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안 먹는다니까. "
팅, 하고 바닥으로 떨어진 포크를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백현은 오이를 싫어했다. 싫어한다는 것도 양호한 편, 혐오한다는 말에 더욱 가까웠다. 그렇다고 점심시간 마다 모든 음식에서 오이를 골라내는 백현의 행동을 지켜보기에는 정말... 꼴불견이었다. 23살의 튼실한 남자가 오이가 먹기 싫다고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오이를 그릇 밖으로 던지다시피 빼내다니. 그래서 나는 며칠 전부터 변백현 편식 고치기 프로젝트를 만들어 오이를 넣은 갖가지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늘 결과는 지금과 같았다. 포크를 쳐내거나, 혹은 자리를 피했었지만... 오늘의 백현은 좀 달랐다.
" 내가 오이 안 먹는다고 했잖아.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데? "
" 그냥 니가 편식하는 게 보기 안 좋, "
" 신경 좀 꺼. 니가 이딴 거 만들어 올 때마다 기분 나쁘니까. "
화가 많이 난 모양인지 가게 문을 열고 나가버린 백현과 자리에 앉아서 백현이 나간 곳을 멍하니 지켜보는 나. 그리고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던 찬열이 혀를 차며 내 옆으로 와 앉는다. 변백현이 화낼 줄 알았다, 하면서 내가 싸온 도시락을 손으로 주워 먹는데 그게 또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얄미운 박찬열은 나와 변백현이 일하는 이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같은 꿈을 갖고 함께 놀던 우리 셋은 찬열의 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이 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했고, 수입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디저트 담당인 백현이 가게를 박차고 나가버렸다는 것이다.
" 안 오면 어떻게 하지. "
" 무책임한 놈 아니니까 시간 되면 알아서 오겠지. 너도 가서 가게 오픈할 준비나 해, 변백현 오면 사과하고. "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와 요리에 쓰일 재료들을 손질했다. 원래 변백현이랑 같이 손질했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따끔한 느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가락이 베였는지 피가 나오고 있었다. 젠장, 오늘 되는 일이 없네. 짜증 가득한 걸음으로 직원용 탈의실에 들어가 구급상자를 찾아 꺼내는데, 탈의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백현이 보였다. 아까보다 표정이 한결 풀어졌지만 여전히 화가 난 듯 백현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졌다.
" 도시락은 미안, 이제 그만 싸올게. "
변백현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나도 사과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다시 구급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백현과 같이 있기가 어색해져 대충 연고나 바르고 나가려고 연고의 뚜껑을 여는데, 백현이 그런 내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는 남은 한 손으로 소독약과 솜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야, 변백현... 그거 따갑, 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백현은 소독약을 솜에 가득 묻히더니 내 상처에 가져다 발랐고, 나는 상처의 쓰라림에 작게나마 몸부림을 쳤다.
" 너 소독약이 상처에 대면 얼마나 따가운지 몰라? 어? "
" 그러게 누가 오이 도시락 싸오래? 이건 정당한 벌이야. "
정당한 벌 좋아하시네. 나는 백현의 목에 레슬링 기술을 걸었고, 그에 백현은 빨개진 얼굴로 항복할테니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백현의 목소리를 들은 것인지, 니네 가게 오픈 안 할거냐! 하고 밖에서 소리를 지르는 찬열의 목소리에 기술을 걸던 팔을 풀고 상처를 보는데,
" ... 백, 백현아. "
" 켁, 존나 아파. 뭐, 왜 그렇게 보는데? "
나는 대답을 잠시 미루고 재빨리 연고 뚜껑을 마저 열어 연고를 바르고 밴드 하나까지 싹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뭔데.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백현에 나는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백현의 티셔츠 한 쪽을 가리키다 망설임 없이 바로 탈의실에서 나왔다. 탈의실 문을 닫자마자 아, 도경수!!! 하는 백현의 외침이 들려왔다. 백현에게 기술을 걸다보니 소독약이 백현의 티셔츠에 묻어버린 것이었다.
" 일 안 하고 자꾸 농땡이 부릴래? 화해는 한 것 같은데 제발 일 좀 하자. 어? "
" 미안, 이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 "
" 와, 도경수 진짜 너무한다. 저거 내가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옷인데... 하아. "
백현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며 투덜거렸고 나는 못 들은 척, 얼른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아까 챙긴 밴드를 붙이고 있는데 내 어깨에 묵직한 무언가가 얹어졌다. 뭔가 싶어서 옆을 보는 순간, 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입술이 백현의 볼에 닿았다. 아무한테도 닿은 적 없었던 내 입술은 그렇게... 백현의 볼에 첫 뽀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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