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어. 응, 걱정말고. 국제전화라서 통화비 많이 나올라. 끊어. 어, 알겠어. 응 나도 사랑해"
수화기 넘어 나라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소리치는 사람들, 쉴새 없이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들의 소리로 얼룩얼룩 물들어있었다. 더 길게 끌고싶은건 사실이었지만 제가 여기로 오기까지 더 없이 많은 후원을 해준 부모님께 국제전화요금까지 폭탄으로 안겨드린다면 그것보다 더한 불효는 없을 것이라 경수는 생각했다. 기다란 벤치 한쪽에 백팩과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 먹다가 조심스럽게 봉지에 싸둔 바게트 위로 햇살이 조심스럽게 열기를 더해가는 중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발밑으로 펼쳐진 풍경을 그리는데에 열중하던 경수가 스케치북에서 눈을 들어 부르르 진동하는 핸드폰을 들어올렸다. 82. 한국이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쉴새없이 쏟아지는 엄마의 목소리에 완전히 스케치북에서 눈을 뗀 채 발끝으로 장난을 치면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응. 형은 잘 지내? 결혼식에도 못갔네. 축하한다고 전해줘. 옆에 놓여있던 커피를 들어 한모금 들이켰다. 미적지근한 커피의 온도가 입안을 훑고 지나간다. 내가 보낸 엽서들은 잘 받았어? 다행이네. 응. 돈은 내가 알아서 해. 걱정말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였다. 밥은 먹었냐, 잠은 잘 자냐, 어떻게 지내냐. 가까운 곳에 있었으면 되려 짜증이 났을 법한 질문들이었지만 먼곳에 홀로 와 있으니 하나하나가 다 소중했다. 징징거리면서 더 붙잡고 있어보려고 했지만 역시 전화비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하늘만 바라다 보고있었다. 한참을 벤치에 기대어 발장난을 하다가 다시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그리다만 건물들이 흉흉하다. 일주일 전부터 줄기차게 그려오던 똑같은 풍경이었다. 한 가지에 꽂히면 마음에 들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라 쉽사리 끊어 내지도 못했다. 스케치북에 올려져있던 연필을 들려다가 왼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에 눈이 갔다. 4시 58분. 18분이나 초과해버렸다. 아, 다 못그렸는데. 결국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건물을 찍다 보니 풀밭이 찍고 싶어졌고, 풀밭을 찍다보니 하늘이 찍고 싶어졌다. 하늘을 찍기위해 올라가던 도중 허공에서 두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두 시선이 마주쳤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몽마르트
W.맨마루
"뭐? 100일동안 배낭여행? 그것도 파리에?"
"응"
와 도경수 진짜 대박. 야 나 짐으로 데려가주면 안됨? 어 절대 사절이다. 화물칸에 싣고 가면 안됨? 안된대도 끈질기게 대답을 요구해오는 쨍쨍거리는 목소리에 귀찮은듯이 머리를 털고 일어섰다. 왜 가는건데! 같이가! 딸랑- 카페문에 옹기종기 달려있던 방울에서 예쁜 소리가 난다. 일주일 전. 저녁식사도중에 그냥 툭 내뱉은 말이었다. 나 파리로 배낭여행 가고 싶은데. 숟가락이 밥그릇에 부딫히던 소리가 잦아들고 엄마가 먼저 말문을 텄다. 배낭여행? 누구랑? 그냥 혼자서. 그림도 좀 그릴겸 해서. 같은과 학생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이었다. 파리 배낭여행. 물론 경수도 간간히 생각해오던것이었다. 하지만 안될것을 잘 알고있기에 아무 미련없이 내뱉고는 기억에서 지웠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엊그저께 엄마가 조용히 불렀다.
"경수야 파리 배낭여행 가고싶다고 저번에 말했었지?"
"어? 어...아, 그때 밥먹다가 말한거? 그거 신경 안써도 되"
"그게 아니라 엄마랑 아빠가 그동안 형에게만 신경을 쓴것 같아 미안해서. 경수한테 많이 소홀해서 힘들었던 부분이나 서운했던 부분들, 이번 여행으로 풀고 경험도 쌓아 줄 겸해서. 언젠가 쓰게 되겠지, 하고 모아뒀던거 줄테니까 파리 여행 다녀와"
통장을 내미는 엄마의 손에서 아빠의 굵직한 손이 같이 느껴졌다. 엄마, 고마워. 아니야. 진작에 이런거 해줬어야 했는데. 우리 아들, 엄마랑 아빠가 많이 미안해. 웃고있는 엄마의 얼굴에서 미안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말을 더 붙이면 그 미안함의 농도가 더 진해질 것 같아 뒷말은 삼켜버린채 7살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처럼 엄마품에 매달렸다. 훌쩍 안기면 높기만 했던 엄마 품이 어느새 낮아져 있었다. 엄마 사랑해. 낯간지러워서 내뱉기 꺼려했던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서 맴돈다. 엄마가 조용히 등을 토닥거렸다. 어느새 저도 모르게 엄마의 손이 야위어있었다.
그날이후로 경수는 바빴다. 휴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깐깐한 미술교수의 과제를 한 마음으로 머리를 싸매고 해왔던 같은 조 친구들에게도 작별인사를 고했다. 작별인사라고 하기엔 100일 뒤에 다시 볼 얼굴들이라 조금 민망한 감이 없지않아있었지만 수식할 적당한 말이 없었기 때문에 작별인사라고 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갑작스런 휴학에 처음에는 다들 군대에 가냐고, 영장 날아왔냐고 놀라는 눈치였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아는거라며 파리에 간다는 뒷말을 다 듣고나니 어느새 두눈에 부러움이 넘실댔다. 와 도경수 개부러워. 그래 너나 가라 프랑스. 모두 질투를 하는것 같아보였지만 속으로는 축하해주고 있다는게 표정에 역력히 드러났다. 친구하나는 잘 사겼네.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강의실에서 교문을 빠져나오는 동안 핸드폰 타자로 제가 재학중인 서양화과의 건물과 3건물 넘어 위치한 실용음악과에서 열심히 과제를 하고있을 종대에게 시간이 나냐고 타이핑을 쳤다. 일주일 전부터 과제가 너무 어렵다며 찡찡대던 얼굴이 생각나서 문자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래도 안 볼 생각 하니까 조금 섭섭하네. 그리 길지만은 않은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 내려오려니 숨이 차올라서 낮에 한창 열기를 받아 뜨끈해진 돌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숨이 찼던게 수그러 들 때 쯤에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발신자는 당연히 김종대였다. '어, 그럼 엔제리너스에서 만나자. 요거트 스무디 사주는거지? 금방 내려갈게~~' 답지않게 끝에 물결을 두개나 달아서 문자를 보냈다. 평소같았으면 트집을 잡고 니가 사먹어라는 둥 히스테릭을 부렸을법한 내용이었지만 앞으로 삼 개월동안 혼자 집으로 가야할 제 5년지기 친구를 위해 오늘만큼은 실컷 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도경수, 니가 왠일이냐? 요거트 스무디를 다 사주고?"
"왠일은 무슨. 그냥 사주고 싶어서 그런거지"
"야 설마 나 오기전에 여기에다가 청산가리 뿌렸냐?"
친구의 마음을 그따위로 밖에 해석을 못하겠냐? 응. 돈은 니가내라. 죄송해요 형님. 말은 서로 심하게 해도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또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잘 아는 사이였기때문에 서로서로에게 앙금 남을것도 없었다. 앞에서 맛있다고 손뼉까지 쳐가며 스무디를 쪽쪽거리고있는 놈에게 본론을 털어놓았다. 예상했던대로 쨍쨍거리면서 저도 데려가 달라고 떼를 쓰는 종대를 놔두고 경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찡찡거리면서 다 마시지 못한 요거트 스무디를 손에 챙겨서 졸졸 따라온다. 그래서 파리 가서도 연락 자주 할 거지? 마치 엄마 품을 떠나는 7살아이마냥 안손에 스무디를 들고 물어오는 녀석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났다. 밥먹으러 가자 김종대. 형아가 특별히 너만 쏴주는거야. 오? 도경수 남자다? 그럼 내가 여자였냐? 음 달팽이? 제 드립에 제가 킬킬거린다. 쓸모없는 드립치지말고. 머리통을 한대 갈겨주자 눈을 부릅뜨고 방방뛴다. 찡찡거리는 목소리도 이제 3개월간 안녕이구나.
마치 쏘기를 기다렸다는듯이 에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사내라고 밀어붙이는 놈에게 10만원을 지출하고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어유 징한 놈. 집으로 돌아오는 밤공기가 싸늘했다. 100일 뒤면 다시 돌아올 한국이지만 왠지모르게 영영 이별하는것만 같아서 경수는 싱숭생숭했다. 그리고 3일 뒤 경수는 프랑스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물안에서 개구리가 뛰쳐나가던 날이었다.
처음 밟았던 파리 샤르드골 국제공항의 풍경은 활기찬 낮이었다. 코가 산처럼 솟은 푸른눈의 서양인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이에 멀뚱히 서있자 안네데스크에서 웃는 얼굴이 생글생글 미인형인 안내원이 다가와서는 찾으시는게 있으신가요? 도음이 필요하신가요? 물어온다. 'Amélie' 단정한 세미 정장차림 왼쪽 가슴팍에 금색 바탕에 흰색으로 적혀있었다. 아멜리. 직업탓인지는 몰라도 꽤나 친절했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흔들며 정중히 거절하자 웃으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럼 좋은시간 보내십시오. 그리고 미리 전화해둔 한인 민박집을 향해 캐리어를 끌었다.
몽마르트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먼저 카메라 접안렌즈에서 시선을 뗀 쪽은 경수쪽이었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라 당황하기도 했고, 혹시나 상대쪽에서 오해를 할까 두렵기도했다. 그러나 상대 쪽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느릿느릿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머쓱해진 경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 보려고 헛기침만 잔뜩 늘어놓았다. 아, 쪽팔려. 다행히 상대는 현지인이 아니라 저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배낭여행객 같아 보였다. 혼자 쪽팔림에 몸부림을 치고있을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Xavièrre 발신인은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였다.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든 경수는 시계를 보았다. 오 지저스. 오늘 저녁밥 먹기는 글렀다. 5시 22분이었다.
경수가 묵고있는 한인 민박집의 이름은 'La vie est belle' 한국어로 번역해보면 '인생은 아름다워' 였다. 주인아줌마인 자비에흐와 그의 남편 'Jean' 쟝이 고심끝에 지은 이름이라고했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그들의 민박집은 경수가 파리에서 가장 즐겨찾는 몽마르트 언덕 밑에 위치한 2층짜리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아기자기한 민박집이었다. 그곳에는 총 7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고있었는데 모두 각자이 사연을 가지고있는 이들이었다. 아무튼 그런 민박집의 유일하게 규칙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5시 30분 이후로 복귀할시엔 저녁식사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었다. 자비에흐가 4년동안 운영해오면서 제일 못마땅해 했던것이 그부분이었다. 식사시간에 제때 들어오지않고 뒤늦게야 밥을 차려달라고 요구해오는 것. 그래서 자비에흐는 불필요한 인력을 줄이기 위해 이러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새내기인 경수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내용이었다.
진짜 미친듯이 달려간다고 해도 저녁식사시간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급 우울해진 경수는 언덕밑에서 바게트를 하나 더 사가기로 마음 먹고 벤치에 풀어 놓았던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마지막으로 경수가 항상 빼놓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벤치에서 삐닥하게 기대어 주인을 기다리던- 기다란 장우산 까지 챙기고나니 어느덧 시간은 5시 3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터덜터덜 내려가는 경수의 뒷모습에 길게 그림자가 따라붙었다. 그런 경수의 그림자 뒤로 또다른 그림자가 따라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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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ㅜㅜㅜ 역시 외국을 배경으로 픽을 찌려니까 굉장히 힘들군요ㅜㅜㅜ 게다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파리에대해서 쓰려니까 더 죽을맛ㅜㅜㅜ
수업시간에 수업듣다가 갑자기 생각난 소재라 집에 달려와서 얼른 쪄보니까ㅎㅎㅎ 혼자서 몽마르트 언덕 사진을 보면서 상상하고 이름 지어내고....OTL
혹시 독자님들 중에서 프랑스 여행 다녀오신 분 계신가요?ㅜㅜ 계시다면 정보를 좀 구걸해도 될까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진짜 죽을것 같...ㅎ
똥글이라도 클릭해서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드리구요, 네 2화는 언제 업뎃될지 저도 몰라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약 기다려주신다면 얼른 쪄서 들고 오겠습니다ㅎㅎ
그럼 잘부탁 드려요(꾸벅)
+ 경수랑 눈이 마주친 남자는 누구일까요?ㅎㅎ
*브금 좋은거 추천해주세요ㅜㅜ 귀가 고자라서 이번 브금도 막 선택해봤는데 어울릴지 안어울릴지 모르겠네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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