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앵ㅡ 그야말로 푹푹 찌는 더위다. 집앞을 나와서 걷는 아스팔트 위는 반짝반짝대고 숨이 턱턱 막히는 공기는 지금이 여름의 한가운데임을 증명하듯 하다. 파리 몇마리가 꼬이는 좌판위의 떡이 몇일이나 지난 떡인지 알 수가 없다. 떡집 아줌마는 표정을 있는대로 찌뿌리곤 부채질을 퍼덕퍼덕 하시지만 영 성에 차지 않으신가 보다. 야채가게 아저씨의 우렁찬 호객행위와 생닭집 아저씨의 욕지꺼리 섞인 칼질 몇번의 소리는 언제나 존재하는 여기 도깨비 시장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철물점 아저씨께 몇번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를 하곤 시장 골목을 내려갔다. 가방이 무겁다. 걷고 있는 발은 천근의 추를 단 듯 한 발짝 한 발짝이 쉽사리 내어지지가 않는다. "으으.. 이래서야 여름엔 어디 나가겠나" 정말이지 이런 날은 그냥 거실 대자리에 누워 축구나 보면서 낄낄대는게 딱인데, "젠장. 왜 학교는 공강 날 나오라는 거야." 봉사활동 기말평가회때문에 한시간 반걸리는 학교를 이 같은날 왕복해야 한다는 건 정말이지 화풀이 대상으로 딱이다. 한참 학교고 뭐고 시험은 어땠고 이러쿵저러쿵 씹으면서 가고있는데 갑자기 눈 앞이 핑 돈다. "어....어 어........" 간신히 건물 외벽에 기댄 덕에 우습게 넘어지는 창피는 피할 수 있었다. "아씨..." 일단 시간이 늦은 관계로 빨리빨리 가야됐기 때문에 어지러운 머리를 붙들고 지하철까지 탔다. "이게 다 쉬는 날에 불러대는 학교때문이야.." 웹툰이나 봐야지 싶어 핸드폰을 키는데 몇 통의 문자가 와있다. 보나마나 영어학원 광고나 오빠오빠대는 도박광고겠지 싶어 확인해보는데 [내일 기말평가회가 학교사정으로 인해 다음 주로 연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학사- ] "아!!! 이런 젠장 이게 뭐야!! 아오 이걸 왜 이제 봤지" 아 되는 일이 없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걸 생각하며 한숨만 푹푹 쉬며 열차에서 내리고 반대편 승강장으로 건너갔다. "아...집에 가야되나...허무한데..." 어쩔수 없지 하며 그대로 열차를 탔다. 역에 도착하고 출구로 나와서는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아 저 앞의 시장입구를 등지고 돌아서 좀 걷기로 결정했다. 담배 찍찍 펴대는 아저씨들이 벤치에 앉아서 날 흘끔흘끔 쳐다본다. 가뜩이나 땀 뻘뻘 흘려서 짜증나 죽겠는데 이 담배냄새는 뭐며 저 눈빛은 무엇인가. 빠른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 한강쪽으로 갔다. 바람도 약간씩은 부는 게 역시 오길 잘한 것 같다. '목마른데 맥주나 한 캔 살까...' 사람이 많았으면 혼자 마시기 민망했을텐데 뭐 아직은 낮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편의점을 계산한뒤 맥주를 따 강 바로 앞에 앉았다. 이번 계절학기는 취소하고 이학기면 휴학내서 학교를 바꿀까 유학이나 갈까 돈은 어떡하지 영어는 언제 공부해야 하나 등을 암울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신호가 온다. 더운 날 마시면 빨리 마렵다는 근거없는 소리를 떠올리며 어떤 놈이 그런 말을 했더라 생각해보는 사이 공중화장실에 도착했다. 급하게 들어가서 볼 일을 본 뒤 화장실을 나왔다. 어차피 다시 돌아가봤자 또 답 안나오는 궁상이나 떨겠지싶어 집으로 가려는데 화장실 계단 옆의 수풀에 구멍이 나있다. 이상한 것은 묘하게 빛이 새는 느낌이라는 것. "그거 먹고 취했나...." 몇번을 눈을 비벼봐도 그것 빛이였다. 후레쉬 빛 말고 반짝이는 빛. 자세히 보려고 몇 발자국 다가가자 구멍이 조금씩 더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그 빛에 빨려 멈추지 않고 다가가는데 아까 학교갈때의 어지러움이 이번엔 두통과 함께 찾아왔다. 훨씬 더 크게. "아..아악!! 악!!!" 그대로 정신을 잃었나, 몇분이 지난 것과 같은 느낌과 나는 수풀과 부둥켜 안고 있었다. "아.... 뭐야 이게..." 휘청거리며 일어나는데 넘어지면서 삐끗했는지 발목이 아프다. 도저히 굽있는 구두로 걸을 지경이 아니다. 누구라도 불러야하나 싶어 몸을 일으키는데 "...?" 뭐야.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 것 같다. 여긴 한강이 아니다. 내 생각엔 한국도 아닌 것 같다. 하늘이 엄청 밝은 연두빛이었고 나무들이 보라빛 섞인 하늘색이다. 그 외에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긴... 나무와 풀밖에 없다. 내가 안고있던 수풀을 돌아봤을땐 그것도 하늘색으로 변해있었다. 아까 봤던 빛과 비슷한 반짝이는 하늘색으로... 그리고 눈 앞의 광경에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덥지가 않다.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