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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형 1.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12점)
BGM 추천
방탄소년단 - 134340 inst
5. 우리의 재회
이런 생각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김태형 없는 학교는 이상했다. 간당간당하게 지각을 면하면 아쉬워하며 놀리는 김태형이 없는게 이상했다. 너무 졸려서 필기를 하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 대신 부탁할 김태형이 없는게 이상했다. 맨날 놀리면서도 한 번 삐진 척 하면 쩔쩔 매면서 사과하는 김태형이 없어서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상한 학교를 4년동안 쉼 없이 달려 졸업했다. 멈추지 않고 달리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에 뒤를 돌아보면 나는 런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죽을 것 같은데, 결국은 제자리였나.
김태형 없는 대학교를 졸업 하고 나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사랑은 못 이뤄도 부는 이루리라,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발을 들였으나.
■ 02-xxx-xxxx
최종 불합격 하셨습니다. 귀하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 아... “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일지도 모르는 지원 감사인사를 받자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달렸다. 지금까지는 제자리를 달렸으니 이제부터는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좀 쉬세요. “
“ 아, 예... “
그런데 돌아오는 건 밝은 미래가 아닌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인 위염이었다. 고작 위에 염증 좀 생긴 거 아닌가 싶었지만 위염 말고 또 뭐가 있는 건지 하루가 다르게 살과 머리카락이 빠졌다. 안 그래도 숱 없는데. 존나 스트레스. 스트레스의 굴레에 빠져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한 달 만이라도 좋으니 혼자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유를 좀 찾는게 어떻겠냐며 여행을 권하며 불쑥 티켓을 내밀었다. 행선지는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가고싶다 노래를 부르던 영국, 2주 뒤에 출발.
잠깐만, 2주 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영국 행은 좀 갑작스러웠다. 이렇게 무턱대고 가도 되는 건가. 솔직히 조금 망설...
- 201x년 x월 xx일 -
12 경영) 김상철 선배
여주얌 머해? ㅎㅎ
우리 얼굴 본지 쩜 됬자나
너 졸업 해가지구. ㅋ
- 201x년 x월 xx일 -
12 경영) 김상철 선배
바쁜가보내 ㅎㅎ;
잘지네지?
오늘 점심 가치 먹쟝~~~ 오빠가 학식 쏜다^^
오랜만에 학식 고고씽ㅋ
이긴 개뿔. 졸업한 후배한테 학식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는 당장 고민을 멈추고 영국행을 준비했다. 이건 그냥 닥치고 가라는 주님의 뜻임이 분명했다.
/
“ 나 잘 다녀올게. “
“ 그래,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하고. “
암울한 현실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이 한국 땅을 떠나고 싶었다. 상철선배의 카톡을 본 이후로 불이붙은 덕분에 여러가지 준비는 막히는 일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암 쏘 퍼킹 땡큐 폴 힘.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다보니 어느덧 디데이, 나는 공항에 도착해 가족들과 담담히 작별 인사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뉘였다. 잘 다녀오라며 함박 웃음을 짓고있는 엄마였지만, 왜인지 자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여기서 울면 진짜 비행기 첨 타는 거 티 내는 거니까 울지 말자. 굳은 다짐을 하며 얼른 인사를 마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박지민
오늘 출국이랬나?
엉 누나 다녀온다
박지민
그래랑
야 근데 너 런던이면
???
런던이면 왜
박지민
아 아니다
?
야 먼데
괜찮으니까 말해바
뭔데 뭔데
박지민
ㅎ
셋 셀 동안 불어라
하나
둘
박지민
안알랴줌
1 셋 야
1 야 당장 말해라
1 너 내가 말 끊는 거 젤 시러하는 거 알면서
1 야 미쳤냐!!!!!!
어떻게 또 귀신같은 타이밍에 연락한 박지민이 느닷없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다 끊은 것만 빼면 나름 완벽한 출발이었다. 한국 돌아가면 제일 먼저 할 일이 벌써 생겼다. 박지민을 상하좌우 골고루 조진 뒤 뒷 말 듣기.
/
기장님의 안내 멘트와 함께 비행기가 출발했다.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등학교때 그리도 가고싶어했던 런던을 대학교 졸업 후에야 가는구나. 친구들이랑 갈 줄 알았는데. 괜히 드라이브를 뒤지며 추억 팔이를 했다. 가볍게 3학년때 박지민이 복도에서 텀블링 하다가 지 담임쌤 발로 찬 영상으로 시작했다. 4년만에 봐도 졸라 웃겼다. 이건 2학년때 애들이랑 벚꽃축제 간 날, 이건 1학년때 전일제 동아리 날.
맨 위에서는 뜻밖에도 내 중학교 입학식때 품이 큰 교복을 입고 어색한 포즈를 취한 사진이었다. 열 넷까지 찍고 돌아오자 문득 그동안의 내 삶이 스쳐지나갔다. 초등학교는 기억 잘 안 나니까 패스, 중학교 애새끼들은 죄다 인성 쓰레기였으니 패스. 막상 돌이켜보니 추억을 곱씹을 학교는 고등학교 뿐이었다. 그래도 만족했다. 아무래도 학생의 신분이다보니 여러모로 제약이 많긴 했지만, 그저 친구라는 이름 아래서 서로의 단점까지 끌어안고 사소한 것에 웃음을 터트리던 때.
어렵게 어렵게 정시를 통해 대학에 들어가 독하게 공부하고 연습했지만 대학은 상상했던 것만큼 환상적이지 않았더랬다. 고등학교 때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고등학교 때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사람은 적었다. 교복을 벗으며 안경도 함께 졸업하라는 주변의 조언에도 나는 꿋꿋이 렌즈와 라섹은 사양했다. 달리 목적을 갖고 사귀고 필요가 다하면 버리는 대학의 인간관계는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알고싶지 않은 진실 앞에서 난 안경을 벗고 눈을 뜬 채로 눈을 감았다.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술과 과제들에 치이던 내가 한 선택은 최대한 졸업하기였다. 물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었다. 방학 때마다 여행 가자며 오는 친구들의 카톡을 몽땅 거절해가며 도서관에 간 과거가 후회됬다. 휴학도 해가면서 좀 자기 관리도 하고 놀러다닐 걸. 너무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인가, 점점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나는 주저앉고 말았다. 고삼 스트레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밀려오는 후회들이 부질없음을 느낀 나는 잠이나 자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담요를 둘둘 감은 채로 잠을 청하기 전, 창 밖으로 콩알같이 작아지는 공항을 흘끔 내다봤다. 그렇게 커보이던게 멀리 떨어지니까 작아보였다. 뭔가 허무하다는 기분이 들어 더 구경하지 않고 그냥 눈을 감았다.
/
문득 5년 전 나에게 제일 커다랐던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애는 아직까지 커다랄까, 공항처럼 멀리 떨어진 지금은 작아보일까. 힘들던 고삼 생활의 단비였다.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던 존재, 나의 열아홉. 애석하게도 졸업한 뒤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 애는 아직도 초콜릿 하나만으로 나를 울컥이게 만들 수 있을 터었다. 못본지 얼마나 됐더라. 졸업 후 오랜만에 만나자며 잡히는 약속들에서 우수한 출석률을 자랑하는 나였지만 김태형이 있을 법한 모임은 모조리 잠수를 타는 바람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주치지 않으려고 별의 별 짓을 다 했지만 그러면면서도 마음 한 켠은 그 애가 보고싶다 소리쳤다. 히- 하는 소리를 내며 말갛게 웃어보이는 앳된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그 애의 스무살도, 스물 한 살도, 스물 두 살까지 몽땅. 하지만 같잖은 자존심과 양심은 한 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애써 합리화했다. 나는 나대로 잘 지내고 있으니 너는 너대로 예쁜 여자친구와 잘 지내고 있겠지, 하면서. 너만 생각하면 아직도 열아홉의 여름으로 돌아가버리는 나는, 이미 10대를 깔끔히 졸업해버린 너와 아무렇지 않게 만나 웃고 떠들 자신이 없었다.
일부러 눈에 보이지 않게 깊숙하게 넣어두었던 기억은 한 번 마주하고 나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내렸다. 어느덧 양들은 죄다 사라지고 김태형만이 남아 나에게 질문했다. 아직도 나를 좋아하니, 여주야. 상상 속 김태형이 물었다. 눈을 감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잘도 돌아다니던 김태형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대답 대신 대학 생활을 회상했다. 상상 속 김태형에게 가장 좋은 답이 될 터였다.
보고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했다.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니까.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 애인 따로 있는 사람이랑 사귀는 것 같아. ‘
‘ 바람 피는 거 아니지? ‘
‘ 솔직히 말해봐. 나 안 좋아하지. ‘
대학 생활을 하면서 남자친구가 없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 항상 비슷한 이유로 인해 비슷한 패턴으로 이별하곤 했었다. 스물 둘, 겨우 너를 정리하고 아득바득 너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었던 나는 꼬박꼬박 술자리나 미팅에 나가며 오는 연락을 막지 않았다. 개중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관계를 진전시켰지만, 결말은 언제나 내가 나도 모르는 누군가와 바람을 피는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 여주야, 사귀는 사이에 이런 질문 미안한데. ‘
‘ 응? ‘
‘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아직 못 잊었어? ‘
태어나서 처음 사귄 동기가 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이전에 사귄 남자친구가 없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대답이 영 못 미더웠는지 어느새 나는 상망대 대숲 양다리녀가 되어있었다. 그땐 진위 파악이고 나발이고 헛소문을 가라앉히기 급급했었는데, 왜 이제야 답이 생각나는지.
" 여주야, 쉬는시간 끝났다. "
근데 계속 기대고 있어도 괜찮아.
그건 다 너였다. 나도 모르는 내 구남친, 내 어장 속 물고기3, 김여주의 걔 등으로 불리우던 소문은 이름이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김태형이었다. 첫사랑은 원래 안 이뤄진다며 쿨하게 다 정리한 척 했지만 아무래도 아니었나보다. 나 생각보다 뒤끝 쩔고 구질구질한 타입이었나봐.
달달한 것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하루에 하나씩 초콜릿을 쥐어주던 첫번째 남자친구를 보며 신나게 놀려먹다가 삐진 내 책상 위에 초콜릿 산을 쌓아놓던 김태형을 떠올렸고,
항상 나에게 필기를 보여주던 두번째 남자친구의 노트ㅡa.k.a. 과탑의 노트ㅡ를 보며 시험기간마다 내 필기를 빌려가곤 제 것도 턱턱 내어주던 김태형을 되뇌었고,
데이트 날마다 집 앞까지 데려다주던 세번째 남자친구와 함께 길을 걸으며 양 볼이 새빨개진 채로 콧물을 훌쩍이며 걸어가던 수능 날의 너와 나를 곱씹었다.
나 진짜...
" 왔어? "
" 자기야, 나 진짜 바람피고 그런 거 아니야, 진짜야. 우리 지금까지 사귀면서 나 거짓말도 한 적 한 번도... "
" 알아. 바람 안 핀 것도, 너 그럴 애 아닌 것도 알아. "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나도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민망하긴 한데, 그냥 들어.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은 웬만하면 나를 다 좋아했어. 왜 그러게. 난 얼굴이 특출나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노래도 못해서 축제 동영상으로 페북 좋아요를 쓸어가지도 못해.
그 대신, 나는 눈치가 빠르고, 사람들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잘 알아. 좋아하는 거 해주고 싫어하는 거 안 하니까 다들 좋아해주더라. 얼마나 편하고 좋아, 내가 좋아하는 짓만 하고 싫어하는 건 미리 알아서 다 챙겨주고 피해주고. 딱히 노력한 건 아닌데 그냥 다 기억이 나더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취향조차 한두 개씩은 다 기억해.
나는 너를 좋아해 여주야. 그것도 많이. 그래서 더 잘 보여.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이걸 넘어서 요즘 관심사는 뭔지 알고싶고, 그 동그란 눈이 굴러갈 땐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 근데 내가 도저히 혼자 머리 굴리다가 모르겠어서 너한테 확인받고 싶은게 몇 가지 있거든. 어려운 거 아니고 확인만 해주면 돼. 응, 아니 정도로만 대답해주면 돼. 많지도 않고, 한 세 개.
하나. 김여주는 언젠가부터 나에게 관심이 없는 눈치다.
둘. 김여주는 더 이상 민윤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쁜년이었네.
" ... 대답 못 하네. "
" ... 오빠, "
" 이럴 것 같았는데 진짜 이렇게 되니까 좀 슬프다. 여주 너도 아직 몰랐던 눈치니까 내가 한 번 더 말해줄게. 너 나 안 좋아해, 여주야. "
" ... "
" 마지막. 이건 내가 대신 대답 못 해줘. 나한테서 누구를 보고 있는 거야? "
그것도 존나게.
/
‘ ... 여주야 잠깐만. ‘
‘ 어? ‘
분명 비행기 안이었는데, 창 밖에 쳐다보다가 잠들었었는데.
‘ 기다려. ‘
갑자기 나는 6년 전의 그 날로 돌아가있었다. 스물 다섯의 나는 변한 거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편한게 장땡이라며 아침에 꿰어입은 슬랙스에 편안한 티셔츠. 교복을 갖춰입은 김태형과 책걸상이 가득 찬 교실에서 혼자 붕 떠있는 기분.
‘ 이거. ‘
‘ ...그걸 왜 나 줘, 가인이 주는 거 아니야? ‘
‘ 주인이 자기 거도 몰라보고. 되게 서운하네. ‘
김태형도 그대로였다. 애써 스타일링한 머리가 망가질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인지 기울여 쓴 학사모와 와이셔츠 깃에 살짝 걸린 넥타이 줄까지. 가인이에게 고백하려는 줄 알고 도망치듯이 교실을 빠져나오는 나를 잡지 않았던 열아홉의 너는 6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서 스물 다섯의 나를 붙잡았다.
‘ ...... 좋아해. ‘
내가 너무 늦었나? 김태형은 손에 들려있던 편지를 건네며 멋쩍은듯 웃어보였다. 생각이란 걸 할 겨를도 없이 나는 편지를 받지 않고 팔을 내민 채로 서있는 김태형을 그대로 껴안았다. 너무 늦었다고, 지각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며 투정을 부리는 내게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모습이 펼쳐지던 순간,
“ 저기요! 도착했어요. “
“ 아, 감사합... “
니다. 나를 툭툭 건드리고 사라진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꿈에서 깨어났다. 시야를 가득 채웠던 김태형은 사라지고 분주한 비행기 내부에서 자신들의 짐을 챙기는 승객들이 눈에 가득 찼다. 꿈이었구나. 사탕을 먹고 난 다음 약을 먹으면 더 쓰듯이, 달콤한 꿈 뒤로 마주하는 씁쓸한 현실이 평소보다 더 쓰게 느껴졌다.
/
별다른 플랜은 짜놓지 않고, 발길이 닿는대로 돌아다니기로 했다. 정말 아무 준비 안해도 괜찮은 거냐는 엄마의 잔소리는 관광이 아니라 힐링이 목적이라는 핑계를 대며 쿨하게 제껴버렸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런던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사전 조사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맛있는 거 많이 먹으면 그게 힐링 여행이지! 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생각해보니 맛이 없기로 유명한 영국이었다. 오엠쥐, 깁미 썸 하앝 우웉터. 호텔 조식으로 정어리 파이같은 거 나오는 건 아니겠지.
심심한 걱정을 하며 공항 근처에 프로 걱정러인 엄마가 미리 예약해뒀던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푹신한 침대에 냅다 몸을 뉘이니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래도 호텔 밥은 맛있겠지. 저녁을 챙기기 직전 베란다에 나가 런던의 야경을 바라보았는데, 크게 숨을 들이쉬자 가슴 속 가득 들어차는 공기의 느낌이 낯설어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영국이구나.
나는 대충 씻은 뒤 침대에 드러누워 이번 여행의 목표를 세웠다. 거창한 거 다 필요없고, 그냥 다섯 가지만 다 하고 귀국하자.
첫째,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건강해지기.
둘째, 후회 없이 모두 즐기고 오기.
셋째, 하고픈 건 몽땅 해보기.
넷째, 외국인 친구 사귀기.
.
.
.
마지막, 김태형 깔끔하게 잊기.
이제 진짜로 잊는 거야.
나는 더 이상 열아홉 김여주가 아니니까.
6. 옆 방의 친구
런던에서 맞는 첫 아침ㅡ12시긴 했지만, 아무튼!ㅡ은 꽤 많은 피로를 동반했다. 시차 적응이 아직 잘 안되기도 했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래간만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버렸다.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은 뒤, 가벼운 복장과 카메라 한 대를 챙겨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주변에 뭐가 있나 봐야겠다.
타박타박. 보도블럭이 아니라 돌 바닥을 걸으며 나는 발 소리가 기분 좋았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 무턱대고 발걸음을 옮겼던 적이 얼마만이더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탓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던 나는 모든 것이 새로운 지금, 마음이 저절로 들뜨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영국 특유의 무심하지만 다정한 사람들과 딱딱하고 우중충해보여도 은근히 포근한 분위기가 기분 좋았다.
한국에선 다이어트를 한다고 먹지 않았던 디저트들이 즐비한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 돈 걱정 하지않고 먹고싶은 만큼 주문한 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 나온 디저트를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으며 카페 입구에서 달랑거리는 간판을 카메라로 담았다. 런던 첫 카페.
디저트와 커피를 분위기에 곁들여 충분히 즐기고 카페를 나서려는 순간,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갑작스레 나를 붙잡았다.
“ Excuse me, “
“ ... Me? “
“ Yes, you. “
나도 모르게 뭐 훔쳤나? 아니면 내가 영국 매너 중에 뭐 하나를 어겼나? 뭐지? 대체 나를 왜 부르지?
“ Why...? “
당황스러운 마음에 하고픈 말은 태산이었지만 기껏 고르고 고른 대답은 겨우 이거였다. 한국 영어 교육 존나 부질없어...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자,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알바생은 핸드폰으로 구글 번역기를 키고 내게 내밀어주었다. 아 맞아, 우리 얼리어답터지. 나는 훌륭한 과학의 발전으로 겨우 번역기를 돌려가며 몇 마디씩 주고받을 수 있었다.
저기, 줄 것이 있어.
뭔데?
이 쪽지야. 네가 온 다음에 온 손님이 네가 갈 때 이 쪽지를 너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했어.
아 그렇구나. 고마워!
쏘 땡큐. 햅어굿데이. 별 내용 없어서 더 자괴감 오져. 이런 간단한 것도 못하다니, 한국 교육은 다 뒤졌다. 디저트는 이미 진작에 조진 나는 밀려오는 허망함과 함께 문제의 쪽지를 챙겨 겨우겨우 카페를 나섰다. 영어 1등급, 토익 900점... 다 소용없어...
카페에 오면서 미리 봐둔 작은 분수대 앞의 벤치에 앉아 쪽지를 펼쳐보았다. 종이가 없어 급하게 아무 종이나 찢은 듯, 여백에는 잘려버린 영어 문장들이 프린팅 되어있었다.
[ Hi, I'm staying next to you.
If you don't mind, I want to travel with you, so leave a massage. ]
나는 네 옆에 머문다. 너만 괜찮다면 같이 여행하고 싶어, 그래서 메세지 남겨.
쪽지를 읽자마자 뜬금없게도 한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설마, 설마.
설마.
2018.11.11
: 망개찜니, 키딩미, 깜비, 17, 라벤더허브, 미대누나, 현, 라온하제, 주디, 얍, 1101, 1013, 미피, 홀롤로, 단델, 카루시파, 욤, 뀨잉
2018.11.18
: 초코우유, 태황무무, 밍늉기, 글읽다 돌연사, 땡구, 동구래미, 빙구, pp_qq, 깜빠기, 홉흅, 봄날엔꾸꾸, 짜왕, 블루베리푸딩, 제로미터, 감귤주스, 슈가나라, 부리부리, 잠만보, 0729, 천칭자리
2018.11.29
: 뉸기찌, 휴지, 알파카, 얄루, 찌미니, 병아리, 채채, 민태공, 듀듀듀, 허쉬초콜릿, 꾹토끼, 변기, 오로라, 달다참, 방사원, 얌얌, 공구일이, 0822, 므어가,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짱구, 햇병아리
2018.12.04
: 파인애플, 오레몽, 낄낄
석진이 생일 기념
+)
급하게 올리느라 못 넣었던 것들 넣었어요 ㅜㅁㅜ
번거로우시겠지만 다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딱히 안 읽어도 스토리 이해에는 상관 없긴 허지만 제가 왜 굳이 다시 읽어달라 부탁드리냐면 윤기가 나와가지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