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고3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펜을 쥔 채 졸기에 바빴고 그러면서도 밤에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에 드는 일상의 반복이어서, 나는 올해 들어 제대로 된 공부를 거의 한 적이 없다.
그러다 얼마 전에 보았던 모의고사에 대한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이후로 나는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다. 지금처럼 희망 없이, 계획 없이 6개월을 보내면 내가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지원서조차 넣어주기 어렵겠다고. 입학할 때만 하더라도 중상위권에서 머물던 성적이 끊임없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고 심지어는, 진로를 바꾸는 게 어떠냐는 권유까지 받았다.
이전의 상담들로 조금씩 자각은 하고 있었지만 고3이라 그런지 돌려 말하지 않고 단번에 정곡을 찔러 현실을 깨닫게 한 이번 상담은 나를 슬럼프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하루 종일 좋지 않던 컨디션 때문인지 속도 좋지 않고 공부도 되지 않아 결국 나는 야자 도중에 집으로 가야 했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엄마를 뒤로한 채 들어간 방에서는 이불을 덮어쓰고 울음을 꾹 삼켜야 했다. 속이 상하긴 해도 이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순전히 내 탓이니까.
"딸, 밥 먹어야지."
"…안 먹고 싶어."
"그래도,"
"엄마.
"……."
"…나 힘들어요."
"……."
"나가주세요. 혼자 있고 싶어."
얼마 안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는 참고 있던 울음이 터져 정신없이 한참을 울었다. 외동인 나에게 모든 사랑과 관심을 쏟아부어주신 부모님께 너무나도 죄송해서, 괜히 엄마에게 상처만 준 것 같아 미안해서. 핸드폰도 꺼놓은 채 베게에 얼굴을 묻고 눈물만 흘려대다 몇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아침 안 먹어?"
"…미안해요."
엄마의 걱정에도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아 아침밥도 거른 채 현관을 나서자 잔뜩 화가 난 얼굴인 찬열이가 문 옆에 기대 있었다. 아마 어제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무어라 한마디 하려는 듯 내 이름을 나직하게 부른 찬열이는 이내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한 나의 초췌한 몰골을 보고 깜짝 놀라 하며 표정을 풀고는 내 어깨를 그러쥐었다.
"왜 그래."
"……."
"무슨 일인데, 어제 야자도 빠지고 하루 종일 핸드폰도 꺼놓고."
"…그냥, 속이 좀 안 좋아서."
"괜찮아 이제는?"
괜찮으냐는 그 말에는 도저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그저 찬열이의 손을 꼭 쥔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라도 감정을 숨기고 싶어하는 내 의도를 눈치라도 챈 듯 찬열이는 다시 손을 마주 잡고 등굣길 내내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았다. 내가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도록.
[몽정]
이후로 며칠 동안 나는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손에서 펜을 놓는 일이 없도록 했다. 졸릴 때면 텀블러에 받아놓은 물을 마시고 교실 뒤편에 있는 키다리 책상에 서서 공부하는 등 조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다. 덕분에 휑하던 앞장과는 달리 요즈음 수업이 들었던 부분은 필기로 빼곡해있었고 이동수업이 아닌 이상 교실을 벗어난 일도 없어 등교할 때를 제외하고는 찬열이와 마주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단기간이 잠까지 줄여가며 무리해서 공부를 한 것이 화근이었던 건지 나는 물을 마시러 나온 주방에서 갑자기 픽 쓰러져버렸고 그런 나를 보고 놀라 즉시 응급실로 데려다 준 엄마 덕분에 지금은 방에서 편히 쉬고 있는 중이다. 오늘이 평일이었으면 떼를 써서라도 학교를 갔겠지만 다행히도 오늘은 자습만 있는 주말인데다가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쉬는 쪽을 택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나만 공부를 하지 않는 것만 같은 불안감에 단어장이라도 보려 했지만 얼른 낫기나 하고 다른 걸 하라는 애원 섞인 엄마의 부탁에 얌전히 침대에 누워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보충했다.
* * *
자고 있는 내 머리맡에서 누군가가 무어라 중얼거리며 조심스레 머리를 쓸어주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아 상대가 누군지 확인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눈앞에 보이는 허리를 가득 끌어안았다. 그제야 풍겨오는 찬열이 특유의 체취에 그 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당황한 듯 나에게서 벗어나려 힘을 주는 것에 아랑곳 않고 더욱 어리광을 부렸다.
"아무한테나 이러면 혼나."
"너니까, 찬열이 너라서…."
"…말이라도 못 하면."
잠에 잔뜩 취해 웅얼거리듯 내뱉자 그에 작게 웃은 찬열이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굳이 확인해보지 않아도 어린애 보듯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찬열이의 나긋한 눈빛과 따뜻함이 가득 배인 손길은 막 깨어나려던 정신을 다시금 나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애기 다 됐네, 우리 돼지."
"……."
"뭐가 그리 힘들었어."
"……."
"너는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어. 괜히 자극시켜주려고 한 말에 이렇게나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돼."
"……."
"나랑도 말하기 싫어?"
응?
부드럽게 나를 어르는 손길과 말투에 거짓말처럼 왈칵 눈물이 터져버렸다. 조금씩 들썩이는 내 어깨에 나를 똑바로 앉혀 눈을 마주한 찬열이가 잔뜩 엉망이 된 내 머리와 얼굴을 정리해주더니 이내 저의 품 안 가득 나를 끌어안아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너한테 내가 모르는 큰일이 생겼을까봐,"
"……."
"건강하던 네가 갑자기 쓰러졌다길래 무슨 병이라도 생긴걸까봐,"
"……."
"이렇게 지내다 영영 너랑 멀어질까봐,"
"……."
"얼마나 걱정했는데."
목에서 뭔가가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울음을 참겠답시고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이 절로 열리더니 홀로 남겨진 상황에서 저의 편을 만난 어린아이같이 처량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진짜, 잘하는 것도, 흐으,… 없어서,"
"괜찮아."
"공부라도, 하려 해도, 아무것도 모르겠고, 으,…"
"그랬어?"
"진짜 내가, 엄마한테, 흐,… 너무 미안해서,"
도저히 말을 이을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눈물에 말하는 것을 포기한 채 그저 토닥이는 찬열이의 손길만을 받으며 한참을 그렇게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이 그치고 훌쩍이는 소리마저 간간이 들릴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가만히 나를 받아주던 찬열이는 훌쩍이는 소리마저 멎어가자 그제야 나를 저의 품에서 떼 놓더니 눈을 마주한 채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다 울었어?"
"……."
"눈 부은 것 봐, 우리 돼지."
"…아씨, 보지마…."
"괜찮아, 예뻐. 지금 네 얼굴도, 네 생각도."
"…거짓말."
밉지 않게 눈을 흘기자 커다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쓸어내린 찬열이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
"누가 스트레스 안 받겠어, 언젠가는 다들 겪어. 넌 조금 빨리 직시했을 뿐이야. 괜찮아, 다들 그래."
"…진짜?"
"물론.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무리하지는 마. 쓰러지는게 말이 돼?"
"그래도 난 못하니까…."
"정 불안하면 나랑 같이 해. 너 항상 그런거 부럽다고 했었잖아."
"……."
"연인끼리 머리 맞대고 공부하는게 서로 도와주는 것 같아서 부럽다며. 뭐가 문제야, 우리도 하면 되지."
"……."
"학교든, 카페에서든, 집에서든.
"……."
"우리 둘이서."
평상시에도 저음인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아 말을 건네오는 것은 내 마음 한 켠에 그의 진심을 보다 우직하게 자리 잡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한 찬열이에 작게 웃고는 그의 입술에 여러 번 짧게 입 맞추며 사랑을 속삭였다.
"사랑해."
"……."
"네가 없는 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
"많이 좋아해, 찬열아."
어릴 때부터 쭉 이어져오던 사소한 인연을 소중한 연인으로 바꾸어준 찬열이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에 커다란 감사를 느끼며 다시금 그를 가득 끌어안아 애교 부리는 고양이마냥 갸릉대며 목덜미에 얼굴을 부빗거렸다. 그에 살살 내 머리를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은 나로 하여금 더욱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했고 이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내가 다시 잠에 빠진 후로도 한참을 내 곁을 지켜준 찬열이는 혹여나 내가 깰세라 조용히 집을 나갔다고 했다.
이후로 우리는 정말 매주 주말마다 도서관과 카페를 오가며 오직 공부에만 집중했고 덕분에 나 자신이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상승된 성적 덕분에 슬럼프에서는 말끔하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게 항상 나를 나 자신보다 더 아껴주고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박찬열이라는 남자친구를 둔 덕분일지도.
촌스럽게 왜 이래 뮤비 속 찬열이가 너무 예쁜데다 글이랑도 잘 어울려서 마구 캡쳐 .. @"@
오늘도 감사합니다!
암호닉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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