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은 아직도 이 상황에 납득을 하지 못했다. 왜 늦은 시간까지 찬열과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건지, 하필 장소도 여자가 바글거리는 커피샵인지조차 모르겠다. 제 앞에 덩그러니 놓인 단 내 나는 초코 라떼 잔을 집어들며 슬쩍 눈치를 보았다. 팀장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원래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도 저렇게 여유로운 타입인가..
백현은 찬열이 백퍼센트!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보고서나 공적인 일 잘 처리하지 못하는 건 모두 제 책임이었지만 그 외에도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요인은 많았다. 회사 복도 한 가운데에서 엎어졌더니 하는 말이 '백현씨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힘겹겠습니다', 하며 놀린 일도, 춤은 정말 잘 못 춘다며 손사래 쳤으나 팀장 직분까지 들먹이며 결국 회식 자리를 웃음바다로 만든 일, 그리고 그 외 등등. 꼭 자기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도 이상한건, 백현은 찬열이 싫지 않았다. 사람 잘 생긴 거에 홀랑 넘어간건지, 팀장님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자기도 모르는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군대나 집에서조차 받지 못했던 민망함과 무안함을 한번에 몰아주었는데도 찬열을 향한 악감정은 딱히 생기지 않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한테 물렁히 행동하는 스타일인가? 곧잘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찬열은 백현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찬열은 백현과 반대인 것 같았다.
싫은 사람은 얼굴조차 마주하기 싫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고 또 공감하는 말이다. 그런데, 매일 쓴 소리, 잔소리 퍼붓던 팀장님이 오늘은 웬일인지 먼저 불러내셨다. 늘 정수리만 봐도 백현씨는, 하며 놀려대기 바쁜 사람인데 어떤 할 말이 있다고 야근시간에 커피까지 대접할까? 백현이 머리를 요리조리 굴려댔다. 작은 머리통에서는 도저히 답을 찾지 못했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서 초코 라떼를 한 모금 들이켰다가 백현이 파드득 놀라며 잔을 내려놓았다. 입술부터 화끈거렸다.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 끙끙대자 어느새 정수리 앞에서 큭큭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팀장님이었다. 귀가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는 정적이 흘렀다. 왜 뜬금없이 자신을 데리고 나왔냐, 물어볼 생각도 없었거니와 커피도 잘 못 마시는 맹추같은 모습까지 보여놓고 자신감 넘치게 말을 걸 사람은 되지 못했다. 백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잔 끝을 매만졌다.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도 싫었고, 뭐든 칼같은 팀장님이 이렇게 시간을 질질 끄는 것도 싫었다. 원래 어떤 말이던 가차없이 뱉는 분이신데, 자꾸만 말을 아끼는 걸 보면 중대한 얘기를 하시려는 모양이었다. 근데 그 중대한 얘기가 해고 통보면 어떡하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백현이 혼자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을 때 쯤, 찬열이 헛기침했다. 빛처럼 빠르게 백현의 고개가 들렸다. 마치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앞의 찬열은 평온했고, 또 냉정했다.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려서, 아까 큭큭대며 웃은 사람은 마치 찬열이 아닌 다른 사람같았다.
백현씨는 일을 왜 그렇게 못합니까?
헉. 원래 돌직구 멘트를 잘 던지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엔 아무 말조차 하지 못했다. 어, 저 그니까, 그게.. 또, 또 말을 얼버무린다. 어떤 말이던 멀쩡하게 해야 적어도 해고를 면할텐데, 다른 누구도 아닌 팀장님 앞에서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사람이 자신이었다. 백현이 애꿎은 잔만 쥐었다 놓았다 하며 벌벌 떨자 찬열이 고개를 숙이곤 웃었다. 취향이 이상하다는 건 익히 인정하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지독할 줄은 몰랐다. 백현이 당황스러워하는 꼴이 귀엽고, 또 사랑스럽다. 한참 백현이 어, 제가 일 잘 못, 못하는 건 알지만, 어.. 만 반복하고 있을 때, 찬열이 손을 휘휘 저었다. 즉시 입을 다물고 저를 쳐다보는 모습이 꼭 애완견만 같다. 찬열은 입술을 감쳐물며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다시 또 물었다. 당사자는 에스프레소를 들이키며 여유로운 모양이었지만, 질문을 받은 이는 그렇지 못했다. 백현은 찬열에게서 이런 질문을 듣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그럼, 백현씨는 애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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