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종대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종대를 도와주겠다는 오지랖 넓은 한 마디에서 시작되었다. 지금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고, 종대와의 인연을 끊을 수 있는 계기도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놓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으면서도 놓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아홉 살의 어린 내가 종대의 늘 떨리던 눈 속에 담긴 두려움과 상처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명히 종대는 태어날 때부터 모자라고, 부족한 아이가 아니다. 종대는 유년시절의 어디에선가 혼자 멈춰있다.
종대에게 도와주겠다고 말한 지 꼬박 닷새하고도 이틀이 흘렀다. 일주일 내내 나는 종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대신 묵묵히 도맡았다. 하루 이틀째에, 종대도 처음에는 이런 내가 부담스러운 듯 따라오지 말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도 하고,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할 수 있는 척 어설프게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종대의 뒤를 따라다니던 사흘 째. 종대는 드디어 나에게 아주 약간의 틈을 주었다. 실외 체육수업 시간 도중에 종대의 운동화 끈이 풀려 버린 것이다. 운동화 끈이 풀렸다는 것을 안 종대는 낑낑거리며 제 자리에서 끈을 묶어보려 노력 했지만 묶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종대의 앞으로 다가가 우뚝 섰다. 종대야, 나 신발끈 묶을 수 있는데. 내가 도와줄까?
내 목소리에 종대는 자신의 공책을 돌려받았던 며칠 전처럼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그때보다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내가 종대의 시선에 맞추어 쪼그려 앉자 종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제 힘으로 묶이지 않는 신발을 나에게 내밀었다. 있잖아, 종대야. 나도 신발 끈 묶는 거 진짜 어려워했다? 근데 엄마한테 배워서 지금은 묶을 수 있어. 종대 너도 나한테 나중에 배울래? 내가 알려줄게. 종대의 신발 끈을 묶어주며 재잘재잘거리던 나는 헐거워진 반대쪽 운동화 끈까지 다시 단단히 동여매주고는 쪼그려 앉았던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종대는 그 때까지도 제 운동화만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때였다. 여, 주. 고마워… 종대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던 게, 종대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왔던 게. 어눌하고 느린 발음이었지만 순식간에 귓가를 스쳐 지나간 음성에 나는 놀란 눈으로 종대를 바라보았고, 종대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종대가 나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아예 없지는 않겠구나 하고 이내 나는 용기를 내어 아직도 쪼그려 앉아있는 종대에게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종대야. 저기 선생님이 빨리 오래. 애들도 기다린다. 잡을 거라는 기대 없이 혹시나 하고 내민 손에 이윽고 따듯한 온기가 번져왔다. 그렇게 종대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 * *
운동장에서의 일을 계기로 나는 하루하루 날마다 종대와 부쩍 가까워졌다. 물론 우리 반의 화젯거리 ‘전학생 김종대’와 가까워질수록 내 이름 역시 같은 반 친구들의 입에 오르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종대와 가까워 질 수 있어서 마냥 좋았다. 좀 더 가까이서 보게 된 종대는 참 예뻤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동자에 상반되게 따스함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올라간 입꼬리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길게 뻗은 속눈썹 역시 좋았지만, 역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 이거, 여주… 여주. 여주야.
- 이게 나야? 종대 네가 그렸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종대의 깨끗함이 좋았다. 종대는 정말로 결백하고, 순수했다. 점심 먹고 뛰쳐나가 축구밖에 할 줄 모르는 남자아이들과 달리 종대는 점심시간이면 자신의 양치컵에 물을 한가득 담아 꽃에 물을 뿌려주기도 하고, 운동장 구석으로 가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을 꺾을 수는 없으니 직접 그려서 여주 꽃이라며 나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친구들로부터 소외받는 종대를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민 건 나였지만 정작 손을 잡아주고 있는 것은 종대라고 생각될 정도로 가까이서 바라본 종대는 따뜻했고, 자상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종대가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종대의 빈자리를 보며 종대가 감기 때문에 열이 많이 나서 당분간 학교에 나오기 힘들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말에 일제히 같은 반 친구들은 종대의 빈 책상을 바라보며 저마다 혼자 추측하고 있는 것들을 소란스럽게 주고받았다. 하지만 추측이 아닌 단순한 비아냥과 비하도 많이 들려왔다. 그것도 내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김종대 그 벙어리 학교 안 나오니까 좋지 않냐.’ 내 짝꿍 박찬열이 친구들과 주고받는 한 마디에 결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방을 챙겨 들며 교실을 빠져나왔다. 종대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 될 만큼 나쁜 애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