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7805129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BGM - 약속Ⅰ


[방탄소년단/전정국] 도원(桃園) 三 | 인스티즈


도원(桃園)

第  三章


作. 樂園



도원(桃園) : 무릉도원을 일컫는 말.








 현재 여주는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며 계속 정국을 응시했다. 하지만 놀란 저와 다르게 다른 이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어지럽게 돌아가는 상황이 되자, 여주는 앞에 놓여져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모과향이 은은하게 나는 걸 보면, 여주가 어렸을 때 즐겨 마셨던 모과차인 것이 분명했다. 누구든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감히 천제 앞이기 때문에 그 사건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면 현 청룡의 자리는 누가 대신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맴돌았다. 사신이기에 네 명의 자리를 다 차지해야 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했던 여주 또한 입을 열지 못했다. 두려운 것보다 정국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입술을 앙 다물어 안으로 말아서 넣은 덕분에 양쪽 볼에 고운 보조개가 패였다.

 그 보조개에 네 남자의 시선이 꽂혔고, 정국이 손을 들어 여주의 볼을 콕 찔렀다. 말랑하고 쏙 들어가는 게 꽤나 제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정국에게 있어 여주는 제 기분을 좌지우지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청룡이 빗대었던 한낱 인간이 아닌 제 감정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국의 손길에 놀란 여주가 말아 넣은 입술을 놓치자 앵두를 닮은 입술이 톡 튀어나왔다. 공주가 이리도 귀여워서 쓸까, 싶었다. 그러던 중 백호가 '그래서 답은 언제 해 줄 건데?'라는 말에 아차 싶었다. 제 이름과 어디서 왔는지, 이런 것들을 말해 줘야 했다. 백호의 말에 가라앉아 있던 정국의 눈에도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그건 궁금하다는 의미라는 것을 잘 알았다. 손가락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손장난을 치던 여주가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왜 망설였는지 그건 잘 모르겠으나, 순간의 망설임이 대답을 더 늦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래도 결심한 것인지 목소리에 힘을 주고 한 마디씩 천천히 말했다.




"그, 제 이름은, 여주라고 합니다."


"그리고?"


"화(華)국의 공주였으며, 그, 혼인 적령기가 다 되었지만 혼사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래서 도망친 거야?"




사실로 따지자면 도망은 아니고 지원을 받은 출가라고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도망도 맞을 것이다. 이미 거기서는 공주가 혼사가 싫어 도망쳤다고 지방 구석까지 다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하얀 얼굴이 느릿한 포물선을 그리며 반동을 이루어냈다. 긍정의 표시였다.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을 타고 도망쳐 산에 다다랐는데,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할 겸 강에 도착하였습니다. 제가 세수를 하려 고개를 숙였을 때, 그때 복사꽃을 보았나이다.'라고 말을 하자, 세 남자의 시선이 모두 정국에게 꽂혔다. 세 남자는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저, 저 치밀한 계략을 보았나.'라고 말이다.

 정국은 모르쇠를 일관하며 여주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운명을 만드는 천제(天帝)로서 그녀는 자신의 운명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 원하는 거 하나 얻자고 그 작은 세상 하나 못 움직일까. 원하는 그녀를 얻자고 사람 마음 하나를 못 움직일까. 여주 하나를 얻자고  세상 하나 못 만들까. 모든 중심에는 여주가 있었고, 여주는 정국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조만간 월하에게 찾아가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아직 세 달도 지나지 않았기에 좀 참기로 했다. 여주가 제 자신을 진정 사랑할 때까지, 그때까지의 인내심을 기르도록 했다.



"허나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너는 그대로 다시 황궁으로 끌려 갔을 터."


"… 그, 그건 그렇습니다."


"나를 만나 여기에 온 걸 네가 후회하지 않았으면 해."



 또 등장했다, 정국 특유의 말투가. 묘하게 느껴지는 시선, 느리게 다가오나 강압적인 말투에 여주는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익숙하게 생활하는 제 모습이 두렵기도 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그게 너무 딱 제 자신에게 들어맞는 말이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하하,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여주가 태형과 한 번 더 눈이 마주쳤다. 붉은색의 눈동자는 활활 불타오르는 형상이었으며,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눈빛에서도 불의 뜨거움이 느껴지는지 금방 피하고 말았다. 그리고 갑자기 일어나는 여주에 의해 정국 또한 얼떨떨하게 일어났다.



"어디 아픈 것이냐."


"피로함에 오침(午寢)이 필요하여."


"청루전 말고 묘혜전으로 들어서 자도록 해, 옆에 있을 테니."


*오침(午寢) : 낮잠



 정국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정국과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뜨겁다 못해 태울 것만 같은 붉은 눈동자를 계속 보고 있었기에 약간의 현기증이 온 것이었다. 그 상황에도 여주를 다정하면서도 녹을 것 같은 눈동자로 바라보는 정국에, 여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저런 눈동자를 보는 것도 처음이기에. 아비의 사랑과 사내의 사랑은 다르므로. '그렇게 보지 마십시오, 사람 하나는 녹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여주에 정국도 웃음을 터트리며 세 남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태형이 다시 풀썩 자리에 앉았다. 주저앉는 태형을 보고 놀라 백호와 현무가 태형에게로 몰려들었다. 무슨 일이 있냐는 것을 묻는 것처럼 시선에서 질문이 묻어났다. 태형은 그 시선을 느꼈음에도 여전히 제 꿈에 대한 생각만 했다. 어찌 이리도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네가 원하는 모습이었나, 천제. 하, 하고  헛웃음이 튀어나온 태형이 앞에 놓여 있는 다 식은 모과차를 마셨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술을 뗐다. 제 꿈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이청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것은 여주를 자신들이 모셔야 하는 이유를 뒷받침해 주었다.



"… 이청이 천제를 마음에 품었던 거 알고 있지? 근데 내가 일전에 천제의 꿈을 대신 꿨어, 예지몽이었지. 사람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천제와 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 근데 누군지 모르겠어서 옷차림을 보았을 때, 푸른색이었기에... 난 그저 그게 이청과 천제가 이어질 수 있는 줄 알았어, 누구한테는 발설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데?"


"허나, 내가 유일하게 꿈에서 기억하는 게 의복과 여자의 눈. 근데 눈이... 저 아이의 눈과 똑같아. 마치 저 아이를 여기에 데리고 올 것처럼,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 천제가 내 꿈을 조작이라도 한 것처럼."




 태형의 말에 백호와 현무도 입을 다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엇나가는 게 있었다. 태형을 설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설득을 하려 했다면 자신들의 꿈에서도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그와 관련된 예지몽이든 꿈이든 꾼 적이 없었기에 생각에서만 멈췄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나 현무나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다네, 주작. 그저 우연이 아닐까.'하는 말에 태형의 큰 눈동자가 더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붉어질 뿐 꿈은 꿈이고, 이미 지나간 것은 돌릴 수 없었다.



 태형의 꿈에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넣은 정국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







 묘혜전에 들어온 여주는 어쩔 수 없이 정국의 손에 이끌려 정국의 침상에 앉게 됐다. 그, 그러니까.... 거리면서 말을 더듬는 여주에 픽 웃음이 터진 정국은 제 손으로 여주의 장신구들을 하나씩 없앴다. 또한 길게 늘어진 머리를 곱게 땋아 댕기까지 달아 주자 비로소 열여덟의 소녀의 모습을 찾았다. 여주의 얼굴에 하얀 손가락을 가져다 댄 정국이 여주의 볼을 살살 문질렀다. 매우 사랑스럽다는 의미였다. 붉은 입술로 옮겨진 하얀 손가락이 여주의 입술을 두어 번 쓸어내렸다. 그에 아찔한 기분을 느낀 여주가 진득하게 붙어 오는 시선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눈을 꽉 감고 말았다. 항상 정국의 앞에만 서면 이런 느낌이 들었다. 사지가 뻣뻣해지고, 정신이 아찔하며, 기분은 좋아지고 몽롱함에 빠지고 만다. 마치 양귀비 꽃으로 만든 아편을 손에 댄 사람처럼. 제 아비가 아편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것처럼.

 여주는 알고 있었다, 류가 아편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이 도원에서 받은 두통을 잊기 위해서, 대신들에게 늘 공격을 받아와 그 아픔을 잊기 위해서. 황제가 공주인 저를 사랑하는 것은 알았으나, 그 그림자에 감춰진 두 개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하여 제 아비를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 혼사를 결정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떠오르는 류의 얼굴에 감았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한순간 눈물을 흘리는 여주에 입술에 머무르던 손이 눈가를 살살 만지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 퍽이나 다정한 손길이 제 아비의 손길과도 닮아서, 그래서 더 눈물이 흘렀다. 울음을 삼켜내려 하였지만 그러질 못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소리를 죽여서 울었다. 다른 하인들이 궁금해하지 못하도록, 왜 여주가 우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려고. 정국이 손을 들어 묘혜전의 모든 문을 빠르게 닫았다. 겹겹이 있던 문들이 정갈하게 닫히고, 오직 여주와 정국만이 남았다.



"울지 말거라, 눈이 붓지 않느냐."


"… 당신을 보면 아비가 생각나서, 보고 싶은 건 아닌데, 그게."


"눈을 감거라."



 정국의 말에 여주의 눈이 슬며시 감겼다. 눈이 감겨져  고여 있던 눈물이 눈 밖으로 밀려 볼에 그림을 그리듯이 한 획을 그었다. 정국의 따뜻한 손이 여주의 볼을 감싸고 눈물이 그려낸 그림을 없앴다. 아, 이 모습마저 이리도 어여쁘면 내 너의 붉은 입술을 탐하고 싶어진다는 것을 넌 알고 있느냐. 늘 지켜봤던 강인한 네가 아닌, 이리도 나약한 사람인 것을 알았더라면 더 빨리 너를 데리고 오는 거였다. 속으로 자책하고 있는 정국의 품으로 가녀린 팔이 품을 파고들었다. 처음으로 여주가 정국의 품에 안겼다. 제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정국밖에 없었으므로, 그 품에 숨고 싶었다. 연약한 모습은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여, 그래서 품으로 파고들었다.

 여주의 등에 팔을 두른 정국이 등을 한 번 토닥, 두 번 토닥, 계속해서 토닥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토닥이는 손길에 여주의 울음이 점점 멎었다. 나에게만 다정한 그대가 좋습니다, 나에게만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당신에게 참으로 감읍할 따름입니다. 여주는 그 손길을 받으며, 노곤하게 몰려오는 졸음에 그대로 정국의 어깨에 기댔다. 세  달은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정국에 의해 운명으로 묶인 것을 어찌 돌리리. 여주의 긴 손가락이 정국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그에 정국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 왜 저를 택하셨습니까. 저를 운명으로 삼으신 연유가, 그것이 듣고 싶습니다."


"삼신이 점지할 대상인 네가 너무 어여뻐서, 나의 반려자로 맞이하고 싶다는 욕심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어서…."


"… 청룡은 왜 추방을 하셨는지 여쭈어도 될까요."


"내가 아끼는 너를 비하하여, 그것은 나를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기에. 너는 고작 한낱 인간이 아니기에."



 정국의 대답이 여주의 귀를 달달하게 뒤덮었다. 마음이 안 생기는 건 불가능했다. 생각하는 시간이 길수록 그에게 안 좋은 영향만 줄 것이 분명했다. 이곳에 적응하여 살려면, 이 사람이 필요했다. 여주의 손을 꽉 붙잡은 정국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좋아서 자신의 기분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취하고, 입을 맞추고, 자신의 여인이라고 떳떳하게 혼례를 치르고 싶었다. 기쁘다, 슬프다, 행복하다에 대한 감정들을 여주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탐하고 싶다, 취하고 싶다 등에 대한 욕심과 욕망에 대한 마음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의 중심은 여주 하나였다. 저를 바라보는 눈이 예뻐서, 사랑스러워서, 가지고 싶어서 낙인을 조그맣게 찍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그만 낙인을 찍고 싶었다.

 이번에는 욕심을 내고 싶었다. 일주일 동안 버텼기에, 이번에도 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눈, 감아…."



 울었기에 붉어진 눈이 눈꺼풀을 닫으며 무방비한 상태를 만들어냈다. 정국의 입술이 가볍게 여주의 입술 위에, 가벼운 낙인을 만들었다. 그 누구도, 어떤 선인도 가질 수 없는 천제의 낙인. 붉어진 볼이 복사꽃의 형상을 보였다. 그에 정국은 곱게 닫힌 눈꺼풀에, 대신들과 자제들이 감탄했던 오똑한 코에, 하얀 피부와 잘 어울리는 붉은 입술에 한 번씩 도장을 찍었다. 붉은 열꽃이 피는 것처럼 곳곳에 복숭아 향기가 스며들었다.


 비로소 통하였다, 마음이.







-







 정국은 잠이 든 그녀를 제 침상에 곱게 눕힌 후, 새로운 의복으로 갈아입고 빠른 속도로 적화궁 밖으로 나왔다. 그의 심복에게 여주가 깨어날 기척을 보이면 연통을 보내란 말을 남기고. 정국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다른 선인들에 대충 목례로 인사를 해 준 정국이 그 사이 사라진 태형을 찾으러 왔다. 금류각에 남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자리를 비운 뒤였기에. 정국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태형이 있을 만한 곳을 생각했다. 그리고 가던 발걸음이 다시 뒤를 돌아 반대쪽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정국의 발걸음은 푸르름을 상징하는 이청의 산을 향했다.

 높은 나무들이 우거져 즐비한 산 입구에는 금줄이 쳐져 있었다. 정국의 힘이 담긴 금줄 때문에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앞에 들어가고 싶은 듯 기웃거리는 붉은 뒤통수가 위아래로 계속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 옆에 검은 복식의 현무, 흰 도포의 백호까지. 자신이 청룡을 추방하였으나, 이청을 대신할 자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랬기에 나머지 세 명들도 이청을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저들의 장난을 잘 받아 주고, 늘 활기찬 웃음으로 많은 선인들에게 행복을 안겨 주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인 퇴출 사항은 건의를 받거나 해야 하는데, 이렇게 직통으로 천제의 입에서 추방이라고 하니 다들 입 다물고 어떠한 말도 못 하는 것이었다.

 정국을 발견한 현무가 예를 갖추고 인사를 하자 백호와 태형도 그에게 인사를 하게 됐다. 동등선상에 있으나 그래도 정국이 더 높은 신분에 위치했기에 인사를 올리고,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어색하게 웃은 정국이 금줄 앞에 다가섰다. 이미 태형의 눈에는 제가 밉다는 감정이 다 드러났다. 뜨거운 만큼 제 감정도 쉽게 드러나는 태형이었다. 이청을 다시 부를지 말지, 그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청이 없으면 돌아가기 힘들지만, 이청이 있다면 여주에게 해가 갈까 봐. 그래서 선인을 택하느냐, 자신의 여인을 택하느냐 그 갈림길에 서 있을 뿐이었다. 금줄을 한 번 건드린 정국이 금줄을 걷어내고 그 안으로 들어서자, 셋의 시선이 정국에게 꽂혔다. 초조함을 담은 시선이 정국의 등판을 물들였다.



"나의 도원에서 추방을 명하였는데, 왜 청룡의 기운이 그대로지?"


"… 정국, 그것이."


"이청을 여기에 숨긴다고 해서 내가 모를 줄 알았는가. 나의 도원에서 내가 모르는 것은 없어, 태형."



 정국의 질문에 다들 함구하였다. 정국의 발걸음이 그들의 앞에서 사라졌다. 망했다, 청룡을 인간들의 삶으로 돌려 보내지 않은 세 남자의 절망이 정국의 귀까지 들려왔다. 빠른 발걸음으로 산을 오른 정국이, 푸른 산의 가장 안쪽에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녹수전(綠樹殿)이었다. 녹수전의 문이 정국의 기운을 느끼고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녹수전 안에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식음을 전폐하였는지 많이 야윈 이청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쾅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에 놀란 그녀가 눈을 뜨자, 그 앞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국이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잘생기고,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외모였으며, 변한 것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근 일주일이 다 돼서야 보이는 그가 자신을 복귀시키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도원에서 자신이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려고 온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싸늘함을 가득 담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뻗어졌다. 아차 싶었다. 자신의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야윈 그녀의 모습에 혀를 쯧 하고 찬 정국이 녹수전 내부를 훑었다. 그리고 이청에게 시선을 두었다. 차갑고 또 차가운 시선이었다.



"네가 무얼 잘못했는지 아는가, 청룡."


"……."


"네 죄가 뭔지 뭐냐고 물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녹수전 내부에 퍼졌다. 자신의 죄가 뭐였더라. 그저 정국의 여인을 건드린 것일까, 혹은 그의 권위에 도전한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는 이청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국의 시선이 청룡을 형상화한 동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청과 너무 잘 어울리는 자리였고, 그녀의 이름에 알 맞는 자리였다는 걸 다시 보여 주는 것이었다. 흐느낌이 들려 이청을 바라보자 이청이 무릎을 꿇고, 정국에게 매달릴 것처럼 그에게 빌고 있었다. 그녀는 약한 존재였다.



"너의 그 거만함과 질투가 너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알고 있느냐."


"천제, 저는 그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으면, 나의 외면만 보고 마음에 품지 말았어야지. 너를 불쌍하게 여긴 벗들이 너를 이렇게 숨긴 것은 가상하나, 내 너를 용서할 마음이 없다."


"……."



 할 말이 사라지게 만드는 정국의 말에 이청의 흐느낌이 뚝 멎었다. 그저 정국을 제가 마음에 품은 것과, 인간에게 밀린 제 처지가 너무 측은하여 그 상황을 초래했다. 월하의 말도 무시한 채 제 마음을 보여 준 것밖에 죄가 없었다. 흐느낌은 없었지만 눈물이 뚝뚝 흘러 바닥을 적셨다. 정국은 고뇌했다. 이청의 신수는 그녀의 실수로 제 아이를 잃게 되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듯이, 선인의 마음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걸 더더욱 알고 있었기에. 연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이청에 정국의 마음이 흔들렸다. 실제로도 용서할 마음은 없었기에.

 심하게 무너진 이청의 앞에 앉은 정국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꽤나 야위었구나.'하는 말에 퍽 터진 울음이 녹수전을 채웠다. 으앙거리며 아이처럼 우는 이청에 정국의 마음이 한 번 더 흔들렸다. 하지만 제 여인을 택한 정국은 이청을 위한 마지막 배려를 해 주기로 하였다. 저를 은애한 마음이 애련하여, 그 마음을 볼 수 없는 저를 탓하며.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었던 마음이었지만, 여주를 만나기 위한 억겁의 시간이 이청을 볼 수 없도록 하였기에. 




"이청, 그대를 청룡의 자리에서 폐한다. 허나 선인으로 도원에는 머물 수 있게 하지."


"… 정국."


"그 아이의 밑으로 들어가 하인으로, 그렇게 살 수 있겠느냐. 억겁의 시간 동안 괴로워하며 살도록 해, 그게 내가 너에게 주는 죗값이니. 또한 녹수전의 새로운 주인은 다른 이로 채울 것이고, 청룡의 산에 오는 걸 금하지."


"… 정국, 그것만은! 청룡의 자리만은 제발! 제발!"


"너에게 준 청룡의 자리가 네게 거만함을 심었다. 청룡의 자리가 나와 너의 사이를 너무 가깝게 만들었으며, 네게 질투심을 심었기에 폐한다. 번복은 없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단호한 정국의 말에 그녀가 무너졌다. 정국의 손짓에 이청에게 있던 청룡의 신수가 다시 청룡의 동상으로 돌아갔다. 청룡에서 아무것도 아닌 선인이 되었다. 또한 하인이 되었다. 가까이에서 정국을 볼 수 있으나, 더는 가까워질 수 없었다. '조만간 적화궁에서 보도록 하지, 다른 하인들이 널 데리러 올 것이다.'라고 말하며 떠나는 정국에 이청이 목놓아 울었다. 제가 연모하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정국은 녹수전을 떠났다. 차가운 뒷모습과 냉기만이 녹수전을 맴돌 뿐이었다.

 녹수전을 떠나 산에서 나온 정국이 금줄을 들고 입구를 빠져나왔다. 앞에서 정국이 청룡 의복을 입은 이청과 함께 나오기를 내심 기대했던 세 남자는 혼자 나오자 얼굴에 실망감이 서렸다. 그에 정국은 코웃음을 쳤다. '숨긴 것에 대한 죗값은 치르지 않도록 하겠다. 허나, 그대들이 한 번 더 이런 일을 저지를 경우 천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알 것이다. 그때는 이청을 숨긴 죄까지 물어 더욱 큰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뜨는 정국에 꽉 쥔 주먹만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동등한 줄 알았으나, 동등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망연자실한 표정들이 이청이 숨어 있던 산을 멍하니 응시할 뿐이었다. 죄를 한 번 지으면 죄의식이 생긴다. 하지만 죄의식을 더는 방법은 두 가지다. 고해를 하거나, 더 큰 죄를 짓거나. 정국은 두 개의 선택지를 세 사람에게 주고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선택을 할지, 그건 세 사람의 행동에 달려 있었다.






-






 세 남자를 산 입구에 두고 빠르게 적화궁으로 돌아온 정국은 아직 여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하인에게 확인했다. 그리고 쉴 수 있게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인간의 소원을 적은 상소문을 읽다 여전히 곤히 자고 있는 여주의 옆에 앉았다. 조용히 자고 있는 여주의 모습은 어여뻤다. 이청으로 인해 화가 난 마음이 눈이 녹듯이 빠르게 사라졌다. 이청을 떠올리자 벌에 대해 생각난 그가 하인을 불렀다. 앳된 소년이 인사를 하고 정국에게 예를 갖췄다. 저 소년 또한 부모를 여의고 살길이 없어 도원을 찾던 아이였다. 제가 직접 데리고 와 자신의 심복을 삼은 앳된 소년. 아직 완전한 선인이 되지 못하였으나, 천제의 옆에서 선인으로서의 삶을 영위받을 아이였다. 그 아이가 시킬 게 있으면 명해 달라는 의미로 정국을 바라보았다.



"내일 동이 트면, 다른 하인들과 청룡의 산으로 가서 금줄을 치우고, 녹수전에 있는 이청을 데리고 오거라. 하인으로 삼을 것이며, 이 아이의 밑으로 넣을 것이다."


"그리하겠습니다, 천제."



 놀란 눈빛이 저를 향해 날아왔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정국의 표정에 인사를 올리고 나갔다. 한숨을 내쉰 정국이 제 여인의 얼굴을 보려 고개를 돌렸다 눈을 뜬 여주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몽롱하게 풀린 눈동자가 꽤나 고혹적이었다. 그에 홀린 듯 입술에 따뜻한 온기를 내려 주니, 놀란 듯 동그랗게 뜬 눈이 토끼를 닮아 귀여웠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토끼는 네가 더 닮았구나.'라며 여주를 놀리니 침상에서 일어난 여주가 정국의 너른 등에 얼굴을 기댔다. 따뜻함이 등에서 퍼졌다.




"근데 청룡은 추방이라 하였는데, 어찌 제 하인으로…."


"청룡을 벗으로 생각한 세 사람이 못된 짓을 하였거든. 그녀를 불쌍히 여겨 복귀시킬까 하였으나, 여전히 거만함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네 밑으로 들어가 살라 명하였다. 선인으로는 살 수 있으나, 아무것도 없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 줄 아느냐."



 등에 기댄 채 정국의 말에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여주에,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홱 뒤를 도는 정국에 여주가 놀라 얼굴을 떼자, 정국이 큼지막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잡아 그의 품에 가뒀다. 쿵쿵거리는 심장 소리가 제 심장 소리와 비슷했다. 비슷한 박자로 비슷하게 뛰는 것이, 그도 떨린다는 의미였으니까. 조심스레 정국의 등에 손을 올리는 여주의 행동에 정국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긴장된다는 의미였다. 남들 앞에서는 위엄이 넘치고 권위가 있는 하늘의 군주, 하늘의 황제였다. 하지만 여주의 앞에 서면 영락없는 열여덟의 사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흘러넘쳤다. 조그만 목소리로 '황공합니다, 이리도 생각해 주셔서.'라는 말을 들은 그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은 표정으로 여주를 더 품으로 끌어안았다.

 여주가 정국에게 유일하게 줄 수 있는 것, 행복이었다.






+) 추가

더는 인티에서 연재하지 않고 옮기기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3화까지 올려 드리고 가니, 좋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__)

조금이나마 제 글이 독자님들께 행복의 시간을 가지게 했길 바랍니다. :)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비회원166.59
헉 너무 재밌게봤는데ㅠㅠ블로그로 옮기시나요?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1
작가님 ㅠㅠ 진짜 이런 예쁜 글 써주셔서 너무너무 고마워요♡ 옮기시는곳 따라갈겁니당 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작가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옮길 곳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ㅠㅠㅠㅠ 정말 다음편도 그 다음편도 꼭 읽고싳어요ㅠ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樂園
인스티즈 규칙 때문에 알려 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ㅠㅠ 꼭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 ♡ 죄송해요 ㅠㅠ 하지만 저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답니다!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헐 작가님 사과로 암호닉 신청했었는데 옮기신다니 꼭 찾아가고 싶어요ㅠㅠ 재밌게 끝까지 읽었는데 옮기신다니!!! 제 인생작인데 흑흑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18.27
헉 ㅠㅠㅠㅠㅠㅠ옮기시나요???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작가니뮤ㅠㅠㅠㅠㅠ다른 곳으로 옮기시는것인가요ㅠㅠㅠㅠㅠ너무 예쁜 글 잘보고있었습니다ㅠㅠㅠ이렇게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ㅠㅠㅠㅠ
6년 전
대표 사진
樂園
아구, 알림 받고 왔어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에 올렸습니다. :) 좋은 글이라고 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6년 전
대표 사진
독자5
어디서볼수있나요자까님ㅠㅜㅜㅡ
6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피어있길바라] 천천히 걷자, 우리 속도에 맞게2
10.22 11: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존재할까
10.14 10: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쉴 땐 쉬자, 생각 없이 쉬자
10.01 16:56 l 작가재민
개미
09.23 12:19
[피어있길바라] 죽기 살기로 희망적이기3
09.19 13:16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가볍게, 깃털처럼 가볍게
09.08 12:13 l 작가재민
너의 여름 _ Episode 1 [BL 웹드라마]5
08.27 20:07 l Tender
[피어있길바라] 마음이 편할 때까지, 평안해질 때까지
07.27 16: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 같은 마음에게78
07.24 12:2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뜨거운 여름에는 시원한 수박을 먹자2
07.21 15:4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은 찰나의 순간에 보이는 것들이야1
07.14 22:30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사랑이 필요하면 사랑을2
06.30 14:1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새끼손가락 한 번 걸어주고 마음 편히 푹 쉬다와3
06.27 17:28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일상의 대화 = ♥️
06.25 09:27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우리 해 질 녘에 산책 나가자2
06.19 20:5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오늘만은 네 마음을 따라가도 괜찮아1
06.15 15:24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상에 너에게 맞는 틈이 있을 거야2
06.13 11:51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바나나 푸딩 한 접시에 네가 웃었으면 좋겠어6
06.11 14:3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세잎클로버 속으로 풍덩 빠져버리자2
06.10 14:25 l 작가재민
[피어있길바라] 네가 이 계절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해1
06.09 13:15 l 작가재민
[어차피퇴사]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지 말 걸1
06.03 15:25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회사에 오래 버티는 사람의 특징1
05.31 16:3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퇴사할 걸 알면서도 다닐 수 있는 회사2
05.30 16:21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어차피 퇴사할 건데, 입사했습니다
05.29 17:54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혼자 다 해보겠다는 착각2
05.28 12:1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충분해요
05.27 11:09 l 한도윤
[어차피퇴사] 출근하면서 울고 싶었어 2
05.25 23:32 l 한도윤


12345678910다음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