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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징어들은 말이 많은 편이 아니야. 점잖은 성격이 아니라 그냥 남 나쁜말 하는거 싫어하고 괜히 일 만들어서 복잡해지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정말 좋은 친구다라고 생각되는 친구만 몇 명이랑만 친하게 지내고, 그 외의 친구들이랑은 나쁘지 않게만 잘 지내는 스타일이야. 그니까 말을 하는 것보다는 남들을 관찰하는데 더 도가 트인 성격이지. 징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운동부가 2개 있어. 야구부와 태권도부. 그래서 거의 모든 반에는 야구부 혹은 태권도부가 1~2명 정도는 있어. 징어네반은 태권도부 한 명이 있어. 운동부 애들은 훈련계획 때문에 아예 1교시부터 수업 못 들어올 때도 많고, 오전수업만 듣고가는 경우도 많아. 그래서 운동부 애들 중에 활발한 성격이 아닌 이상은 다른 반애들 보다는 친해지는데 시간이 오래걸리지. 징어네반 태권도부 애는 이름이 오세훈인데, 예비소집일 때부터 잘생겼다고 난리가 났었어. 본 사람들마다 너무 잘생겼다고 난리여서 나중에 입학하고 나서는 소위 논다하는 친구들이 세훈아세훈아거리면서 친한척 하고 그랬지. 징어들은 예비소집일 때도 입학식 때도 오세훈을 못보고 그런 소문이 있다는것도 몰랐어. 그냥 어떤애가 맨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잘생겼다'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지. 사실 운동부 애들 대다수가 노는 여자애들하고 잘 지내는데, 세훈이는 절대 아니야. 그냥 말이 없어. 처음에는 내숭을 떠는건가 싶었거든. 생긴것도 운동부 애들 중에서, 아니 거의 전교에서 제일 잘 생긴 것 같은데 그냥 아예 여자애들 앞에선 말이 없는거야. 근데 또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다른 애들처럼 장난도 치고 가끔 수위가 약하지만 비속어도 쓰고 그러길래 그냥 성격인가보다 싶었지. 근데 징어들 자리가 앞에서 세번째 줄이고, 세훈이는 수업도 많이 못 듣고 그러니까 맨날 뒷자리에 앉는데 수업할 때 가끔 뒤돌아보면 자꾸 세훈이랑 눈이 마주치는거야. 처음에는 그냥 마주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볼 때마다 마주치는거야. 징어들이 너무 이상해서 일부러 계속 뒤돌아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계속 눈이 마주치는거야. 처음에는 눈빛이 무서워서 '내가 뭐 잘못했나?나랑 말 섞은 적 없는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보다보니까 원래 눈빛이 그런 것 같다 싶어서 그냥 놔뒀어. 어차피 말 시켜도 별로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징어들도 굳이 피곤하게 말 섞고 싶지 않았거든. 사실 징어네 반에서 모든 남자들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세훈이한테 계속 발랄하게 말 시켰는데도 대답해주지 않는 걸 징어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적이 있어. 그냥 말만 씹었다면 다행인데 무표정으로 "너 시끄러워"라고 말하는 것까지 보고 좀 세훈이가 무서웠지….
그러다가 어느 날은 징어들이 학교에 마이를 놓고 온거야. 징어들이 옛날에는 시험 전날 시험볼 과목 교과서를 놓고온다거나, 문제집을 놓고온다거나 이것저것 학교에 많이 두고 온적이 있었거든. 다행이도 징어네 집이 학교랑 가까워서 징어들이 맨날 걸어다녀. 평소에는 그래도 얼마 안가서 생각났는데 그 날은 집에 진짜 거의 다 왔는데 그 때서야 마이 생각이 나는거야. 게다가 그 날은 정말 처음으로 학교에서 야자 안하고 그냥 집에 보내준 날이였거든. 선생님들 배구대회 하신다고…. 그냥 포기할까 하다가 징어 성격이 또 그렇게 못하고 다음날 선도도 서기 때문에 그냥 다시 부랴부랴 학교로 갔어. 학교에 도착하니까 모든 문이 다 잠겨있고, 중앙현관문만 열려있길래 거기로 들어가서 교실로 다다다다 달려갔지. 근데 아무도 없을거라고 생각한 교실에 어떤 사람이 있는거야. 노을이 질 무렵이라서 잘 보이지 않는데 오랫동안 보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오세훈이라는 걸 깨닫지. 근데 이상한게 세훈이가 어정쩡한 자세로 징어 마이를 들고 징어 자리 근처에 서 있는거야. 징어도 너무 당황해서 뒷문에 멈춰있고…. 그러다가 징어가 먼저 세훈이한테 말하지 "저기….그거 마이 내껀데…" "어?어…여기" 세훈이도 얼음하다가 땡!한것처럼 당황하면서 징어한테 다가와서 마이를 돌려줘. 한 번도 가까이 서본적이 없는데 이렇게 가까이 서보니까 새삼 세훈이가 키가 참 크다는 걸 징어는 그 때 처음으로 느꼈지. 그래서 징어가 이제 가려고 뒤도는데 뒤에서 또 말이 들려오는거야 "넌 뭘 그렇게 놓고다녀" 뭔가 장난끼 가득한 목소리에 징어가 놀라서 뒤돌아보니까 세훈이가 웃으면서 자기 머리를 털고 있어. 아마도 훈련뒤에 샤워하고 잠깐 교실에 들른 모양에 징어랑 딱 마주친 것 같아. 징어는 한 번도 오세훈이 다른 애들한테 먼저 말 거는걸 본적이 없어서 좀 당황하다가 내가 원래 좀…그래.하고 멋쩍게 웃어버리지. 그 말에 세훈이가 이번에는 짧게 소리내서 웃더니 징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면서 말해
"너 되게 귀여운거 알아?" "어?…고‥고마워!" 징어들은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아서 후다닥 그 교실을 뛰쳐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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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징어는 그 날 이후로 뭔가 자꾸 세훈이를 볼 때마다 부끄러워. 세훈이가 그렇게 웃는것도 처음봤고 무엇보다 말한 내용이 너무 부끄러운 말이라서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근데 맨날 마지막 줄에 앉아있는 세훈이는 별로 달라진 것도 없어. 그냥 계속 수업시간에 뒤돌아보면 징어랑 눈 마주치고, 피하지도 않아. 그렇다고 웃지도 않고 그냥 무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덜 무섭고 웃는거라고 하기엔 전혀 아닌 표정으로 계속 징어를 쳐다보지. 한 번은 징어가 그 때 날 놀린건가 싶어서 진지하게 세훈이한테 물어보려고 체육시간에 주번한테 문은 징어가 잠근다고 하고 늦게늦게 나가면서 세훈이 기다렸는데 딱 말을 꺼내려는 순간에 노는애들이 와서 세훈이한테 또 "세훈아~어디가?체육해?"이렇게 친하게 말을 거는 바람에 징어는 그냥 반 문을 잠그고 먼저 운동장으로 내려갔지. 그 말 들은 날에는 집으로가서 징어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서 징어는 그냥 말아. 더 꼬치꼬치 캐물었다가 더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가 세훈이가 오전수업만 받고 훈련을 하러 가버리는 날들이 점점 늘어나. 세훈이가 여리여리하게 생겼어도 태권도는 잘해서 학교 태권도부 부주장이거든. 또 다른 태권도부 친구랑 맨날 1,2위를 다투는데 요번에는 둘이 다른 체급으로 나가게 되서 학교에서 더 많은 메달을 확보하기 위해서 더 독하게 훈련을 시킨다는 사실을 알게되지. 징어는 안 그럴려고 하는데 자꾸만 그 날 이후로 세훈이를 더 관찰하게 되고 자꾸 설레고 그래. 근데 세훈이가 이제는 아예 1교시도 안 듣고 가버리거나 아니면 안 나오거나 하는 날이 생기니까 징어들은 자꾸만 보고 싶어지는거지. 사실 세훈이가 조금 미워지려고 했어. 솔직히 그런 의미심장한 말 하면 누구라도 다 오해하게 되는게 당연한거니까. 맨날 비어있는 자리 확인하면서 등교하고 수업시간에 뒤돌아봐도 마주치는 눈이 없고 그러니까 조금 쓸쓸하다고 느낄 때쯤, 세훈이가 돌아와. 징어는 속으로 내심 반가웠는데 사실 그런걸 티낼 사이는 아니잖아. 친하지도 않고 그날 그렇게 말 조금 섞어본게 전부였는데….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 듣고 그랬는데 4교시가 체육시간이었어. 그 날이 징어가 주번이어서 애들 다 나간다음에 문을 잠그고 나가야했는데 애들 다 나갔는데 오세훈이 안 나가는거야. 어차피 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교복도 잘 안입고 맨날 태권도부 츄리닝 입고 학교 와서 안 갈아입어도 되면서…. 그래서 징어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세훈이한테 말을 걸어 "안 나가? 체육시간이야" "오늘 니가 주번이야?" "응. 그러니까 빨리 나가" 꽤 먼 거리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하는데도 다 들리는지 세훈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징어가 서 있는 앞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나와서 '배고프지?'하고 엉뚱한 말을 내뱉어. 징어들이 당황해서 대답도 못하고 높이 있는 세훈이 눈만 마주치다가 '당연히 점심시간 전 시간이니까…'라고 대답하는데 세훈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츄파춥스 사탕 몇개를 징어 앞으로 내밀어. 딸기맛,밀크딸기맛,레몬맛….이것저것 많길래 그거 쳐다보다가 징어가 다시 세훈이 올려다 보면서 '이게 뭐…?'하고 말하는데 세훈이가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밀크딸기맛을 하나 집어서 징어가 열쇠 쥐고 있는 손에 열쇠 대신 사탕을 쥐어줘. 징어가 또 당황해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하고 상황파악 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세훈이가 문을 다 잠그고 징어한테 어깨동무를 하면서 운동장으로 끌고 내려가
"저기!ㅈ‥잠깐만! 이거 뭐야?" "사탕 먹으라고 다 준건데 니가 안 고르길래 너랑 제일 잘 어울리는 맛으로 준건데" 원래 이렇게 좀 제멋대로인 성격이었나 싶어서 좀 당황하는데 그런 징어를 보더니 세훈이가 어깨동무를 풀고 소리내서 웃어. 사실 어깨동무 하는 팔이 좀 어색했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둘이 같이 운동장에 도착했는데 주번이어도 너무 늦었다고 체육 선생님이 벌로 다른 애들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돌으라고 시키지. 징어는 체육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군말없이 먼저 운동장을 돌기 시작해. 체육 선생님이 태권도부 담당 선생님이었는지 통하지도 않을 변명을 하던 세훈이 징어가 출발하는걸 보고 막 달려와서 징어 옆에서 실실 웃으면서 같이 달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내가 너 안 뛰게 해주려고 코치님한테 변명하고 있었는데 니가 먼저 출발해버려서" "한바퀸데 뭐 어때" "운동 좋아하나보다. 보통 여자애들은 한바퀴라도 싫어하지 않나?" "싫어하진 않아." "그럼 운동하는 사람은?" 징어들이 또 이건 무슨 말인가 싶어서 진지한 표정으로 세훈이를 쳐다보니까 또 웃으면서 막 앞으로 뛰어나가. 징어가 괜히 오기가 생겨서 막 따라잡아서 세훈이한테 다시 말을 걸어 "좋아" "뭐?" "운동하는 사람도 좋아해. 멋있잖아" "되게 귀엽네 진짜" 또 똑같은 말을 들은 징어가 부끄러워서 그냥 같이 안 뛰려고 속도 늦추니까 세훈이가 맞춰서 같이 속도를 늦춰줘. 그러면서 징어한테 말하지 "훈련받는데 니가 그렇게 보고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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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6교시하고 운동하러 가는데. 왜?" "어…저…음.그래 그럼 나중에 얘기할게" "뭔데?궁금하잖아" "아냐아냐" 징어는 제발 이제 니 자리로 가줄래 다른 여자애들이 쳐다보잖아.하는 말은 뒤로 꾹 눌러 삼키면서 웃는 눈에 땀하나가 달린 것 같은 이모티콘을 하고 대답하는데, 뭐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던 세훈이가 "그래?그래도 궁금한데….그럼 학교 끝날 시간에 맞춰서 내가 몰래 잠깐 빠져나올게" 라는 말을 남기고 그냥 자기자리로 돌아가. 징어가 됐다고 말하려는 틈도 안주고 말이야. 어차피 종도 쳤기 때문에 징어가 그냥 포기하고 다시 자세를 고쳐서 앞으로 보고 앉는데 징어 책상 위에 밀크딸기맛 츄파춥스가 놓여있어.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게 뭐지하다가 어디서 많이 본 맛인거야. 그래서 징어가 사탕을 집어서 뒤를 쳐다보는데 쳐다볼 줄 알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세훈이가 한 손으로 팔을 괴고 징어를 보고 웃고있는거야. 솔직히 징어는 심장어택을 당할 뻔 했지…. 새삼 세훈이가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며 징어는 그냥 고마운 마음으로 받기로하고 입모양으로 고마워라고 말하고 다시 앞을 봐.
그렇게 세훈이는 보충도 안 듣고 운동하러 나가고, 징어는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섞여서 그냥 평범하게 보충도 하고 저녁도 먹고 야자도 해. 사실,세훈이가 이따가 몰래 나온다고해서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야자를 했어. 설레는 와중에도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까 잠이 솔솔 와서 야자시간을 어떻게 보낸지도 모르고 졸다가 결국 야자가 끝날 시간에 가까워져. 징어는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지도 안 정했고,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싶어서 조금 걱정이 되는데 종치기 3분 정도를 앞두고 뒷문이 열려. 몰래 미리 가방 챙기는 애들 잡으려고 감독 선생님이 들어오신건가보다 했는데 변백현의 목소리에 징어가 놀래서 뒤를 쳐다보지.
"야!오세훈 니가 이 시간에 학교에 웬일이냐?" "그냥 뭐…두고 간 게 있어서" 놀래서 뒤돌아본 징어와 눈이 딱 마주친 세훈이가 징어한테 시선을 고정한채 백현이에게 대답을 해 줘. 변백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지 '운동부가 놓고가봤자 얼마나 중요하다고 이 시간에 다시 교실까지 오냐?'하고 그냥 가볍게 넘겨버리지. 징어는 몽롱했던 정신이 갑자기 확 들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해. 어떤 것부터 말해야할지 어떤 것을 먼저 물어야할지 갑자기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이 빙빙돌았다가 하얘졌다가 까매졌다가 하지. 결국 3분이란 시간은 훌-쩍!지나가버리고 징어는 일부러 애들한테 안 들키려고 책가방을 느릿느릿하게 챙겨. 같이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친구한테는 오늘은 같이 못 간다고 말해놓은 상태라서 징어한테 안 가냐고 말을 거는 친구도 없이 다들 2분만에 후다닥 빠져나가지. 괜히 뭘 찾는척 하던 세훈은 애들이 다 나가자 책상서랍을 뒤지던 손을 빼고 허리를 펴서 징어와 눈을 마주쳐 "안녕?밤에 보니까 색다르네" "응.어…그게.그러게 반갑다!" "왜 보자고했어? 할 말 있지?"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는 세훈이 모습에 오히려 징어는 긴장을 하지. 운동을 마치고 샤워까지 마치고 온 건지 머리도 아직 다 못 말리고 평소 입고 다니는 츄리닝보다는 더 편안한 것 같은 복장을 하고 있어. 세훈이 말대로 조금 색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징어들은 다시 한 번 자신을 복돋으면서 말을 꺼내지. "저기…. 너 왜 자꾸…아니,너 혹시 나 쳐다봐?" "음….그런 것 같은데" "왜? 저번에도 이상한말 하고….솔직하게 니가 나 놀리는 것 같아서 조금…" 아무말도 안하고 징어를 쳐다보고 있는 세훈이에 징어가 괜히 민망해서 말 끝을 흐리는데 갑자기 세훈이가 징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별로 위협적인 몸짓은 아니였는데 갑자기 다가오니까 징어는 자기도 모르게 오…왜이래!말로 하자!라고 소리쳐버리지. 가까이 오던 세훈이가 그 자리에서 허리까지 숙여가면서 큰 소리로 웃더니 다시 징어한테 다가와서 말해. "너 놀리는 거 아니야. 너 쳐다보는 건 맞고. 나 지금 나온거 코치님한테 들키면 나 때문에 애들 전체 다 기합받는다. 그래서 애들한테 다 설명하고 양해구하고 나왔어." "아…미안해.괜히 나 때문에" "괜찮아. 내가 애들한테 뭐라고 설명했는지 물어봐줘" 갑자기 무슨말은 하는건가 싶어서 세훈이를 물끄럼 올려다 보는 징어한테 세훈이가 빨리!라는 말에 징어가 뭔데?하고 조심스럽게 물어봐 "내가 좋아하는거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걔랑 얘기 좀 하고 와야된다고. 내가 너 계속 쳐다보는거 알았지? 남자가 왜 이유없이 여자를 그렇게 몇 달 동안이나 계속 쳐다보겠어." "……." "징어야.나랑 사귀자 나 지금 꼴이 이렇긴 한데,그래도 나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아닌가?…." 덤덤한척 말하면서 새빨개진 세훈이를 보면서 징어는 세훈이가 귀여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해. 이 정도면 징어한테는 굴러들어온 복이라고 생각하지. 넝쿨째 굴러들어온 오세훈! 원래 징어가 평소에 점잖은 편이 아니라고 했잖아? 사실 친한 친구들한테는 장난끼도 많은데,갑자기 진지해져버린 상황에 장난을 치고 싶어진 징어가 주머니에서 아까 낮에 세훈이가 줬던 밀크딸기맛 사탕을 꺼내서 오세훈한테 건네면서 얘기해. "너 되게 귀여운거 알아?"
그리고 세훈이는 그런 징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지. 소리없이 입모양으로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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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징어와 세훈이는 사귀기로 하고나서 갑자기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많이 가까워져. 사실 처음에는 세훈이랑 얼마나 안다고…하는 마음에 불안하기도 했는데, 그 날 바로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던 세훈이가 쉴 틈도 없이 카톡에 문자에 보내는 바람에 징어의 걱정이 훠이훠이 날아가 버리지. 커플이 되었다고 해서 매일 매일이 특별한 일이 생기는건 아니잖아? 그래서 징어와 세훈이도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꽁냥질을 하며 하루하루를 잘 지내. 그리고 세훈이와 사귀는 건 징어가 아직은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비밀로 하자고 했어. 처음에 비밀로 하자고 했을 때 세훈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왜. 난 티내고 싶어.'라고 했지만 징어의 난처한 표정에 금세 표정을 풀고 알겠다고 대답해줬지. 세훈이의 표정에 징어는 안심하고 학교에서만 조금 조심하면서 꽁냥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세훈이도 의외로 은밀하게 징어랑 접촉을 많이 하더라고. 그렇게 시간이 훌쩍 흘러서 징어와 세훈이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는 시기였어. 징어와 세훈이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가 4월 정도였으니까 벌써 두 달이나 흐른거지. 징어는 이벤트를 챙기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 아닌데다가 세훈이가 여건상 힘든걸 아니까 이벤트 같은 건 안 챙겨줘도 된다고 미리 말해뒀어. 사실 챙겨줘서 좋아하지 않을 여자가 없겠지만 그래도 징어는 세훈이는 이해하기로 했어. 사실 훈련이 많이 힘들텐데 매일 징어랑 연락하고 징어 앞에서는 힘든 티도 안내는 세훈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지. 그렇게 여름방학 아닌 여름방학을 일주일정도 앞두고 있었을 때 일이 터졌지. 징어랑 세훈이는 같은 반이라고 해도 아니 심지어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애들과 비밀로 사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같이 붙어있지는 못했어. 특히 점심시간 같은 때는 세훈이는 같은 태권도부인 종인이를 따라서 태권도부 애들과 함께 먹었기 때문에 징어랑 같이 못 붙어있었지. 가끔 시간이 많이 남으면 애들 눈 피해서 몰래 태권도부 훈련장에서 좀 더 떨어져있는 곳에서 놀다가 교실로 돌아오고 그랬어. 근데 사건이 점심시간에 터진거야. 이제 기말고사까지 다 끝났다 완전 놀자판인 학교 분위기도 한 몫 했어. 심심해지면 사건을 찾기 마련이니까. 징어가 그 날 속이 너무 안 좋아서 밥도 안 먹고 제일 친한 친구 2명이랑 같이 교실에 앉아서 이야기하고 있었어. 밥 먹고 난 애들이 한 명씩 들어오고 있었어. 근데 갑자기 교실 뒷문에서 누가 징어를 찾는다는 거야. 시끄러운 교실을 뒤로 하고 징어가 뒷문으로 나왔는데 좀 예쁘게 생겨서 남자애들한테 인기 있는 노는 친구가 갑자기 징어한테 친근하게 인사를 하는 거야. “안녕? 나 지아인데. 오랜만이다.” 사실 징어랑 그 친구랑 같은 중학교를 나와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는 사이였거든. 같은 반인적도 있었는데, 그 때 징어는 그 친구를 나쁘게 안 봤었어. 논다고 하지만 괜히 애들한테 욕하고 그러진 않았거든. 근데 그 친구가 갑자기 단도직입적으로 징어한테 물어보는 거야. 표정이 싹 바뀌면서 “너 오세훈이랑 사겨?” 징어는 순간 너무 놀라서 뭔가 쿵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껴. 어떻게 대답해야되지 생각하다가 솔직히 징어는 평소에 세훈이가 너무 잘생겨서 부담감을 느꼈었거든. 오랫동안 친구들한테 말 못한 것도 애들이 ‘세훈아, 너에 비해서 징어가 너무 떨어지는 거 아니야?’이런 말을 할까봐 너무 무서웠거든. 아무리 징어가 강철심장을 가졌다고 해도 그런 말을 실제로 들으면 너무 상처받을 것 같았어. 그래도 용기내서 그렇다고 사귄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참동안 대답이 없는 징어를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친구가 “아니지? 니가 어떻게 세훈이랑…" 하고 말끝을 흐려. 그 때 징어는 또 뭔가에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아. 갑자기 세훈이가 멀게 느껴지고 정말 나 같은 애랑은 사귈만한 애가 아니구나하고 느껴. “아니야….걔가 누군지도 잘 몰라” “왜 몰라? 같은 반이잖아. 태권도부 몰라?” “아니. 그니까 이름이랑 얼굴만 알아. 말도 몇 번 안 섞어봤어” 떨리는 마음과는 달리 거짓말이 술술 나와서 징어는 스스로도 기가 막혀. 어쩌자고 이렇게 대답했는지도 모르겠고, 미안해서 세훈이 얼굴을 못 볼 것 같아. 근데 저기 복도 끝에서 세훈이가 종인이랑 같이 웃고 장난치면서 걸어오는 거야. 징어는 순간 세훈이랑 눈이 마주쳤다가 고개를 돌려. 세훈이가 의아해 할 표정이 안 봐도 그려지지만,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징어 마음도. 갑자기 파도가 휩쓸고 있는 것처럼 너무 혼란스러운거야. 왜인지 모르게 세훈이가 밉기도 하고, 징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세훈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데 징어 앞에 서 있던 지아가 갑자기 밝게 웃으면서 세훈이 쪽을 보고 손을 흔들면서 인사해. 징어는 차마 그 광경을 볼 수가 없어서 그냥 괜히 이 곳도 저 곳도 아닌 애매한 곳에 시선을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어. 지아에 인사에 세훈이가 대답을 안 해준건지 지아가 앞에서 혼자 궁시렁거리지. 징어가 셋이 같이 만나는 상황은 피하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아한테 급하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기로 마음 먹어 “저기, 그럼 나 이제 들어갈게” “응. 혹시 내가 오늘 한 말 기분 나빴으면 미안해. 세훈이 친구가 너랑 세훈이랑 사귄다고 해서 아닌 거 알면서도 찾아왔어” “어…아냐. 괜찮아. 그럼 나 들어갈ㄱ…” “오징어!” 징어가 빨리 들어가려고 하는데 세훈이가 들어가려는 징어를 재빠르게 잡아. 징어와 세훈이네 반보다 앞 반인 종인이는 벌써 반으로 들여보냈는지 세훈이 혼자 징어 손목을 잡고 징어를 내려다보고 있어. 순간, 세훈이와 눈이 마주친 징어는 갑자기 밀려오는 후회 때문에 세훈이를 붙잡고 엉엉 울고싶어지지. 어쩌자고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세훈이의 눈빛이 이게 무슨 상황이냐는 눈빛이라서 징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바닥만 쳐다보고 멀뚱멀뚱 서 있어. “세훈아. 너 얘 알아?” “어?어….같은 반이니까…” 그 와중에도 비밀로 하자는 징어의 약속을 지켜주려고 배려하는 세훈이의 모습에 징어가 더더욱 고개를 숙여. 그런 징어의 뒷목으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아마 세훈이가 그런 징어를 의문스럽게 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징어가 세훈이한테 잡혀있던 손목을 살짝 빼내. “근데 니가 왜 여깄어?” “아니 아까. 누가 너랑 징어랑 사귄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부리나케 달려와서 물어봤지. 근데 징어가 아니라고 말해줬어. 그래서 징어랑 지금 인사하고 헤어지려던 참이었는데, 징어야 안 들어가?” 따발총처럼 다다다 뱉어내는 말에 옆에 서 있던 세훈이가 멈칫하는 게 느껴져. 지금이라도 당장 세훈이한테 미안하다고해도 모자를 판에 징어는 또 그 자리에서 그냥 멋쩍게 반으로 들어와 버려. 징어는 자괴감도 느끼고 세훈이에 대한 미안함도 느끼고 정말 5분정도 밖에 안 서있던 것 같은데 다리가 후들후들해. 징어가 할 수 없이 자리에 돌아와 앉고 종이 칠 때까지 세훈이는 안 들어와. 종이 치고나서야 세훈이의 자리가 채워졌어. 징어는 뒤돌아서 세훈이랑 눈이라고 마주치고 싶은데 차마 그럴 용기가 없어서 수업시간내내 뒤도 못 돌아보고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수업을 들어. 쉬는 시간에라도 용기내서 세훈이한테 가 볼까 했는데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세훈이는 세훈이대로 나가버리지. 세훈이가 화가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징어는 슬퍼지는 거야. 이대로라면 세훈이랑 이렇게 끝이겠구나하는 생각에…. 그리고 냉전이 시작되지. 징어는 평소에 친한 친구들한테는 장난도 많이 걸고 하는데 막상 정말로 미안하거나 큰 일이 다가오면 오히려 말을 못 해서 그걸 못 넘긴 친구들이랑은 많이 찢어지고 그랬어.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예외가 아닌 듯 징어는 당연히 세훈이한테 먼저 말도, 연락도 못 걸어보고.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무서운 무표정으로 세훈이는 맨날 그냥 자리에 앉아있다가 쉬는 시간이면 나갔다가를 반복하지. 한 번은 용기내서 징어가 뒤를 돌아봤는데 세훈이가 처음으로 책상에 엎드려 있는 걸 봤어. 어차피 선생님들도 운동부한테는 크게 뭐라고 하시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의 지적은 안 받았지만, 징어는 계속 마음이 쓰였어. 헤어진다고 해도 이렇게 헤어지는 건 싫은데…. 어쩌면 잘 넘길 수 있던 문제를 징어가 큰 문제로 만들었다는 생각에 징어는 밤에 잠도 못 이루고,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가 버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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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게 일주일이 흘러가고 징어는 방학식을 하게 돼. 어차피 방학식 해봤자 주말 쉬고 곧바로 또 보충을 하러 나와야 하기 때문에 징어와 친구들은 별 감흥이 없지. 징어는 이제 세훈이를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징어한테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였고 또 이번일은 백프로 징어에게 잘못이 있으니까…. 이제 세훈이도 징어한테 정도 떨어진 것 같고 징어도 미안해서 세훈이 못 쳐다보고 그러다 보니까 일주일동안 알게 모르게 서먹서먹해져있어. 징어도 많은 생각을 해봤는데 만약에 징어가 세훈이의 입장이었더라면 다음날이라도 당장 세훈이한테 따졌을 것 같았어. 그 정도로 많이 화났을 거라는 거지…. 그래서 방학식 하는 내내 결국 징어는 뒤 한 번 못 돌아보고 그렇게 흘려보내. 놀자는 친구들의 말도 거절하고 징어는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까지 도착해서 교복도 안 벗고 선풍기 아래에 누워서 곰곰이 계속 생각에만 잠겨있어. 이렇게 세훈이랑은 어떻게 되는걸까. 이렇게 갑자기 아무 연락도 없는게 세훈이의 이별통보 방식인가? 그래도 내가 연락을 해봐야 하는걸까? 이런 저런 생각에 핸드폰을 잡았다가도 세훈이가 달라졌을까봐 반응이 무서워서 다시 내려놓고를 반복해. 그렇게 불편하게 누워있다가 결국 징어는 더위에 지친 몸 때문에 까무룩 잠에 들어 버리지. 그렇게 얼마를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누군가가 징어를 발로 툭툭 깨워. 일어나보니까 일찌감치 방학을 한 대학생 언니가 징어를 한심하단 눈으로 쳐다보고 있어. "너 꼴이 그게 뭐냐?" 언니의 업신여김의 표정은 일상이라 신경도 쓰지 않는 징어가 밖을 내다보니까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고 있어. 여름이라서 꽤 해가 길어졌는데도 벌써 해가 넘어가려고 온 세상이 붉은 걸 보니까 갑자기 징어는 코가 시큰해져. 세훈이랑 처음 말했을 때도 딱 이 시간대였는데…. 솔직히 징어가 좋아한다는 감정표현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세훈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거든. 징어가 훌쩍대는 걸 지켜보던 징어네 언니가 혀를 끌끌 차고는 한 마디를 툭 내던지고 언니 방으로 들어가. "어차피 헤어질꺼면 보고싶다고 말이라도 하고 차이던가. 아주 애닳아서 못 보겠다 내가 맨날" 징어가 그래도 가족들한테는 비밀로 하지 않아서 가족들은 모두가 징어가 남친을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어. 그 중에서도 언니가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있어서 요즘 징어와 세훈이의 연애사에도 눈과 귀가 발달해 있었지. 그리고 징어는 언니 말을 듣고 결심해. 그래,어차피 헤어질꺼면 지금까지 표현 못 했던 내 감정이라도 다 털어내고 헤어지자. 깔끔하게 그냥 차이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아서 징어는 핸드폰을 집어서 세훈이에게로 전화를 걸어. 평소같으면 지금 운동할 시간이지만, 오늘은 태권도부도 다 집에 가서 주말까지 쉬고 온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전화 신호음이3~4초만에끊기고 세훈이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 "어?여보세요?" "…어,저기…난데" 징어는 막상 전화해서 할 말이 정리가 안되서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세훈이가 웃는 소리가 들려. 징어는 아니라고 마음을 눌러보지만, 세훈이가 웃는 희미한 소리에도 자꾸 희망을 갖게 되서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려고 해. 자꾸 코 끝도 시린 것 같고… "징어야" "…응." "나올래?" "뭐?" "지금 너희 집 앞이야. 나와" 징어는 화들짝 놀라. 그리고 빠르게 여러가지를 생각하지. 지금 징어의 몰골이라던지, 아직도 갈아입지 않은 교복이라던지, 왜 세훈이가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건지. 왜 불러내는건지. 징어가 생각이 많은 걸 알았는지 세훈이는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먼저 끊어. 그래도 더위가 매일매일 정점을 찌르고 있는 계절에 오랜 시간 밖에 놔두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징어가 대충 세수만 하고 티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후다닥 달려나가. 몇 번 안했지만 세훈이와 학교 밖에서 만나는, 그러니까 데이트를 한 후에 세훈이가 징어를 집에 바래다 주기 전에 항상 앉아서 얘기를 나누었던 곳. 징어네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이야. 징어가 다닌 학교이기도 하고…. 징어가 헐레벌떡 나가보니 항상 징어와 세훈이가 같이 앉아있던 벤치에 세훈이가 혼자 앉아서 발장난을 치고 있어. 얼마만에 보는건지. 사실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도 징어는 세훈이가 너무 반가워. 물론, 세훈이가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니까 맘 속으로 꽁꽁 숨겨둔 채 세훈이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앞에 지는 그림자에 세훈이가 징어가 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어서 '왔어?앉아' 하고 자신의 옆자리에 흙먼지를 좀 쓸어줘. 징어가 도착하기 전까지도 흙먼지를 털어놨었는지 다른 자리에 비해서 유독 징어가 앉을 자리만 깨끗해보여. 그런 세훈이의 세심한 배려에 징어는 또 너무 미안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징어는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고, 특히나 남들 앞에서 우는 걸 너무 부끄러워해서 당장이라도 어디에 숨어서 조금이라도 울고싶지만, 눈 앞에 세훈이를 두고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잠자코 세훈이 옆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 세훈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징어가 옆에 앉아있는데도 한참이고 말을 안하고 뜸을 들이고 있어. 징어는 고개를 푹 숙여버려서 세훈이가 발장난을 치고 있는지 아니면 징어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앉아. 징어가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제서야 세훈이의 약간은 잠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
숙인 징어에게도 보이게끔 '약속'하는 손가락을 만들어 세훈이가 징어 앞에 내밀길래 징어는 말없이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어. "일단,김지아일은 미안해…. 근데 걔랑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리고 그렇게 니가 들어가버린 후에 많은 생각을 했어.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나는데, 너에 관련된 일은 항상 너무 어려워. 내가 멍청한건지 모르겠는데…. 결론은 내가 미안하다는거야. 니가 그렇게 불안해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내 감정만 생각하고, 니가 너무 좋아서 니가 어떤 일에 힘들어하고 얼마나 상처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생각도 못 했어. 말이 좀 웃기다 그치? 그리고…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너한테 너무 믿음을 못 준 것같아서 미안하다는거야. 음…원래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말랬는데, 내가 나쁜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래도 아직 니가 좋…징어야. 너 울어?" 세훈이가 떨리는 음성으로 깔끔하지 못하지만 차분하게 말해나가는데 징어는 결국 못 참고 눈물이 나. 세훈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진심이 들어있어서…그래서 세훈이한테 더 미안한거야. 왜 그 일에 대해서 세훈이가 사과하는건지도 모르겠고 징어 탓 하나 못하는 세훈이한테 너무 미안하고 또 고마운거야. 나를 이 정도로 좋아해줘서…. 세훈이의 진심 가득한 순수한 말들에 징어들은 너무나 감격스러워. 이만큼씩이나, 이렇게 큰 감정을, 이렇게 큰 진심을 징어들이 받아도 되는걸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행복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뒤섞여서 징어는 그냥 허엉-하고 소리를 내서 울어버려. "ㅇ…왜 울어 응? 왜 뭐 때문에 그래" "세훈아 내가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해" 진지하게 진심을 말하던 세훈이는 어디가고 징어들이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내면서 우니까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세훈이만 남아. 그런 세훈이에 징어는 진심으로 사과를 해. 울어서 발음도 다 뭉개지고 코도 막혀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지만, 그래도 징어는 진심을 전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하지. 징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당황당황하던 세훈이는 징어의 말을 듣고 기분좋게 웃어. 그리고는 징어 머리를 헝크러뜨리고 팔을 양쪽으로 쫙 벌리지. "일로와. 안아보자!" 징어가 운 것도 부끄러운데 안기기는 더 부끄러워서 쭈뼛되니까 세훈이가 징어를 먼저 안아. 그리고 징어 등을 토닥이면서 말하지. "오늘 우리 100일이야. 거창한 이벤트는 준비 못 했고,그렇다고 다이아몬드 박혀있는 반지도 준비 못 했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니 손 사이즈를 모르잖아. 그래서 이거라도 준비했어." 그렇게 세훈이가 떨어져나가고 징어 목에는 목걸이가 걸려있어. "그리고 이것도" 그리고나서는 징어 손을 잡고 징어의 손바닥 위에 검정색 반지를 하나 올려놔. 어느새 울음을 그친 징어가 이게 뭐냐는식으로 쳐다보니까 세훈이가 설명을 해줘 "이거 내 행운의 반지야. 내가 시합 나갈 때마다 꼭 가지고 가는….근데 이제 니가 가지고 있어" "왜?" "안돼.이유까지 말하면 오그라들어서" "알려줘!" "……이제 내 행운은 너니까" 그 말을 뒤로 세훈이가 고개를 푹 숙여버려. 살짝 짧은 검은 머리 사이로 삐져나온 귀가 빨개져 있는 것으로 봐서 많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아는 징어는 장난을 치지. "너 이 멘트 준비했지?" "…응" 진짜 준비했다는 말에 징어가 웃으니까 세훈이가 '너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뿔난다.'하고 말해. 그렇게 웃다가 문득 징어는 아무것도 준비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해져서 세훈이한테 난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하고 말끝을 흐리니까 세훈이가 웃으면서 징어와 손깍지를 끼고 말하지. "그럼 뽀뽀라도 주던가" "ㅁ…뭐?" 사실 징어와 세훈이는 100일이 다 되도록 손잡기,안기밖에 한 게없어. 유일하게 징어와 세훈이의 연애사를 아는 징어의 단짝친구 2명이 의문스러워 했지만, 징어는 평소에 세훈이가 스킨쉽에 대해서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신경 안쓰나보다 했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스킨쉽해달라는 말을 들으니까 너무 당황스러운거야. 징어가 당황스러운게 다 티나도록 어버버하고 있으니까 또 소리내서 웃은 세훈이가 징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제 들어가보라고 이야기해 "너는?" "나는 너 여기서 너 가는거 보고 갈게" "왜?" "왜라니.이 시대의 진정한 멋쟁이니까 그렇지"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말투로 돌아온 세훈이에 안심한 징어가 때마침 오는 엄마의 호출문자를 받고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뒤돌아서 집방향 쪽으로 걸어가. "징어야" 아직,한 발자국도 안 뗐는데 징어를 부르는 소리에 징어는 세훈이 쪽을 바라보지. 근데 순간 세훈이가 징어의 손목을 잡은채로 일어나서 징어의 볼에 쪽하고 뽀뽀를 해. "고마워.선물. 강제선물이니까 볼로 만족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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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편
징어가 예기치않게 아는 선배의 권유로 2학년 때 뒤늦게 학생회에 들어가게 되거든?근데 2학년이니까 늦게 들어왔어도 바로 부장으로 들어와. 그걸 안좋게 보는 동갑 친구들도 있고,심지어는 1학년에 어떤 애가 징어를 뒤에서 욕했다는 말도 들었었어. 근데 징어는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일 크게 만드는 것도 싫어해서 그냥 넘기고 말았거든. 그래도 징어는 항상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그래서 항상 학교 행사에 학생회 애들이 단체로 도우미로 가도 징어는 더 많은 일 하려고 하고,다른 애들이 1학년 시킬 일을 징어는 징어가 하고 그래.
그래도 간신히 일어나서 씻고 학교가고,또 청소하고,방학식 하고,집에 왔다가 세훈이네 집으로 가기로 했어. 징어는 너무 귀찮고 힘들지만 세훈이한테 미안하니까 감기는 눈을 억지로 참아가며 씻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세훈이네 집에 갔어. 처음 와 봤는데도 징어는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눈에 안 보이는거야. 근데,참 포근하고 되게 가정적인 느낌이 물씬 든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지.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징어를 더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거야. 세훈이네 집엔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없었어. 세훈이랑 뭐할까 말하다가 같이 노트북에 영화를 다운받아서 보기로 해. 세훈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징어보고 들어오라고 해. 와..근데 세훈이 방이 되게 심플하고 이쁜거야. 딱 블랙&화이트로 잘 꾸며져있고. 징어가 세훈이 방을 잠시 감상하는데 세훈이가 자기 침대에 엎드려서 노트북을 켜더니 징어보고 옆자리와서 누우라는듯이 옆자리를 통통 쳐. 징어랑 세훈이는 사귄지가 꽤 돼서 이젠 그런 것쯤은 별거 아니라서 세훈이 옆에 나란히 엎드려 누워. 세훈이가 징어가 예전에 보고싶었는데 못봐서 아쉽다고 했던 영화를 용케도 기억하고 켜 줘. 그럼에도 징어는 푹식한 침대에까지 누우니까 진짜 주체못할 정도로 눈이 무거워지는거야. 그래서 징어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다가 놀라서 깨고,다시 졸고 깨고를 반복해. 세훈이가 그런 징어를 눈치챘는지 영화를 멈춰놓고 징어에게 말을 걸어. "졸려?" "..응...미안해" "졸리면 조금 자. 불편하면 나갈게" 사실,징어가 대답한뒤에 세훈이 대답이 바로 안 나오고 조금 텀이 있었어서 징어는 잠결에 세훈이 대답을 들어. 그러니까 이미 징어의 정신은 8:45한거지. 징어가 자세를 고쳐서 옆으로 돌려 눕는데 또 마침 평소 징어가 편한 방향이 세훈이 쪽인거야. 징어가 그렇게 누우니까 세훈이가 조심스럽게 징어 머리를 들어서 편하게 벨 수 있도록 베개를 고쳐잡아줘. 징어들은 평소에 세훈이 옷에서 희미하게 났던 세훈이네 섬유유연제 냄새가 강하게 나는걸 느끼면서 그대로 잠들어.
"장난치지마. 진짜 깜짝 놀랐잖아" "윽…. 장난 아냐. 진짜로 너 이렇게 자고 있었어. 이 자세 그대로,무방비하게" 세훈이 말이 거짓말이 아닌지 어딘가 잠이 묻어나있는 세훈이의 얼굴을 보며 말을 듣고있는데, 마지막에 무방비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서 샐쭉 웃으며 말하는 세훈이에 징어가 옆에 있던 베지도 않은 베개를 세훈이에게 던져. 운동신경이 좋은 세훈이가 그걸 맞을리는 없지. 그냥 가볍게 잡고 같이 일으켰던 몸을 다시 같이 눕히려고 하면서 '다시 자자. 너 피곤해보이던데'하고 말해. "나 이제 안 피곤해. 무엇보다 지금 몇시야. 너희 부모님은 언제오셔" 징어가 결국 세훈이의 팔을 이겨내고 다시 앉아서 말하니까 세훈이가 '오늘 안 오시는데…'하고 말 끝을 흐려. 어딘가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말에 징어가 머쓱해하면서 침대에서 나와서 일어나는데 세훈이도 따라 일어나. "걱정하지마. 아무짓도 안했으니까" 괜히 징어가 생각을 들킨 것 같아서 버벅거리면서 말을 더듬으니까 세훈이가 웃으면서 징어 머리를 정리해주면서 징어한테 다시 말하지. "다른 남자 앞에서도 그렇게 무방비하게 자면 안돼"
징어는 아프면서도 시원해서 세훈이가 시키는대로 침대에 걸터앉는데,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세훈이가 안마를 해주기 시작해. 두드려주는 것보다 주물러주는 게 더 빨리 풀어진다고 징어 어깨를 요리조리 만지는데, 징어는 진짜 너무 아픈데 또 시원한거야. 그래서 아무말 안하고 얼굴만 빨개져서 아파하면서도 시원해하고 있는데 세훈이가 제일 뭉친 부분을 손으로 주무르는거야. 근데 거기는 진짜 너무 아파서 징어가 아아…이러면서 소리 내니까 세훈이가 "와…너 진짜 많이 뭉쳤다. 무슨 여자애가 어깨가 이렇게 뭉치도록 일을 시켜?" "으…아파" "나중엔 시원해져. 이렇게해야 풀리니까 좀 참아봐" 하고 세훈이가 진짜 야물딱지게 잘 안마를 하는데 징어가 아프고 시원해서 소리를 계속 내니까 세훈이 손이 딱 멈춰. "징어야…" "왜?" 갑자기 멈춘 세훈이 손길에 징어가 의문을 가득 품은 채 대답을 해. "너…음…그 소리 안내면 안돼?" "……뭐?" "징어야. 너와 나를 지키려는 내 인내를 제발 실험하지마" 어딘가 장난스럽기도하고 울먹이는 것 같기도 한 세훈이에 말에 징어가 빵 터져서 이번에는 징어가 먼저 세훈이 얼굴을 잡고 뽀뽀를 해. "그럼 이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침대에서 내려오는 걸로…" 그리고 징어가 먼저 폴짝 침대에서 내려와서 거실로 나가. 잠깐 진지+야릇해질뻔한 분위기에 살짝 땀을 흘리며 주방으로 간 징어가 요리를 해준다며 세훈이를 식탁에 앉히는데 재료가 아무것도 없는거야. 그래서 세훈이보고 '너 뭐 먹고 살아?'했더니 당연스럽게 돌아오는 대답에 징어가 또 혼자 빵터져 웃지. "니 사랑" "은 학교급식이겠지." 심심하게 농담이나 주고받으며 만든 김치볶음밥을 둘이 같이 다 바닥내고,설거지까지 끝내니까 벌써 밖이 깜깜해진거야. 오늘 오시지 않는다던 세훈이네 부모님은 진짜 안오시는건지 10시가 다 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고…. 배도 부르고 잠도 잘 잔 징어가 집까지 가기 귀찮다고 하는데 세훈이가 아무 남자 집에서나 자는 거 아니라고 징어를 일으켜서 겉옷을 막 입혀줘. "아무 남자 집 아니잖아" "뭐?" "내 남자집인데…" 평소 닭살스러운 말은 거의 세훈이 몫이었는데, 막상 징어가 하니까 너무 부끄러워서 징어가 말끝을 흐리면서 야상에 얼굴을 파묻어. 그런 징어를 보고 세훈이가 징어 얼굴을 잡고 또 뽀뽀를 하지. 뽀뽀쟁이들. "오빠를 실험하지말자" 진짜 평소에 징어가 오빠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는걸 알면서 더 능글맞게 그런 말을 하는 세훈이를 보면서 징어가 소름이 돋는듯한 팔을 슥슥 문지르면서 짐을 챙겨. "누가 오빠냐. 내가 너보다 생일 빠른데, 혼난다. 누나 간다." 서로 오빠다 누나다 별 거 아닌 것 가지고 또 벌이던 애정싸움은 세훈이가 징어를 바래다 주겠다는 말에 의해서 끊겨. 세훈이도 야상 하나를 걸치고 나와서 징어 집 앞까지 데려다줘. 걸으면서 이 골목은 너무 위험하다. 여자가 다니면 안된다. 꼭 큰 길로 돌아가라. 여기 가로등은 왜 불이 나갔냐. 시청에 전화를 해야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 그렇게 세훈이가 잘 바래다 줘서 집에 들어와서 카톡을 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는데, 마침 타이밍 좋게 세훈이한테 카톡이 와. '사진' 이라고 쓰여져 있는 미리보기 팝업창에 징어가 보기를 클릭해서 들어가봤더니… !징어가 자고 있는 사진이 완전 가깝게 찍혀있는거야. 사실, 추하진 않았는데 너무 부끄럽잖아.그래서 세훈이한테 지우라고 말하려고 쓰고 있는데 세훈이가 먼저 '안 지울거야. 평생 간직!' '아까 너 이만큼 거리에서 계속 봤어' '이쁘다.' '잘자' 하고 선수를 쳐버리지. 그래….지우라고 해봤자 안지울 세훈이를 알기 때문에 징어도 그냥 내일보자는 하나도 안 무서운 협박을 하고 씻고 다시 잠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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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팔 mt 보고 느낀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