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의 향수 01.
평범한 중학생이었다. 집근처의 학교를 다니고, 방과 후면 친구들과 분식을 먹으러 다니는.
평범한 일상들이 이렇게나 소중해질 줄 그때는 알지 못했는데. 천둥번개가 치는 여름방학이면 괜히 엄마의 침대에 파고들었다.
그럼 얘가 왜이래, 하면서 엄마는 내 등을 토닥였다.
그때의 이불의 향기와 엄마의 향기가 그립다. 아버지는 없었다. 어릴 땐 꽤 알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생각도 없고 물어봐도 엄마는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한 휴일이면 국궁을 배우러 산을 올랐다. 아이러니 하게 산을 오르면 광활한 평지가 펼쳐졌다. 팡-! 화살을 쏘면 좀 자유로운 느낌.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과녁에 쏜살같이 도달할 때의 전율이 손끝까지 느껴졌다. 허약한 나에게 조금은 허락된 운동이었다.
산을 타는 것도 처음엔 죽도록 힘들다가, 몸이 좋아진 건지 나중엔 숨이 좀 가쁠 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늘 엄마한테 장대로 맞았다. 엄마는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 자세를 잡아 줄때나 내가 화살을 잘못 쐈을 때 장대를 이용해 툭툭 치곤했다.
말이 툭툭이지 그 장대, 무게가 있어서 꽤 아팠다. 그땐 영락없이 난 주워온 딸이며 우리엄만 계모라고 생각했다.
팡-!
“명중입니다 마님”
내가 마님 소리도 들어야 한다니, 그보다 조용히 혼자서 하고 싶었는데 왜 따라 나와선
“혼자 정리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들어가세요.”
“말씀을 낮추세요. 주인마님께서 들으시면 혼납니다.”
먼저 들어가시지 않으시겠다는 거죠? 탄소는. 체념한 듯 송하댁을 바라봤다 그래도 타지에서 의지가 되는 건 송하댁 밖엔 없었다.
시대가 어느 땐데 마님이라고 말을 놓고 그럽니까? 예? 우리 엄마뻘 되는 사람한테 절대 그럴 순 없었다.
“싫습니다. 아무리 일하시는 분이래도 어른이십니다.”
“걱정돼서 그럽니다. 걱정돼서”
“송하댁, 전 괜찮습니다. 들어가 보세요.”
송하댁이라고 부른지도 얼마되지않았다. 처음에는 그저 아주머님, 혹은 이모님이라고 불렀는데 많은 꾸중을 듣고 어느정도 선을지켜 맞춘것이 송하댁이었다.
고집어린 탄소의 말에 송하댁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곤 멈칫하더니 다시 뒤를 돌아 탄소를 바라봤다.
“아, 마님 왕자저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팡-! 바람을 거세게도 가르던 화살이 어느 순간 어긋나 과녁도, 이도저도 아닌 풀에 꽂혔다.
뭐라구요?
“이년만이신가요? 길례 올리시고 처음이니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늦은 밤에 돌아온다고 하시니 부부인마님께선 내일 아침이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 같네요”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놀라서 입만 뻐끔거린 채 송하댁을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멀어지는 송하댁이 그리도 얄미울 수 없었다.
**
엄마 나 남편만나 웃기지. 식 올리고 처음 보는 건데 반가울까? 내가 그 사람이 반가울지 모르겠어.
그 사람이 내 얼굴을 기억할지도 모르겠고 말이야.
그래도 남편이라고 나는 솔직히 몇 번 생각도 했는데.
그리고 사실 원망하면 안 되는 거 알긴 하는데. 그래도 좀 원망해, 그 사람 때문이 아닌걸 아는데도
탄소는. 편지를 고이 접어 제 서랍에 넣었다 이건 엄마한테 보내지 못하겠다.
내가 공주라는 걸 안건 중학교 3학년 가을쯤, 집 앞에 난생처음 보는 비싼 외제 차들이 쭉 깔려있을 때였다.
이게다 뭐야 엄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다. 나는 당황해 말을 더듬으며 엄마의 눈물을 닦았다.
곧 날 와락 껴안으며 엄마는 흐느꼈고 누군가 시간이 없다며 엄마를 재촉했다. 미안하다 아가, 미안해. 안겨있는 날 떨어뜨리며 엄마는 내손을 꼭 잡았다.
그리곤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밥 거르지 말고 너무 울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고 지내라며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알 수 없는 말을 쏟아냈고.
나도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기별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 그만 가야한다. 비싼 정장을 입으신 딱 봐도 지체 높아 보이는 남자가 날 차안으로 억지로 이끌었다.
싫다고 안가면 안 되냐고 애처롭게 묻는 나에게 그는 어명이라며 내 입을 막았다.
폐하라뇨,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날 움직인 건 주저앉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빨리 이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미 다 알고 있었겠지,
더 이상 가기 싫다며 투정부려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생각은 없었다.
제 아버지는 폐하이셨군요. 황실이라면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일 텐데요.
제 존재를 알고 계셨다는 게 신기하네요. 차안에서 쉴 새 없이 말했다.
말이라도 안하면 돌아 버릴 것 같아서.
가국과는 이미 사이가 좋은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전 왜 가야 하는 건가요.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럼 부탁이 있습니다. 폐하께 전해주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나라를 지켜주세요, 어머니가 있는 이 나라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깊은 사정은 모르겠지만. 지금도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겠죠. 그렇게 믿습니다.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었고 아버지로서, 한나라의 군주로서 바란 단 한가지였다.
제 어머니가 있는 내 나라를 지켜주세요. 그 단 한가지였는데.
**
교실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 똑같이 탄소의 책상은 제 위치가아닌 저 멀리도 가있었다. 아, 따돌리는데 이런 정성까지 들이다니 참 가지 가지한다.
책상을 다시 힘겹게 끌어다 놓자 여기저기 키득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여기가 초등학교 교실이 아니라 고2의 교실이라니.
조회시간이었다. 유난히 이번 가을이 몸을 우수수 떨 정도로 추웠다. 벌써 마이를 입고 다녀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쎄 한 느낌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는데주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꽤 흥미로웠다. 옆 반에 전학생이 왔는데 왕자라는 둥, 잘생겼다는 둥.
조회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물병에 물을 채우러 교실 밖으로 나오는데 무언가와 마주쳤다. 참 낯이 익은 실루엣이었다.
점점 실루엣은 뚜렷해져 테가 생기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색이 입혀졌다. 이리도 사람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린 건 그가 그라서 그렇다.
파하, 저도 모르게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가뜩이나 새 전학생의 모습을 숨죽여 보고 있던,
심지어 그가 왕자인 탓에 다들 묵례를 하고 지나가던 복도였는데. 쓸데없이 내 헛웃음에 이목이 집중됐다.
내 남편이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그가 헛웃음을 흘리던 나를 날이 선 눈빛으로 훑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애들도 탄소를. 죽도록 째려봤다 여러 눈빛들에 타들어갈 것만 같았다.
다행이도 나를 못 알아보는 것 같았다. 괜히 혼자 긴장했네.
탄소는. 태평히 고개를 슬쩍 숙여 인사하고 그의 옆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지 못했다. 팔을 잡아오는 큰손에 놀라 위를 올려다봤을 땐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고 등신같이 심장은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사실 그 눈과 두번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았고 마주쳐야 하더라도 나중일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않았다.
탄소는 달아오른 얼굴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떨어뜨렸는데, 이거”
그가 내손에 텀블러 뚜껑을 쥐어주며 말했다. 또 한동안 그 뚜껑을 멍하니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유리창을 깨고 뛰쳐나가고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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