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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이름표를 각자 목에 걸어주세요."
한국인 인솔교사의 말에 따라 이름표를 목에 건 경수가 무릎을 굽혀 앉아 타오의 목에도 이름표를 걸어주었다. 앙증맞은 노란 이름표 위에 'TAO' 라고 써있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런 타오의 손을 잡고 일어선 경수가 아직도 자리에 서서 이름표를 들고 서있는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아. 너 뭐해. 이름표 얼른 목에 걸어."
경수의 재촉에 마지못해 이름표를 목에 건 백현은 마른세수를 했다. 'TAO PAPA' 라고 적힌 분홍색 이름표가 백현의 가슴팍에 크게 자리잡았다. 이건 부끄러운게 아니다. 변백현. 이건 아들을 위한거다. 신인 때도 가슴팍에 안붙이던 이름표를 여기 와서 내가 하네. 백현은 아련하게 이름표를 내려다봤다.
"먼저 제1관을 체험하실건데요, 이곳은 병원 직업 체험관입니다. 의사나 간호사 혹은 재활치료사와 같은 직업들을 체험해볼 수 있는곳이에요. 자, 그럼 의사선생님이 되보고싶은 어린이 있나요?"
한국인 인솔교사를 따라 자리를 옮긴 백현은 북적이는 인파에 타오를 안아들었다. 경수는 저가 더 상기된 표정으로 타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우리 아들은 의사선생님 안하고 싶어? 하얀색 가운입고 엄청 멋있을것 같은데?"
경수의 말에도 타오는 고개를 젓고 백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경수는 실망한듯이 입을 내밀고 아쉬운 눈빛으로 벌써부터 의사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는 다른 아이들을 바라봤다. 백현은 아이를 고쳐 안으며 그런 경수를 보고 웃었다.
"니가 하고 싶은거 아니냐."
"아니거든! 타오 저 가운 입으면 멋있을것 같은데..아쉽네."
"왜. 난 의사 별로야."
"왜?"
"존나 맨날 피보고 피곤하고 못자고 병원에 갇혀서 살아야 되잖아. 싫어 그런거."
"..그래도..."
"아직 첫번째니까 걱정하지마. 뒤에 뭐 더 많은것 같더만."
백현은 자신의 말에도 고개를 숙이고 'TAO MAMA'라고 써있는 이름표를 만지작대는 경수의 손길이 못내 사랑스러웠다. 타오를 한손으로 안고 남은 손으로 경수의 어깨를 안아 보이는 이마에 입맞췄다.
"벌써부터 애 교육에 극성이고 그래 왜."
"..나 방금 좀 강남엄마 같았어?"
"어. 존나 귀여운 강남엄마."
"야 카리스마가 있어야지!!"
"그럼 존나 카리스마 있는 귀여운 강남엄마."
어느새 병원 체험이 끝났는지 인솔교사는 박수를 치며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린이 여러분-그럼 우리 이제는 옆관으로 이동해서 과학자가 한번 되볼까요?"
신난 아이들이 교사의 뒤를 따르고 부모들은 그 뒤를 따랐다. 아직까지 품에 안겨있는 아이는 타오밖에 없었다. 경수는 목을 빼 앞을 살피더니 다시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아. 우리 타오도 저기 앞에서 애들이랑 같이 가야하는거 아니야?"
"아들. 우리 과학자 한번 해볼까?"
"안니여..."
경수는 타오의 눈을 맞추고 앞에 말했다.
"타오야. 과학자 안해보고 싶어? 그거 되게 되게 멋있는건데? 막 타오가 만들고 싶은거 막 이렇게-"
경수의 말에도 타오는 백현의 목에 얼굴을 묻을 뿐이었다. 경수에게 눈짓을 한 백현은 타오의 등을 두드리며 달랬다.
"그래. 세상에 의사랑 과학자만 있는것도 아닌데. 다른거 하고 싶을 수도 있지."
결국은 과학자로 변해 신이 나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백현과 경수만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인솔교사가 다가왔다.
"아이가 낯을 좀 가리는 모양이네요."
"아..네. 좀."
"보통 이런 경우에는 부모님들께서 먼저 이게 별로 무서운 일이 아니고 재밌고 흥미로운 일이라는걸 보여주시는게 좋아요."
"....어떻게요?"
"꼼짝마!!!"
.......
"인질을 놔줘라!!나는 경찰이다!!!"
이렇게.
백현은 당당히 'TAO MAMA' 라는 이름표를 달고 키즈 사이즈의 경찰 모자를 겨우 뒤집어 쓴채 장난감 총을 들고 경찰역할에 심취한 경수를 바라봤다.
"아들. 엄마봐 엄마. 엄마 저깄네?"
"..엄마?"
"그래 엄마. 엄마가 지금 뭐하고 있어."
경수는 타오가 관심을 보이자 더욱 열성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범인잡기에 집중했다. 이제는 아예 앞구르기를 하며 다른 아이들을 이끌어 범인 역할을 하는 남자의 뒤를 맹렬히 쫓았다. 이미 도경수는 한국의 국민 남동생 남자 아이유 디오가 아니었다. 일본의 직업체험관 안에서 새로운 운명을 마주한 경찰일 뿐이었다.
"이런. 범인이 도망간다!!!"
"......"
"모두들 어서 나를 따라와!!!"
넓기도 오질나게 넓은 체험관을 누비며 경수는 범인잡기에 열중했다.
"아빠...엄마 머해여?"
"지금 엄마가 잠깐 경찰아저씨가 되보는거야. 그래서 범인도 잡아보고 총도 쏴보고. 그래서 우와-이게 재밌다-그러면 나중에 엄마도 경찰할 수 있어."
"....."
"타오도 한번 해볼까?"
"안니여..."
"왜. 경찰아저씨도 싫어? 그럼 아들은 뭐가 하고 싶을까."
경수는 얼마나 달려간건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경수가 뛰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속이 탄 백현이 타오를 잠시 내려놨다.
"여기 재미없어?"
"....."
"재미없고 하기 싫으면 말해도 돼 아들. 여기 있기 싫어? 나갈까?"
"...혼자..."
"어? 뭐라고 아들?"
"혼자...쩌기서 하는서 무서워여..."
"왜 혼자야. 엄마랑 아빠랑 여기 뒤에 있을건데."
"그래도..."
"그래도 뭐."
"타오 두고 엄마랑 아빠랑 가며는...가며는..타오는 여기서...막...이상한 아저씨들이랑..."
백현은 타오의 말에 다시 한번 경수가 뒤에 없는지 살폈다. 빨리 경수를 찾으러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가 옆에 없는게 다행이었다. 이걸 들었다면 또 하루종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하고 있을게 뻔하니까.
"너는 임마. 너네 엄마가 그렇게 물고 빨고 갖은 애를 다쓰는데 아직도..."
백현은 작게 한숨 쉬고 타오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았다.
"아들."
"녜."
"너 엄마가 왜 저기까지 저렇게 뛰어갔는지 알아?"
"....."
"너 이거 한번 해보게 하려고 저런다 엄마가. 저 애들 사이에서."
"......"
"무슨 말인지 알아. 지금 아들이 무슨 말하는지 다 알겠어. 왜 무서운지도 알고 다 알아."
"..아빠.."
"그래 아빠가 또 미안해. 여기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 막하는 아저씨들 있는데 우리 아들 무섭게 저기서 혼자 이런거 하라고 해서."
괜찮아진것 같다가도 꼭 이렇게 가슴이 철렁하게끔 아이는 부모의 부재를 두려워했다. 아이에게는 낯선 환경일텐데 너무 타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것만 같아 백현은 미안해졌다. 그때, 저쪽에서 아이들을 다시 이끌고 경수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백현은 여전히 무릎을 굽혀 앉은 채로 조금 급하게 타오에게 말했다.
"아들. 그럼 아빠랑 같이 하자."
"...녜?"
"지금 엄마가 한 저런거 아빠랑 같이 하자고. 그럼 안무섭지? 아들 옆에 꼭 붙어 있을테니까."
타오는 고민하는듯 싶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경수가 땀이 흥건한 얼굴을 들고 백현과 타오 앞으로 뛰어왔다. 작은 모자는 아직도 경수의 머리에 거의 얹듯이 씌어져 있었다. 백현은 그런 경수의 모자를 벗겨 소매로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아이고-경찰 아저씨.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선생님이 아무래도 나 경찰에 소질있는거 같다고 그러셨어. 짱이지?"
"여기서 우리 도경수의 새로운 미래를 찾고 가는거냐."
"그니까. 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어."
"뭘."
"가수 그만두고 경찰 해볼까? 아니면 같이?"
"아서라."
택도 없는 소리에 백현은 큰손으로 경수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얼굴을 도리질 친 경수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니가 저기서 내 활약을 못봐서 그래!!완전 멋있게 막!!"
"알았어. 그럼 다음엔 우리 경찰이랑 도둑하지 뭐."
"다음에? 여기 또 오게?"
"아니. 너랑 잘때."
"ㅁ....뭐?"
"요즘에 할거 없어서 안그래도 고민이었는데 잘됐네. 그거 모자는 여기서 안판대? 하나 사가자."
"애가 들어!!"
"들어야지 그럼. 엄마 아빠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건데."
저...저...돼먹지 못한 게이들이 애를 앞에 두고 아주....백현과 같이 타오의 걱정을 하던 감독은 조용히 혀을 찰 뿐이었다.
"자, 그럼 우리 친구들 이제는 요리사가 한번 되볼까요? 제일 먼저 요리사가 되보고 싶은 사람 손!!"
"저여!!저여!! 타오여!!"
아까와는 다르게 적극적인 타오의 모습에 놀란 경수가 타오를 돌아봤다. 저의 노력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건가 싶어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그런 경수를 본 백현은 타오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나가 제 손에 쥐어지는 앙증맞은 요리사 모자를 조용히 머리 위에 쓸 뿐이었다. 도경수 축 쳐지는 꼴을 보느니 내가...
"백현아?"
"됐다."
"어? 뭐가 됐어? 너가 왜..그거 써?"
"아빠랑 타오랑 같이 하기로 해써여!!암마도 앞에!!앞에 맨앞에!!!"
타오의 성화에 가장 앞줄에 선 경수가 모형으로 설치된 아이들의 키에 맞춘 주방에 어정쩡히 서있는데 백현을 바라봤다. 인솔교사는 웃음을 참고 말했다.
"와-우리 타오 요리사님 옆에 굉장히 멋있는 보조 선생님이 서계시네요? 어린이 여러분-박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에게 박수를 쏟아내는 아이들 사이로 함박웃음 지은 경수가 보였다. 엄지손가락을 제게 들어보이며 입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백현이 짱!'
그래..내마누라가 짱이라는데 이거 하나 못하겠냐.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일본 열도를 뒤흔든 아시아의 대세 엑소 변백현이었건만. 지금 이렇게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장난감 양파를 써는 시늉을 하고 있다니. 백현은 당장 인터넷에 퍼질 제 사진들이며 동영상들이 생각나 아찔했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거!!그러케 하면 안대여!!"
"...네. 요리사님."
역할에 심취한 아드님때문에. 누가 도경수 아들 아니랄까봐. 아주 몰입하는 것도 똑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