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의 부름을 무시하고 경수는 무작정 달렸다. 집에 가는 버스를 한 번 놓치면 최소 15분은 기다려야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시험 첫 날이 지난 날이었기에 얼른 가서 점심을 해결하고 남은 범위들을 해결해야했다. 다행히 버스를 제때에 타고 집에 도착한 경수는 텅 빈 밥솥을 보고 허탈함을 느꼈다. 구석에 쳐박혀있던 하루 분량 으로 나누어져 판매하는 견과류를 씹어삼켰다. 하루 쯤이야 괜찮겠지 . 속성으로 문제를 풀었다. 고3 마지막 기말고사는 내신파에게 아주 중요했다. 7시가 다 되어서야 문제를 다 푼 경수는 뭉쳐있는 근육을 주무르며 답지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어..?" 아무리 찾아도 답지의 답자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경수는 가방을 거꾸로 뒤집었다. 온갖 잡동사니, 가정통신문이 떨어졌다. 물론 그 사이에 경수가 찾는 답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오!" 아오는 경수가 최고치로 화났을때만 나오는 단어였다. 제 또래들이 육두문자를 즐겨 쓰는 것에 비해 매우 순진한 수준이었다. 경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세훈에게 연락을 했다. "내 답지 너한테 있냐?" "야 씨발, 아까 내가 부를 때는 귓등으로도 안듣더니?" 경수는 또 세훈의 말을 무시하고 재차 되물었다. 내 답지는? 오랜만에 누텔라를 섭취하여 기분이 좋았던 세훈이 잼이 잔뜩 묻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끝까지 사과 안하네. 핸드폰을 반대쪽 손에 넘겼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쌍욕을 날렸다. 돌아오는 것은 끊겼다는 신호음 뿐이었다. '네 사물함에 쑤셔박아둠' '학교문 열려면 숙직실 아저씨한테 기어야함' 세훈은 진작에 문자로 알려줄거면서 괜히 튕겼다. 경수는 기름기에 절은 음흉한 숙직실 아저씨의 모습을 떠올렸다. 생각만해도 속이 저릿한것이 마주치기 싫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가끔 양아치들이 애용하는 1층 복도에 잠기지 않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체육 고자라도 창문을 넘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가는데 20분, 찾는데 10분이면 빠르면 한시간 안에는 집에 도착할 수 있을것 같았다. 지갑에서 버스카드를 꺼내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현관문을 나섰다. *** "거기 누구야?" 경수는 재빨리 화단에 몸을 숨겼다. 좆 될뻔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운동장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하필 숙직실 아저씨가 경수의 빛과 소금인 창문 앞 벤치에서 티타임을 즐기며 계시고 있던 것이었다. 커피야 5분이면 될거라고 기다렸건만 꽤나 감성이 깊은 아저씨는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보며 한참을 떠날 생각을 하시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한숨을 푹 내쉰 경수는 귀만 청춘인 아저씨의 레이더망에 신호를 보낸 꼴이 되어버렸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경수는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노년에 숙직실을 맡은 아저씨는 조금 뛰다말고 멈춰선지 오래였지만 그걸 보지 못한 경수는 교직원 주차장에 도착해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난데없는 추격전에 초여름의 더위가 급습해왔다. "여기서 뭐해?" 심장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거였구나.를 실감한 경수가 뒤를 돌아보았다.종인이었다. 그는 방금 차에서 내렸는지 몸에서 에어컨의 냉기가 흘러나왔다. "아,선생님 안녕하세요." 경수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종인에게 인사를 했다. 종인의 표장이 일순간 굳어졌다가 환하게 웃었다. 항상 건조한 표정으료 수업을 하는 모습이 익숙해서인지 경수는 그런 종인에게 낯설음을 느꼈다. "책을 놔두고 왔지 뭐에요." 하하. 어색한 웃음을 짓고 뒤로 물러섰다. 종인이 하나하나 내려다 보는 모습이 왠지 두려워서였다. 혹시 도둑으로 몰지는 않겠지. 전 무고한 학생이에요를 의도적으로 맘껏 표출했다. 답지 꼭 필요하거든요.종인이 기다렸다는듯이 물어왔다. 그럼 선생님이랑 같이 들어갈래? 캄캄한 복도가 쭉 이어졌다. 마치 학교가 아닌것같았다. 동반자가 있어 경계심이 누그러진 경수가 처음 온 것처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제 반까지 같이 걸어온 종인이 경수에게 반 열쇠를 건냈다. "감사합니다." 응. 뭔가 기분좋아보이는 종인의 얼굴에 갸웃거린 경수가 자물쇠는 따다말고 고개를 휙 돌렸다. "선생님은요?" "응?" "선생님은 할 일 없으세요?" 그냥 물어본건데 종인은 곰곰히 생각하는듯하더니 너부터 해. 하고 마는 것이었다. 자물쇠를 빼고 문을 열자 막혔다가 풀려난 교실의 공기가 확 끼쳤다. 성큼성큼 자신의 자리까지 가 서랍속을 뒤지니 답지가 나왔다. 너 때문에 존나 고생이다. 품에 꼭 껴안고 나오자 종인이 대신 문을 잠궈주었다. 그리고 다시 종인과 함께 입구로 되돌아왔다. 종인이 일부러 경수에게 신경을 써준 것이었다. 여러모로 폐를 끼쳐드린게 확실했다. "선생님 저 때문에 들어가신거에요?" "차 태워줄까?" 콩고물이 떨어지면 받아먹어라. 경수의 아버지가 딸랑이 흔들던 아기경수시절부터 귀에 박히도록 들려주던 말이었다. "네." 경수는 이제서야 아까까지의 선생님과의 의사소통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그러나 평상시의 모습으로 운전하는 종인의 모습을 보며 의구심을 지워나갔다. 에라이 모르겠다. 오늘 계탔다고 치자. 오세훈한테 말해줘야지.이미 옆자리를 꿰차 안전벨트까지 맸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선생님." 종인의 단단한 팔을 감싸고 있는 검은 와이셔츠에 시선을 두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의 집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종인을 보았다. "왜 저희집 주소 안물어보세요?" "질문이 틀렸잖아." "..." "왜 너희집 앞에서 안 세웠냐고 물어봐야 되는거 아냐?" 경수는 얼이 빠졌다. 곧이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차는 남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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