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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나에겐 로망이 있었다. 가끔 외롭고 힘들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동네 친구와 만나 후줄근한 차림으로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것.

 


 

동네엔 술을 잘 마시는 동성 친구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연락을 했을 때 바로 나와줄 친구가 없었다. 그게 뭐 마음에 안 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종종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지 않을 때면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이럴 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을까. 먼저 연락해주는 친구가 없을까.

 

 


그렇게 언제까지나 로망은 드라마에나 존재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작년 이 맘때 쯤, 한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어릴 적 부터 친하게 지내온 동네 친구. 이성 친구라 그런지 가끔 단체 모임에서 만나거나 간단한 안부 정도를 물은 적은 있지만 이상하게 먼저 술을 마시자거나, 심심하다고 먼저 연락할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가깝게 지내던 친구였는데 왜 그랬었을까. 이성이라는 것 이전에 내 말 한마디에 한달음에 나와주는,

 

 


- 술 한 잔 할래?

- 너 내일 학교 안 가?

- 내일 공강 날이라고 했잖아. 맨날 말해줘도 몰라.

- 아, 그랬지. 어딘데?

 

 

 

어느 누구보다 좋은 친구인데.

 


 

*

 

 

[EXO/도경수] 첫사랑 단편 | 인스티즈

 

 

 

항상 우리가 만나는 조그마한 주점 가장 안쪽 자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제 막 안주가 나올 때 쯤 네가 가쁜 숨을 들이쉬며 들어와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너는 내가 반가움에 말을 먼저 꺼내기도 전에 말을 가로막듯 바쁘게 먼저 안부를 물어온다. 항상 그랬다. 먼저 걱정하고, 물어보고, 궁금해 하고. 어쩌면 이젠 조금은 이기적이게도 내 자신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뭐야. 오늘도 표정 안 좋네. "

" 숨 좀 고르고 얘기해. 자 물 마셔. "

 


 

내 말에 네가 씨익 웃어보이더니 건넨 물 한모금을 마시곤 옷 매무새를 정리한다. 꼭 뭐라도 준비하는 것 마냥.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금방 분위기는 나의 한숨과 함께 쓸쓸한 대화가 시작됐다. 요즘 내가 하는 이야기는 항상 같다.

 


 

" 그 사람이랑 같이 노래를 들었었는데 지금 들으니까 너무 좋은 거야. "

 

 


나의 첫 연애,

 

 


" 나쁜 놈. "

 

 


그리고 헤어짐.

 

 


" 남산은 또 언제 갔었대. "

" 100일 때. 그놈의 자물쇠 빨리 떼버리고 와야지. "

" 찾기 힘들 걸. 커플들이 가서 거는 자물쇠만도 하루에 몇 개인데. "

" 그런가. 아, 맞아. 나 키도 작아서 어차피 그거 닿지도 않아. "

 


 

헤어진지 벌써 반 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나는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미련 아닌 미련이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헤어졌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자꾸만 지난 일들을 떠올렸고 혼자 우울해 졌다. 지금은 그 사람이 없어, 내 사랑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할 것만 같았던 그 사람이. 하면서.

 

 


" 그 사람이 완전, "

" 000. "

" ...어, 어? "

" 너. 오늘 만나서 지금까지 계속 그 사람 얘기만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어? "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이렇게 터놓고 말할 친구가 없기도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게까지 들어주는 친구는 경수가 유일하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경수와는 더 편하고 좋았다. 정말로 내 이야기를 정성껏 들어주는 것 같달까. 그런데 이젠 조금 힘든가보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이렇게 사랑 이야기나 듣자고 네가 나온 것이 아니였을 거란 것을.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는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멋쩍게 웃어버리곤 이야기 화제를 넘기려다 보이는 경수의 표정이 이전보다는 좋아보이지 않은 것 같아 술잔을 기울이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 나 진짜 미련하지. "

" 솔직하게? "

" 아냐, 그냥 대답하지마. 말 안해도 알 거 같아. "

" 알면 언제까지 이럴래. "

" ... "

" 떠난 사람이야. "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지 살짝 인상을 찌부리더니 말을 잇는다.

 


 

" 네가 아무리 떠들어 봤자, "

" ... "

" 그 사람 안 돌아와. "

 

 


항상 상담을 해주는 것 처럼 잘 들어주고 이야기하던 때완 달리 오늘은 표정까지 굳히고 단호히 말을 해온다. 나도 아는데, 정말 아는데.

 

 


" 나도 다 털어내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싶어. 근데, "

 

 


자꾸 생각나는 걸 어떻게 하라고.

 

 


" 그게 안되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

 

 


술기운 때문인지 차오르는 눈물 같은 것 때문인 건지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그 사람이 생각나서도, 경수가 나를 다그쳐와서도 아니었다. 답답했다. 헤어진지 반 년이 지나도 변한게 없는, 경수를 만나기만 하면 자꾸 청승맞게 이러고 있는 내가.

 

 


" 첫사랑이었단 말이야. "

 

 


그 사람은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있었던 일들이 모두 처음이라, 그 처음이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함께 남산을 가고, 밥을 먹고, 사소한 이야기를 마주 나누었던, 그런 모든 것들이.

 

 


" 일어나봐. "

 

 


고개를 숙인채로 얼마나 한숨을 내쉬었을까. 네가 무언가 결심한듯 내 팔목을 잡아 이끌고는 주점 밖을 나섰다. 새벽 공기에 술 기운이 조금씩 깨어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닿는 것이 그제야 느껴졌다.

 

 

[EXO/도경수] 첫사랑 단편 | 인스티즈

 

 


" 어디가? "

" 공원. "

 

 


대답이 너무 빨라 다시 이유를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냥 네 뒷 모습을 보며 걸었다. 빠르지만 내 보폭에 맞추어, 나를 조금 앞서 걷고 있는 네 뒷모습이 지금 이 순간 어딘가 모르게 듬직했다.

 


공원은 너무 고요해 무서울 정도였지만 다행이게도 몇 개의 가로등 불 빛이 그나마 어둠을 밝혀주었다. 너는 내가 휘둥그레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 내 어깨를 끌어 마주보게 만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새벽에 남자와 공원 앞에 마주 하고 있자니 묘하게 심장에 두근거렸다.

 

 


" 여기 같이 손잡고 다녔다고 그랬었지. 그래서 지나갈 때 마다 자꾸 생각난다고. "

" 언제는 떠난 사람이라더니 여긴 왜 데리고 와서 이래. "

 

 


앞으로 그 사람 이야기 안 꺼낼게. 내가 기분이 상한 투로 말을 툭 던지고는 돌아서자 경수가 다시 내 팔을 붙잡아 온다. 그 사람 잊으라고 공원까지 데리고 온 것이 틀림없다. 의도는 알겠지만 괜스레 기분이 상했다. 나를 한심하게만 보는 것 같아서. 여기 오면 잊으려는 기억만 떠오른다는 걸 왜 몰라. 마주한 경수를 밉다는 듯 쏘아보았다. 그런데  너는 갑자기 내 팔에 힘을 풀더니 손을 잡아 스윽 깍지를 꼈다. 너무나도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나는 뿌리치기보다 말이 먼저 앞섰다.

 

 


" 갑자기 왜이래. "

" 이제. "

" 놓고 얘기해. 얘가 술을 잘못먹었, "

 

 


그제야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느낌에 정신이 들어 일단은 손부터 놓아야 겠다 싶어 뿌리치려는데,

 


 

" 이제부터 이 길 지날 때 "

" ... "

" 그 사람 말고 내 생각해. "

 

 


뿌리치려고 했던 힘이 풀려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이내 앞을 보며 찬찬히 걸어가는 네 모습에 그저 맞춰 걸으며 멍하게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두근거림이 온 몸을 흔드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큰 공원에 반 쯤 걸었을 때 네가 다시 멈추어 섰다.

 


 

" 잊기 힘든 거 알아. 그치만, "

 

 


그리곤 다시 나를 돌려세워 얼굴을 마주했다.

 


 

" 노력이라도 해야할 거 아냐. "

" ... "

" 보는 내가 답답해서 그래. "

 

 


한숨은 내가 쉬어야 하는데 반대로 네가 깊은 한숨을 쉬어 댄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지나가고 다시 한 번, 아무렇지 않게 다시 깍지를 끼더니 걸음을 옮긴다. 지금 네가 이러는 의도가 뭘까. 혹시나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에이, 아니야. 아닐거다. 이렇게 편하게 지내왔는데. 특히 근 1년은 더더욱. 좋아했다면 서로 이렇게 터놓고 지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하려 한들,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러는 이유가 정말 단순히 내가 그 사람을 잊기 위해서 하는 호의라 해도, 일단은 이유를 물어봐야 겠다. 유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야 겠어. 마음을 굳히곤 내가 정적을 깨고 말 문을 열었다.

 

 


" 네가 지금 이러는거 말이야. "

" 나도 첫사랑 있었어. "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네가 가로챘다. 나는 순간 내가 하려던 말도 잊고 물었다.

 

 


" 누군데? "

" 있어, 되게 못생기고 성격도 별로고. "

" 진짜? 그럼 어디에 반했는데? "

" 그냥 나한테는 제일 예뻐. "

" 괜히 포장하기는. "

" 그래서 네 마음 잘 알아, 나."

"..."

" 누군가를 잊지 못하는 거. "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얘 첫사랑이 누구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는데. 설마 대학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나.

 

 


" 000. "

 

 

 

뜬금없이 나를 바라보며 내 이름을 불러오자 문득 정신이 들어 경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네 첫사랑도 중요하지만, "

" ... "

" 한 번 쯤은 "

" ... "

" 너를 첫사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해봐. "

 

 


네 말과 함께 나와 맞춰진 눈빛에 순간, 머릿속을 스치던 과거의 일이 떠올랐다.

 

 


' 이거 뭐야? '

' 로즈데이래. 어떤 여자 애가 줬는데 난 필요없으니까. 가져. '

 

 


어릴 적 뜬금없이 장미를 받았던 것도,

 


 

' 야, 000! '

' 왜! '

' 주번이라면서. 쌤이 혼낼까봐 내가 청소 해놨으니까 밥 사. '

 

 

 

항상 툴툴대면서도 힘든 일을 대신 해주었던 것도,

 


 

' 너는 이성 간에 편한 친구 사이로 지내는 게 가능한 거 같아? '

' 지금 우리가 딱 그런 사이 아니야? '

' 아, 맞다 그렇네. '

 

 

 

네가 나에게 뜬금없이 이런 말을 던졌던 것도 모두 나를 좋아해서 한 말이었던 걸까.

 

 


내 말을 들어주고 항상 달려나와 준 것도 다 그래서인 걸까. 설마.

 

 


" 너 나 좋아해? "

 

 

 

편한 사이라 느꼈기 때문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이 나오는 대로 물었다. 그러나 미처 나는 대답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 못했다.

 

 


" 좋아하는 거라면? "

" 어? "

" 내 첫사랑이 너라면, 그리고 "

" ... "

" 그 첫사랑이 아직 진행중이라면 어쩔래. "

 

 


공원 안엔 단 둘 뿐. 가로등 빛이 우리 둘을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 네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몰라도. "

" ... "

" 이젠 나한테 양보해."

" ... "

" 지금까지 너만 봐 온 내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

 

 


이제 내게 첫사랑은 더이상 아픔이 아니었다.

 

 

 

" 많이 좋아해, 내가. "

 


 

새로운 시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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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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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경수야 ㅠㅠㅠㅠㅠㅠㅠ 설렌다 ㅠㅠㅠㅠㅠ 첫사랑 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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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경수야설렌다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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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경수야..ㅜㅜㅜㅜㅜㅜㅜㅜㅠ와 엄청 설레네요ㅜㅜㅜㅜ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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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이런 소꿉친구 ㅎㅎㅎㅎㅎ 경수야 설레쥭는다 ㅠㅠㅠㅠ 작가님 금손이세용 ㅠㅠㅠㅠㅠㅠ 이런글감사해용 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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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허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ㄱ사랑해ㅜㅜㅜㅜㅜ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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