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정권의 압력은 어디에든 영향을 미쳤다. 국민들의 삶 뿌리 끝까지 치고 들어와 독을 뿌려댔다. 40년 전. 반역의 움직임이 꽤나 거셌던 시절 또한 존재했다. 현존하는 정권을 뒤바꿀 수 있을까. 자그마한 희망을 품은 채 너나 할 것 없이 거리에 뛰쳐나왔다. 주름이 진 얼굴의 거동이 불편한 노파. 손을 맞잡은 부부. 소리지르기를 좋아하는 아이들. 비정상적인 체제를 뒤집어 엎지 않으면 끝없는 비극이 초래될 것이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타도하라, 타도하라. “여보.” “응.” “저기. 불꽃이 튀지 않소.” 여자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가르켰다. 사방으로 불꽃이 튀고 있었다. 정신을 놓고서 한참을 바라본다. 이내 남자가 여자를 이끌었다.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타도라는 것에 실패한 모양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잡은 손을 지푸라기 마냥 꼭 쥐었다. 여자의 입술이 벌어졌다. 당신. 사랑하오. 뒤따라오는 네 글자에 목구멍으로 무언가 받쳐들었다. 남자는 껄끄런 목소리를 힘겨이 내보였다. 나도…, 나도. 60년 전. 미사일을 내리꽂아 한 지역을 폐허로 만들어버린 A-9 사태는 현재 이렇게 명명되어지고 있다. ‘국가의 정권을 위협하는 폭동을 주도한 반역 집단을 축출해낸, 최초의 정권 혁명.’
대학살
massacre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렀으나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새벽은 소쩍새의 울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늘 걷는 골목 어귀에는 자박거리며 울리는 자신의 발자욱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경수의 둥그런 눈이 옴찔댔다. 쓰레기 한 점 없이 청결한 길이었으나 어쩐지 피비린내가 배여있는 듯하였다. 앞으로 차고 나가던 경수의 발에 무언가 치였다. 시선을 내렸다. 조막만한 쇳덩이였다. 손을 뻗어 그러쥐자 뜨듯한 감이 퍼졌다. 쥐었던 것을 펴보니 발간 핏덩이가 묻어있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시간이 꽤 흘렀으나 부친의 말은 여전히 이해 못할 것이었다. 부친의 수전증은 알콜 중독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발전했다. 경수는 위중한 그를 위해 늘 이른 아침 약국으로 향했다. 문밖으로 나설 때마다 등 뒤로 모친의 의심스런 눈이 박혀댔다. 여지없이 소리친다. 아무 짓도 하지 말거라. 모친이 항상 입버릇처럼 건네던 말이었다. 경수의 손에서 힘없이 굴러 떨어진 총탄은 이내 시궁창 속으로 사라졌다. 밤새 누군가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 분명한 그 총탄을, 저는 보지 못했다. 알아도 모른 체 한다. 모순이었지만 정당했다. 약국의 문은 닫혀있었다. 문을 두드리려던 경수의 주먹이 떨어졌다. 사실 길거리의 상점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건 꽤 되었던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요 근래 마을 내의 긴장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쯤은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경수는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무얼 하는 거니.” 호흡을 도로 집어삼켰다. 감찰병이었다. “아비의 몸이 위중하여 약을 사러 온 참입니다.” 겁을 집어먹은 꼴을 보였다간 의심을 살 것이 분명했다. 경수는 덤덤한 척 말을 이었다. 약국의 문이 닫히어 본가로 향하려던 중입니다. 감찰병은 한참 말없이 눈을 번뜩이며 경수를 한 차례 훑어보곤 고개를 까닥였다. 가도 좋다는 몸짓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선 그를 스쳐지났다. 뇌가 돌아가지 않는 병신이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등어깨를 끈덕지게 늘어쥐는 그 시선을. 근래 감찰병의 수가 늘어났다. 마을 내의 주민들과 비등할 정도였다. 명백한 감시임에 틀림없었다. 모친은 여전히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인기척에도 콧잔등 한 번 달깍이지 않는다. 다녀왔소. 말소리에 그제서야 눈꺼풀을 실룩인다. 또 빈 손이니. 말소리엔 아무런 억양도 어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해쓱한 얼굴로 시체 마냥 누워있는 부친의 곁에 자리했다. 이어지는 정적을 먼저 깨부순 것은 다름아닌 모친이었다. “내 아비가 어찌 죽었는 지 아니.” 의외의 물음이었기에 경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언을 떼었다. “모릅니다.” 그녀는 웃음기를 머금었다. 폭동을 일으켜 미사일에 맞아 죽었단다. 응, 그럼 내가 어찌 살았는 지 아니. 경수는 다시금 대답했다. 모릅니다. “당시 내 아비 어미가 나를 외갓집으로 보냈다. 그들은 예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불살라 태워질 거라고.” “…….” “미사일이 박혀 온 천지가 피바다였겠지. 뼛가루가 묻힌 황무지로 변했을 것이다.” 경수는 고개를 들어 제 어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허공을 응시하는 시선의 끝자락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비극이 줄지어 매달려있었다. 정부는 반란을 일으킨 집단들을 학살하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일가족의 씨를 말릴 생각은 하지 못한 모양이다. 나와 네 아비가 이리 멀쩡히 살아 있는 것을 보면. 경수는 궁금했다. 그들은 왜 죽였을까. 그들은 왜 죽임을 당했을까. “이 마을은 그 때의 그곳이다. 폐허가 된 뒤로 다시 축조하여 민간인들을 집어넣었지. 무슨 말인지 알겠니. 경수야.” 말끝을 흐렸다. 어째서 그들은 우리를 이곳에 밀어넣었을까. 이유는 뻔하지 않겠니. “우리는 본보기가 될 거야. 정부에 반감을 안고 있는 이들을 겁주기 위해 우리를 모조리 죽이는 두번째 대학살이 일어날 거다.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무 이유없이 우리를 죽이는 건가요. 경수의 말에 모친은 눈을 감았다. 그들에겐 언제든 이유라는 것은 없다. 국민들이 자신들을 두려워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다시금 정적이 이어졌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색색거리는 부친의 호흡소리만 좁은 방구석을 채웠다. 모친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경수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 목소리에 울분이 채여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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