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7719616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BGM - 거믈촌 


 

 

[방탄소년단/전정국] 도원(桃園) 一 | 인스티즈 

 

桃園(도원)
第 一章

作. 樂園



桃園(도원) : 무릉도원을 일컫는 말.






 화호(華虎) 25년, 세간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궁 안까지 퍼진 소문의 출처는 어디인지도 모르고, 누가 퍼뜨렸는지 그조차도 모르는 소문이 국내에 돌기 시작했다. '그곳에 가면 복숭아 꽃잎들이 눈처럼 떨어지고, 맑은 강을 따라 연분홍의 꽃잎들이 줄을 지어 흘러간다.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늙지 않으며,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살고 있다.'라고 말이다.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그곳을 찾길 염원했다. 진나라 황제였던 진시황이 얻지 못했던, 불로장생을 얻을 수만 있을 것 같아서. 또한 이 지긋지긋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들의 현실에서 도피할 수만 있을 것 같아서. 꿈 같은 곳이라 그들은 복숭아나무 도(桃)에 동산 원(園)을 합쳐 도원이라 불렀다. 복숭아나무가 가득한 동산, 사람들에게 한 줄기의 희망과 같은 곳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현 황제인 류 황제는 자칫 백성들이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날까 두려워, 그 소문이 귀에 들어오자마자 산이든 강이든 다 찾으라 명했다. 찾는 즉시, 불태우라면서. 또한 그곳을 찾는 자에게는 어마어마한 포상금이 주어질 것이라 말했다. 병사뿐만이 아닌 백성들에게 말하자, 백성들은 포상금이라는 말에 곳곳에 있는 산들과 강을 찾아 흡사한 곳이 있나 찾아보았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현재는 화호(華虎) 35년이었다. 근 10년 동안, 소문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렇게 찾았음에도 도원을 찾았다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문은 널리 떠돌았으며, 류 황제는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10년 사이에, 자신의 자녀들은 이미 벌써 18세를 넘겼다. 특히 류 황제가 아끼는 소화공주는 꽃다운 미모에 혼인 적령기가 다 되어, 대신들이 부마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혼사 자리가 들어오고 있었으나 소화공주의 눈에는 그닥. 



"공주, 이번 혼사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이번에도 또 올라온 공주의 혼사였다. 공주는 말없이 그저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귀족들과 대신들의 이름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하나같이 여주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저 권세를 얻고 싶어 저를 이용할 사람들만 가득할 뿐이었다. 무관심하고 감정이 없는 눈으로 명단을 바라보다 슥 고개를 돌렸다, 혼사를 올리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의 뜻을 알아본 류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누가 여주의 마음에 들 것인가, 이 세상 사람들을 다 보여 줘도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할 태도였다. 그걸 안 류가 여주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그 생각을 하자마자 무섭게 반대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 집안의 자제는 아바마마께 도움이 되지 않사옵니다."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지 않느냐." 

"아바마마, 혹... 소녀가 혼인이 싫다 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여주의 말에 류의 미간에는 곱게 우물이 패였다. 생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공주가 혼사를 하지 않겠다. 국혼이 걸렸고, 자신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지만 자신이 아끼는 딸이었다. 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류는 절대 공주를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 더 사랑했으면 사랑했지, 덜 사랑하지는 않았기에. 깊게 고민하는 손가락이 탁자를 톡톡 두들겼다. 그저 여주의 질문 한 마디에 심히 고민하고 있다는 행동이었다. 공주라는 이유로 부마를 세워야 혼사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것이었다. 류는 자신의 딸이 하는 말이라면 다 듣게 해 주고 싶었다. 이토록 아끼는 자신의 공주인데, 어떻게 그녀의 물음에 답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톡톡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추고, 류는 공주에게 제안했다. 



"보름 후, 화호제가 열리는 날... 공주는 궁을 떠나거라." 

"아바마마."


"네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다, 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마지막이기도 하고. 소화야, 혼사가 싫으면 하지 말거라. 허나 네가 혼사를 치르지 않고 궁에서 살면 안 좋은 말을 듣게 될 게 뻔하니, 차라리 궁을 떠나거라. 네가 안 좋은 말을 듣는 걸 상상하니 아비는 마음이 아프구나. 아무도 너를 찾지 못하는 곳을 가거라.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너를 건드릴 수 없는 곳으로 가거라." 



"… 황공하옵니다, 폐하." 


 

자신의 딸이 궁을 떠날 수 있도록, 류는 그렇게 다짐했다. 얼굴을 못 봐도 좋으니, 제발 건강하게만 살아다오.  혹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도원이라도 좋으니, 그 곳에 네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구나. 차마 뒤로 못 붙인 말들이 입에서만 맴돌았다. 자신의 딸을 놓아 주기로 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화호제가 열리는 날은 사실상 부마가 될 자를 선정하는 날이나 다름없었다. 여주는 가장 화려하고 금빛 자수가 놓여진 붉은색의 의복을 입고, 그녀를 더 화려하게 해 줄 금빛의 장신구들로 자신을 꾸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얇은 붉은색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궁에서 설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니,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 하는 날이니. 한 발자국씩 내딛는 곳마다 대신들과 그의 자제들의 눈길이 꽂혔다. 과연 이 나라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여인이 아닐 리가 없었다. 저리 아름다운 여인을 가지고, 부마의 자리를 가진다면 이 얼마나 가문의 황송함인가.

붉은색의 가리개 천이 살짝 흩날릴 때 보이는 높은 콧대와 백옥 같은 하얀 피부, 앵두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까지 완벽한 조화였다. 자신의 자리에서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의자에 앉아 있던 여주는 제 아비와 눈을 마주쳐 인사를 올렸다. 폐하, 폐하의 은혜에 저는 이리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황송합니다. 직접 전하지는 못 한 채 속으로 생각한 그녀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무녀들의 무용이 시작되자 잠시 볼일을 본다며 자리를 비웠다. 연회장 뒤편으로 간 여주는 두려움에 덜덜 떠는 한 사람을 발견하였고,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사람은 여주를 대신해 똑같은 옷과 똑같은 장신구, 똑같은 가리개를 한 시녀였다. 여주가 그녀의 앞에 섰다. 

얼핏 보면 공주와 매우 닮았지만 공주가 아니었다. 여주를 대신할 만한 그녀의 믿음직스러운 벗이자 시녀였다. 그녀의 이름은 '담'이었고, 성은 본인도 모른다 하였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왔기에 더 닮을 수밖에 없었다. 태도도, 말투도, 행실도 비슷했다. 여주가 담의 손을 꼭 붙잡고 가리개 너머의 눈을 마주쳤다. 이미 담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라 있었다. 자신이 평생 모신 공주가 궁을 떠날 줄은 몰랐기에. 눈물을 참으려는 듯이 고개를 올린 담이를 보자 여주의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자신의 벗이었는데, 이렇게 놓고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여주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면 이어지지 않는 말들을 내뱉었다. 마음이 미어졌다.


 
"담아, 행복해야 한다. 부탁할게, 뒤를. … 고마웠다, 네 덕분에 행복했어." 

"마마, 정녕…." 

"… 난 이만 가마." 

 

더는 담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여주가 빠르게 자리를 벗어나 자신의 방에 들러 환복했다. 높게 땋아서 올렸던 머리는 내려서 비녀를 꽂고, 귀족들의 평상복과 흡사한 의복으로 환복했으며, 후에 돈이 필요할 것 같아 주머니에 장신구와 은, 금을 챙겼다. 이 정도면 평생을 먹고 살아도 죽지 않을 재물이었다. 빠르게 자리를 옮기고 궁 밖으로 슬그머니 나오자, 말과 함께 비단 몇 필, 은과 금을 포함해서 준비되어 있었다. 황제 폐하... 당신은 저를 이리도 사랑하셨군요. 이 불효녀를 사랑해 주셔서, 용서해 주셔서 황공하옵니다. 황궁이 있는 쪽으로 절을 한 여주가 빠르게 말을 타고 황궁을 빠져 나갔다. 이미 귀족들을 제외하고 병사들에게는 지침이 내려져 있던 터라 황궁 성문도 손쉽게 열렸다. 그녀에게 문을 열어 주던 문지기들은 하나같이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한마음으로. 자신들에게 늘 상냥하게 대해 주던 여주였기에,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행복하십시오, 공주마마." 




 - 





빠르게 말을 몰아 한참을 달렸을까, 꽤 오래 달리던 말도 지친 것인지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말에게 양질의 식사와 물을 제공해야 했고, 우선적으로 물을 먹이고 싶었다. 자신이 온 산길의 반대편에서는 화호제 때문에 화려하게 황궁 밖은 꾸며져 있었다. 언뜻 나무들 사이로 홍등과 청등의 불빛이 보였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리저리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우는 소리들로 가득했다. 당신들은 이리도 행복한데, 도원을 찾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저 속으로만 삼킨 질문을 뒤로 하고, 여주는 멀리서 들리는 물소리를 따라서 가다 말에서 내렸다.

정말 암흑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산과 어두운 밤이었다. 불빛 하나도 없는 이 산속에서 오직 비추는 건 달이었다. 달빛이 강을 비췄고, 그 빛을 받아 은은하게 은빛으로 물든 강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말에게 물을 마실 자유를 주었고, 여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작 혼사 하나가 싫어서 궁을 뒤로 하고 도망쳐 나왔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뒤로 하고, 나의 행복을 찾고자 모든 것을 버리고 나왔다. 정녕 내가 잘한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여주의 머리를 괴롭혔다. 헛된 생각들이었다. 이미 자신은 황궁에서 나왔는데 말이다.

정신을 차릴 겸 세수를 하러 강에 손을 댄 여주는 졸졸졸 따라서 오는 복사꽃을 발견했다. 지금 계절은 절대로 복사꽃이 필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다. 여름에 피어야 할 복사꽃이 아직 채 시작도 되지 않은 봄에 필 수 있단 말인가. 복사꽃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와중에, 말은 이미 물을 다 마신 것인지 여주를 향해 꿈뻑꿈뻑 눈만 감았다 떴다. 그에 여주가 고개를 흔들고 말에게 가 한두 번 쓸어 주었다. 말은 그 손길이 좋은지 조금 더 머리를 여주 쪽으로 들이밀었고, 그에 여주는 픽 웃고 두어 번 더 쓸어 주었다.

여전히 꽃잎은 강을 따라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여주가 무언가 결심한 듯이 말의 고삐를 잡고 복사꽃이 흐르는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복사꽃은 어디서 왔는지, 복사꽃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알고 싶었다. 은은한 달빛에 복사꽃이라니, 마치 소문으로만 듣던 혹은 상상에만 존재하던 무릉도원에 온 기분이었다. 어울리지 않았지만 묘한 어울림을 자랑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저 도원에 대한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그저 발걸음만 옮겼다. 그러던 찰나, 수많은 복사꽃이 핀 나무를 발견했다. 마치 여주가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활짝 만개하여서.



"... 너만 계절을 다르게 살고 있구나. 아름답고 또 어여쁘구나. 네 꽃잎에 내가 취했나 보다." 



마치 여주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산들바람이 꽃잎을 날려 그녀의 머리에 꽃잎을 얹었다. 어여쁘게 핀 나무를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복사꽃 나무가 만개하여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치 환상에 빠진 것만 같았다. 이런 곳이 있었냐는 표정으로,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참 걷던 여주는 단단하고 큰 고목나무를 발견하고선 나무에등을 기댔다. 이리도 편한 곳이라면... 그저 세간에 떠돌던 도원이랑 참 흡사하구나. 생각에 빠진 여주가 눈을 감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가던 찰나, 그녀의 뺨을 톡톡 건드리는 손길에 그녀의 어여쁜 눈이 떠졌다. 제 앞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한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맑은 눈동자가, 마치 달빛을 그득 담아낼 것 같아서일까. 그녀도 모르게 그에게 손을 뻗다 아차 싶었다.  


"… 당신은 누구시오." 

"공주마마께서 오실 줄은 몰랐나이다." 

"… 누구냐, 어찌 나에 대해 알고 있지?" 

"저는 그저 한량일 뿐. 또는." 

"또는?"


일순간 바람이 멎고, 흩날리던 꽃잎마저 모든 게 멎었다. 그의 말이 멈추고, 여주의 질문만이 남아 있을 때 모든 것이 침묵을 맞이했다. 모두가 그의 입에서 대답을 기다리듯이. 떨어지는 복사꽃은 없었고, 그저 그녀의 머리와 어깨에 남아 있는 꽃잎들만이 살랑거리며 떨어질 듯 말듯 여주를 간지럽혔다. 올곧게 그의 눈동자와 마주한 시선에서 답을 듣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묘한 긴장감이 그녀를 덮쳤다. 그가 보내는 눈빛이 여주와 분위기를 압도할 것만 같았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말하는 도원의 주인일 뿐." 

 

여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붉은 입술이 미약한 호선을 그리며 여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묘한 안정감과 또 다른 감정이 그녀를 잠식했다. 실재하는 곳이었다니,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가 두어 번 깜빡였다. 도원, 도원이라. 그렇다면 지금 서 있는 곳도 도원의 일부분일까. 마주보는 이의 눈을 바라보던 여주의 머릿속에 떠오른 소문과 그 뒤에 이어졌던 마지막 문장. 



'그곳에 가면 복숭아 꽃잎들이 눈처럼 떨어지고, 맑은 강을 따라 연분홍의 꽃잎들이 줄을 지어 흘러간다. 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늙지 않으며, 다들 행복한 표정으로 살고 있다. 그곳의 주인은 여전히 한 사람만을 기다린다, 반려로 맞이할 사람을.'







-







도원의 주인이라는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조금 더 이곳을 구경하시겠습니까.'하는 질문에 홀린 것처럼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남자의 손에 이끌려 따라간 여주는& 더욱 활짝 만개한 복사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올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흩날리는 꽃잎들은 자체적으로 꽃길을 만들었다. 달달하고 향긋한 복숭아 냄새가 그녀의 폐까지 깊게 들어찼다. 아, 달달하고 또 달콤하구나. 주위가 신기한듯이 두리번거리는 여주가 귀여운지,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그 시선을 느낀 여주가 머쓱했는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자신의 말 고삐를 잠깐 꾹 쥐었다 놓았다. 처음 느껴 보는 이질적인 감정이 그녀를 서서히 덮었다. 
nbsp;



"… 큼, 왜 그리 바라보는가." 

"황궁은 이보다 더 화려하지 않습니까. 화려하고 어여쁜 것들만 보고 자라신 공주께서 신기하다는 눈빛을 보이시니까요." 


 

맞다. 황궁은 복사꽃이 흩날리는 것보다 더 화려했고, 아름다웠다. 또한 보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면 황궁 전체를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물음에 잠시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두고 온 제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고, 또한 자신이 두고 온 유일한 벗이었던 담이가 생각났다. 아, 갑자기 자신이 두고 온 것들이 그리워졌다. 붉은 입술을 세게 짓누른 그녀를 보자, 그가 손을 들어 엄지로 여주의& 입가 주변을 문질렀다. 다정하고 애틋한 손길로. 깜짝 놀란 여주가 얼굴을 뒤로 빼자, 그가 픽 웃고 말았다. 무슨 의미로 웃는 것인지 궁금했던 여주는 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nbsp;

"대체 왜 자꾸 나를 보면 웃는가. 그리고 그, 자, 자네의 이름을 알려 주게나. 그대는 내가 공주인 것을 알고 있으나, 난 자네의 이름을 모르지 않는가." 


 

쑥스러움과 투덜거림이 섞인 말투로 말하는 여주의수 말에 그가 고뇌에 빠졌다. 그리고 나란히 걷던 발걸음이 다시 멈췄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바라보다, 주변이 달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복사꽃이 핀 나무에 둘러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깨달았다. 자신이 도망쳐 온 시간은 밤이었다. 허나 지금 이곳은 달빛을 포함한 어떠한 빛도 없었지만, 주변은 마치 해가 비추듯이 환했다.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지상 낙원이었고, 말 그대로 도원이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문을 보자마자 여주는 눈치챘다. 아, 실제로 존재하는 도원이자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또한 이 문을 지나면 자신도 사라지는 게 아닌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잊혀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들. 

많은 생각들이 여주의& 머리를 지배할 때쯤, 그의 생각이 다 끝난 것인지 결단에 선 붉은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여주의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주의 눈도 그를 향했다. 너무 생각이 많았던 탓일까, 잠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찌푸리고 그의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볼 때쯤, 둘의 사이를 방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노발대발한 대신들이 그들의 사병을 대동하여 여주를nbsp;잡으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입으로 욕을 말하던 그녀의 귀에 똑똑히 박히는 그의 질문. 


 

"저와 함께 가시겠습니까, 혹은 이대로 남아서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올곧은 눈동자와 내밀어진 손,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의 손을 잡았다. 잡히기 싫은 여주의 절박한 손길에, 또한 그녀의 대답에 호선을 그리는 붉은 입술은 조그맣게 속삭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어떠한 의심도 없이, 낯선 손을 잡고 말았다. 이 손이 자신을 행복으로 이끌어 줄 것만 같았다. 그곳에 가면 혼사 고민이든, 자신이 포기한 것들이든 다 놓을 수만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도원에 오신 걸 환영하죠, 나의 미래." 




여주의 행동에 씩 웃은 그가 빠르게 여주가 타고 온 말에 그녀를 태우고, 뒤에 탔다. 그리고 그는 잡히지 않겠다는 듯, 익숙하고 빠르게 말을 몰아 문을 향해 돌진했다. 그가 온다는 것을 안 것인지 두 팔을 벌리듯이 활짝 문이 열리고, 강한 빛이 둘을 흡수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그녀의 귓전에 맴돌았다. 간단한 주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계속해서, 그 세계로 넘어갈 때까지. 


 



"정국, 그것이 내 이름."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입에서 반복했다. 그저 잊기 싫어서, 잊기 싫은 마음이 들어서.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자신이 물어보면 안 되는 것에 대한 답을 얻은 것 같아서.







 


 

한편 여주와 정국이 있었던 복숭아 꽃밭에 들어왔던 병사들은 황제가 찾던 도원의 소문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점점 더 깊은 곳을 향했다. 여주가 타고 도망갔던 황실의 무늬가 새겨진 말굽 자국이 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그들의 주변을 감싸던 복사꽃이 거짓말처럼 시들어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마치 누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속임수라도 펼친 것처럼. 다들 어두워지자 허둥지둥 횃불을 켰다. 하지만 역시 자신들이 봤던 것은 다 허상이라는 것처럼, 환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황량한 나무들밖에 없었다. 그 달달했던 향기도, 밝았던 연분홍의 빛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자신들이 단체로 착각이라도 한 거라고 생각이 되어 그들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황실 말굽이 찍혀 있으면 뭐 하는가, 그 어떤 것도 증좌가 없는데. 이런 생각으로 허탈한 발걸음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강한 빛이 사라지고 눈을 뜬 여주가 일순간 깨달았다. 지금 내가 이 자와 함께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 말을 천천히 타고 정국과 여주가 들어오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외지인을 보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특히나 자신들의 도원을 세운 정국이 데려온 여자라, 그래서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수수하게 입었지만 화려했고, 모습은 약간 꾀죄죄했지만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아름다움이었다. 여주가 신기한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그는 여전히 말을 몰 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받으며 도착한 곳은 복사꽃과 벚꽃이 조화를 이루는 궁이었다. 황궁보다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웠다. 황궁보다 규모는 작았으나 어여뻤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휙 뒤를 돈 여주가 정국과 눈을 마주치자, 말을 몰던 그의 손이 뚝 멎고 말도 그 자리에 멈췄다. 의아함이 묻어나는 그에게 귀를 가까이 대라고 손짓을 하자 그가 고개를 가까이 댔다. 향긋한 복숭아 냄새가 코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자연스레 문지기들이 정국을 발견하고 문을 열었다. 붉은색의 기와와 청색의 기와가 곳곳을 꾸미고 있었고, 너머에는 백색의 기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인 것처럼 신성한 기운이 여주의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갔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보는 것만 같은, 목욕을 하는 선녀들을 훔쳐보는 나무꾼이 된 기분이었다. 눈길이 닿는 곳곳마다 신성한 것들을 닮았고, 신성한 기운마저 그녀를 감싸고 도는 건 여전했다. 여주를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마치 그녀를 놀리는 것처럼.


 

"저 궁이... 정국, 음, 당신의 것인가?" 

"제 것이지요. 제 궁이고, 제 나라이고, 제 행복입니다. 또한." 

"또한?" 


 

뜸을 들이던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하려고. 그 누구도 둘 사이를 침입할 수 없게 하고 싶어서, 그녀의 허리를 세게 끌어당긴 정국이 하얀 귓바퀴에 입술을 묻었다. 마치 달콤한 꿀이 귀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 들어찼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지만, 그 행동을 뿌리칠 수 없었다. 무언가에 압박을 당하는 기분이 여주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귓바퀴에 닿는 입술은 꽤나 외설적이었다. 하지만 그 행동을 보고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저 여주 혼자만 뻣뻣하게 굳었을 뿐이었다.



 

"공주의 몸이 저와 함께 이 문을 건너는 순간, 공주는 제 사람으로 맞이할 생각입니다. 후회할 것 같다면 그대로 다시 바깥으로 모셔다 드리지요. 허나 공주는 금방 잡히고 말 것이고, 공주마마 때문에 이 도원은 불에 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발각이 되기 쉽거든요, 공주께서 나가신다면."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것은 필시 제안을 가장한 강요였다. 그에 당황한 여주가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최대한의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저 시간을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은 혼사를 원치 않아 궁에서 나온 것뿐인데, 생판 처음 보는 남자와 혼사를 치르게 생겼다. 미간에 고운 우물이 생겼다. 제 아비를 닮아 미간에 패이는 우물이 똑 닮았다. 손톱을 손으로 뜯으며 침묵을 지키던 여주의 입술이 열렸다. 그 강요에 대한 대책을 내세우기 위해서.



"그건... 서두르지 말도록 하지. 내게 생각할 시간을 줬으면 좋겠는데." 

"공주께 세 달의 시간을 드리지요, 선택하시면 됩니다. 허나 이곳의 세 달과 공주께서 넘어온 세 달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이 곳에서의 세 달은, 당신의 세상에서 삼십 년일 테니."


 

아, 이곳은 아예 다른 곳이구나. 시간도, 삶도 다 다른 곳이구나. 진정한 신선들의 세계구나. 또한 그때 여주는 정국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한낱 인간이 신선들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그것도 신선이 직접 자신이 선택한 인간을 데리고 왔다. 정국이 여주를 데려오기 위해서 직접 마중을 나갔다는 것도, 여주의 앞에 복사꽃을 흘려 보냈다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했다. 이제야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국의 설계 아래에서.
 
 

"한 번 더 환영하지. 나의 도원, 나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내 꽤 너를 오래 기다렸느니라. 그 길고 긴 억겁의 시간 동안, 너 하나만을 바라보고 모든 걸 너 때문에 계획했으니."
 


 

그는 선인(仙人)이었다. 


 

「그곳의 주인은 선인이며, 도원에 사는 사람들 또한 선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홀려선 안 된다. 한낱 인간이 선인에게 홀리면, 영원의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선인은 이미 몇백 년, 아니 몇천 년 전부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직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일 것이니.」












새로 인사드려요! 만약 본 것 같다면, 그 글 주인은 제가 맞습니다!
천천히 오래 보아요. 댓글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또한 제 글이 궁금하시다면 신알신 눌러 주시고, 암호닉은 마음대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제 글이 독자분들께 소소한 행복이 되길. :) ♡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와 진짜 대박,, 이거 대작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것같아요 분명 분량 엄청 긴데 다 읽고 나니까 짧다고 느껴질만큼 재밌어요ㅠㅠㅠ 정국이 설계남 너무 잘어울리고 강요하는것마저 멋잇고ㅠㅠㅠ 다음편 기대할게요!!! 신알신 하고 갑미다ㅎㅅㅎ 기대돼요!!!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독자 줄섭니다... 재밌어요 진짴ㅋㅋ큐ㅠㅠㅠㅠㅠ스토리도 신선하구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아니 이것은 저번에 안쓴다하더니 왓구나!!!!!ㅠㅠ 꼭 다 보겟어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18.27
대작냄새ㅜㅜㅜㅜ뭐야 요ㅠ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87.211
제목보고 뭔가 딱 끌려서 읽게되었는데.. 진짜 대박이예요ㅠㅠㅠㅠ 이글에 뼈를묻겠스미다!! 다음화 완전 기대되욤 ㅠㅠ 기다리겠습니당 작가님 해피뉴이어예요~!!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5
대박,, 정말 대박입니다ㅠㅠ 어쩜 이리 예쁘게 글을 쓰셨는지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6
필력 무슨 일...???ㅠㅠㅠ너무 좋아요ㅠ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피어있길바라] 천천히 걷자, 우리 속도에 맞게2
10.22 11: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존재할까
10.14 10: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쉴 땐 쉬자, 생각 없이 쉬자
10.01 16:56 l 작가재민
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