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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경수







천지모 :: 

이 세상(世上) 끝날 때까지 계속(繼續)되는 사모(思慕)의 정








w. 애솔나무















 




 아침 안개가 유난히도 짙었다. 엊저녁 아버지의 말씀으로 인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나를 보필하던 아이를 첩으로 삼겠다던 목소리에서는 탐욕이 흘러 넘쳤다. 잠이 들기 전 머리맡에 앉아 심청전을 읊어주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나는 느꼈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니 살며시 행랑채로 도망치듯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가 새벽 하늘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한참이고 서성였다. 결국 미련에 이기지 못하고 별당을 나섰다. 지당(地塘) 앞에 주저앉아 목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화(花)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지당물에 비추어 지는 얼굴이 엉망이었다. 작은 어깨를 잡고 달래어 주려 뻗었던 손을 거두기를 수 십번, 결국 나는 두어걸음 뒤로 물러나 눈물을 몇번이고 훔쳐내는 화의 작은 손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나는 네가 이 곳으로 오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구나. ”




 겨우내 한 첫 마디었다. 내 목소리에 울음을 멈추고 일어난 화가 놀란 눈을 하고 돌아보았다. 동그랗던 눈이 퉁퉁 부어올라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단 일초도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어 화에게서 등을 지고 섰다. 두어번 목을 가다듬자니 목구멍에서 울음이 울컥 하고 튀어 나올 것 같았다. 도련님…. 화가 나를 불렀다. 꽃잎이 흐드러 지던 그 날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주춤 거리는 발소리에 따라 한걸음 물러났다. 나의 서모(庶母)가 될 몸이 아니더냐, 더이상 다가오지 말라.




“ … 그리울 것입니다. ”




“ 무엇이 그리울 것이란  말이냐. ”




“ 별당채가 그리울 것입니다. ”




“ … …. ”




“ 서책을 읽어 드리던 그 자리가, 그리울 것입니다. ”


 

  

돌이키기엔 너무도 늦어 버렸다. 처음 만나던 그 날의 기억이 새녘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작게 피어난 초롱꽃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수줍은 듯 옅게 피어나 우리 둘을 바라본다. 아쉬움이란 감정이 나의 팔을 이끌어 너를 잡도록 보채었다. 가만한 새소리를 받아 못 속에 우리 둘의 그림자를 던졌다. 마치 그 날을 꺼내라는 듯, 잔잔한 수면 위 연잎 위로 올려 놓아 보라는 듯.









***









 아침부터 소란스러움이 나를 깨웠다. 어머니의 울음 소리 또한 그 속에 섞여 있었다. 답답함이 고여 썩어버린 한숨이 나왔다. 불효라고 한다면 불효이다. 찢어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차마 어머니의 손을 잡아 드릴 수 없었다. 나의 마음이 이토록 복잡하여 추스리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위로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멍하니 앉아 문 밖의 활기를 듣기 힘들어 억지로 서책을 폈다. 대학(大學)도 중용(中庸)도 아닌 ‘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 ’ .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으로 인해 목숨을 끊어 연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왠지 화와 나의 사이를 뜻하는 것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초례상을 준비하기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소리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휘저었다. 곧 초행이 시작 될 것이다. 아버지의 웃음 소리와 종놈들의 큰 목소리, 초행길이 무사하길 빌며 푼주에 물을 담아 그 위에 바가지를 띄워 놓고 촛불을 켜기 바쁜 소리가 귓전에 맴돌았다. 별당을 나서 어머니가 계신 안채로 들어서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채 전체를 흔들 만큼 울렸다. 우습게도 어머니는 속곳 차림만 한 채로 아이처럼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울고 있었다. 장자인 나를 보필하던 계집종도 모자라 나보다 두해 위의 아이라 하여 어머니께서 노발대발 하신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일으켜 앉혔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 백현아, 네 아비가 너의 혼삿길을 막으려 작정을 하였나보다. ”




“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




“ 어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을 저지른단 말이냐…. ”




“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이러시면…. ”




“ 뭐 좋은 일이기에 이곳 저곳 소문을 나게 하는 것인지, 하물며 계집이 종년인데 무엇이 아쉽기에 이리도 크게 잔치를 여는것인지 나는 네 아비의 속을 도통 모르겠구나! ”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결국 아랫것들에게 소문이 났다. 아마도 초행 후 전안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마님의 쓴 속을 제 멋대로 해석하여 떠들어 댈 것임이 분명하다. 일이 더욱 꼬이고 말았다. 하늘이 검게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를 눕혀 드리고 안채를 나서니 삼삼오오 모여 수근대던 종년들이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별당으로 향하려 하니 아버지가 화를 신부로 맞이하기 위하여 초행을 하며 행랑채로 가 기러기를 바치고 있는 모습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제 새벽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당으로 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무렴 내가 그깟 종년 하나를 잊지 못하고 힘들어 할까 하고 어설프게 마음을 다독였다. 그러기도 잠시, 거짓말 처럼 버드나무가 나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잠들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나의 볼을 쓰다듬던, 얼마 지나지 않아 옅게 움찔거리며 멀리하던 손끝에서 나는 향기가, 화의 여린 몸이 버드나무의 잎을 따라 부드럽게 나를 매만졌다.









***









 결국 참지 못하고 이곳까지 와버렸다. 교배(交拜)중인 아버지와 화가 보였다. 화의 얼굴에 찍힌 곤지가 유난히도 수줍음을 타는 화의 얼굴을 더욱 붉어 보이도록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욕지거리가 한데 섞여 들었다.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나를 감싸 돌았다. 처량맞게도 나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꿈뻑이기도 두어번, 볼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기가 간지러워 대충 소맷부리를 끌어당겨 눈물을 찍어냈다. 다른 종년들의 손에 잡힌 화의 여린 팔, 족두를 쓴 머리, 내 곁에 앉아 직접 산호를 수놓던 앞댕기까지…. 어느 하나 예쁘지 아니한 곳이 없었다. 그래, 화는 언제나 꽃같이 예뻤다. 처음 오던 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아비의 뒤에 숨어 들어와 몸을 씻기어 말끔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나니 제법 여인의 티를 냈다. 동글동글하던 인상과는 다르게 거칠게 불거진 손이 이상하게도 나를 잠 못 이루게 하였다. 미성 어린 목소리로 노랫가락을 어루만지듯 읊던 모습이 마치 꽃과 같아, ‘ 화 ’ 하고 불렀다. 






그래서 화가 되었다. 나로 인해.










***










 어설프게 지낸 시간도 어느덧 1년, 애써 나의 서모가 된 화를 피해 다닌 지도 1년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혹여 화가 부담될까 두려워 새벽같이 일어나 산이며 들이며 이곳 저곳을 누볐다. 장이 열리는 날, 화에게 선물해 줄 옥비녀 하나를 고이 싸들고 집으로 향하며 어떻게 말을 붙여 건낼까 수없이 고민했다. 뿌옇게 눈앞을 가리던 눈발이 가시고 진눈깨비가 추슬추슬 내림에 아쉬움이 남아 뒤를 돌아보기도 잠시, 대문을 들어서자 마자 나의 팔을 잡아 끌고 사랑채로 향하는 종놈 남수의 종종걸음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지내는 별당 옆 빈 방이었다. 남수는 손을 두어번 털어내고 헛기침을 하는가 싶더니 빈 방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손님이 오시면 내드리곤 하던 곳이라 삭막하기 그지 없던 방이 어쩐 일인지 어린 아이의 방처럼 작은 침구며 무사히 크길 바란다는 뜻의 병풍이 놓여있었고 바닥에는 금방 수를 놓다 간 것인지 화의 손길이 묻어난 배냇저고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춤거리며 돌아 서 남수의 표정을 살피니 웃음을 참는듯 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화가… 아니, 작은 마님이 도련님의 동생을 가지셨습니다요. ”




“ 화…. ”




“ 도련님, 괜찮으셔요? ”




“ 되었다. 고작 서출 하나 가진 것 가지고 소란들을 피우다니. ”




 비틀거리는 제 팔을 붙잡고 괜찮냐는 물음을 하는 애꿎은 남수에게 덜컥 화를 냈다. 당장이라도 이 방을 불태워 없애고 싶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불을 가지러 부뚜막으로 가려 몸을 돌리자 치맛자락을 꼭 잡고 서 있는 화가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것이 필히 내가 남수에게 한 말을 모두 들은 것이 분명했다. 어색한 가운데 옅은 바람이 나의 손을 이끌었다. 나는 아직 화가 나 있다. 화의 둥그런 정수리를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왠것인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답답한 속에 물이라도 끼얹어 볼까 싶어 나의 방으로 들어가 남수를 시켜 냉수 한사발을 가져오라 하였다. 남수는 화와 나의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 냉큼 물 한사발을 대령했다. 쓰고 있던 갓을 벗어 내팽겨 치고 두 손으로 사발을 잡아 벌컥이며 들이키니 무언가 진정되는 듯 싶었다. 그도 잠시, 열려있던 문 사이로 맞은편 방으로 들어가는 화의 모습이 보여 다시 답답함이 가슴 끝까지 차올랐다. 이 감정을 찔러 없애고 싶다. 문득 든 생각에 좀 전까지 화에게 어떻게 건내 주어야 할까 들뜬 기분으로 소중히 가지고 오던 옥비녀가 생각 났다. 소매를 걷어 비녀를 꺼내 보자니 이젠 진정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창호를 열어 비녀를 던져버렸다. 우습게도, 단단하여 깨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옥비녀가 한낱 돌부리에 부딪혀 깨지고 말았다. 

마치, 화를 향한 나의 마음처럼.









***









하늘이 맑게 개었다. 

  엊저녁, 자박이는 발소리가 나의 머리맡에서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거센 비가 쏟아짐에 그 사이를 뚫고 간간히 통증의 신음도 들렸다. 나의 서모가 된 화의 출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꼭 문둥이여라. 두 눈을 꼭 감고 수백번도 더 되뇌었다. 아버지의 불안한 발걸음 소리와 땅이 꺼져라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숨소리, 출산에 시중을 들기에 바쁜 다른 종들의 종종걸음이 나를 더욱 거슬리게 하였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울음 소리가 싫어 너욱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했다. 이른 새벽, 옅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화가 낳은 아버지의 씨가 문둥인가 싶어 문을 벌컥 열고 마당으로 달려나갔다. 어제의 비로 인해 땅이 젖어 흙탕물이 되어 버선발이 모두 더러워 져도 그것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화를 쏙 빼닮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그 옆에는 소복 차림의 화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웃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 백현아, 너의 아우이니라. ”




“ … …. ”


 


  아우, 계집이 아니라 사내.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선 자리 주저앉고 말았다. 출산의 고통으로 인해 하얗게 질림에도 불구하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서있는 행색이, 그 길던 밤을 땀으로 지새웠을 생각을 하니 꿀먹은 벙어리 처럼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답답함이 내 가슴을 옥죄였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나를 일으키려는 화를 바라볼 수 조차 없었다.





“ 도련님, 경수입니다. ”





“ 어찌 이러는 것이냐. ”





“ 경수를, 안아주세요. 저를 꼭 닮은 이 아이를, 안아주세요. ”





나를 옥죄여 오는 것은 

화 너도, 너와의 관계도 아닌

너를 놓지 못한 나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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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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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제가 일등인거죠?!?! 글에서 자꾸 대작스멜이 나요ㅠㅜㅠ요즘에 사극이 그렇게 끌려서 뭐재밌는글 없나하고 찾다가 제목에 끌려서 들어왔는데.... 올린지 얼마안된 뜨끈뜨끈한 글이네요♥ 딱 제 스퇄 그런의미로 신알신하고 갈게요!
11년 전
대표 사진
애솔나무
제 첫 독자! 감사합니다 열심히 올릴게요!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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