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Peace of Melody 루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쓴 악보는 나름 제 기준에선 완벽했다. 대체 뭐가 빠졌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루한은 악보를 집어들었다. 교수님께 가봐야지. 작곡과 내에서 루한의 별명은 '잘호', 잘생긴 호구였지만 루한은 이제 막 음악계에 들어선 작곡 유망주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케스트라 음악을 작곡하여 콩쿨에서 상을 받음으로써 작곡과 교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학생이었다. 졸업반에 들어섬과 동시에 과탑인 루한은 개인 작업실이 딸린 기숙사 방에 배정받았고 루한은 그곳에서 이제 막 나서는 중이었다. 기숙사에서 작곡 동으로 가려면 피아노 동을 지나야했다. 어차피 피아노 동은 기본 수업 중일테니 그 쪽을 지나가도 무관할 것이었다. 루한은 펜 꼭지를 입에 물고 악보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걸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거지.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악보가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피아노 동의 연습실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느 한 연습실 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피아노 선율이 흘러 나왔다. 기교 없이 잔잔한 선율. 히사이시 조의 Spring. 분명히 수업 중일텐데. 루한은 호기심에 방을 들여다 보았다. 백발의 한 소년이 눈을 감고 건반을 두드렸다. 아니, 어루만졌다. 노래했다고 표현해도 좋을 듯 했다. 오세훈... 루한은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꽤나 저명한 학생이었다. 행간에 차가운 천재라고들 했다. 아버지가 세계적인 지휘자시고 어머니 역시 바이올리니스트시라고 했다. 그 능력을 물려받았는지 세훈 역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였고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학교 학생들은 세훈을 보려 일부러 따로 떨어진 피아노 동으로 오기도 했고 먼발치서 세훈을 보고는 부럽거나, 혹은 동경하는 말투로 그를 묘사하곤 했다. 하지만 세훈은 그런 호의가 별로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루한의 피아노과 친구인 민석은 그를 '오만하다'고 평가했다. 말도 잘 섞지 않거니와 말이라도 걸면 그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본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루한의 눈에 비친 세훈은 차가움과 오만함,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차갑다고 하기에는 포근해보였고 오만하다고 하기에는 곡 선택이 겸손했다. 기교 없는 세훈의 연주에서 루한은 어떤 피아니스트들보다 위대한 연주임을 느꼈다. 눈을 감은 세훈의 모습에서 루한은 간질거림을 느꼈다. 누구야?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보는데 여전히 눈을 감고 손으론 건반을 두드리면서 입이 움직였다. 루한은 화들짝 놀라 자신의 기숙사로 되돌아 달려갔다. 세훈의 연주에는 동요가 없었다. 루한은 가벼운 표정으로 제 손에 들린 악보를 미련없이 찢어버렸다. 너를 위한 음악을 쓸 것이다. 화려함에 가려진 너의 본모습, 그것을 내가 끌어내보일 것이다. 루한은 이틀째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작곡에만 전념했다. 살짝 감긴 눈, 피아노를 뛰어다니던 길게 뻗은 손가락, 비치던 햇살과 아름다운 얼굴. 세훈은 루한에게 있어 뮤즈라는 존재가 되었다. 마침내 기숙사 문을 박차고 열었을 때 루한은 벅찬 표정으로 악보 뭉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최대한 기교를 뺀, 단순한 가락과 변주만을 이용해 전개되는 피아노 곡이었다. Piano: Peace of Melody 그것의 제목이었다. 루한은 확신을 가지고 피아노 동으로 향했다. 루한은 추진력이 뛰어났다. 그런 루한을 민석은 '무대뽀'라고 칭했다. 루한의 무대뽀 정신은 세훈을 향해 날아가도록 하였고 그곳에서 루한은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월광. 월광이었다. 아니다, 월광이 아니다. 세훈은 마치 광기 어린 베토벤처럼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가 치는 곡은 월광이지만 월광이 아니었다. 세훈은 자신만의 월광을, 세훈의 월광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그 곳에는 답답함, 절망, 우울함. 루한은 가슴을 두드렸다. 세훈은 그 때와 다르게 눈을 뜨고 피아노를 두드렸다.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무심하게 뜬 눈에는 회의감과 실증이 묻어났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야. 루한은 뒤돌아 그 때와 마찬가지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멍하니 의자에 앉은 루한은 습작 파일에 제 악보를 고이 끼웠다. 그래도 네가 이 곡을 연주하게 만들거야. 네 절망이 어떤 것인지 음악으로는 가늠할 수 없지만. 네 손에서 이 곡이 연주되는 걸 듣고싶어. 루한은 불이 꺼지는 피아노 동을 바라보았다. Peace of Melody는 루한의 의지가 담긴 채 루한의 습작 파일 속으로 숨었다. - 썼던 글을 이케이케 옮겨오려니 텀이 짧네요 ;ㅅ; 로엠입니다 원래 쓰던 필명 알매로 변경했어요 이 첫번째 글은 이리저리 많이 써먹어서 사골 국물이 돼쑴... 아마 일주일에 한 번 씩 이 정도 길이로 올라올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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