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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랜만에 준홍의 하루가 평화로웠다. 준홍은 그래도 대현의 옆에서 대현을 지켜보았고, 대현은 초점이 없는 눈을 어디에 둔 지 자신도 모른 채 입을 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 언어장애에는 지금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준홍은 대현의 목소리를 좋아했기에 그의 목소리만 들으면 자동적으로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듯한 착각에 들기도 했다. 준홍은 대현의 부름에 바로 시선을 그에게로 옮겼다.

 

"……저 병실 옮기고싶어요."

 

대현의 뜬금없는 발언에 준홍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되물었다. 네? 대현은 평소엔 인상을 찡그리며 오히려 자신이 되물었건만 오늘은 다시 제대로 말했다. '병실 옮길래요.' 준홍이 그 말에 가만히 있다가 이유를 물었다. 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준홍은 그렇다면 어디로 옮길지를 물었다. 대현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402호.' 준홍은 당장 고개를 끄덕였지만 막상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난 후에 4층은 연구실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홍은 된다는 대답에 웃으며 좋아하는 대현을 보니 약속을 무를 수도 없었다. 준홍은 잠시 나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대현은 그런 준홍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나 버리지 마."
"……네?"

 

준홍의 물음에 대현은 평소처럼 네? 하고 오히려 자신이 물었다. 준홍은 그런 대현을 두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도 또 방 교수님이다. 준홍은 계속 용국에게 의지하는 자신이 한심해보였다. 준홍은 차마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못하고 문자메시지를 몇번이고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가 결국 정대현 환자 병실 402호로 바꿔주세요, 하고 아주 간단하게 글귀를 완성하곤 보냈다. 준홍은 보내고 나서야 후회했다. 그냥 가서 말할걸 그랬다, 하고 4층으로 올라가는데 답장이 왔다. 정말 의외로 된다는 말이었다. 준홍에게 있어 용국은 마치 신과도 같이 모든 것들을 이루어주는것만 같았다. 이어 오는 답장에서는 일주일 후에 들어올 수 있을거라는 용국치곤 긴 문자가 적혀있었다. 준홍은 올라가려던 발걸음을 다시 2층으로 돌리고는 뛰어가듯 내려갔다. 대현에게 만약 알려준다면 기뻐할 것 같은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모든 일들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은 나 버리지 마.'

 

3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준홍은 갑자기 멈췄다. 그 말이 머릿속을 빠르게 훑었다. 못 들은 줄 착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이 다시 머릿속을 멤도는 걸 어쩌라는 말인가. 준홍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어떻게 그렇게 아픈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 머릿속을 재빨리 정리했다. 적어도 대현의 앞에서는 그저 웃으면서 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 때문에 웃는 버릇도 생겼다. 종업이 가끔 이상하다면서 장난스레 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정대현 환자."

 

대현은 창 밖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대답을 하진 않았다. 준홍은 다가가서 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얼굴을 가까이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니 대현이 흠칫했다. 준홍은 다시금 웃었다. 대현이 자신이 웃는게 멋있다고 할 때 부터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준홍은 오랜만에 좋은 소식을 들고 왔기에 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반면에 대현은 실없이 웃는 준홍이 오늘따라 더 실없어 보여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일주일 후에 옮겨줄게요."
"……진짜요?"

 

준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은 더 환하게 웃었다. 준홍은 가끔 대현이 저렇게 웃을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충동적으로 들었다. 다행히도 그런 때에는 이성이 거의 더 확고하게 잡혀있어 스스로를 제지해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었다. 준홍은 그 이후에 말이 없는 대현을 뒤로하고 또 병실을 나왔다. 그러다 창 밖을 다시 멍하니 바라보는 대현을 우연히 보았을 땐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단순한 교통사고일줄만 알았다. 영재가 몇 주 동안 침상에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누워있어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하면 다시 일어나서 '정대현 멍청아' 한마디를 자신에게 던질 줄 알았다. 큰 오산이었다. 영재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엔 지능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고, 그 모습을 바로 눈 앞에서 본 대현은 영재를 붙잡고 몇시간을 울어댔다. 영문을 모르는 영재는 대현을 따라 울었고, 용국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면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용국은 영재원 병원장의 허락도 없이 그를 본인이 보살피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았기에, 용국은 대현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곤 영재를 자신의 연구실 한쪽에 침대와 함께 들였다.

 

"영재는 내가 맡을게. 너 바쁘잖아."

 

힘찬은 당시 정말 순수하게 용국을 도울 생각으로 영재를 자신의 연구실로 데리고 갔다. 용국도 그런 힘찬의 배려를 고맙게 느껴 자주 들릴테니 수고해달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힘찬의 선택에는 큰 계산착오가 있었다. 영재는 용국은 기억했으나, 힘찬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힘찬이 자고 있던 영재를 자신의 연구실로 옮겨 깨우고 식사를 권했을 때, 영재는 공포감에 떨며 힘찬을 거부했다. 영재의 반응에 힘찬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힘찬은 그 때 들고 왔던 식판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걸 청소한 건 힘찬 본인이 아닌 민 간호사였다. 민 간호사는 그 때 힘찬에게 핀잔을 주며 청소를 했지만 힘찬의 귀에 그게 들릴 리가 없었다.

 

"……민간."
"네,"

 

그녀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힘찬은 표정이 없이 멍한 상태로 말을 이었다. 민 간호사가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힘찬을 힐끔 쳐다보았다. 힘찬은 잠시 정지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문종업 어딨어."
"문 조교님이요? 아이스크림 사오라고 시키셨으면서."

 

그 대답에 자신이 영재때문에 종업에게 심부름을 시켰던 것이 떠올랐다. 힘찬은 자신이 그렇게 우스울 수 없었다. 힘찬은 청소를 다 끝낸 민 간호사를 등 떠밀듯 내보냈고, 십여분 간 다시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약품들을 정갈하게 정리해놓은 약품냉장고로 갔다. 냉장고 속에 있는 약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약물들의 성질을 머릿속에서 찾아냈다. 힘찬은 약물 몇개를 꺼내어 침대 정 반대편에 있는 실험대로 옮겼다. 그리곤 약물들을 성분에 따라 이리저리 섞어댔다. 유독 약물도 있었지만 힘찬은 용액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업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도착했을 때 힘찬은 그에게 다시 나가라고 지시했고, 종업은 뜬금없는 힘찬의 태도에 어리둥절했지만 그의 말을 따랐다. 힘찬은 그 후 약 삼십분 정도 지났을 때 어떤 용액을 새로 만들었다. 힘찬은 그 용액을 주사기에 주입하고는 영재에게로 다가갔다. 그 약물을 그대로 주사하려던 힘찬은 그나마 걱정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었던것인지 실험대 한쪽에 있는 실험용 흰 쥐에게 그 약물을 주사했다. 쥐는 몇 초 후에 갑자기 죽었고, 힘찬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자신이 만든 약물이 어떤것인지 알아챘다. 단지, 나를 기억하게 하고 싶었는데. 힘찬은 악물을 폐기통에 몽땅 버렸다. 정신이 현재 올바르지 못했던 힘찬의 눈에 침대에서 어느 새 자고 있는 영재가 보였다.

 

'형 마음쯤은 제가 다 파악할 수 있어요'

 

힘찬은 넋이 나간 듯 웃었다. 언뜻 보면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힘찬은 다시 영재가 여태껏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신에게 독이 되었다. 영재는 또, 자신에게 무어라 말했더라.

 

'저, 용국이 형 좋아해요.'

 

머릿속의 모든 단어들이 제각각 제 할일을 하다가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 주인이 지금 그런 것들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그 말이 떠오르면서 힘찬은 스스로에게, 영재에게, 용국에게 화가 났다. 용국에게 마음을 둘 것이었으면서 자신에게 희망나부랭이나 심어준 영재나, 그런것조차 눈치 못 채던 용국이나, 그리고 그런 영재에게, 용국에게, 희망 내지는 기대를 품었던 자신이나 지금만큼은 욕설을 퍼부어 주고 싶을만큼 싫었다. 애시당초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이 머리가 가장 큰 문제였을수도 있고. 힘찬은 심리학 교수이면서도 자신의 심리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교수님, 아이스크림 준홍이 줬어요. 괜찮죠?"

 

마침 들어온 종업에 힘찬은 그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으면서 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은 표정이 좋지 않은 힘찬에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했지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그냥 넘겼다. 그러다 자연스레 연구실에 없던 침대가 들어선 것을 보았고, 그곳에 영재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 누구예요?"
"……있어."

 

힘찬의 말투가 평소와 크게 달랐다. 종업은 심각성을 알아 챈 것인지 말을 아꼈다. 그리고 힘찬을 보았다. 종업은 힘찬의 표정을 보고, 또 무언가를 자꾸 고민했다. 힘찬의 평소 성격 또한 배제하지 않고 곰곰히 생각했다. 종업은 알고 있었다. 힘찬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성격인지. 굳이 자신이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평소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면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이지만, 종업의 눈에는 하나가 더 띄었었다. 힘찬 자신은 심리학자임에도 그걸 모른다. 하지만 말할 필요가 없었다.

 

"종업아, 잠시 나가봐."

 

힘찬의 말에 종업은 군말없이 자리를 떴다. 힘찬은 영재의 앞에 자리잡아 의자를 두고 앉았다. 그리고 영재를 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영재가 깨어났다. 힘찬과 영재가 눈이 마주쳤고, 영재는 힘찬이 무심코 제 손목에 잡아둔 손을 털어내듯 떼어냈다. 힘찬은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얼굴만 보면 분하고 억울한 기분이 다 없어져버렸다. 힘찬은 의자에서 일어서서는 멀찌감치 그에게서 떨어졌다. 희한한 타이밍에 연구실의 문이 열렸고, 용국이 연구실 안으로 들어섰다. 영재는 용국을 보자마자 그를 반겼다. 용국 역시도 영재에게 다가가서 단번에 안았다. 영재가 피하지 않았다. 영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찬을 너무 쉽게 찬찬히 부수고 있었다.

 

"어, 있었냐."
"……어."

 

자신에게 예의식으로 인사를 하는 용국이 그날따라 그렇게 싫었다. 싫은 마음을 애써 부정해보려고 해도 힘찬은 그런 감정들은 스스로 잘도 캐치해냈다. 막상 자신과 영재, 용국 모두가 싫다고 느껴질 때에 영재에게는 탓을 돌리기 싫은 걸 보면, 힘찬은 아마도 영재를 용국보다도 더 마음에 오래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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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빵친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힘차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영재가 기억못한다고 삐뚤어졌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때끼 그러면 안되는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천천히 찾으면 되는걸 으아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빵영은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건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DF
빵영이 해피엔딩이라...애매하네요ㅠㅠㅠㅠ기준이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헐...빵영이지만 빵영찬이네요... 제사랑들.... 자까님 제사랑머겅b''d
11년 전
DF
나도...내사랑도 머겅...
11년 전
독자3
두부에요ㅠㅠㅠㅠ 이런분위기 막 색다르면서 좋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DF
좋아해주셔서 고마워요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4
미더예요ㅓ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얽ㅠㅜㅠㅠㅠㅜㅜㅜㅜㅜㅠ아음아프
11년 전
DF
저도...마이아파.....ㅠㅠㅠㅠ
11년 전
독자5
양말입니다!!그래서였군요...ㅠㅠㅠㅠ오늘도감사하게잘보고갑니다!!!
11년 전
DF
저도 덧글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ㅠㅠ
11년 전
삭제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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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DF
오늘도 역시 감사해요 ㅎㅎ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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