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그 수신고등학교를 동생은 보내준다는 데도 가기 싫다고 오히려 애원했다.
사실상 서울대보다 더 가기 힘들다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적이 부족해서 떨어졌던 태영이는 2학년 때 편입기회가 생겼다. 물론 1학년 때 원서도 엄마가 넣은 것이었지만.
부모의 말은 잘 들어왔던 태영의 반항에 항상 조용했던 집은 난리가 났다.
한여주 너 태영이 좀 말려봐! 엄마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너를 괴롭혔다.
태영아. 너의 목소리에 짜증내던 태영이 머리를 털던 행동을 그만둔다. 누나 미안-. 눈치를 보는 태영의 행동에 괜히 너가 미안해진다. 저가 미안해야 할 게 뭐있다고.
괜찮아, 태영아. 그니까 엄마 말 듣자. 너의 나긋한 말에 마지못해 태영이 울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너를 안는다.
그렇게 껴안은 동생의 품이 마지막일 줄은 너는 꿈에도 몰랐다.
“여주야, 태영이 대신 한 번만, 2년만 이 학교 다녀줘.”
엄마가 너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안 들어줄 수 없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눈에 띄게 엄마의 표정이 밝아진다.
태영이가 집을 떠난 지 3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 길로 바로 나는 엄마와 미용실로 향했다. 남자애처럼 보이게 싹둑 잘라줘요. 너무 짧으면 선이 드러나니까 짧지 않게 해주고.
엄마의 부탁에 미용사는 가위를 빠르게 놀렸다. 허리까지 오던 긴 검은 머리가 한순간에 잘려 나갔다.
기부하지 그래요? 미용사의 하이톤 목소리에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그녀는 기분이 상했는지 그 뒤로 말없이 머리를 자르는 미용사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오니 엄마가 흐뭇하게 널 부른다. 여주, 아니 우리 태영이. 이제 옷 사러 가자!
개학식이 3일 남은 날이기도 했다.
학교 셔틀 버스가 동네까지 데리러 왔다. 캐리어 두 개를 싣고는 엄마와 인사했다.
엄마는 어제 학교에 내 사진으로 문서를 보냈다. 실수로 형의 사진을 썼다는 말과 함께.
태영아, 믿는다. 엄마의 눈이 반달모양으로 휘어졌다.
문이 닫히고 올라탄 버스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여러 동네 더 돌아 태우고 갈 모양이었다.
멀미가 있어서 앞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머리아파.
너는 이내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댄다.
툭. 네 볼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느낌에 화들짝 깨니 차는 산 속을 지나고 있었다.
이슬 맺힌 창문에 이마를 대고 자고 있던 네가 이마에서 흐른 물방울에 깜짝 놀라 깬 것이었다.
어느새 차는 만석이었다. 네 옆자리에도 남자애가 앉아 무언가 읽고 있었다. 이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도 너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니. 네가 속으로 생각했다.
너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그가 눈을 들어 널 바라본다. 눈이 크다.
“...”
“...”
“..여자인가.”
“뭐?”
“...”
한동안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으니 남자애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먼저 꺼낸 말이 ‘여자인가’ 라니.
나름 남자다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그런 말 남자한테 실례야.”
“응. 미안.”
괜히 뜨끔한 기분에 너가 먼저 핀잔을 주니 남자애는 관심 없다는 듯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쩍 보니 영어로 가득 채워진 책이었다.
민망한 기분에 너도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3월, 산간이라서 그런지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다.
너가 손가락을 들어 창을 문질렀다. 차가워.
“같은 반이 될지도 모르는데.”
“...”
“친하게 지내자.”
넌 원래 전에 있던 학교에서도 사교성이 좋은 애였다. 그래서 집에서는 사랑을 못받아도 학교에서는 사랑을 곧 잘 받곤 했던 너였다.
그 성질이 없어지진 않았는지 너는 또 다시 그남자애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애는 네 말에 또 다시 너를 뚫어지게 본다. 그러다가 그의 입꼬리가 픽 올라간다.
비웃는 건가? 비웃음이라 하기엔 너무 잘생긴 웃음이다.
“도경수.”
“어?”
“도경수. 넌.”
“어.. 내 이름은 한태영. 고.. 마워.”
아, 도대체 뭐가 고맙다고 한 거지. 너가 말해놓고도 너 혼자 자책했다. 네 말에 도경수가 그래. 하고 답한다.
체구는 너와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도 않은데 풍겨오는 분위기는 다른 애들보다 남달랐다.
저렇게 잘생긴 애가 공부도 잘하는 구나. 도경수를 보며 감탄하던 네가 태영이를 떠올리고는 아, 태영이도 잘생겼지, 하며 웃는다.
태영아, 내가 너가 됐다는 걸 알면, 너는 어떤 표정일까. 넌 또 미안해하면서 울겠지. 밀려오는 두통에 너는 또다시 눈을 감았다.
얼마나 먼 곳인건지, 저녁이 다 돼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석식을 준비 못해 죄송하다며 학교는 도시락과 음료수를 차에서 나눠주었다.
벌써 8시가 다 되가는 시각에 학교는 산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강당에 들어서니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는데도 강당이 워낙 커서 비어보이는 느낌이었다.
학교 이사장과 교장의 짧은 말이 끝나고 선생님 소개는 생략하는 학교다. 이 시간에 공부하는 게 더 이익이다. 사회를 보던 선생이 말했다.
게시판에 1위부터 전부 실명공개한다는 말에도 애들은 동요하나 없었다. 이미 이 곳에서 1년을 겪은 아이들은 너와 다른 세상에 사는 듯 했다.
게시판에 기숙사 호실과 반이 함께 적혀있다며 확인하라는 말과 함께 내일부터 정상수업이라고 한다. 왜 오늘부터 안하고? 옆에 있던 학생의 말에 너는 또 기겁한다.
408호.. 408호.
기숙사도 역시 엄청난 크기의 건물이었다. 이래서 수신고, 수신고하는 걸까. 408호를 찾아다니던 너도 표지판을 따라가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까 입학 등수대로 나온 표를 확인할 때 눈에 띈 도경수가 생각난다. 1등. 그걸 발견했을 때 입이 떡하니 벌어졌던 너였다.
너는 100등 조금 밑에 있던 네 이름, 아니 동생의 이름을 떠올렸다.
기숙사는 30등까지 성적 배치라고 들었다. 학기마다 방이 바뀌는데, 1등부터 30등 까지는 1인실에 개인 독서실까지 있다고 한다. 그 밑으로는 모두 같은 2인실 방.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직 방을 같이 쓸 사람은 안 왔는지 비어있다. 꽤 넓은 방에 놀랐다.
벽 쪽의 침대 옆에 캐리어를 둔 너는 깨끗이 정리된 책상에 다가갔다. 나름 좋네. 미니 냉장고까지 있고. 책상을 쓸어보고 있던 너는 벌컥 열리는 문에 깜짝 놀라 뒤를 바라봤다.
“어, 먼저 와있었네.”
무심하게 안녕, 하고 손을 흔드는 남자에 너는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를 약간 숙였다.
그런 너의 행동엔 별 신경이 쓰이지 않는 듯 너의 몸만 한 큰 캐리어를 들고 들어온 남자는 네 옆 침대에 풀썩 앉았다.
“몇 반이야?”
“아, 2반.”
“아쉽네. 난 7반.”
“...”
“..너 처음 보는 얼굴이다.”
팔을 괴고 쳐다보는 남자에 진짜 섹시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래서 여자들이 구릿빛 남자를 좋아하는 건가. 아무튼 당황한 너가 머리를 슬쩍 매만진다.
“이번에 편입되서 들어왔어.”
“아아. 난 김종인.”
종인의 말에 너는 한태영이라고 대답한다. 태영? 성은 좋은데 이름은 별로다. 살짝 장난스레 찌푸린 얼굴이 웃는다. 웃을 땐 애기같은 모습이다.
대뜸 종인이 이름 이상해, 란다. 뭐가 이상해.
“더 이쁜 이름 있는 것 같은데.”
“뭐?”
“예를 들어, 한예슬.”
그리고 또 밝게 웃는다. 되게 독특한 유머감각이 있구나 너. 너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더 웃는 김종인이다.
아니, 내가 사실 한예슬 좋아해서. 그러면서 뒤로 넘어가며 웃는 모습이 이색적이였다. 이런 걸 매력이라 하나보지. 너도 같이 웃었다.
몇 번 더 주제 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너는 이제 책을 정리하려 일어섰다. 너를 따라 시선을 옮기던 김종인이 책을 꺼내는 너를 보고 관심없다는 듯 침대에 푹 눕는다.
게임기라도 챙겨올 걸. 딱 저 나이 때의 남자애 같은 말에 너가 피식 웃었다.
책을 쓸어 담고 교과서들까지 꽉꽉 채워 넣으니 책상 위 책꽂이들이 다 찬다. 벌써부터 숨 막히게 하는 모습이다. 태영이는 이 압박감을 항상 싫어했다.
너는 울컥한 감정을 내리 누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자인 걸 숨기고 2년이나 버텨야한다. 가슴을 둘러싼 압박 붕대가 몇 배는 더욱 세게 느껴진다.
벌써 이렇게 나를 조여 오는데, 어떡하라고.
티 나지 않게 옷가지들과 압박붕대를 챙긴 너가 욕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중으로 구성 되어있는 욕실이라 문을 연 다음 공간이 있고 또 문을 열어야 욕실이 나온다.
두 번째 문을 열기 전에 있는 낮은 장롱 안 깊숙한 수건들 속에 붕대 몇 박스를 숨겨놓았다. 그 중 하나와 수건 하나를 들고 들어가는 너다.
정말 독서나 공부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곳이다. 애매모호하게 소등까지 남은 시각에 공부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둘은 가만히 얘기나 나눌 수 밖에 없었다.
짐을 풀다 너와 종인이 각자 침대에 누웠다. 불을 끄러가기 귀찮아져 소등되는 30분까지 그냥 누워있기로 했다.
“야.”
“응?”
“혹시 담배있냐?”
“아니.”
“망했다.”
소등이 되고 불을 꺼진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는데 문득 종인이 담배를 찾는다.
“피지마.”
“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종인이 너의 쪽으로 몸을 돌려 바라본다.
“건강에 안 좋잖아.”
“무슨 상관이야.”
“너 옆에 내가 있잖아.”
순간 말이 멈춘다. 정적이 흘렀다. 종인이 여전히 너를 보며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거 되게 묘하게 들린다.”
“뭐가?”
“오늘 처음 본 니가 꼭 내 옆에 평생 있을 듯이 말하네.”
“뭐래. 그런 뜻 아니야.”
“알아. 간접흡연.”
“..이만 자자.”
너의 말을 끝으로 네게서 등을 돌린 김종인의 모습을 바라봤다.
담배도 피네. 우리 태영이도 폈을까. 오래 전에 맡았던 싸한 향이 생각났다. 김종인은 왜 담배를 필까. 태영이는 왜 담배 냄새가 났을까.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게 된 이유는 뭘까.
물음에 물음을 물던 너가 이내 몰려오는 잠에 몸을 맡겼다.
| 반갑습니다:) |
결국 저지르고 마네요. 수신고라는 이름과 모티브 화이트크리스마스에서 따온 것은 맞구요,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아 경수도 최치훈이란 캐릭터에서 따왔어요. 좀 다르지만. 주말동안 하기로 한 공부 하나도 안하고 이거 한 6편 분량까지 써버려서..핳..그래서 그냥 씁니다. 너라고 서술되는 거 많이 어색하신가요? 차차 익숙해질 거에요..:) 앞으로 점점 분량이 길어질거라고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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