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703912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

 

 

그 언젠가, 기억이 나질 않는 안개 속에서 가려진 장막의 저편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말한 적이 있었다. 별을 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래서, 생각했다.  지금 내가 어둠에 갇혀있는 이유가 별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하고. 물론 감상에 젖은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겠지만. 스스로가 떠올린 생각이 뭐가 그리도 웃긴지 백현은 혼자서 피실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조금 뻑뻑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것을 수차례 반복했으나, 눈에는 어떤 물체의 잔상도 남지 않는다.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 자신에게 와닿는 두 풍경들이 딱히 차이점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몇초가 걸리지 않았다. 어둠의 바다, 칠흑같은 어둠의 끝없는 연속, 그 속에 자신은 존재하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킨 것만같은 기분이였다. 귀는 막혀버린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은 어둠의 장막에 잠식 된 채로 점점 멀어가는 중이였다. 무섭다. 두렵다. 백현은 파르라니 떨려오는 자신의 손가락을 맞잡았다.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은 마치 스스로가 생명을 가진 듯 거세게 일렁이었다가 뒤틀리었다가를 반복했다. 아니, 정말로 그러한 것인지, 아니면 겁을 먹은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어둠에 잠식되어진, 그 크기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한 공간이 서서히 자신을 옥죄여 오는 듯하다. 흡사 갇힌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로 반복하여 들이켜지는 공기들이 텁텁하게만 느껴진다. 한줄기의 빛이 간절했다. 솔직히 환한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였다. 허나 자신에게 와닿는 빛들을 바라보고, 그 빛이 존재하는 곳에서 땅을 밟고 일어서서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 싶었다. 옥죄어 오는 온몸에 점점 숨이 가빠진다. 불규칙한 호흡이 뒤틀린 채로 반복된다. 머리가 계속해서 울린다. 시커먼 흑백의 안개들이 자신을 짓누르는 배타적인 감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숨에, 다시금 자신에게 벅차게 느껴지는 온몸의 감각들에 백현은 좌절했다. 고개를 숙였다. 허나 어둠은 그가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차오르는 눈물로 뒤덮인 눈가를 훔칠 생각마저 하지 못하는 백현을 어둠은 더욱 가혹해 몰아갔다. 안개들은 더욱 단단히 그의 몸을 옥죄이였고 공기들은 그의 폐부로 들어가선 그를 마음껏 농락했다.결국에는 백현이 그에 이기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그제서야 어둠은 만족한 듯했다.

 

백현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둠이 자신을 휩싸고 친 장난 탓에 온몸이 떨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이 자신을 놓아주었을 때 그의 더디게 터져나오던 호흡이 점점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멈출 생각을 하지 않던 눈물도 점차 그쳐가고 있었다. 한결 편안해진 호흡에 백현은 안도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곤 이내 자시의 손을 들어 그 파르란 눈두덩이 위를 덮어버렸다. 도대체 어디인걸까. 여기, 이 공간의 정체가 무엇일까.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부질없는 물음을 반복하길 여러번, 역시나 들리지 않던 타인의 목소리에 실망하기를 여러번,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길 수차례. 지쳐가던 백현은 그저 모든 것을 놓아버릴까 순간 생각했다. 그때였다. 그 순간 반짝이는 섬광이 존재했다. 그의 눈두덩이에 그 위를 덮고있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닿아오는 흐릿한 빛이 존재했다. 벌어진 손틈사이로, 그 사이로 흐린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현은 스스로의 눈을 감싸안았던 자신의 손가락들을 힘없이 아래로 떨구었다. 심장이 거세게 요동친다. 그것은 이미 온몸을 삼켜버린 미묘한 긴장감 때문일까, 아니면 계속 헤메이던 어둠 속을 벗어났다는 기쁨 때문일까. 아마, 양쪽 다 인 듯하다. 그는 벅차오르는, 허나 한 구석으로는 왠지모르게 한없이 가라앉는 상반적인 두 감정을 공존시킨채, 마침내 스스로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아아, 누군가 기대는 더 큰 실망을 부른다 했던가. 백현은 그 말의 의미를 절실하게 공감했다. 절망, 혹은 분노. 오로지 그것들만이 눈을 뜬 백현의 온몸을 잠식했다.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였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빛이였다. 허나 자신에게 와닿아 있는 눈 앞의 환한 빛은 자신을 바깥 세상으로 이끌어내주지는 못하였다. 그가 생각했던, 그가 바랬던 빛에 담겨있던 의미는 바깥세상과 자신을 연결해줄 출구, 였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던 밀폐된 공간 속이 단지 빛으로 가득 차올라, 하얀색으로 변한 것일 뿐. 어둠은 끝끝내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백현은 멍하니 그 공허한 빛의 장막을 응시했다. 공간은 자신이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것보다는 넓어보였다. 아니 사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최소한 100평이상은 될 듯하다. 줄을 그을 만한 것이 자신에게 있다면, 그리고 조금의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이곳에 존재했다면, 달리기 경주를 해도 좋았을 것이라고, 백현은 생각했다.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저 액자들만 아니였어도, 이 이질적인 공간은 자신에게 훨씬 넓다는 의미를 주었을 텐데. 액자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상당히 이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액자. 액자들.그리고 다시 액자.

 

어, 액자? 백현의 머릿속에 순간 한가지 의문이 스친다. 분명 자신이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이 공간에는 액자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온통 하얀 벽면들과, 그리고 자신, 그것만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저것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거지? 백현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기억이 잘못된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가까운 과거의 일이라 그저 기묘한 현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액자의 모양과 크기, 색깔도 상당히 다양했다. 하나같이 조금씩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건, 액자의 수는 분명 몇 천개는  넘고도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였다. 이 넓은 방의 벽면을 한치의 빈틈도 없이 꽉꽉 메우고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도 모자란 숫자 인지도 몰랐다. 이 넓은 공간들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액자들과, 그리고 자신. 여기서 또 다시 드는 의문점은 도대체 이곳은 어디이며,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이곳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였다. 복잡한 질문들이 머리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닌다. 백현은 잔뜩 흐트러져버린 머릿속을 애써 다잡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 내딛는 걸음에 그 복잡함들이 조금은 정리가 되길 바라면서, 그는 액자들을 향하여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걸음, 그리고 다시 한걸음. 그렇게 내딛는 발걸음으로 액자들과의 거리가 가까워 질수록 백현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다시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장면들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액자 앞에 멈춘 채로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본 것과는 다르게 하나같이 낡아있는 액자 속에는 모두 사진이 한 장씩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속에는, 그러니까 그 사진에 찍혀진 주인공들은 모두. 그 수많은 액자들 모두 다 백현, 자신이였다. 자신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그 존재를 감추어버린 자신의 어린날의 모습들. 아아, 정말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백현은 자신의 눈꺼풀을 느리게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들어 액자들을 가만가만 쓰다듬었다가, 그 속의 어린 자신을 한없이 덧그리었다가를 반복했다. 분명히 자신이였다. 한치의 의혹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어린 날의 자신임에 분명했다. 한없이 그리우면서도 안쓰러운 어린날의 자신. 한참을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액자 속을 들여다 보던 백현은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기분좋은 심장의 울림이였다. 자신에게서 사라져버린 어린날의 자신을 어딘지도 모르는 공간 속에서 찾게 된 것이 조금은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어찌되었든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음에. 가볍게 놀리는 발걸음과 함께 그의 고개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마치 사진 한장한장을 모두 자신의 안에 새겨 넣기라도 할 것 처럼, 그렇게. 사진 속에서 자신이 서있는 장소들은 계속 변하기는 했으나, 몇가지 장소로 한정되어 있는 듯했다. 어느 순간에는 아마 굉장한 크기일 것으로 짐작되는 집안의 복도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쓰레기가 남루하는 어두컴컴하기 그지없는 어느 뒷골목길이였다가, 그리고 또 다시보면 어느 순간에는 약품들과 실험용기들이 가득한 방이였다가. 저택, 골목길, 실험실. 이런 구도로 장소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니 이 수많은 사진들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떠오르는 추억이 단 한 조각도 존재하지 않았다.

 

조금은 서글프다, 라는 생각이 백현의 머릿속에서 들려던 찰나 순간 계속해서 움직이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그림 앞에 멈추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의 발걸음도 멈추어 버린다. 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사진이였다.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음을 터뜨린 채로,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친 채, 까져있을 것이 분명한 맨발로 달리고 있는 어린 자신이였다. 허나 백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것이 아니였다. 그의 발걸음을 기어코 멈추게 만든 것은 자신이 스쳐지나온 수많은 어린 자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사진 속의 어린 자신은 무엇이 그리도 서러운지 눈물을 한가득 머금은 채 그 낯선이의 뒷모습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비록 뒷모습 뿐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백현은 자신의 가슴이 거세게 요동 치는 것

을 느끼었다. 조금전의 그 기분좋은 두근거림과는 느낌이 달랐다. 무엇인가 아련한 듯 저려오면서도 그 한쪽 구석은 불안함에 떠는 그런 기묘한 감각이였다. 자꾸만 열이 오르는 눈시울이 왠지 모르게 야속하다. 자꾸만 떨려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백현은 다시한번 그 낯선이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아니, 주시하고자 했다. 허나 순간 어찔해지는 눈앞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다. 눈앞이 흐려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몸이 크게 비틀거린다. 노란색, 초록색, 파란색 그리고 다시 노란색의 곰팡이들이 한데 모여 눈앞에서 피어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불과 몇십분전, 그러니까 이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 들어서기 전에 쫓기며 정신없이 달리던 자신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위로 울고 있는 자신의 어린 모습이 겹쳐진다. 자신은 조금 전 그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달리던 현재의 자신이 되었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사진 속의 공간에서 그 낯선 이의 뒷모습과 그의 손을 잡고서 서럽게 달리는 어린 시절의 모습이 되었다. 눈가가 젖어들어가는 느낌이다. 왠지 모르게 가슴도 저려온다.

 

백현은 계속해서 아른아른 거리는 갖가지 색상들에, 고르지 못한 시야 속에서 사람의 형체를 포착하였다. 백현은 정돈되지 못한 시야에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마치 TV가 고장났을 때 화면이 지직거리는 것과 같이 백현의 눈앞에 그려지는 영상도 고르지 않게 부분부분 보여졌다. 좁고 더러운 골목.그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의 뒷모습. 흔들리는 그의 뒷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이 장면들은 앞서 본 사진 뒤에 이어지는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일까. 백현은 다시한번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마치 폭풍에 휩싸인 듯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온 머리 속이 요동친다. 그와 동시에 의문의 남자의 뒷모습도 사라졌다. 백현의 몸이 크게 휘청 거렸다. 순간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간 탓이였다. 그에 백현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이제 그의 시선은 어딘지도 모르는, 자신의 어린날들로 가득찬 이질적인 이 공간의 천장을 향해있었다. 아직, 자신의 어린날들을 다 담지 못하였는데. 온 세상이 뱅글뱅글 도는 듯한, 정말 기분 나쁜 감각이 들었다. 속이 메슥거리는 듯하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뱅글뱅글 도는 시야사이로 천장이 코앞까지 내려왔다 다시 원래의 높이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한다. 하얀 천장이 코앞에 와닿자 짧은 찰나에 저 하얀 빛이 진짜 태양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액자들이 폭풍에 휩쓸린 듯 정신없이 휘몰아쳐다닌다. 자신의 어린날은 힘없이 그 소용돌이에 휩슬렸다. 백현의 머리에 바닥의 둔탁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복잡한 혼돈 속에서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백현의 머릿속을 맴돌아 다닌다.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지 못한다. 허나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는 분명히 귓가에 들린다. 아가. 아가. 아가. 한단어 만이 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반복된다. 따뜻한 온기를 가득 담은 채로 아가, 라 말하는 이 목소리의 주인은 누구인 것일까. 나는, 나는 이 목소리를 어떻게 아는 거지. 계속해서 메아리치는 그 누군가의 목소리에 백현은 눈물이 차올랐다. 이상하게 미어지는 듯한 가슴이였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단지, 그저 메아리 치는 그 목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그래서 우는 것일 뿐이다. 온 사방이 웅웅거리는 소리들로 가득차 올랐다. 허나 그 낯설지 않은 목소리는 계속해서 메아리 쳤고, 액자들은 계속해서 불규칙하게 소용돌이에 휩쓸려갔다. 자꾸만 어린 자신이 저 소용돌이 속에서 울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라져버렸던 그 낯선이의 뒷모습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이제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향해 걸어온다. 허나 얼굴은 누가 의도적으로 가리려고 작정 한 듯 무엇인가에 가로막혀 뿌옇게 흐려져있다. 그 낯선 존재는 계속해서 그와 자신의 거리를 좁혀온다. 자신의 시선은 천장을 향해있으니, 그는 지금 천장에서 걸어 내려오는 것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잔뜩 헝클어져 있기 때문에, 판단할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이 존재하고 있던 그 넓은 공간의 크기가 자꾸만 축소되는 듯한 느낌이다. 소용돌이는 더욱 거세어지고 있었다. 요동치는 공간. 그리고 마침내 그 가려진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와닿는다. 자신에게 다가온 그 낯선이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올리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안개 속에 가려 보이질 않는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귓가에 작게 쉿- 이라 속삭인다. 아마 그는 웃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낯선이가 자신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임과 동시에 백현은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가두어둔 스스로의 무의식 속이라는 것,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밀스럽기 그지 없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백현이 이 사실을 깨닫자 말자 그 낯선이의 형체는 자신의 어린 날들과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라져버렸다. 끊임없이 메아리쳐오던 아가, 라는 목소리 또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곧 바로, 백현의 세상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


눈을 떴다. 급하게 폐부로 밀려들어오는 공기들의 존재가 그닥 달갑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럽다. 아직도 그 무의식 속의 공간에 서 떠돌아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진정되지 않는 온몸의 떨림이 그것을 증명한다. 아직도 그 방에서의 기묘한 일들이 생생하다. 허나 그 하얀방은, 그 이질적이였던 공간은 결국에는 자신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공간일 뿐. 그리고 그 사실은 백현이 그토록 허탈한 마음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 속에서 고통 속에 울음을 터뜨린것도, 자신의 어린 날들과 다시 만나게 된 것도, 그리고. 몇가지의 것들. 허나 그것이,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분명히 무언가 중요한 일이였던 것만 같아 괜히 불안해진다. 허나, 푹신한 배게가 자신의 머리를 감싸안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누워있으니 그런 생각나지 않는 것 쯤은 기억해내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기분이든다. 아아, 기억나지 않는 것을 계속해서 붙잡고 있어보아야 무엇하리. 백현은 밀려드는 귀찮음을 이겨내지 못한 채 그냥 다시 눈을 감았다. 어딘지 모르게 깊이 생각하려고 하면 어느 깊숙한 곳에서 두려움이 올라왔다. 왠지 모르게 깊이 생각하게 두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백현은 생각했다. 언젠가 그 공간을 다시 만나게 되는 날, 자신의 어린 날을 다시 보게 될 그날이 조금은 기대가 됨이라고.

 

 

 

회색 도시

경수*백현

 

 

백현은 깊숙히 숨을 들이마셨다. 흐릿한 바질향과 짙은 페르지아 향이 코끝에 스쳤다. 무언가 시원한 향기도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발가락을 움직거렸다. 푹신한 이불의 촉감이 기분 좋게 살결을 스친다. 이불에서도 깊은 허브 향이 스며나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지는 향이라고, 우리집에서도 이런 향이 났으면 좋겠다, 라고 백현은 생각했으나 곧 그 생각에는 무언가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집에서는 허브향이 나질 않는데. 백현은 잠시 고민했다. 당연하지, 허브를 키우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허브향이 나는 이곳은, 어디? 왠지 모르게 데자뷰가 느껴지는 이 상황에 백현은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혼란에 빠졌다. 다시 꿈 속으로 돌아온 건가? 아니야, 그곳에서는 허브향이 나질 않았잖아.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라는 말이야. 그는 혼자서 속으로 자신에게 묻고 다시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그게 무엇이든 이곳이 자신에게는 낯선 장소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백현은 파르라니 떨리는 자신의 눈꺼풀을 살짝 들어올리고자 한다. 확인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비로소 환하게 뜨인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장면들에, 백현은 내심 안도했다. 눈을 뜨려는 그 짧은 찰나에 여기가 다시 꿈 속이면 어떡하나, 내심 불안했다더라. 그 어둠이 자신을 짓누르던 소름끼치는 감각은 정말이지,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자신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그 새까맣거나 새하얗던 천장이 아니였다. 굉장히 높고 또한 고급스러운 장식들이 가득한, 그러나 어울리지 않게 야광별들이 잔뜩 붙어있는 그런 천장이였다. 자신은 아주 큰 크기의 하얀 이불 속에 폭 싸여 있었다. 굉장히 좋은 촉감이다, 라고 백현은 생각했다. 일단 그 무의식 속의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긴 했으나, 어찌되었건 이곳은 낯선공간임에 틀림없었다. 백현은 왠지 모르게 찌뿌둥하기 그지 없는 상체를 일으켰다. 왜 이렇게 온몸이 쑤신지 알수가 없다. 머리도 욱씬거리는 것만 같다.

 

"가만히 있어"

 

손을 들어 푸석해진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던 백현의 귓가에 낯선 이의 목소리가 울린다. 그 울림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린 백현의 눈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들어온다. 낯선 이다. 왠지 모르게 이 상황도 익숙하다. 꼭 어디에서 본 것만 같이. 모르는 사람을 발견하고,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음, 어디에서 본걸까. 백현은 멍하니 그 낯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딱 보기에도 그 값이 꽤 나가보이는 흔들의자에 앉아 자신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빤히 바라보던지 백현은 자신이 저 시선에 뚫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현이 길어지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탓에, 그것을 회피하려 고개를 돌릴 찰나 그가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을 떼었다.

 


"혹시,"


"나를 알아보겠어?"

 

백현은 반대편으로 돌리려 하던 고개를 다 잡고는 다시 그와의 시선을 마주했다. 칠흙같은 검은색의 눈동자. 이곳에서는 흔치 않은 눈동자였다. 아무리 진해봤자 호박빛이 나는 갈색 정도. 그런데 저 낯선이는 검은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백현, 자신의 것과 같았다. 백현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그 낯선 이의 흔치 않은 눈동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낯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의 목소리의 울림도 이목구비도, 눈동자도, 그리고 그의 엷은 갈색의 머리카락도. 하나같이 어디서 본 것만 같이, 익숙했다.

 


"아, 그렇게 보면 곤란해"

 

백현의 시선에 기분좋은 듯 살며시 미소 지은 그가 반동에 의해 앞뒤로 흔들거리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정신이 온전치 못한건가, 라고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린다. 혼잣말인건지 백현더러 들으라고 한 소린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다소 큰 소리이긴 했지만. 그는 일으킨 몸이 찌뿌둥한지 좌우로 사정없이 비틀어대고는 백현에게로 서서히 다가왔다. 한걸음씩, 한발자국씩 그가 다가올 때마다 백현에게 마주쳐 오는 그의 눈동자의 색도 더욱 또렷해졌다. 그리고 왠지 모를 시원한 향도 강해진다. 눈을 떴을 때 느끼었던 그 시원한 향이, 저 사람의 것이였나보다. 그는 보통 사람보다 여유롭게, 허나 느리지 않게 걸어서 백현의 앞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백현은 그의 눈동자의 색에 대한 호기심을 거두었다. 일어서있는 탓에 키가 백현의 앉은 키보다 훨씬 높아진 그는, 백현과 논높이를 맞추고자 함인지 허리를 앞으로 숙였다. 백현과 그의 얼굴이 맞닿을 듯이 가깝다.

 


"아ㄱ...."

 


마주닿아있는 시선사이로 익숙한 듯 무언인가 내뱉으려던 그는 이내 그말을 삼키었다. 살짝 흔들리는 눈을 보니 자신도 스스로의 행동에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는 이내 그의 본연의 표정으로 돌아가 아무렇지 않은 듯 씩 웃어보인다. 허나, 왠지 모르게 그 웃음이 구슬프다. 그가 뻗은 그의 손가락이 백현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와 닿는다. 그리곤 이내 나머지 손의 그의 눈위를 덮는다. 갑작스레 어두워진 지금 이 순간이 마치 조금 전에 꾸었던 꿈속같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가려져버린 눈에 온 세상이 어두컴컴하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상대방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아마 백현이 아닌 그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인 듯 했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도대체 무엇을? 무엇을 다시? 그 말에 뒷붙여지는 자그마한 한숨소리에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저리다. 물론 이유는 알지 못한다.

 

"난, 경수야. 도경수"

 

그 낯선이가 자신을 경수라 소개했다. 목소리에 한가득 떨림을 담은 채, 한손을 백현을 뺨에 그리고 다른 한손은 백현의 눈에 닿게 한채, 그렇게 경수라는 사람은 한참을 떨었다. 그리고 그 떨림이 조금이나마 진정되어가던 그때, 그때에 이르러서야 경수는 백현에게 닿아있던 자신의 손가락을 모두 거두어갔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눈이 부시다. 수차례의 깜박임을 반복한 후 마침내 백현의 시야가 정돈 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경수라는 사람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 후였다.

 

"조금 더 자 두는게 좋을거야"

 

상대방이, 경수가 말했다. 여전히 그의 어깨는 나지막히 떨리고 있었다. 우는 걸까, 순간 백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잘자, 백현아"

 

백현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가 불을 끄고 자신이 있는 방이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백현은 가만히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경수, 그는 자신이 그에게 알려주지 않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다시금 혼란스러워져 가는 머릿속에 백현은 하얀 이불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다. 도대체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자꾸만 욱신거리는 머리에 백현은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조금전 자신의 눈을 덮은 그의 손에 존재하던 온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마치 그의 목소리가 녹음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나지막한 울림이 백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익숙하다. 도대체 낯설지가 않다. 자신이 누워있는 방도,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걸음걸이도, 심지어 그의 체온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였다. 그렇다면 경수라는, 저 낯선이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일까?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왜? 자꾸만 그에 관련해서 떠오르는 의문에 백현은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아무래도, 다시 잠들기에는 글렀다고, 백현은 생각했다.

 

 

***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ㅜㅜㅠㅠ

그런데 경수랑 백현이는 무슨 사이일까요(찡긋)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오백] 회색 도시3  7
11년 전

공지사항
없음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작가님 왜이리늦으셨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진짜 이번편 몽환적인대 대박이에요ㅠㅠ와 백현이가 경수를 잊어버리고 경수는 다시시작하자고하는 걸 보니까 두사람?? 뚜뚜루:뚜둨ㅋㅋㅋ연인사이죠?ㅋㅋㅋㅋㅋㅋ죄송해여 작가님 빨리오셔요 다음편기다리고있을꼐여!!!
11년 전
대표 사진
마히미
ㅠㅜㅠ죄송해요ㅜㅜㅠㅜ다음번에는 빨리 오도록 할게요ㅜㅜ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힣ㅎ 아니에여 혹시..암호닉신청받나요? 된다면 [타오네엄마]로 할꼐옇ㅎ
작가님 진짜 잘보구있어요ㅠㅠㅠ1화에 세번째댓글부터 시작해섴ㅋㅋㅋ앞으로 기대되욯ㅎ

11년 전
대표 사진
마히미
넵 신청받았어요ㅎㅎ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작가님의 쪽지 알림 소리에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삽입된 배경음악에 분량에 흐름까지. 숨 죽이면서 바삐 읽어내렸어요. 찬찬히 읽다가 하얀 공간에 액자들이 생겨난 시점부터 이것은 백현이의 지난날 과거구나. 라고 짐작했었고 그 짐작은 맞아 떨어졌네요. 크고 작은, 많은 액자속에 사진이 한장씩 담겨있다는게 어찌도 마음이 미어지는지. 게다가 한정된 장소의 반복이라는 곳에서 더더욱 숨을 죽일수밖에 없었어요. 절로 죽여지더라구요, 숨이. 분명 글을 읽고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그림처럼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려지고, 그게 여러장이 겹치고 겹쳐 생생하게 움직이던 백현이가 너무 외로워보여서, 과거를 훑어 내려가는 백현이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랬어요. 아가라고 애타게 불렀던, 백현이가 가슴이 미어진다했던 그 목소리는 제 어미의 목소리였겠죠. 순간 드러난 모성애가 바닷물처럼 밀려와서 한동안 스크롤바를 내리지 못했어요. 시선도 떼지못했죠. 곰곰히 곱씹다가 내린 시선은 낯선 이에게 닿았어요. 낯선 이는 경수였죠.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어떤 식으로 만날지 궁금했던 경수가 모습을 드러냈건만, 베일을 온 몸에 칭칭 감고 드러냈네요.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이 대목에서 백현이의 과거 속에서 경수도 연관되어있던 하나의 조각이 아니었나, 싶으면서도 다른 분위기가 풍겨 쉽게 접근할 수 없던것같아요. 저택, 골목길, 실험실. 이 세 단어도 되게 기억에 남아서, 어쩌면 저 세 단어가 경수와 백현이를 풀어주는 키워드가 아닌가, 싶어요. 오늘도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이렇게 좋은 글 보여주셔서. 밤이 늦었네요. 좋은 꿈 꾸시길 바라면서 덧글을 이만 줄일게요.
11년 전
대표 사진
마히미
항상 댓글 너무 감사해요ㅜㅜㅠ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ㅜㅠ
11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181.233
작가님...ㅠ,ㅠ 비회원인데다가 수능준비하고 있어서 글 올려주신거 지금 보네유 ㅠㅠ 브금도 너무 좋고 글도 너무 좋코 오늘 6월 모평때문에 심란했는데 작가님 글로 힐링하구 가요..사랑해여....S2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인피니트/야동] 널 사랑하니까005
07.19 21:32 l 네치
[인피니트/성규성종/규쫑] 괴물 같은 사랑사랑사랑5
07.19 21:31 l 5월의 장미
[동우총수] 장천사의 승천을 반대합니다. 023
07.19 21:27 l 미친고자잉여
박찬열닮은 오빠랑 썸탐33313
07.19 21:26 l 석류
[EXO/카준] 지붕위의 고양이 1 (수정본)15
07.19 21:18 l 고슴도치
[찬백/카디] 봄, 봄! 0134
07.19 21:06 l 루멘
[EXO/개그] 엑소네 13남매;episode 0113
07.19 20:44 l 베베과자
[이민혁X김유권] 어 너는.....?!?!?!? (ㅈ저는 이제 그만 물러납니다ㅠㅠ..)4
07.19 20:43 l 뿡이2
[인피니트/현성] planetarium -54
07.19 20:37 l 아련
[빅뱅/탑뇽] 사랑해도될까요 1
07.19 20:26 l 레쓰비
[블락비/피코] 그 놈의 옷 22
07.19 20:26 l 뿡뿡
[인피니트/야동/시간이동물] Return To The Future 1016
07.19 20:11 l 유자차
[인피니트/야동] 왕따 혹은 직장상사 3429
07.19 19:12 l 왓써ㅃ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55
07.19 18:58 l 푸딩
[주르륵x인티인] 저기요 혹시 인티하세요....?85
07.19 17:15 l 글쓰니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1
07.19 16:37 l 수야우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34
07.19 14:57 l 유리심장..
[엑소/찬열X종인] 흑마특수부대 001-0027
07.19 14:19 l 할거없다
안녕히계세요12
07.19 14:09 l 이요르
[인피니트/야동] 왕따 혹은 직장상사 3320
07.19 13:43 l 나누구게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24
07.19 02:55 l 유리심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9
07.19 02:12 l 쑥즙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10
07.19 02:09 l JUEL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96
07.19 02:04 l 푸딩
[샤이니/호현] 얘 선배맞음? - 번외18
07.19 01:16 l 불금인데걍심해서
[인피니트/공커] Escape. 0110
07.19 01:05 l 쑥즙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 50
07.19 00:55 l 푸딩


처음이전2012202203204205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4: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