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현재 시간 7시. 즐겁게 저녁을 먹고난뒤 자리에 앉고 나서야 대현은 뭔가 생각난듯 절망스럽게 제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3시간...3시간 남았다...!!!!
대현의 손이 두렵다는 듯 부들부들 떨렸다.
평균 고등학생의 야자가 끝나는 시간은 10시! 현재시간 7시! 남은시간 3시간! 180분!! 10800초!!!
초단위를 넘어서 더이상 쪼갤 수도 없을만큼의 단위로 시간을 분해하던 대현이 퍼뜩 정신이 들은듯 고개를 들었다.
7 : 03
3분!!! 3분이나 지났어!!!! 180초를 나는 지금 허비했어!!
한손으론 제 머리카락을 잔뜩 헝크리곤 다른 한손으론 바쁘게 문제집을 꺼내는 대현이 분주해보였다.
오늘 중딩들 시험지 채점하고...아 이새끼 빌어먹을 새끼..이걸 틀려?! 진짜 뒤질라고!!!!
빨간 색연필을 든 대현의 손이 눈과 비를 번갈아 그려간다
틀렸어..이 새끼는 망했어...이걸 점수라고..!!!!!
절망스럽게 제 머리를 부여잡을때는 언제고 눈에 불을 키곤 다음 시험지로 넘어가는 대현의 모습은 한참동안이나 계속 되었다
딩동~딩동~!
한교시가 끝났다는 종소리에 시험지에 파묻혔던 대현의 정수리가 번쩍 들렸다
8 : 00
"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ㅏㄱ...."
2시간....2시간 남았다아!!!!!!!!!
차마 시끄럽게는 못하고 속에서 온갖 비명을 지르는 대현의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이 흠칫하고 놀랄법도 한데 옆을 지나치는 학생이나 선생님의 모습은 익숙하다는듯 제 갈길을 간다.
이미 몇달째 익숙해진 풍경이였다.
대현의 손에서 굴려지던 빨간 색연필이 눈과 비대신 알수없는 붉은덩어리를 그려낸다
대현의 현재 심정이 반영된 그림이라고 흘깃본 사람들은 생각했다.
8 : 15
딩동~딩동~
다시 새로운 수업이 시작된다는 종소리가 들렸다
흐어어...하고 괴상한 소리를 낸 대현이 다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과 비를 그려갔다.
"...아..."
어느새 중학생시험지를 쌓아뒀던 곳이 텅 비어있어 대현은 제 책상서랍을 뒤적거려 다시 한뭉텅이의 시험지를 꺼냈다
고등학생들의 시험지이다
삭-삭-삭-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처음 잡은 시험지부터 동그라미가 잔뜩 그려진다
시험지의 맨 윗부분에 가지런히 써진 ' 방 용 국 '이라는 세글자가 제 주인 성격마냥 반듯반듯하다
"후...역시 용국이는 잘했네....한겨울날씨구만...."
붉은 동그라미가 잔뜩 그려진 시험지를 둘러본 대현이 다음 시험지를 집어들었다.
삐뚤삐뚤 귀찮은티가 잔뜩 나있는 '유 영 재'라는 세글자가 어쩜 이렇게 제 주인을 닮았을까...
'하기시룸귀차늠'라는 글자가 뽝!하고 박혀있던 영재의 눈동자가 저절로 연상되는 글씨체였다
"....유영재 이자식..."
플러스랑 마이너스를 잘못써? 그렇게 치한을 하라고 말했는데!!!!!!!
으득, 어금니씹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간간히 비가 내리는 영재의 시험지를 훓고는 용국의 시험지 위에 내려놓은 대현이 두렵다는 눈으로 다음 시험지를 집어들었다
' 최 준 홍 '
진짜 글씨체는 주인의 성격이 제대로 반영됨이 틀림없다
준홍을 가르친 경력이 어느정도 있는 대현을 제외하면 어떤 선생님도 알아먹을 수 없는 이 세글자!!
얼마나 급하게 휘갈긴건지 누군가 보면 싸인이라도 해놓은 것으로 착각할 정도의 괴팍한 손놀림!!!
채점하기 전에 시험지를 넘겨보던 대현이 마지막장에서 손을 멈추었다.
= 2 + 4 + '
".....최준호옹....."
뭔데 이 점은!!! 4 + 옆에 있는 이 점은!!!!!!!! 졸았냐 이 놈아아아아아아!!!!!!!!!
대현이 가차없이 비금을 그었다
격한 대현의 손길이 닿은 종이는 순간적으로 찢어질만큼 가련해보였다
다시 시험지 앞장으로 넘어간 대현이 한숨을 훅-뱉고는 답을 비교했다
삭-삭-삭-
"........"
시험지가 한장씩 넘겨짐에 따라 대현의 얼굴에서 점점 표정이라는 것이 사라져갔다.
흘깃- 대현을 넘겨다본 대현의 옆자리 선생님이 흠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오늘따라 심각하게 비가 내린 준홍의 시험지에 조용히 두손을 모은 선생님은 준홍을 위해 기도해주었다
준홍아 입에 마우스피스( 권투에서 입 안과 이의 손상을 막기 위하여 입에 무는 물건) 꼭 물고와라, 오늘 너 강냉이 입에서 해고될듯하다
"......최준호오오오오오옹!!!!!!!!"
결국 대현의 괴성이 학원을 가득 울렸다.
수업중이던 학생과 선생님은 멈칫,하고 한번 놀래줄뿐 다시 수업에 빠져들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듣던 울부짖음이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