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랑 누아; 01 흑백의 길을 걷다.
W. 닉스
K 호텔 안, 평소보다 더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오늘,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K 그룹의 막내딸인 김여주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파티가 열렸다.
"우리 공주 생일 축하해."
"오빠, 제발 부탁인데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줘."
"왜, 우리 집 공주를 공주라고 부르는데 문제 있나."
아니 저 오빠들이.. 나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라고.. 맨날 애 취급만 하고 놀리기 바쁘지.
"여주 양, 생일 축하해요. 여주 양이 벌써 성인이라니. 시간 참 빨라."
아, J 그룹 회장님이시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여주 양 생일이면 당연히 참석해야지. 어째 그쪽 남매들은 언제 봐도 사이가 좋아 보이네."
"오빠들은 저 놀리는 맛에 사나 봐요. 저도 이제 스무 살인데 아직도 애 취급만 한다니까요."
"허허, 애들 눈에는 아직도 여주 양이 마냥 어린애로 보일 테지. 근데 막내아들은 오늘 안 온 건가?"
"아, 태형 오빠 지금 뉴질랜드에 있어요. 농장 일이 바쁜가 봐요."
"태형이 그 녀석. 갑자기 농장일 한다고 뉴질랜드로 떠났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석진이랑 남준이가 회사일 잘 하고 있지만 말이야. 태형이 때문에 우리 정국이 친구 없다고 자기도 뉴질랜드 가겠다는 거 말리느라 한동안 우리 집도 시끌벅적했었지."
"진짜 정국 오빠나 태형 오빠나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이에요."
"어쨌거나 태형이 한국 오면 오랜만에 정국이랑 셋이서 밥이나 먹자고 전해줘."
"네, 그럴게요."
몇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난 여주는 몰려오는 피로감을 달래기 위해 K 호텔의 스위트룸인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민 비서, 나 올라갔다 올게. 이따 깨우러 와.'
'주인공이 빠지면 어떡합니까, 아가씨.'
'어차피 나 없어도 파티는 잘 진행될 거야.'
여주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려던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던 한 남자와 마주쳤다. 여주가 본 남자의 첫인상은,
"실례지만 K 그룹에서 열리는 파티 장소가 몇 층인지 아십니까?"
"어.. 8층에 연회장이...."
"감사합니다."
"저..... 저기요!!"
'흑백'
그래, 이 단어가 어울리겠다. 어딘지 모르게 그 남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날카로운 분위기, 또 분위기와 상반되는 정중한 목소리. 흑백 그 자체였다. 여주는 당혹스러웠다. 모든 사람들은 여주가 말하는 도중에 말을 끊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여주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K 그룹의 사랑스러운 막내딸이니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여주는 한참을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달리는 차 안,
파티는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되었다. 여주는 창밖을 보며 아직도 당혹스러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호텔에서의 남자를 떠올렸다.
"아가씨, 본가로 갈까요?"
"............"
"아가씨."
"............"
"야, 김여주."
"어......... 어??"
"대답 좀 해라. 아까부터 왜 그래 얼빠진 사람처럼."
"아..... 그랬어...? 미안."
"그래서 본가로 가? 김석진이 너 오늘은 본가로 꼭 데려오랬는데."
"아니. 집에 데려다줘."
"알겠어. 근데 너도 가끔 본가 좀 들러라. 특히 오늘 같은 날. 김석진 맨날 너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나한테만 난리 치는 거 알....."
"오빠, 잠깐만. 차 좀 세워봐."
"왜 뭔데."
"아 빨리!!"
"하여간 성격하고는."
윤기가 차를 세우자마자 곧장 차 문을 열고 나온 여주는 길가에 쓰러져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남자의 주위는 어두운 새벽이라 그런지 온통 흑백.
여주는 남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흑백의 길을 걸어갔다.
여주의 주위도 흑백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봐요!!!!!! 괜찮아요?"
호텔에서 만난 그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