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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려고?" 

 밥까지 얻어먹고 멀뚱멀뚱 앉아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설거지를 하려고 고무장갑을 끼는데 그 때까지도 식사 중이던 그가 고개를 쳐들고 묻는다.

 "뭐하려고 이걸 끼겠어요."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장갑을 낀 두 팔을 들어 보였더니 웃음이 터져버리는 그다.

 

 "아, 경수야. 우리 경수 왜 또 안하던 짓을 하고 그래. 누가 언제 너더러 설거지 하래? 존나 귀엽다. 진짜."

 

 

 

 

 

 

 

 

 

 

 

 

 

섬 소년 이야기

 

 

 

 

 

 

 

 

 

 

 

 

 

 

 

 

 

 

 

 

 

그 안 하던 짓 좀 해보려고 했더니 반응이 저따구면 나는 또 짜증이 난다. 다시 접시에 고개를 쳐박고 후르륵 면을 흡입하던 그가 뭐가 그리 웃긴지 몸을 들썩이며 끅끅 소리를 낸다. 재수없어. 설거지 안해. 신경질적으로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거실로 가 티비를 켰다. 오..신세계! 나 저거 못 봤는데! 곧이어 영화가 방송된다는 말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소파에 기대 앉는다. 집에 가려면 학교 끝날 때 쯤인 5시는 넘어야 하는데 모처럼 심심치 않게 오후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티비에 집중하고 있으니 밥을 다 먹은 것인지 그가 다가오며 묻는다. 뭔데? 뭐가 그렇게 재밌어? 들고 온 선풍기 코드를 꽂고 내 쪽으로 틀어주며 그가 묻는다. 하여간 저 놈의 선풍기.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녀야 하는게 귀찮지도 않나. 

"신세계 해준대요." 

나의 말에 그가 되묻는다. 그게 뭔데? 영화야? 아...진짜 문화적 소양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인간이다. 어떻게 신세계를 몰라? 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네....지금 생각해보니까 영화가 한창 흥행하고 있을 때 그는 여기에 없었다. 그는 종종 해외로 출장을 가고는 하는데 내가 그것을 아는 이유는 그의 집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면세점 영수증 다발 때문이다. 아무튼 영화가 시작하는데 내가 본격적으로 몰입하는 듯 하자 그 역시 내 옆으로 자리를 잡는다. 딸깍-! 캔을 따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맥주를 한 모금 마신 그가 마주보며 멍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 너도 마실래? 갖다줘?"

 "미쳤나봐 진짜. 나 고딩이거든요?"


 내 말에 아....하며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망할 놈이 웃음 씩이나 터져버렸다. 풉-! 또다시 들썩거리며 큭큭대고 웃는데 여간 짜증나는 인간이 아니다.  신경질을 내며 눈을 흘기니 아, 미안. 미안..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니, 근데 웃기잖아 경수야. 고딩이라서 술은 안 되고, 학교 빼먹고 섹스하는 건, 그건 돼?" 

 이제는 슬금슬금 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길래 인상을 잔뜩 쓰며 뿌리쳐버렸다. 아, 진짜 영화 좀 봅시다. 저거 애들이 재밌다고 했단 말예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알았어. 경수야. 우리 경수가 재밌다면 나도 봐야지. 이제야 좀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면을 바라본다. 화면 속에서는 조폭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에게 한 남자가 애원을 하고 있다. 와...이정재. 존나 멋있네 진짜. 감탄하며 보고 있는데 또다시 혈압이 오른다. 그가 내 손을 가져다 제 손과 깍지를 끼웠기 때문이다. 아오! 진짜!!! 진심으로 성질을 부렸더니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그가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그냥 손만 잡을게. 응? 이러고 이제 가만히 영화보면, 응? 그러면 되잖아. 

       










#













 그리고나서 그는 정말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간에 내가 힐끗 훔쳐본 바로는 나보다 더 집중을 했는지 인상을 쓰며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기까지 했다. 물론 꼭 잡은 내 손은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메인테마가 흘러나오고 엔딩 크레딧이 뜨자 감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리며 내가 말했다. 


 "와...영화 진짜 작살이지 않아요? 존나 멋있다. 진짜.."

 "별로.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다 마신 맥주캔을 와그락 찌그러뜨리며 무감한 말투로 그가 말했다.    


 "에이~영화가 다 그렇지 뭘 그래요."

 내 말에 그가 중얼거린다. 그래도 디테일은 좀 신경써야 하지 않나? 보통 사전조사 같은 거 하고 그러잖아. 진지한 장면에서 감정몰입 하나도 안돼. 그의 말에 무슨 소리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니 소파에 머리를 기대어 젖히는 바람에 천장에 시선을 둔 그가 나른한 얼굴로 말한다.


 "사람 시체를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붓잖아? 시간이 좀 지나면 시체가 부패하면서 빈 공간이 생기거든. 그럼 그 공간에 부패하면서 발생하는 가스가 점점 차게 되고 그러다보면 압력이 생겨서 암만 공구리라고 해도 금이 가고 깨진단 말이야. 드럼통은 계속해서 부풀게 되고 결국은 바다 위로 떠오르게 돼있어. 시체은닉에는 최악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뭣 모르는 고딩 나부랭이도 아니고 조폭이, 게다가 실제 조폭도 아니잖아. 경찰대까지 나온 엘리트가 그걸 모를리가 없는데 말이야."


 뭐라는거야... 당최 뼛속까지 문과생인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들을 늘어놓는다. 지금 내 욕한거야? 영화를 보느라 살짝 충혈된 눈을 깜빡이며 그의 다리에 기대어 누웠다. 섹스도 했겠다 밥도 먹었겠다 나른해져서 절로 눈이 감긴다. 대충 자고 일어나서 씻고 집에 가야지. 


 다시 집 안에 정적이 찾아 들었다. 열려있는 창 밖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 새 소리. 그리고 털털거리는 선풍기 소리... 

 와이셔츠만 입은 탓에 훤히 드러난 다리 위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잠이 드려는 찰나, 입술 위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슬쩍 닿았다 떨어진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어버린다.   














#















 "너 왜 자꾸 학교 안 와."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잠시 멈칫했던 발걸음을 망설임없이 집을 향해 옮긴다. 그와 동시에 내 뒤로 따라붙는 발걸음 소리에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대로는 보폭차이 때문에 금방 따라잡힐게 뻔해서 더욱 걸음을 빨리했다. 그리고 덩달아 빨라진 걸음소리와 함께 손목이 붙들려 버린다.


 "너 지금 나 쌩까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가 내게 묻는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얼굴은 뉘 집 자식인지 잘도 생겼다. 한 여름 휴가철이 되면 해수욕장 때문에 이 곳에 놀러오는 여자들이 꽤 많은데 그들은 하나같이 김종인을 보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비쥬얼이 이런 촌동네에! 동감하는 바이다. 아니 어떻게 저런 비쥬얼이 이때껏 이 동네에 남아있을 수가 있는거지. 가만히 그의 잘 생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세연은 너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

 "아, 씨발. 또 그 얘기야."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그가 말했다. 한 달 전 김종인에게는 여자친구가 생겼다. 그 뒤로 우리는 쭈욱 이 상태였다. 하나뿐인 불알친구가 여자친구가 생겼는데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이게 웬 뗑깡이냐고 묻는다면 그래. 축하. 해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벨도 없는 새끼처럼 헤실대며 축하해 줄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나에게도 나름 있었다. 우선 그에게 D+5 일째인 여친이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아닌 오세훈의 입을 통해 알게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내가 그것을 알기 사흘 전, 나와 종인이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키스를 했던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그 키스는 우리가 16살 되던 해 이후로 늘상 해오던 것이었다는게 세 번째 이유 쯤 되나...무엇보다도 나는... 

 김종인을 좋아하고 있었다. 


 쌍방의 감정인 줄로만 알았던 그것이 그 날 이후,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음이 분명해졌다.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실감이 나질않아 병신새끼처럼 실실대며 웃었다. 지랄하지마, 저 새끼가 무슨 여자친구야. 식판 위의 밥을 한가득 퍼 오세훈의 식판에 옮기며 말했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하는 오세훈의 태도에 맞은편에 앉은 김종인을 쳐다봤고 그 때 알았다. 김종인이 더 이상 웃고 있지 않다는 걸. 어쩌면 당황한 것 같기도 했던 그 표정에 나는 그제서야 실감했다. 아...얘가 진짜로 애인이 생겼구나.     



 


 "이러지말자 진짜. 너 오늘 학교 안 오고 어디서 뭐 했어?"

 

달래보려는 심산인지 인상을 풀고 짐짓 누그러진 말투로 묻는 그의 말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역시나 부재 중 전화 한 통 없는, 문자 한 통 없는 깔끔한 화면에 헛웃음이 났다. 그게 정말 궁금해서 묻는걸까 쟤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고 말했다. 


 "이거 놔." 


 손목을 잡고 있던 김종인의 얼굴이 다시금 잔뜩 구겨진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말을 해야 알지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내게 책임을 묻는다. 가증스럽네. 김종인. 네가 놓아주지 않으면 떼어내면 그만이다. 다른 한 팔을 들어올려 손목에 감긴 그의 손을 걷어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김종인이 억울하다는 듯 외친다. 

 "아...진짜. 친구 사이에 자꾸 이럴래? 너?"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친구사이라니....

 

 그래. 처음엔 친구사이가 맞았다.




-키스...해도 돼?

-...응.

 

 

 하지만 3년 전 비가 억수로 내리던 그 날, 흠뻑 젖은 내게 수건을 건네며 묻던 그 순간,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겹쳐오던 그 때, 그 이후로도...



 우리가 내내 친구사이였다고.


 너는 장담할 수 있을까?  

    


















==================================================================================================================



 읽어줘서 고마워요. 저번회 댓글들 보고 또 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봤잖아요ㅠㅠㅠㅠ사랑스럽잖아ㅠㅠㅠㅠ

 암호닉이라니ㅠ제가 뭐라고ㅠㅠ 주시면 감사히 받을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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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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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휴ㅠㅠㅠㅠㅠ신알신 떠서 바로 왔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대박 ㅠㅜㅜㅜ아....저 암호닉 신청되나요? 되면 쌍쌍으로 신청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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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잇치]로 암호닉 신청하고 갑니당!!!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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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ㅠㅠㅠㅠ이 시리즈 너무재미있어요ㅠㅠ 은근히 배려하눈 차녀리 설레요퓨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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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저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암호닉신청ㅠㅠㅠㅠㅠㅠㅠ[젤리빈]으로 해주세요ㅠㅠㅠㅠㅠ 작가님 짱 좋아여ㅠㅠㅠㅠㅜㅠㅜㅠㅜㅠ하.... 날 발라버릴 듯한 작가님의 문 체....☆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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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어휴진짜 분위기 장난 없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찬열이가 저렇게 얘기하는 거 보면 찬열이 직업도 슬슬 의심이 가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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