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이입니다
오늘은 인사를 먼저 하네요
모두들 잘 계셨죠?ㅠㅠ
저는 잘 지내기도 했고 또 여러가지 일이 많기도 했어요
그 중에 제일 큰 일은 독자님들을 찾아뵙지 못했다는 거구요ㅠㅠ
핑계라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그동안 슬럼프라는 걸 겪었습니다
과연 잘 쓰여진 글은 어떤 건가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그렇다면 나는 글을 잘 쓰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과 회의들이 계속해서 밀려왔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말없이 그동안 찾아뵙지 못한 건
정말 제 잘못입니다ㅠㅠ 죄송합니다
사실 이 글도 완전히 완결은 아니구요
갑자기 상이 딱 떠올랐는데 쓰다보니 이게
마치 그 동안 걱정했던게 싹 풀리는 것처럼
술술 적어내려 가지는 겁니다
왜 적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로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나마 빨리 독자님들을 뵙기 위해
짧은 글이지만 염치 불구하고 가져 왔습니다
완결도 아니어서 더 죄송하네요
인사치고는 너무 길었죠?
나머지 내용은 글 밑에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불맠도 없고 가볍기만 하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쿠키몬스터는 왜 가짜쿠키를 훔쳤을까
w. 조이
01 궁금해?
준면은 억울함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요.”
그 짧은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파일을 품에 안은 제가 불쌍하고 처량하기만 했다. 대체 왜. 난 잘 한다고 했는데, 뭐가 문젠 건지도 몰랐다. 울상인 준면이 고개를 숙이고 과장실을 나오는 순간까지도 자리의 남자는 여전히 쌀쌀맞은 표정이었다.
“또야?”
“........”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준면에 백현은 대신 푹- 한숨을 쉬었다.
“오과장 그거, 유독 형한테만 그런단 말이야. 뭔 웬수라도 진 것처럼.”
“..차라리 그거면 낫지.”
준면은 힘없이 걸어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파일을 책상 위에 툭 던져놓았다.
미운 털이라도 박힌 거면 뽑아버리면 그만이다. 준면은, 그래 제 아무리 쌀쌀맞고 얼음장 같은 오과장이라지만 그도 이 세상 사람인 이상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상대는 받아주겠지 생각했다. 물론,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상사에게는 숙이고 기는 것이 회사생활의 일반적인 원칙인 것을. 그닥 남들과 다르지 않은 준면도 충분히 오과장에게 그럴 용의가 있었다.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편한 회사생활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그래서 이번엔 또 뭐래?”
“뭐라긴.. 맨날 똑같지.”
“어우.. 진짜 독하다 독해.”
이유도 모른 채 당하는 괴롭힘은 해결점이 없어 더 절망적이었다. 아으 진짜.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제 아무리 먼저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던 준면이었지만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상황은 도무지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원인이라도 알아야 사과를 하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머리를 한번 쥐어뜯은 준면이 의자 위로 몸을 아무데나 던졌다. 의자의 철봉다리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잠시 사무실 내부에 울렸다.
“그래서, 다시 할 거야?”
“그럼 어째. 해야지.”
와아.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이유도 한번 안 가르쳐 주냐. 백현은 치가 떨린다는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정말, 오과장은 그 많은 업무들을 리턴 시키는 동안 단 한 번도 준면에게 이유를 알려준 적이 없었다. 독한 놈. 세상에 독해도 그런 독한 놈이 없어. 이제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백현에 준면은 펑펑 울어버리고만 싶었다.
-
세훈이 준면의 상사가 된 건 한 달 전 일이었다.
젊은 과장이 온대. 뭐야. 갑자기 웬 과장. 지금 있는 박과장님은 어쩌고? 백이라도 있대? 아니아니, 원래 다른 지점에 있던 사람인데 이번에 크게 한 건 올려서 본사로 옮겨진 거라던데?
과장 치고는 어린 나이.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음. 얼굴 잘 생김. 가끔 일에 있어서 냉정해지긴 하나 대체로 친절하고 예의도 바름. 집안도 꽤 산다고 과거 그의 동창이었던 사원이 사실을 털어놓았던, 이 엄청난 스펙의 남자가 바로 이번에 새로 발령을 받은 오세훈 과장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이러한 정보통 여사원들의 지대한 관심들을 뚫고 올라선, 그녀들의 최대 공통분모.
그래서, 여자친구는 있대?
“하아..”
일단 대답은 NO! 였다. 잘생기고 능력 있고 키도 크고 신체조건도 탁월한, 이 본사의 뉴 페이스 오과장은 모든 걸 다 갖췄음에도, 단 하나, 없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여자친구였다. 굳이 찾는 단 하나의 흠이라면 흠이었던 것이다. 아니다, 오히려 더 플러스 점수가 됐으려나? 주인 없는 보석은 확실히 누구라도 탐낼 만 했다.
혹시 잠자리가 별로라던가 손버릇이 안 좋은 것 아니냐 는 의문들이 종종 여사원들의 화두거리로 올랐다. 아니면 관계 때 입버릇이 별로라던가. 어우 진짜 그건 좀. 왜? 난 좋은데? 요즘 시대에 혼전순결을 외치는 사람이 어딨냐며 그녀들의 말은 낮과 밤을 오가길 꺼리지 않았다.
그런데 또 왜, 원래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는가. 온갖 근거 없는 추측성 루머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온 회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일단 그 슈퍼루키 떠오르는 일등 신랑감, 오과장 오세훈이라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과연. 신데렐라 스토리는 멀리 있는 게 아니야. 누구든 온달왕자를 키운 평강공주가 될 수 있어. 오과장의 앞날이 앞으로 부장, 더 나아가 어쩜 실장까지도 탄탄대로 급승진코스가 쫙 깔려 있을 거라는 여사원들은 너도나도 세훈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과 관리를 반복했다. 제 아무리 그냥 넘어가긴 찝찝한 루머들이 들려오더라도 말이다.
확실히,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보이는 것에 비해 먼저 잊혀지기 마련이다.
여기서 잠깐. 이번엔 위의 절망 가득한 한숨을 한번 따져보자.
김준면, 한 달 전 세훈의 직속 과원이 된 회사원. 일 년 전에 입사하여 이제 승진의 기회만 노리고 있는 성실하디 성실한, 심지어 너무 성실해서 미련하기까지한 평범한. 음 그래. 그런 남자.
남자.
그래 나 남자다. 이렇게 밖에 소개할 말이 없다. 하다못해 뒤에 유유라는 이모티콘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준면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굳이 하나 말하자면 여사원들 못지않은 곱상한 외모? 가느다란 다리? 솔직히 말하면 쪼오끔, 여사원들보다 아주 쪼끔 더 나았다. 외모적으로 말이다.(쪼끔이라고 하자. 아님 여자인 내가 너무 슬프니까.)
아무튼 그런 그가 이토록 깊은 한숨을 짓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럼 준면씨 수고해요.”
“아.. 네.”
네는 무슨 네. 아아아아 나도 고기 먹고 싶어. 고기!
준면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 타자를 쳐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상 안에 가려진 두 다리는 심통을 숨기지 못하고 바닥을 쿵쿵 발로 차댔다. 나도 고기 먹고 싶었는데.. 오늘 회식자리가 무려 소고기 라는 것에 준면은 며칠 전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고기고기 소고기. 내 사랑 소고기. 진짜 못 먹은 지 엄청 오래된 나의 사랑스런 소고기.. 그렇게 한참을 울상 짓다 결국 준면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겠거니 하고 그만 포기해 버렸다. 흑.. 고기.. 축 쳐진 그의 어깨 위로 손 하나가 얹혀졌다.
“얼마나 남았어?”
옆자리에 앉는 백현이었다.
“..몰라.”
“........”
“이유나 알아야 예상이라도 하지.”
“아 진짜.”
“휴우..”
백현의 말에 준면은 또 입술을 삐죽였다.
그렇다. 오늘도 준면은 그 악마 같은 오과장의 리턴과제를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잘못된 부분이 없는데, 준면은 이번 서류만 벌써 네 번째 리턴을 당했다. 그건 백현이 보기에도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준면이 제출한 서류는 일단 오타도 없고 계산 부분은 물론이요 서류형식 또한 맞게 잘 작성돼 있었다. 내용 또한 확실했던 건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일단 세훈이 그토록 난리를 쳐대니 처음부터 준면은 온 사력을 다해 서류를 작성했기도 했다. 그것도 하나의 이유라면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 이 정도로 완벽한 내용인데. 오히려 백현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잘 만들어져 있어, 백현은 화면 위로 떠오른 것을 보며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튼 백현이 넌 먼저 가.”
“..있다 올 수는 있겠어?”
“노력해 봐야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뒤에서 오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삐걱. 의자소리와 함께 그는 제 자리 옆 옷걸이에 걸린 외투를 걸쳐 입었다.
“그럼 먼저 갈게. 있다 연락해.”
눈치를 본 백현이 준면에게 손으로 전화기를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그에 준면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모니터를 주시했다.
“네. 다들 이동하시구요. 장소는 알고 계시죠?”
준면의 등 뒤로 오과장의 아니꼬운 목소리가 들렸다. 칫. 네네. 알고 있고 말구요. 일주일 전부터 그렇게 광고를 하셨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준면은 댓발 튀어나온 입술을 하곤 목을 삐걱삐걱 앞으로 기울였다. 영락없이 잔뜩 비꼬고 있는 표정이었다.
“아 그래요? 그럼 수미씨는 제 차로 가기로 하고, ...준면씨?”
“네, 네네?!”
준면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퀴달린 의자가 뒤로 밀려나면서 뒷자리 사원의 의자와 쿵 하고 부딪혔다. 아 뭐야. 재수 없게 지금 차도 있다고 뻐기는 건가 하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요. 혹시 뭐 내 욕이라도 했어요?”
“아, 아뇨! 아니 그럴 리가요! 저는 오과장님 욕,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요?”
아 진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없다는 건 또 뭐야! 요상하게 찡그려진 세훈의 미간에 준면은 쪽이 팔려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어이없는 단어선택이라니!
“그, 그럼요!”
그래도 아부는 계속 되어야 한다. 제가 왜 과장님을 욕하겠어요. 전 정말 오과장님이 너무나도 좋더라니까요. 이전 박과장님보다 훨씬 더. 아, 아니 그렇다고 박과장님이 싫었다는 건 아니구요. 그만큼 오과장님이 좋다는.. 기어라. 기는 자에게 복이 오나니. 준면은 영혼 없는 멘트를 내뱉으며 속으로 몇 번이고 회사원들을 위한 문구를 계속 새겼다.
“뭐 그렇다구요. 하하.”
“흐음..”
세훈은 서류가방을 든 채로 팔짱을 껴 보였다. 아까 그 수미라는 여직원은 이미 사무실을 나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였다. 결국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사무실 안, 업무를 마저 하기 위해 남은 준면과 그 앞에 서 있는 상사 오세훈 만이 서로 대면하고 있었다.
“준면씨.”
“네?”
준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훈을 쳐다봤다. 혹시 제가 하는 말이 다 아부라는 걸 알아챈 걸까. 알더라도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제발 저 입술이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걸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며 준면은 침만 꿀떡 삼켰다. 순간, 헉.. 아니면 혹시 백현이와 했던 말을 들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인가? 아님 어제? 아씨 대체 언젠 줄 모르겠는데. 휴게실에서 했던 말이라도 들은 건가 싶어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준면의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 망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얼굴이 찡그려졌다가 울상을 지었다가 나중엔 낭패라도 당한 표정으로 바뀌어갔다는 걸 아마 본인은 모르는 듯 했다. 세훈은 한참을 그 얼굴을 쳐다보다가 나중에서야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에요,
“뒤에 컴퓨터 꺼졌는데.”
“........네에?”
저게 무슨 말이지 도 잠시. 준면의 고개가 삐걱삐걱 기름칠이 안 된 기계처럼 돌아갔다.
“으악!”
“..아마 오늘 회식에 참석하긴 힘들겠죠?”
준면이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할 때 세훈은 여유롭게 옷을 여미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이..이게 다..
‘저 악마 같은 오과장 때문이야!!!!!!!!’
의자 바퀴에 걸려있던 전선을 보며 준면은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저 놈의 오과장만 없었으면 이 놈의 다시 쓰는 서류도 없었을 거고, 지금까지 컴퓨터 작업을 할 일도 없었을 거고, 뽑힌 코드 때문에 절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제발.. 제발.. 컴퓨터야.. 임시저장이라도 해놓았길 바라.. 제발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며 준면은 두 손을 제 가슴 앞에 간절하게 그러모았다. 그리고 코드를 다시 꽂아 켠 컴퓨터는,
“....흑...”
깨끗하게 리셋되어 있었다.
-
02 대체 나한테 왜 이래!..세요..
준면은 지금 먹고 있는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값비싼 생선살, 조그마한 하얀 쌀밥,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연두색 고추냉이 소스는 분명 평소 그가 없어서 먹지 못하는, 좋아하는 메뉴 top3에도 드는, 그 이름도 찬양스런 초밥님 되시겠다. 그런 초밥님이 현재 준면의 앞에 몇 개고 놓여있었다.
“왜 그래요. 스시 싫어해요?”
아뇨.. 엄청.. 엄청엄청 좋아하는데요.. 준면은 대답 없이 고개만 절래절래 저었다. 애써 초밥을 향해 다가가는 젓가락이 마치 한겨울 사시나무 떨 듯 덜덜덜 떨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준면은 초밥을 겨우 제 앞 접시에 가져다 놓곤 눈치를 보았다.
이름 오세훈. 준면의 직속상사. 일명 오과장으로 불리며, 특기는 쌀쌀맞게 굴기, 취미는 준면 괴롭히기인 아주 지독하고 악독스런 인간이 지금 준면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우리 사랑스런 초밥님을 사이에 둔 채. 그 모습을 확인한 준면은 또 속으로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다. 릴렉스 릴렉스. 심장아 조용해야지. 이러다 오과장한테 들키면 어쩌려고. 긴장과 함께 등 뒤로 땀까지 흐르는 기분에 준면은 혀를 내어 입술을 적셨다. 마침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띵동.
“네. 뭐 필요하신 것 있으세요?”
“여기 물 좀 주세요.”
준면이 그러거나 말거나 세훈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마음껏 초밥을 즐겼다. 필요한 것이 있음 스스럼없이 종업원을 불렀고 여러 가지 생선이 덮힌 초밥, 군함, 그리고 밑반찬들까지 과하지 않는 선에서 골고루 먹고 맛보았다. 특히 밑반찬으로 나온 달걀찜이 맘에 들었는지 종업원에게 하나 더를 부탁하기도 했다. 그녀는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이었지만 세훈의 웃는 얼굴에 그럼 하나만 더 준비해보겠다며 결국 작은 종지그릇에 예쁘게 쪄진 달걀찜을 가지고 왔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또 방금 물을 가지고 다가왔다.
“그럼. 더 필요한 게 있음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가볍게 맞인사를 마친 세훈이 여자가 떠나자 물을 제 컵에 따라부었다.
“근데 준면씨는 왜 안 먹어요?”
“아니에요! 저 지금 먹고 있는데..!”
찔린 준면이 급하게 젓가락을 놀려 아까의 초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아 소스 안 찍었는데! 평소 고추냉이를 조금만 푼 간장소스에 찍어먹던 그였는데 급한 마음에 아무런 것도 찍지 못한 채 그만 입 안에 넣고 말았다. 으 어쩔 수 없지.. 대신 젓가락으로 소스를 몇 번 찍어 혀 위로 갖다 댔다.
“준면씨는..”
오물오물 입안에서 초밥을 씹던 준면은 세훈의 목소리에 눈만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그 안은 낯선 세훈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친구가 백현씨 밖에 없어요?”
“켁.. 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은 준면이 힘겹게 입에 든 것을 목 뒤로 삼켰다. 내 친구를 오과장님이 왜 챙겨요. 게다가 백현인 동갑도 아닌데. 친구는 아니고 그저 친한 동료 형동생 사이일 뿐인데 오과장은 준면과 백현이 동갑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는 백현의 나이도 제대로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백현이 아닌 준면의 나이를 모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이쪽이 더 일리가 있었다. 오과장은 자신을 끔찍이도 싫어하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과원들 사이도 제대로 모르는 과장이 있냐며 준면은 조금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아닌데요. 백현인 그냥 친한 동생이에요.”
“아. 그래요?”
“그리구요. ...저 친구 많거든요? 대학친구들도 있구요 또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도 아직 연락하는 애들도 있어요. 게다가 어릴 때부터 친한 동네 친구도 있,”
“아니 잠깐만요. 그 말이 아니라,”
결국 참지 못하고 한참 퉁퉁거리며 말하는 준면에 세훈은 그 말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아니라니. 그게 아니라면 무슨 말이란 말이지? 준면은 미간에 약간 주름을 지은 채 세훈을 쳐다봤다.
“회사에서 친구를 말한 거예요. 항상 점심도 둘이서만 먹길래.”
“아.”
영구 박 터지는 소리를 낸 준면이 입을 벌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 말이었구나. 난 또 진짜 내 친구들을 말하는 줄 알고. 그제야 수긍을 한 준면이 세훈의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했다.
“그냥. 같은 과이기도 하구요 또 나름 잘 맞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흐음.. 그래요? 백현씨랑 잘 맞는다니..”
세훈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
“그 분은 좀 촐싹 맞던데.”
“아.. 음, 좀 그렇긴 해요. 백현이가 좀 정신이 없긴 하죠? 아..하하..”
이 멍뭉이 시키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른 거야?! 대체 뭘 했길래 온지 한 달 밖에 안 된 세훈이 백현의 본 모습을 뙇 꿰뚫은 거냐며 준면은 백현을 향해 길게 타박하고 싶었다. 그러다 며칠 전 자신이 참석하지 못한 회식자리가 떠올랐다. 아오 이거이거 분명 그 때 그런 거구만! 회사에서는 항상 둘이 붙어다녔기에 백현이 촐싹거렸다면 준면이 목격하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뭐.. 본질은 착한 애니까요.”
픕. 그런 것 같긴 하더라구요. 작게 웃은 세훈이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젓가락을 놀렸다. 그 모습이 준면의 눈엔 순간 마치 애늙은이처럼 비춰줬다. 왜 저렇게 웃질 않지? 소리 내 웃어버렸던 세훈이 이내 마치 실례를 했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세훈은 사무실에서도 잘 웃지 않았다. 과원들이 잠시 점심시간에 모여 실없는 소리를 할 때도 심지어 윗사람이 농담을 던지고 여사원들이 그에게 추파를 던질 때도 세훈은 그저 무표정이나 입술만 약간 미소 지은 채 표정을 일관했다. 그래서 준면은 세훈이 더 싫었는지도 모른다. 매번 딱딱한 표정으로 다시, 다시 해오세요, 말 안 해도 알겠죠 를 말하던 그 표독스런 입술을 말이다.
“..그럼 오과장님은요?”
“네?”
“오과장님은 친구 없으세요?”
준면의 물음에 세훈은 손가락으로 턱 끝을 몇 번 쓰다듬었다. 글쎄요. 뭐 지금은 없긴 하네요. 잠시간의 고민 후에 세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음에 답했다. 준면은, 어쩌면 세훈이 혼자 먹는 점심에 질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이렇게. 과서 중에서 제일 만만한 자신을 향해 같이 점심 먹지 않겠냐는 말을 했고 결과적으로 제가 세훈과 함께 이렇게 초밥집에 앉아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구나..”
“왜요. 준면씨가 제 친구라도 해주려구요?”
“네..네?!”
“...뭐야. 농담인데.”
아니 뭐 이런 실없는 농담이 다 있대! 준면은 선덕선덕해진 가슴을 감추며 애써 제 앞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들이마셨다.
“하긴. 제가 더 어리긴 하죠?”
“네?”
그건 또 무슨..
“제가 준면씨보다 한 살 더 어리다구요. 설마, 몰랐어요?”
헐 대박. 진짜 대박대박대박. 와 헐.. 준면은 곧 턱이 빠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입을 벌렸다. 아니 와 어린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세훈이 저보다 동생일 거란 생각은 단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준면은 표정을 숨길 생각도 못한 채 충격에 빠진 제 머릿속을 정리하기 바빴다. 와.. 대박.. 나보다 어렸다니.. 아니 그럼 뭐야. 나 이때까지 동생뻘 되는 애한테 맨날 쭈구리고 아부했던 거야? 샐샐 웃으면서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어대고? 최고기록 여섯 번 리턴이라는 그 고난을 겪으면서?! 멘붕에 빠진 준면은 당장 이 자리에서 입술을 깨물고 제 머릿칼을 두 손으로 휘어잡고 싶었다. 아 머리야!!! 진짜 이 악마같은 오과장!!!
“음. 이제 다 먹은 것 같은데. 아 달걀찜 먹을래요? 확실히 두 개 먹으려니까 좀 많은 것 같긴 해요.”
지금 달걀찜이 문제냐!! 라고 말하고 싶었던 준면은 순간 세훈을 표정을 확인하곤 조용히 숟가락을 손에 쥐었다. 뭐야.. 갑자기 그 표정은.. 오금저리고 얼어붙..을 뻔 했잖아... 강렬한 오과장 특유의 눈빛어택에 준면은 오늘도 쭈구리가 되어 세훈의 말을 들었다. 보들보들한 달걀찜. 노랗고 부드러운 것은 숟가락 위에 떠져 곧 준면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맛있어요?”
“...네.”
세훈이 동생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준면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세훈에게 높임말을 썼다. 그래 과장이니까 상사니까 높여주는 건 당연한 거라며 혼자 위안을 삼았다.
“그럼,”
하지만 다음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못했다.
“이거 먹고 또 열심히 업무해요? 점심시간 전에 낸 것도 리턴-”
아오! 저 놈의 오과장! 진짜 악마도 저런 악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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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김준면에게도 패기란 존재하는가. ......과연.
“진짜 죽을 것 같아..”
이것은 곧 또 한 번 최고기록갱신을 눈앞에 둔 어느 직장인의 한탄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형.. 힘내..”
모두가 예상하다시피 이 시대 최대 불운의 주인공, 회사원 김준면이었다. 아 왜.. 오과장은 왜 맨날 나가지고만 난리야.. 꺼이꺼이 이제 소리를 내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 표정의 준면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본 백현이 안쓰러움에 준면의 등을 두어 번 쓸어내렸다. 아 진짜 어떡하냐 우리 준면이형.
백현은 잠시 오늘 하루의 광경을 떠올렸다.
언제나처럼 밝은 얼굴로 출근하는 준면이 형. 지각 한 번 한 적 없던 준면은 대신 매번 세이프를 외칠 만큼 턱걸이 출근을 밥 먹듯 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뛰어오는 건지 항상 한쪽 손등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사무실에 들어왔다.
일과의 시작은 컴퓨터를 켜는 걸로 시작된다. 준면은 파일이나 유에스비 정리 등 업무 준비를 마치고 대충 마실 물이나 커피를 책상 한 귀퉁이에 마련해 놓았다. 오늘의 선택은 물. 그 일련의 과정이 끝나면 사무실 안으로 백현과 준면의 상사, 오과장이 출근을 한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 준면과 다르게 땀 하나 흘리지 않고 냉철한 눈빛과 머리스타일을 장착한 그는 나 차 있는 남자요 하고 광고를 하는 듯 하다. 그 모습에 매일 아침 준면의 과 여사원들은 뿅 하고 오과장한테 반해버린다. 작게 미소를 띠운 채 자리에서 일어난 과원들에게 인사하는 얼굴이 아마 자기도 저의 인기를 실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여기까지는 아주 평범한, 또 아주 평화로운 여느 회사의 내부 모습이다.
...하지만.
“다시 해오세요.”
“다시.”
“다시요.”
“.......”
“아시죠?”
“두 번 말 안해요.”
‘대체 뭐가 문제인 거야!!!!!!!’
백현은 오늘도 휴게실에서 준면의 외침을 들었다. 소리 없는 외침이었지만 마치 안면붕괴라도 일어난 듯한 표정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더불어 머리카락을 한 없이 쥐어뜯는 손길도. 쉬는 시간만 되면 커피를 마신다는 핑계로 피난 오는 남사원 휴게실은 사실 준면의 신세한탄 상담소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이미 이 회사 남사원들 사이에선 오과장의 악명이 높아져있을 정도였으니까. 준면의 어깨 위로 힘내라는 의미가 담긴 수많은 손길이 오갔다.
아무튼. 백현은 사실, 이 반복되는 하루가 조금, 아주 조금 지루했다. 물론 진실로 아주 조금이다. 이유도 몰라 원인도 몰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같은 대사, 같은 표정, 같은 상황. 게다가 같은 반응. 그 일련의 과정이 공장 돌아가듯 뻔히 보여 자신은 이제 딱히 준면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어차피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고 하루하루는 반복될 거고. 그럼 또 리턴 당할 게 뻔한데 뭐하......
“헐... 형.”
“......?”
“형형! 이러면 어때?!”
갑자기 백현이 준면을 흔들어 일으켰다. 간만에 좋은 생각이 난 것이었다. 뭔데.. 금새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 들리고 백현을 향해 뭐냐는 듯 물었다.
“그러니까.. 아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이건 내 생각인데..
-
백현의 아이디어는 꽤 그럴싸했다. 역시 잔머리 대마왕, 아부의 신, 그 이름도 유명한 상사님의 개, ‘변똥강아지’ 라 부를만 했단 말이다. 그러나. 이 후달리는 심정은 어찌하란 말이오..! 준면은 애초 백현과 달라 얼굴에 철판 깔고 크롬하트를 장착하지 못한 여리디 여린 유리심장이었다. 요즘은 종이심장이라고도 부른다지. 준면은 목구멍 너머로 침을 꼴깍 삼켰다. 아랫입술을 꾹 깨문 앞니가 그의 다리와 함께 후들후들 떨렸다.
“흐음...”
준면은 지금 일종의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마디로, 배 째라! ..아님 말고! 모름.. 더 좋고! 이름하야 ‘그 서류가 그 서류란 말이오’ 작전! 빠밤!
작전명은 변똥강아지 동생이 지었다.
암튼.
앞으로 다소곳이 모은 손을 꼼질꼼질. 무슨 소리라도 날라치면 온 몸을 흠칫흠칫 떠는 우리의 준면씨. 그는 잔뜩 긴장한 채로 세훈의 확인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일곱 번째! 오늘 과연 신기록 달성의 꿈을 이룰 것인가! 라는 멘트가 머릿속 한구석을 떠돌아다녔지만 지금 준면의 마음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준면씨.”
“네..네!”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리턴 서류제출! 백현이 준면에게 제안한 것은 바로 리턴 당한 서류를 그대로 세훈에게 가져가는 것이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말이다!
아아 제발.. 제발 몰라라. 결국 준면은 진짜로 하나도 수정하지 않은 서류를 든 채 세훈을 찾았다. 조금은 치밀하게 여섯 번째 리턴 당한 그 서류가 아닌 다섯 번째의 서류를 손에 쥐었다.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 없는 내용이기에 아마 눈으로 쓰윽 읽고 마는 세훈은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백현은 그냥 최근 것을 그대로 가져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유리심장 준면은, 더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경로를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
“.......”
아으! 그냥 다시 수정해 갈 걸 그랬나..! 아무 미동도 없는 침묵은 고등어 조리듯 심장을 잔뜩 조린 준면을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안절부절 못한 발가락들이 준면의 구두 안에서 셔플댄스를 춰댔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래,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 털어놓자! 자수하여 광명 찾자 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렇게 제가 먼저 저질러 놓곤 뭐 마려운 똥개마냥 –백똥강아지 아닙니다- 도둑 제 발 저리듯 구는 것 보단 준면은 그게 훨씬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런 말투로 한마디 던져놓은 준면이 세훈의 말을 기다렸다. 세훈은 여전히 준면이 제출한 서류를 살피고 있었다.
“음- 이거 말이에요.”
“네..!”
네! 그렇습니다! 이거 사실 다섯 번째로 가져갔었던 그 서류가 맞아요! 오과장님이 보고 인상 쓰셨던 바로 그거에요! 마침내 입을 연 세훈에 준면은 고개를 잔뜩 조아렸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은데 이렇게라도 해야지 어쩌겠냐는 심정이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과장님! 제가 미처 그 때의 표정을 기억해내지 못한지라..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지금 바로,
“좋네요.”
수ㅈ.. 네? 머릿속 외침을 이리저리 정리하던 준면이 멍한 표정으로 세훈을 쳐다봤다.
“.......예?”
“좋다구요. 이만 가서 일 보세요.”
준면은 상체는 숙이고 머리만 위로 까딱 들어 올린 우스꽝스런 자세로 서있었다. 이..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지금.. 설마 나 패쓰 된 건가? 여전히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 준면은 입만 턱 벌어져 마치 어항 속 금붕어를 떠올릴 듯한 모습이었다. 그 사이 서류를 책상 한 귀퉁이에 놓은 세훈이 이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뭐예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 아니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요.”
“아닙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고개를 푹 숙인 준면이 과장실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와이씨! 형 대박! 잘 했어! 내 말이 맞지!’
백현의 소리 없는 오두방정이 준면을 맞이했다. 이미 과장실을 무사히 빠져나와 그 웃기지도 않는 광경을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면은 여전히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래서 지금 이게 다 끝난 거라고? 정말? 나 다시 안 해가도 된다고? 나.. 나 이제 정말 다음 업무 봐도 되는 거라고?!!! 감동으로 눈이 그렁그렁 해진 준면이 입가를 손바닥으로 감싼 채 망부석처럼 우뚝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지난 이틀간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와.. 진짜 나..
“백현..!”
“아 준면씨.”
으갹! 준면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들썩였다.
“아윽..”
“어어? 오과장님! 헉..”
“으..”
“괜찮으세요?!”
갑작스런 어깨터치와 목소리에 깜짝 놀란 탓이었다. 바로 등 뒤에서 준면을 불렀던 세훈은 날아오는 준면의 뒤통수에 턱을 완전히 박았다.
“어으.. 어떡해.. 진짜 어떡해요..!”
턱을 감싼 손을 준면이 두 손으로 잡아 내리자 시뻘겋게 물든 피부가 드러났다. 아니 얼마나 세게 부딪쳤으면! 사실 준면도 정수리 부근이 얼얼한 것이 엄청나게 세게 갖다 박은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내가 아픈데 과장님은 얼마나 아프겠어! 준면은 제가 더 울상이 되어 세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과장니임...”
“으.. 괜찮아요.”
“.......”
“참을 만 하니까... 그만 좀 떨어지세요.”
떨어지라는 세훈의 말에 그제야 준면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나 풀리더니 또 다른 게 꼬이네..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러냐.. 진짜 되는 게 없다 싶은 준면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푸우- 한숨을 쉬었다. 세훈은 숙여진 준면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보면서 잠시 제 턱을 더 문질렀다.
“다른 게 아니라요.”
“네..”
힘없는 대답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러다 준면은 그제야 정신을 퍼뜩 차렸다. 혹시 세훈이 아까 그 서류를 알아채기라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왜! 줬다 뺏는 게 어딨어! 한번 고 면 못 먹어도 고 라고! 이제 와서 다시 리턴이라느니 그런 소리 하면..! 간절하게 눈빛으로 외쳤다.
“있다 박부장님께 한번 다녀와 줘요.”
“아.. 네? 박부장님요?”
“네. 사실 부탁한 게 있는데 아마 가면 바로 주실 거예요. 한번만 부탁할게요. 괜찮죠?”
어.. 뭐 네. 생각보단 간단했던 내용에 준면은 금새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세훈이 말한 박부장은 얼마 전 세훈이 과장으로 들어오면서 한 단계 승진이동한 준면의 지난 상사였다. 가면 바로 주실 거라니. 그럼 그냥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거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 준면은 세훈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리고 올 때 커피도 한 잔 사오세요.”
“커피요?”
준면은 미간에 주름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 제가 듣기로는 준면씨가 남사원 휴게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한다던데.
“제가 언제 한번 가보려 했는데 이상하게 거기만 가면 회사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째려보더라구요. 이상하네. 처음 보는 얼굴이던데. 혹시 나를 아나 싶어서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구. 준면씨는 이율 알아요?”
“.......”
아뇨아뇨! 전 모르는 일인데요?! 저기 커피는 왜.. 라고 물으려던 준면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절래절래 저었다. 간절하고도 또 엄청 불쌍한 표정으로다가 말이다. 그래 찔리는 게 있으니 아무 말을 못하는 거다. 그 모습을 본 세훈은 그제야 준면을 향해 추궁하듯 숙여 내렸던 고개를 다시 원위치 시켰다. 그래요? 준면씨도 모르는 구나. 준면은 뒤로 밀려난 머리를 다시 되돌리며 고개를 여러 번 세차게 흔들었다.
“저.. 어 그럼 지금 당장 다녀올까요?!”
“아뇨. 그럴 필욘 없는데.”
“아닙니다! 지금 당장!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 준면이 잽싸게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이게 뭔 일이야! 싶어 등 뒤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준면은 저번에 느꼈던 예상이 딱 맞았다는 걸 그제야 깨닫고 있었다. 분명 오과장이 제가 한 욕을 들었음에 틀림없었다. 아오! 입조심 좀 할 걸! 회사라는 아주 밀폐되고 제한된 공간에서 누군가의 욕을 쉼 없이 한다는 건 곧 당사자에게 그 말이 들어갈 확률이 99.9%에 달한다는 걸 왜 그동안 생각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자신의 사무실에서 한참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준면은 등이 서늘한 느낌에 몇 번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복도를 걸었다.
사실, 안 그래도 세훈은 그가 꽁무니 빼듯 후다닥 달아났던 사무실 입구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짝다리까지 짚은 채 말이다. 한쪽 팔을 옆구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은 아까의 턱을 또 문질거리고 있었다. 눈이 가느다랗게 접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백현은.
그래, 여기서 백현이 왜 나오나 궁금할 거다. 그는 어제까지만 해도 제가 했던 말들을 모두 주워 담아 버리고 싶었다. 백현은 사실, 저는 세훈을 보면 죽일 듯이 째려보곤 한다며 다른 사원들 앞에서 종종 갖은 뻥을 치곤 했던 뻥쟁이였던 것이다. 회사에서 알아주던 백똥강아지가 알고 봤더니 둘째가라면 서러울 뻥쟁이라니! 내가 이 정도야! 남자는 으리! 으리으리한 이 변백현 님께는 제 아무리 무서운 오과장도 전혀 무섭지 않다구! 이렇게 온갖 폼은 혼자 다 잡던 그 변백현, 그래서 지금 그는 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
그 넓디 넓은 어깨를 화다닥 좁히고 목을 접어 넣어 컴퓨터 화면만 주구장창 째려보는, 한낱 쭈구리가 되어 있었다. 조용히 오과장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참 뭐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볼품없다. 에잇. 이 못난 놈. 준면이한테 꼼수나 가르치고 맨날 뻥이나 치고 다니고. 쯧쯧. 어휴... 그러니까 준면아. 한마디로,
넌 그냥 아무 잘못이 없었다. 이 말이야.
....우리 불쌍한 준면이...
--
안녕하세요
내 사랑하는 독자님들
모두 잘 지내셨는지ㅠㅠ 다시 한번 안부를 묻네요
저도 원체 인티에 기생하는 독방징이라
독방을 자주자주 둘러보는데요
팬픽의 정석 사제물이나 플요아가 언급된 걸 보면
기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독자님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 거니까요
그래서 다시 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또 쓰차에 걸려버리는 바람에;
좀더 늦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어요
플요아는 제가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완결낼 거구요ㅠㅠ
응원해주시는 그 한마디한마디 잘 읽고 있으니까
독자님들의 그 한마디를 위해서라도 끝까지 다 쓰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휴 이러다 글보다 여담이 더 길어지겠네요
그럼 여기서 이만 줄일게요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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