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도 정도껏 해"
작게 흔들리는 꽃잎을 네 손에 쥐어주며, 올해는 네게도 좋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낸다. 연분홍 여린 벚꽃잎이 제 몸을 단정한 네 어깨에 뉘이려기에, 후들거리는 발 끝에 힘을 주어 허리를 반쯤 일으켰다. 억지스럽게 내 팔을 잡고 다시 앉히려는 너를 떼어내고, 고집스런 손을 들어 꽃잎아래로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잔 물결이 일어 빙글빙글 돌아가는 꽃잎 하나를 다시 네 눈앞에 드밀어본다. 이걸 뭐 어쩌라고. 살짝 위로 치켜뜬 눈으로 물어오는 너. 바닥 위로 비죽한 발길에 채여 짓뭉개진 꽃잎을 볼 때마다, 한번만이라도 제때 선연한 색이 깃든 벚꽃을 봤으면 좋겠다며 널 재촉하던 나였다.
"이왕이면 남들이 눈길 줄만큼 예쁜 여자가 좋겠어."
내 말에 굳은 얼굴을 해보이면서도 손에 쥐어진 잎을 버릴 생각은 없는지, 바람결에 날리지 않도록 달걀처럼 모아 쥐는 너. 내게 받은 건 항상 소중히 하는 너였다.
"음... 그리고 섬세한 사람이었으면 해. 나한테 맨날 쏘아대면서도 혹시나 상처받았을까 싶어서, 넌지시 내 눈치를 살피는 너처럼. 그런 너의 다정함을 알아봐주는 사람 말야."
"너 오늘 좀 지나쳐. 그만해"
"아, 맞다. 너 손톱뜯는 버릇. 그거 고쳐줄 수도 있어야 돼. 은근히 너 애정결핍이니까... 그런거 못 느낄만큼 널 많이 사랑해주는 사람이 좋겠다. "
"고작 이런 말이나 들으려고, 너 힘들게 빼내온거 아냐. "
알아. 항상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너니까. 새벽부터 변기통 부여잡고 게워내느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꾸만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리는 내가 넌 아마 안쓰러웠던 거겠지. 그렇게나 보고 싶어하던 풍경처럼 아스라이 멀어져만 가는 내 모습도 말야. 창밖으로 날리는 분홍빛 향연에 우울해진 내게 병동에 굴러다니는 휠체어 하나를 공수해와서 '밖에 나갈래?' 하고 넌지시 묻던 너.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나를 앉히곤 그 길로 병문앞을 나섰었지. 그리곤 제 힘으로 서지도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어딜가느냐며 눈 앞을 막아선 의사에게 바락바락 대들던 너. 남은 명 마저 단축시킬 셈이냐며 단호하게 거절하고 돌아서는 의사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번만. 제발 한번만- 하고 오열하던 너, 그게 너였으니까.
"미안해"
"됐어. 사과하지마"
"아마 넌 내게 평생 미안한 사람이야"
너에게는 지은 죄가 너무나도 크다. 넌 내게 과분한 사람이었어. 아무것도 주지못하는 날, 전혀 원망하지 않는 바보같이 착한 네게 앞으로도 난 죄인이야.
고마워.
이런 나를 사랑해줘서
미안해.
그런 널 사랑해주지 못해서.
바람결을 따라 나선 꽃잎 하나가 네 어깨 위로 사뿐히 내려 앉는다. 차츰 수그러든 내 몸도 네게로 기울어 든다. 툭, 툭. 감은 눈 위로 너의 온기가 쏟아진다. 사라져가는 네 귓가에 대고 속삭여본다. 나, 여깄어. 네가 준 찰나의 봄, 그 곁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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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은 참 좋은 것 같아요. 많은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으니까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짧은 조각글 하나 던져두고 갑니다. (휙)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