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모습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 보는 아이일지도…
항상 혼자있었다. 아침에도 점심시간에도 하교를 할때에도 그 아이는 꼭 혼자였다.
그렇다고 왕따는 아니었다. 왕따를 당하는게 아니라 되려 저 혼자 모두를 따돌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건들지 말라는 듯한 눈빛과 언제나 올라가있는 입꼬리는 상당히 모순적이었다.
"홍빈아 뭐해?"
"홍빈아 밥먹으러 가자"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아이들이 제법 많다. 홍빈은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끌어당겼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홍빈을 주시했다. 한 자리 건너 옆자리라 홍빈을 보기에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아침에는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있는 홍빈을 제일 먼저 보았고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홍빈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야자가 끝나고도 끝까지 나는 홍빈이 교실밖을 나가는 것을 쳐다봤다.
며칠간 계속 지켜본 홍빈은 선생님이 무언가를 시키실때를 빼고는 말을 하지않았다. 그리고 웃지 않았다. 입꼬리는 항상 올라가 있었지만 그것이 웃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마치 곤충이 보호색을 띠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본인말고는 모르는 것이겠지만 하여튼 난 그런느낌이 들었다.
자유시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이 베풀어주시는 산책시간. 더운 날씨에 나와 친구들은 그저 공원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눈앞에 홍빈이 보이면 그저 홍빈을 쫒을 뿐이었다.
산책로를 걷는 홍빈의 곁에는 제 친구가 있었다. 홍빈의 뒤에 앉은 까맣고 마른 아이. 저 아이도 늘 혼자였지.
홍빈은 걷고 있었고 마른아이는 홍빈을 쫒아가듯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다 산책로의 끝에 다다라 더이상 길이 없을때쯤 홍빈이 몸을 홱 돌렸다. 그 모양새가 퍽이나 우습고 귀여웠다.
"풉, 야 봤냐?"
"어어, 봤음"
옆에 있던 친구들이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친구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 끝엔 홍빈이 있었다.
"존나 귀엽네"
"픽 돌리는거 봐"
'같은 것을 보고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저거 봐, 저거 차학연 계속 들러붙는데 이홍빈 피하는거"
마냥 제 또래의 고등학생같았다. 달라붙는 아이를 밀쳐내는 홍빈의 표정과 행동은 누가봐도 고등학생이었다. 저런 모습을 친구에게는 보여주는구나…
"근데 쟤 좀 이상해, 애가 표정도 없고 무슨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처음엔 그냥 말 없고 조용하네라고만 생각했는데 뭔가 분위기도 이상하고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안보이니까 완전 무서워"
"좀 그런건 있지. 나 쟤랑 같은 중학교 나왔잖아, 애가 좀 이상하더라"
"왜, 뭔데"
시야에서 사라진 홍빈을 두고 홍빈에 대해 얘기하는 친구를 쳐다봤다.
"중2때였나… 내 옆자리였는데 애가 갑자기 연습장에 뭘 그려서 나한테 슥 보여주고 겁나 무섭게 씨익 웃는거야, 뭔지 봤더니 무슨 사람이 그려져있는데 중간이 없고 곤충벌레같은것도 막 그려서 보여주고"
"뭐야…"
"그땐 아무생각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좀 그래서…"
너는 어떤 아이일까
다가가려고는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멀리서 너를 흥미있게 지켜보기만 했을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계속 보고, 보고, 또 보다보니 너의 다른 모습을 너무나 보고싶었다. 얼마전 공원에서 본 네 모습과 같이 나는 다른 네 모습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래서 말을 걸고 싶고 너에게 다가가고 싶어졌다. 너는 쉽지 않았고 네 얼굴은 여전히 모순적이었다.
너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나서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젠 대놓고 널 쳐다보는 내 시선에 한 번쯤은 고개를 돌릴법도 한데 너의 눈은 항상 문제집만을 향하고 있다.
다행이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너에게 관심 갖기를 며칠, 또 너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며칠. 난 일부러 네 앞에서 친구들과 크게 대화를 했고 네 앞을 어물쩡거렸다.
하지만 너와 나의 관계는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나는 또 미련하게 네 시선이 닿을까하는 곳에 서성일 뿐이었다.
네가 나를 쳐다보기만을 기다렸다. 나는 항상 너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이제 너만 나를 봐주면 된다고 매일, 항상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을 티라도 내는 것인지 동그랗게 예쁜 눈과 역시 꼭 다문 입술은 미동도 없다.
하루하루 너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약해 보이는 네 외모와 강해보이는 네 행동, 알 수 없는 표정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아 씨발, 에어컨 고장이야"
석식을 먹고 교실에 앉아있는데 에어컨이 소리없이 꺼졌다. 행정실을 다녀오겠다느니 뭐니 에어컨하나로 교실이 난장판이다.
에어컨없이 야자를 어떻게 버텨야 하나…
움직이면 더 더울까 싶어 가만히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며 행정실을 간다던 아이가 어학실로 가라며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애들은 모두 아싸하며 책과 펜 하나씩을 챙겨들고 어학실로 개미떼마냥 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하게 문제집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너도 주섬주섬 느릿하게 책을 챙기고 있었다.
며칠, 아니 이제 몇 주째 지켜본 너는 항상 마지막을 책임졌다. 선풍기를 끄고 불을 끄고 교실문을 걸어잠그고 어학실로 오겠지.
어학실로 가 앉았다. 4명씩 모둠처럼 앉는 책상은 항상 불편하고 앞자리에 앉은 친구놈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자니 어릴적으로 돌아간것 같아 향수는 무슨 굉장히 오글거렸다.
어학실을 쭉 둘러보니 시원한 에어컨바람에 엎드려 자는 애들 반 공부하는 애들 반이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는 비어있었다.
내 옆자리를 제외하고는 전부 꽉꽉 차있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홍빈이 앉을 자리는 내 옆자리뿐이다.
두근거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이 뛰었다. 좋아하는 여자애가 옆에 앉는 것도 아니고 괜히 가슴이 뛰었다.
미쳤다고 생각할때쯤에 조용히 문을 열고 네가 들어왔다. 평소엔 잘 쳐다봤겠지만 네 시선이 이쪽으로 올 것을 알기에 읽히지도 않는 문제집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바라봐주기를 원했으면서 막상 저를 볼것이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네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난 네가 걸어오는 소리에 맞춰 문제집에 펜으로 슥슥 낙서를 했다.
별 것 없었다. 너는 여전히 아래만을 쳐다보며 자리에 앉았고 나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았다.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앉아도 돼?' 냐고 물어보는 네 목소리를 기대했다. 네시간동안 나는 옆자리에 앉은 너를 신경쓰기에 바빴다. 너는 펜을 들고 손을 바삐움직였지만 나는 펜을 들고 눈을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하는 생각 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싶다는 생각.
어떻게 말을 걸지라는 생각에 깊이 잠겨있을때 옆에서 톡톡하고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놀라 고개를 돌리니 네 예쁜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있있었다.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네가 나를 왜 손길로 불렀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가까이, 크게,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너를 보는 것에 빠졌다. 그 깊은 눈망울에 빠지는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너를 보았다.
네 예쁜 입술이 슬며시 열렸다. 그 입술을 비집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자 앞으로 쑥 보이는 까만볼펜. 내 것 이었다.
고개를 돌려버린 나에 네 입술도 다시 붙은 것인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앞에 있는 까만볼펜을 받아 들었다.
"고,고마워"
후회했다. 나를 향해 말하는 네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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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글쓰는거 힘드네요ㅠㅠㅠㅠㅠ 친구한테 썰받아서 처음으로 글 써봤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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