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어는 그 날 이후로 뭔가 자꾸 세훈이를 볼 때마다 부끄러워. 세훈이가 그렇게 웃는것도 처음봤고 무엇보다 말한 내용이 너무 부끄러운 말이라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근데 맨날 마지막 줄에 앉아있는 세훈이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 그냥 계속 수업시간에 뒤돌아보면 징어랑 눈 마주치고, 피하지도 않아. 그렇다고 웃지도 않고 그냥 무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덜 무섭고 웃는거라고 하기엔 전혀 아닌 표정으로 계속 징어를 쳐다보지.
한 번은 징어가 그 때 날 놀린건가 싶어서 진지하게 세훈이한테 물어보려고 체육시간에 주번한테 문은 징어가 잠근다고 하고 늦게늦게 나가면서 세훈이 기다렸는데 딱 말을 꺼내려는 순간에 노는애들이 와서 세훈이한테 또 "세훈아~어디가?체육해?"이렇게 친하게 말을 거는 바람에 징어는 그냥 반 문을 잠그고 먼저 운동장으로 내려갔지. 그 말 들은 날에는 집으로가서 징어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징어는 그냥 말아. 더 꼬치꼬치 캐물었다가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세훈이가 오전수업만 받고 훈련을 하러 가버리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 세훈이가 여리여리하게 생겼어도 태권도는 잘해서 학교 태권도부 부주장이거든. 또 다른 태권도부 친구랑 맨날 1,2위를 다투는데 요번에는 둘이 다른 체급으로 나가게 되서 학교에서 더 많은 메달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독하게 훈련을 시킨다는 사실을 알게되지. 징어는 안 그럴려고 하는데 자꾸만 그 날 이후로 세훈이를 더 관찰하게 되고 자꾸 설레고 그래. 근데 세훈이가 이제는 아예 1교시도 안 듣고 가버리거나 아니면 안 나오거나 하는 날이 생기니까 징어들은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거지. 사실 세훈이가 조금 미워지려고 했어. 솔직히 그런 의미심장한 말 하면 누구라도 다 오해하게 되는게 당연한거니까.
맨날 비어있는 자리 확인하면서 등교하고 수업시간에 뒤돌아봐도 마주치는 눈이 없고 그러니까 조금 쓸쓸하다고 느낄 때쯤, 세훈이가 돌아와. 징어는 속으로 내심 반가웠는데 사실 그런걸 티낼 사이는 아니잖아. 친하지도 않고 그날 그렇게 말 조금 섞어본게 전부였는데….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듣고 그랬는데 4교시가 체육시간이었어. 그 날이 징어가 주번이어서 애들 다 나간다음에 문을 잠그고 나가야했는데 애들 다 나갔는데 오세훈이 안 나가는거야. 어차피 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교복도 잘 안입고 맨날 태권도부 츄리닝 입고 학교 와서 안 갈아입어도 되면서…. 그래서 징어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세훈이한테 말을 걸어
"안 나가? 체육시간이야"
"오늘 니가 주번이야?"
"응. 그러니까 빨리 나가"
꽤 먼 거리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데도 다 들리는지 세훈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징어가 서 있는 앞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와서 '배고프지?'하고 엉뚱한 말을 내뱉어. 징어들이 당황해서 대답도 못하고 높이 있는 세훈이 눈만 마주치다가 '당연히 점심시간 전 시간이니까…'라고 대답하는데 세훈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츄파춥스 사탕 몇개를 징어 앞으로 내밀어. 딸기맛,밀크딸기맛,레몬맛….이것저것 많길래 그거 쳐다보다가 징어가 다시 세훈이 올려다 보면서 '이게 뭐…?'하고 말하는데 세훈이가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밀크딸기맛을 하나 집어서 징어가 열쇠 쥐고 있는 손에 열쇠 대신 사탕을 쥐어줘.
징어가 또 당황해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하고 상황파악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세훈이가 문을 다 잠그고 징어한테 어깨동무를 하면서 운동장으로 끌고 내려가
"저기!ㅈ‥잠깐만! 이거 뭐야?"
"사탕 먹으라고 다 준건데 니가 안 고르길래 너랑 제일 잘 어울리는 맛으로 준건데"
원래 이렇게 좀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나 싶어서 좀 당황하는데 그런 징어를 보더니 세훈이가 어깨동무를 풀고 소리내서 웃어. 사실 어깨동무 하는 팔이 좀 어색했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둘이 같이 운동장에 도착했는데 주번이어도 너무 늦었다고 체육 선생님이 벌로 다른 애들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돌으라고 시키지. 징어는 체육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군말없이 먼저 운동장을 돌기 시작해. 체육 선생님이 태권도부 담당 선생님이었는지 통하지도 않을 변명을 하던 세훈이 징어가 출발하는걸 보고 막 달려와서 징어 옆에서 실실 웃으면서 같이 달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내가 너 안 뛰게 해주려고 코치님한테 변명하고 있었는데 니가 먼저 출발해버려서"
"한바퀸데 뭐 어때"
"운동 좋아하나보다. 보통 여자애들은 한바퀴라도 싫어하지 않나?"
"싫어하진 않아."
"그럼 운동하는 사람은?"
징어들이 또 이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진지한 표정으로 세훈이를 쳐다보니까 또 웃으면서 막 앞으로 뛰어나가. 징어가 괜히 오기가 생겨서 막 따라잡아서 세훈이한테 다시 말을 걸어
"좋아"
"뭐?"
"운동하는 사람도 좋아해. 멋있잖아"
"되게 귀엽네 진짜"
또 똑같은 말을 들은 징어가 부끄러워서 그냥 같이 안 뛰려고 속도 늦추니까 세훈이가 맞춰서 같이 속도를 늦춰줘. 그러면서 징어한테 말하지
"훈련받는데 니가 그렇게 보고싶더라"
실화바탕으로 살짝 허구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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