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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삼자대면 (三者對面)
"나한테 물어볼 염치는 있냐?"
결국 이민형의 주도로 황인준과 대면하게 되었다. 자세한 상황은 김여주 본인이 더 잘 알겠지만, 아직 김여주와 마주 보고 말하기엔 서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알려줘. 김여주 한테 무슨 일 있었는지. 내 물음에 황인준은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 내가 김여주랑 이어줄 테니까 상처 주지 말랬잖아. 왜 줏대 없이 어장 쳐서 애 힘들게 해"
어장이라고? 난데없고 근거도 없는 소리에 말도 안 나왔다. 인준 진정해. 옆에서 지켜보던 이민형이 말 했다.
"내가 김여주 몇 년을 좋아했는데 무슨 어장이야"
"그럼 김여주 생일도 잊고 약속도 취소한 건 뭔데. 신애리랑 둘이 데이트하고 목걸이까지 줬는데 이게 어장 아니면 뭐냐고. 아닌 척 지금까지 잘도 숨겼다?"
작게 한숨을 쉬며 말하는 황인준이 지금 말하는 대상이 나인 게 맞나, 생각했다. 내가 신애리랑 데이트하고 목걸이를 줬다고? 생일 잊고 약속 취소한 건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었지만 뒷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너무 당연하게 말해서 나는 내가 전에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있나 생각했다. 아무 말 하지 않던 이민형도 표정을 구기고 뭔 소리야? 한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럼 나랑 김여주가 들은 건 뭔데"
"누구한테 들었는데"
신애리. 생각했던 대로였다. 신애리가 붙으면 붙을수록 김여주와 멀어지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있었는데, 참 더러운 인연이다. 순간 홧김에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반을 향했다. 너 어디 가, 황인준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애리밖엔 생각할 틈이 없었다.
급하게 열린 문이 꽤 요란한 소리를 냈다. 조용하던 반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몰렸다.
"신애리. 할 말 있으니까 잠깐 나와봐"
"뭔데? 여기서 말해"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이 여유로운 얼굴이었다. 떠들썩해지는 걸 싫어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다.
너 대체 김여주 한테 뭐라고 말하고 다닌 건데. 뭐가? 뭐라고 말하고 다녔으면 내가 너랑 사귄다는 거지같은 소문을 믿냐고. 일부러 그래? 김여주 힘들라고?
"김여주 힘든 게 왜 나 때문이야. 너 때문이지 동혁아"
"너 카톡으로 김여주 한테 생일날 둘이 만났다고 했다며"
"내가 언제?"
야, 내가 언제? 너 카톡 보낸 거 나랑 김여주랑 같이 봤어. 뻔뻔하다 못해 가증스럽기까지 한 신애리 태도에 황인준이 목소리를 높였다. 덕분에 반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반 아이들까지 싸움구경을 하러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 그거 여주가 착각했나 보다. 그냥 동혁이 사진 보낸 건데"
"와 이거 완전 도라이네. 니가 니 손으로 직접 둘이 간 거라고 보냈잖아"
아.. 그랬나. 황인준 말에 맞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곤 말 했다.
"근데 인준아, 여주가 알고 모르고 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이동혁은 여주 만나면 안 돼. 이제노 생각 하면 양심이 있어야지"
뭔 소리야 그게. 황인준이 대답하며 날 쳐다봤다. 황인준은 작년 일을 모르고 있다. 김여주가 이제노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와 이제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노 작년에 여주좋아했잖아. 근데 동혁이 때문에 찼어. 동혁이는 염치가 있으면 여주좋아하면 안 되지"
황인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눈을 피했다. 신애리만 따로 불러내려는 이유였다. 신애리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김여주가, 또 나와 이제노가 철저하게 숨기고 있던 비밀을 아이들이 알게 될까 봐.
".. 왜? 왜 내 생각 하면 양심이 있어야 돼?"
신애리 말에 웅성이는 소리로 소란해진 아이들 틈에 또렷한 목소리로 이제노는 말 했다. 예상치 못했던 출현에 당황했는지 신애리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 그거야 이동혁이 너한테 잘못했으니까.
"무슨 잘못?"
"..."
"무슨 잘못 했냐고. 동혁이가"
"우리가 서로 같은 애를 좋아해서? 내가 그 애를 찬 게 동혁이 때문이라서?"
"말 안해도 잘 알고 있네"
"난 그 일로 기분 나빠본 적도 서운했던 적도 없어"
".. 그래도 너 이동혁 때문에 은따 당했잖아. 동혁이한테 팽당해서, 이동혁 피해 다니느라"
그건 여주가 동혁이랑 항상 같이 다니니까 그런 건데. 불편해할까 봐. 차분한 이제노 말에 신애리는 다리를 꼬고 표정을 구기며 손톱을 뜯었다. 사적인 일이니 그만 나가달라는 이민형의 부탁으로 구경하려던 애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신애리도 급하게 나가려 들었다. 아직 할 말 남았는데, 말하려던 찰나에 신애리 발걸음 우뚝 멈췄다.
".. 비켜"
언제부터 들었던 건지 신애리 앞에 김여주가 서있었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신애리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나만 바라볼 뿐이었다.
"신애리. 나 말 아직 안 끝났어"
"목걸이 내가 줬다는 건 무슨 말인지 설명해"
"그런 말 한 적 없어"
"했잖아 그런 말"
"없다고!!"
도둑이 제발 저리듯 신애리 급하게 목 부근 손으로 감싸고 소리 지른다. 나는 그런 뻔한 거짓말에 속아줄 인내를 가지진 못했다.
"그럼 손 치워"
".. 못 치워"
"이쯤 해. 진짜 화날 것 같으니까"
내 말에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제 손을 내렸다. 김여주와 같은 목걸이였다. 이걸 니가 왜 걸고 있어. 내가 산 거야. 아닐걸, 신애리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펜던트를 급하게 뒤집었다. 김여주 이름의 이니셜이 새겨져있는, 그러니까 김여주 생일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 .. 설마 했는데. 훔쳐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 야. 너 진짜 제정신이냐? 그만큼 뭐같이 굴었으면 끝낼 때도 됐잖아. 그게 뭔 줄 알고 손을 대 니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교실엔 꽤 오래 정적이 흘렀다. 이제야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현실을 자각한 듯 신애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모든 책걸상을 던지다시피 밀고는 김여주 앞에 걸어갔다. 신애리. 내 말을 들을 채도 안 하고 쳐낼 기세로 김여주 머리 위에 손을 들어 올렸다.
"야 신애리!!"
정신없이 뛰어가서 신애리 팔목을 잡았고 차마 막지 못한 신애리의 발길질을 김여주를 감싸 안은 이제노가 대신 맞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 때문에!!! 왜 니가 다 망치는 건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표독스러운 얼굴로 김여주에게 소리 질렀다. 그만하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말해도 듣지 않았다. 제 손목에 잡힌 손을 떼내려 아등바등 거리는 신애리를 이민형, 황인준까지 합해 세 명이 붙잡았다.
"너는 아무 노력도 안 했잖아. 내가 3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데!!"
신애리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쇳소리 나게 내질렀다.
18년을 기다렸어, 나는. 내 말에 신애리는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을 풀고 벌게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넌 도대체 뭐가 힘들었는데? 김여주 괴롭히느라? 이간질하느라? 야. 넌 니 생각만 하지."
".. 니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이동혁"
"어 나 너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니가 날 3년을 좋아했건 어쨌건 내가 너를 안 좋아하는 건 참 유감이고 미안한데, 김여주는 무슨 탓으로 건드려."
"그거야 김여주는 노력도 안 하고.."
"그게 잘못이야? 내가 노력했어. 내가 노력해서 김여주가 나 좋아하는 거면 시발 내 탓이니까 지랄을 해도 나한테 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비참해질 때가 있다. 김여주가 나에겐 그랬고, 신애리에게 있어선 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감정도 주기 싫었지만 불쾌하게도 조금 동정이 되었다. 증오하지만 불쌍한, 그런 느낌이었다.
"눈앞에 보이지 마. 혐오스러워지려하니까 너"
신애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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