 것. 단발머리가 귀여운 애였다.




“아 맞다. 나 내일 동혁이랑 한강 갈 건데. 제노 같이 갈래?”

“야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한강을 간대?”

“너 한강 좋아하잖아. 우리 동혁이 안 갈 거야?”

“누가 안 간대. 갈 거거든. 이제노 너도 같이 가.”




이제노가 밥그릇을 쌓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달그락 달그락.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이내 멀어졌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이제노가 부엌으로 갔다. 졸지에 미처 밥을 다 먹지 못한 황인준이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왜.”

“우리 인준이는 안 가나?”

“응.”

“대장이 내일은 학교 가도 된대?”

“응 내일은 가래.”




순간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아까 빨은 복면을 이동혁이 탁탁 털어냈다. 물기가 어느 정도 말랐는지 이동혁은 복면에 코를 갖다 댔다. 킁킁. 강아지처럼 냄새도 맡았다. 나재민이 그 모습을 보다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여튼 귀여워 우리 동혁이. 어느새 나재민은 그릇을 갖고 부엌으로 갔다. 제노야~ 다정하게 이제노의 이름을 부른다. 


결국 둥근 식탁에는 황인준 홀로 남았다. 흘깃 눈을 굴리면 이동혁이 복면을 마루에 널고 있었다. 자세 한번 불편하다. 황인준이 무어라 말해주려다 그만 관두었다. 마지막 남은 밥 한 숟가락을 마침내 삼켰다. 



황인준은 연갈색 봉투가 마음에 걸렸다. 대장이 해준 말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이제노가 놓고 간 물을 마셨다. 꿀꺽꿀꺽. 가까스로 숨을 쉬었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아무것도 모르는 세 명이 애틋했다. 그래서 황인준은 오늘도 초조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절벽 위의 소년들




기와 지붕 집에 사는 네 명의 소년들은 저녁 밥을 먹고 늘 하는 일이 있었다. 어쩔 땐 밥을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식탁이 되어주고 또 어쩔 땐 가계부를 쓸 수 있는 책상이 되어 주는 둥근 식탁 앞에서 오늘 하루 번 돈을 셌다. 주로 이제노가 마지막 순서였다. 느리지만 계산은 정확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수놓아진 침묵을 두고 세 명의 시선이 한곳에 쏠렸다. 이제노가 부드럽게 지폐를 넘겼다. 이동혁이 열심히 노래하여 번 돈은 이미 다 셌다. 나재민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벌어온 돈이 오늘 유독 많았다. 나재민이 짓고 있는 표정이 의기양양했다. 반면에 이동혁은 입술을 내밀었다. 무언가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곧 이제노가 색깔 별로 돈을 나열했다.




“동혁이 딱 5천원.”

“야 내일 한강 가서 3만원 벌어온다 내가.”

“재민이는 6만원.”

“역시 나나. 얘들아 박수 안 쳐줘?”




이동혁이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6만원을 벌어?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저도 모르게 박수를 짝짝 쳐주었다. 나재민이 흡족한 듯 입꼬리를 올렸다. 황인준도 어쩔 수 없이 손바닥을 맞부딪혔다. 나재민의 눈빛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있잖아. 내일 한강은 둘이 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제노가 가계부 정리를 하면서 대뜸 말했다. 나재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야 이제노 왜. 도시락 싸달라고 안 해. 같이 가.”




이동혁이 투정을 부렸다.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선 벌러덩 누운 채로 발을 가만 두질 못한다.




“도시락은 싸줄 수 있어. 근데 내일은 둘이 가야 될 것 같아서.”

“우리 제노 한강 싫어해?”

“아니.”




이제노가 잠시 머뭇한다. 




“대장 집 비우는 거 싫어하잖아.”




기어이 진심이 튀어 나왔다. 모두가 숙연해졌다. 대장의 이름 앞에서 네 명의 소년들은 전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나재민이 애써 고갤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잠시 집 안이 고요해졌다. 이동혁의 발장난도 멈췄다. 




“우리 대장한테 아직은 말하지 말자.”




고요가 깨졌다. 나재민이 몸을 숙이고선 낮게 읊조렸다. 짐짓 진지한 어투였다.


이제 막 시작한 희망 찾기였다. 더 이상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고 먼 미래의 본인들을 생각하는 것. 이제노는 요리사가 되고 싶다 했다. 이동혁은 이름 없는 가수가 될 거랬다. 나재민은 연예인이 하고 싶댔다. 황인준은.


황인준은 꿈을 말하지 않았다. 예견된 미래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절벽 위의 소년들




4일 만에 황인준이 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있는 듯 없는 듯. 황인준은 또 외로이 앉아 있었다. 창 밖을 넌지시 응시하는 황인준의 옆모습을 힐끔 보다 고갤 돌렸다. 어제 내가 괜히 자존심을 부렸나. 황인준의 집 앞에서 나눈 대화가 자꾸 걸렸다.



‘이거 담임이 너 주래.’

‘응.’

‘고맙다고 안 해?’

‘내가 왜.’

‘나 너한테 이거 하나 주려고 여기까지 왔거든!’



황인준은 그게 뭐 어쨌다고의 표정을 보였다. 나도 말하고서 살짝 후회했다. 약간 오바한 것 같아서. 홍림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황인준이 짤막한 중국어로 뭐라고 했는데 내가 그 뜻을 알아야 말이지. 무슨 말인지도 몰라서 대충 알아듣는 척 했다. 덕분에 HOT의 콘서트 표 줄을 설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고마운 건 내 쪽인가?



책상에 엎드려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어제 계속 밖에 서 있었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엄마가 야근이라 망정이지 내가 오늘 아침 집에 들어갔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김여주~”

“아 놀래라. 성공했어?”




홍림이가 환히 웃으면서 조퇴증을 보여준다. 짜잔. 효과음 소리도 냈다. 역시 김홍림. 웬만하면 속아 넘어가지 않는 담임을 용케도 속였다. 오늘 2차로 열릴 HOT 콘서트 표를 얻기 위함이었다.




“오늘 점심 같이 못 먹어서 미안하다 친구야.”

“아 뭐래~ 친구는 그런 거 미안해 하는 거 아니다 김홍림.”

“역시 김여주.”

“역시 김홍림.”




키득거리면서 홍림이가 내 어깨를 팡팡 쳤다. 아. 그러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표정을 바로 했다. 왜? 내가 묻자 홍림이가 자세를 숙였다. 내 귀에 작은 손을 갖다 대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담임이 황인준 교무실로 오라고 했는데…”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했다. 낯을 심히 가리는 홍림이는 황인준에게 짧은 말도 전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거다.




“알겠어 알겠어. 내가 쟤한테 전해줄게.”

“역시 김여주! 반장답다. 최고!”

“이럴 때만?”

“아니이~”




홍림이가 한껏 애교를 부리며 웃는다. 내 친구지만 웃는 거 참 예쁘다. 홍림이를 뒤로 하고 황인준의 자리 가까이 걸음을 옮겼다. 창 밖에 뭐가 있는 것도 아닌데 황인준은 매일 저렇게 창 밖을 쫓았다. 공상 하는 게 취미인가 싶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야 황인준.”




조금 더 부드럽게 이름을 불러도 좋았을 텐데. 부르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황인준의 눈빛이 건조해서 더욱.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래.”




역시 대답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는다. 황인준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가만히 저 앞에 서 있자 거슬렸는지 잠시 시선이 다녀간다. 


괜스레 쫄았다. 황인준이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길을 비켰다. 나 원래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나. 아닌데. 교실 문을 열고 나가 버리는 황인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홍림이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면 내내 그 곳에 서 있었을지도 몰랐다. 




“쟤 근데 왜 맨날 야자 안 하지? 담임이 빼주나? 부럽다.”




어느새 홍림이가 내 옆에 와서 작게 속삭였다. 그러게. 황인준은 왜 야자를 하지 않지? 


문득 어제 보았던 기와지붕 집이 떠올랐다. 황인준과 상반되는 남자애도. 구멍가게를 제외하고 지나가는 사람 본 적 없는 여름마을이 그 순간 생각났다. 




“어이 여주!”

“으응?”

“점심 같이 못 먹어줘서 서운한 거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나는 그 누구보다 홍림이와 HOT 콘서트를 같이 가고 싶었다. 어제 나 혼자 표를 얻기 위해 줄 선 것이 약간 미안했는데 반대의 상황으로 홍림이가 착각했다. 내가 답이 없는걸 서운해서 그런 줄 아나 보다. 가방을 멘 홍림이가 팔짱을 끼며 잔뜩 아양을 부린다. 내가 내일 도시락으로 너 좋아하는 거 싸올게. 같이 먹어주기? 응? 




“알겠어 알겠어. 왜 자꾸 미안해 하냐구. 안 그래도 되거든.”

“아니이~ 신경 쓰이는 걸 어떡해.”




신경이 쓰인다.


아. 홍림이가 그 말을 했을 뿐인데 나는 그 애가 절로 생각났다. 


재개발 지역에 사는 황인준. 학교를 자주 빠지는 황인준. 말 수가 적은 황인준. 




“여주!”

“아, 응. 지금 가게?”

“응. 나 없다고 울지 말기~ 나 진짜 가!”




옅게 웃으면서 교실을 빠져나가는 홍림이 뒤로 교무실을 다녀 온 황인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무미건조한 얼굴이었다. 홍림이를 배웅하기 위해 든 손을 잽싸게 내렸다. 황인준이 날 지나쳐갔다. 



뒤를 돌아 확인하면 황인준은 늘 그랬듯 목을 틀어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특이하다. 그래서 신경이 쓰이는 건가? 나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턱을 괴고 생각했다. 


가령 황인준이 정말 중국인일까. 하는 그런 생각들을. 






잘 부탁드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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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81.189
헉 작가님 안녕하세요,, 제목보고 홀린 듯이 들어왔는데 처음 도입부부터 끝까지 눈 돌릴 틈없이 호다닥 읽어버렸네여ㅠㅠ담편 넘 기대되요ㅠㅠ잘 보구 갑니다❤️❤️
5년 전
비회원219.17
헐 시작부터 대작이라고 느꼈는데 읽을수록 더 재밌어요 ㅠㅠㅠㅠ 대장은 누굴까요 설마 드림대장 이마크는 아니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00즈 친구들 짠하면서도 귀여워요!! 작가님 감사합니당ㅎㅎ!
5년 전
비회원8.52
너무 재밌어요ㅠㅠ 대장은 또 누구고 인준이만 왜 학교를 다니는 걸까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5년 전
독자1
어 혹시 작가님도 글 날아가신 건가요..? 필명이 익숙해서 보니까 암호닉도 신청했던 분인데 신알신도 안 되어있고 글도 이거밖에 없어서요,, 혹시 다른 분이면 죄송해요 ㅠㅠㅠㅠ 그래도 글 좋아서 신알신 하고 갑니다!
5년 전
독자2
작가님ㅜㅜㅜ글 분위기랑 브금 너무 좋아요ㅠㅠ 되게 따뜻하고 뽀송뽀송한 느낌...? 말로 표현이 잘 안되는데 암튼 너무 좋아요ㅜㅜ 신알신 누르고 가요!! 혹시나 암호닉 받으신다면 [야다]로 신청하고갈게요💚💚
5년 전
비회원58.134
글 너무 잘 쓰세요ㅜㅜ 어두운 글을 잘 안 읽히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자까님 글은 술술 읽히네용! 우앙 굿 [하라하라]로 암호닉 신청하구 싶어요!
5년 전
비회원148.21
와ㅠㅠ 대박이에여ㅠㅠ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은 거 같아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너무 궁금하고 또 기대되요ㅠㅠㅠ 다음편 기다릴게요 자까님!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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