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03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부스스 눈을 떠보니 난 휴대폰을 꼭 껴안고 자고 있었다.
뒤늦게 생각난 변백현과의 통화에 머리를 쥐어싸매고 이불을 뻥뻥 찼지만 일단 출근부터 해야겠다 해서 급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민석의 소개로 들어가게 된 회사는 나른 대세라고 불리고 있는 소셜커머스 회사였다.
김민석과 친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대리로 있다는 회사였다.생각보다 난 이 회사에 빠르게 적응했고 정식사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됬다.
첫 직장이자 첫 사회생활이라 생각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회사 식구분들도 너무 다 좋은 분들이라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우리 홍보부서에서는 내가 막내기 때문에 애교도 부리려고 노력중이다.
머리 드라이하고 예쁘게 화장을 하던 중에 정인이한테 전화가 왔다.
"어.정인아."
-연락한다면서 왜 안해.걱정했잔아.
"어제 술마시고 바로 잤다.미안해."
-괜찮아?답답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천천히 다 말해줄테니까 좀 참아.등신아.아 그리고 넌 나한테 맞을 준비해."
-에?내가 왜!
"니가 소개해준 업체...후...아무튼 각오해라 진짜."
-..뭐..흠..암튼 알았어.저녁에 약속없지?
어제 술취해서 잡은 백현과의 약속이 문득 생각났다.
에이,내가 어제 술취해서 한 짓인데 변백현도 그냥 장난이었겠지.그러고보니 그 남잔 무슨 술 취한 사람가지고 놀아.
정인이에게 약속 없으니까 회사 끝나고 어디서 만나자 약속을 잡은 뒤 끊었다.
오늘부터 워커홀릭해야지.일 열심히!
"이야~얼굴보기 힘들다?"
"어,안녕하세요~!"
"많이 아팠다며..괜찮아?"
"다 나았어요~아마도..?히히"
"이게 어디서 애교야.밀린거 너 다해라."
"헐..설마 야근은 아니죠?힝.."
"..애교에 약한 거 알면서 그러는 거지 너.이번주안에 너가 알아서 마무리하면 된다.으이구!"
"헐..역시 팀장님 최고."
내가 성격은 이래도 회사에서는 막내라 애교쟁이라고 불릴정도.이 모습을 송정인이 보면 미친거아니냐고 백프로 욕했을거야.
날 유독 귀여워 하시는 팀장님한테 윙크 한번 해주고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회사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하나하나 다 하고 부장님에게 서류를 받아 왔다.
정인이에게 무사히 약속시간에 도착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고 다시 일할 기분에 들떠 책상을 한번 훑었다.
일단 김민석이랑 찍은 사진 치우고 이것도 김민석이 준 거네.아 저 달력도 버려야겠다.
씁쓸하게 김민석과의 물건을 정리하다가 문득 변백현이 생각났다.
일단...버리지는 말까?그건 그렇고 김민석은 내 문자 씹은거야?하여간 사람 속 썩이는데 타고났어.
애인이 돌아오게 해주세요
일에 빠져 정신 못차리고 밀린 작업들을 처리하고 있을때 쯤 부장님이 나를 불렀다.
오늘 홍보부서 전체 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이번에 진행될 홍보이벤트와 디자인 문제라고 외부에서도 올거라는 얘기였다.
정식사원이 되고 처음 맞은 큰 이벤트라 설레고 떨렸다.
부장님은 잘해보자는 덕담과 함께 나에게 서류 몇개를 더 얹어주셨다.
금스흡느드..어금니를 꽉 물고 웃어보이며 돌아섰다.
아 팔빠지겠다.진짜.겨우 이틀 쉰건데 무슨 일이 이렇게 힘드냐.
"O사원.그거 들었어요?이번에 디자인팀이 빠진다며."
"네?아,이번 홍보이벤트요?"
"응.위에서 디자인하는 사람 미리 섭외해놨나봐.디자인팀이 저번에 얼마나 구렸으면 그래?"
"..그런가요?전 그때 인턴이었어서.."
"고객들한테 점수 엄청 깎였었잔아.이번에 디자이너 완전 능력자라던데?"
"와,정말요?돈 좀 썼나봐요."
"아니 그 디자이너가 먼저 제안해 왔다고 그러던데 무지 싸게."
"..어머 왜 그런데요?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그러게.되게 젊은 남자래.잘생기고 인기도 많다더라.O사원은 남친있어서 관심없나?"
"아하하...그...아...네.뭐."
타이밍 놓쳤다.회사에서도 물론 내 남친=김민석은 유명하다.
이대리님이 나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말을 해놨으니 모르는게 이상했다.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얘길 같이 하고 있던 사원에게 눈인사를 대충하고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김민석과 함께했던 4년은 나 뿐만 아닌 내 주변에게도 너무 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다.김민석은...
"자,이번 이벤트 디자인을 맡아주실 변백현씨입니다."
"반갑습니다.변백현이라고 합니다."
그가 들어오고 나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싱긋 웃으며 인사하는데 난 기계처럼 박수만 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이야 이건...꿈인가? 아,잠시만!!!!
자리에 앉아 허벅지를 아무리 꼬집어봐도 짜릿한 고통 뿐이었다.그 때 대충 흘려 들었던 변백현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니..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저 사람?표정관리 안되는 나에 비해 변백현은 천하태평이었다.
젊은 남자에 잘생기고 실력도 좋아서 완전 잘나간다는 능력자가 변백현이에요?네?
속으론 몇 번이고 머리를 쥐어 뜯고 소리를 질렀다.아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네.내 미래가 깜깜하다...
"제가 꼭 함께 해보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이번 기회에 같이 작업하게 되서 기쁩니다.제가 여러분들한테 많은 도움이 됬으면 해요.
저도 같은 식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시길 바랍니다."
회의하는 동안 난 계속 딴 생각을 했다.부장님이 날 부르는 소리에 놀라 몇 번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느껴지는 변백현의 시선을 피하기에만 바빴다.
도대체 저 사람은 어디서 떨어진 악마일까? 내가 전생에 무슨 죄 졌나?
오랜만에 다시 출근하자마자 다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후...
직원 휴게실에서 한 숨 푹푹 쉬며 커피를 타고 있는데 회색 수트에 변백현이 능글맞은 미소를 띄며 들어왔다.
보자마자 따박따박 따지려고 했는데 막상 둘이 남으니까 벙어리가 된 것처럼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내 옆에 슬쩍 와서 어깨를 툭툭치더니 싱긋 웃는 변백현이었다.
"회사에서 보니까 반갑죠?"
"...네 반가워서 미칠 뻔 했어요.정신줄 겨우 잡았네요."
"푸흐흐..그럴 줄 알았어요.많이 놀라더라."
"말 좀 하고 오죠.마음의 준비라도 하게."
"에이~그럼 서프라이즈가 아니지요~어때요? 오늘 나 좀 멋있지 않아요? 신경썼는데.."
정말 변백현은 오늘따라 태가 났다.
항상 찰랑거리던 생머리를 세우고 세미정장을 입은 모습이 훨씬 남자답게 느껴졌다.
하는 행동은 여전했지만
"네.멋있네요.근데 백현씨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에요?"
"와..드디어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구나.이거 감동인데?"
"말 돌리지 말고.도대체 어떻게..."
"듣던대로에요.내가 말했잔아.일자리에서 폴링인럽~한 사이로 가자고."
"...진짜 디자이너인줄은 몰랐죠..나름 투잡이네요 그쪽."
"오..그런가?뭐 이 일도 OO씨 때문에 하는건데요 뭐."
"됬어요.황송해서 죽겠으니까 빨리 나가요.커피라도 타줘요?"
"그럼 땡큐.그리고 영화 뭐 보고 싶어요?예매해놓게."
"네?그거 그냥 한 말 아니였어요?"
"와...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해?"
내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자 쳐 진 변백현의 눈꼬리가 더욱 쳐졌다.
아 저러면 마음 약해지는데...내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입술 미워진다며 내 입술을 툭툭 쳐낸다.
이게..남의 입술을 막 만지네.
변백현은 오늘 영화 같이 안 보러 가주면 이 회사에 우리 둘이 사귄다고 소문 낼거라면 징징거렸다.
완전 협박 수준이라며 내가 틱틱거리며 알겠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베시시 웃어보였다.
내가 25살 남자랑 있는건지 5살 애기랑 있는지 모르겠다.이 사람아.
[송정인.미안.나 선약 있었다.쏘리~]
[헐..장난해?누구랑]
[있어.야 밤에 우리 집 오던가 해.내가 야식 사줄게.]
[...콜..]
단순한 년..내가 킥킥거리며 문자하는데 오피스 메신저가 계속 울려댔다.
뻔하지 변백현이지..짜증나서 변백현한테 한번만 메신저 더 하면 영화고 뭐고 없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눈물 이모티콘으로 끝이 났다.
그러곤 5분 후에 다시 보내는 근성의 변백현님이시다.
[영화 뭐 보고 싶냐고...요ㅠㅠ]
[아무거나 보자구요 그냥 남자가 박력있게 정하란 말이야]
[그게 박력있는거야? 배려가 없는거지..ㅡ3ㅡ]
[배려 고마운데 저 정말 다 잘봐요 그 쪽이 보고 싶은거로 해요]
[헐 그쪽이래..완전 정 없어..다시 불러요]
[뭐요]
[음...오빠?]
[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잠시만 지금 타자 잘못친거죠? 옆에 ㅎ 칠려다가 잘못친거지?]
[네]
[ㅎㅎㅎㅎ그럼 됬어요 내가 예매 해놓을게요 아 밥도 맛있는거 먹자 팝콘은 무슨 맛 좋아해요?]
[그건 그냥 그때 물어봐도 괜찮은건데 성격 급하시네..ㅡㅡ]
[ㅜ.ㅜ..알았어요..내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요..]
[당연하죠!]
톡하면서 보이는 귀여운 구석때문에 웃음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웃기게도 난 정말 내 이상형을 눈 앞에 두고 완전 튕기고 있다.
다시 일을 하는데 반대편에서 들리는 부장님 목소리에 고갤 들어 봤더니 변백현과 진지하게 얘기 중이셨다.
진지한 눈빛으로 서류를 보며 얘기하는 변백현을 보니 이상하게 계속 눈길이 갔다.
일할 땐 되게 멋있는 사람이네.저 사람.
[방금 나 빤히 쳐다보더니..왜..반했어?]
[반할 정도는 아니고 멋지네요 백현씨]
[헐 대박..헐 왜 이래요 OO씨 오늘 내 생일 아닌데?꿈인가보다~]
[오바 좀 하지마요 진짜]
[오바라뇨.저 단호한데.조금에 틈도 없이 진심인데.]
[..ㅡㅡ그리고 반말할꺼면 반말하고 존댓말할꺼면 존댓말 해요.헷갈려요.]
[알았어^0^~]
[아 맞다 너도 예뻐 OO아]
칼퇴근에 행복해서 광대가 내려올 줄 모르는데 빵빵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5분만 기다리라던 변백현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들며 웃어보인다.
좀 비싸보이는 차를 보고 내가 놀라 눈이 커지자 어깨를 으쓱거리며 야,타! 라고 소리를 지르는 변백현이다.
내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낄낄거리며 웃고는 조수석을 팡팡 친다.
정말 순식간에 우리는 가까워졌다.누구보다 더.
나도 그걸 많이 느끼고 있다.누구보다 더.
"오늘 기대해.데이트 풀코스."
"저 진부한거 싫어해요."
"와..진짜 진부한데 어떡하지?"
"아 뭐야.."
"괜찮아.남자가 안 진부하니까."
"그 남자가 백현씨에요?"
"백현씨말고 백현오빠."
"또 시작이다."
변백현이 입을 삐죽 내밀고는 언제쯤 오빠라고 불러줄거냐고 툴툴댔다.
운전에 집중이나 하라고 하자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한다.뭐가 저리 신난거지 싱글벙글거리는게 소풍가는 어린아이 같았다.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며 웃었더니 날보고 환하게 웃는 변백현이다.
변백현을 만날 때면 꼬일대로 꼬인 내 실타래를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는 기분이다.
너무 아프기도 하지만 모든 걸 잊게 해주기도 하는 그런 사람.
참 그런 사람이다.변백현은.
"짠!"
"...공포영화에요?"
"응.재밌겠지."
"뭐..공포영화 좋아해요."
"...잘봐?"
"그럭저럭.왜요?"
"...잘 본다고?..아 재미없어."
"뭐가요."
"으..됬어.됬어.팝콘 사자."
변백현은 내가 공포영화 잘 본 다는 말에 실망 했는지 눈을 흘기고는 스낵코너로 향했다.
뭘 기대한건지 몰라도 굉장히 실망이라는 듯 발 끝으로 땅만 툭툭 건드리며 줄 서 있는게 웃겼다.
나도 모르게 빵 터져서 배를 부여잡고 웃으니 날 빤히 보더니 웃는거 보기 좋다며 머리를 쓰담는 변백현이었다.
자연스럽게 카라멜 팝콘과 콜라 두개를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평일에 영화여서 그런지 가족단위보다는 온통 커플투성이 였다.괜히 기분이 이상해져 팝콘만 입에 넣기 바빴다.
변백현이 지금 하고 있는게 모든게 연기라는 기분에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티 낼 순 없었다.
우린 그저 비즈니스 관계라는 걸 아니까.
"백현씨,공포영화 좋아하나봐요?"
"..으..응?딱히.."
"그러면서 예매는 왜 했대?"
"알면서 묻는다 이거."
"모르겠는데..무서워하고 그런 건 아니죠?"
"날 뭘로 보는 거야.스물다섯먹고 무서울게 뭐가 있어."
"와,방금 멘트 진짜 싫었어요."
"그럼 취소.봐줘."
"푸흐...스물다섯먹고 귀여운 구석이 다분하네요."
"설마 제가 OO씨보다 더할까요~"
둘이 서로 마주보고 킥킥거리는 틈에 영화가 시작됬다.
나름 공포영화를 즐기는 나로는 오랜만에 보는거라 설레기 그지 없었다.
콜라를 쪽쪽 빨며 집중해 보고 있는데 옆에서 계속 움찔거리는 느낌에 변백현을 쳐다봤다.
변백현은 옆에 양 손잡이를 꽉 잡고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이것봐, 못 보면서.
내가 변백현을 계속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변백현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눈이 마주쳤다.
몇 초간에 정신없는 아이컨택을 하다가 내가 변백현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놨다.겁에 질린 눈이 괜시리 안쓰러웠다.
내가 손을 맞대자 변백현의 눈이 조금 커지더니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어느새 내 손을 깍지 껴 잡던 변백현이 얼굴을 갑자기 확 들이밀었다.깜짝 놀라 눈을 꼭 감았더니 피식 웃는 그의 숨결이 내 귓가에 닿았다.
"나 무서워.손 좀 잡아줘."
길게 쓴다고 쓴건데 별로 안 기네요ㅠㅠㅠ
다음엔 더 길게 쓰도록 노력할게요~시험기간이라 다들 바쁘시죠?ㅠㅠ힘힘
암호닉 신알신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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