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 세라, 세라 05
동물원에 들어서자 마자 장난감 파는 곳에 넋이 나가서 이리저리 훼집고 다니는 윤이 때문에 진땀을 뺐다. 박팀장님은 그런 윤이가 귀여워 죽겠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윤이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어느새 윤이와 상점 장난감 삼매경에 빠졌다. 이것도 추천하고 저것도 추천하며 윤이 옆에 꼭 붙어다니는 박팀장님을 보곤 문득 녀석 생각이 났다. 오세훈이 아빠 노릇을 했으면 저렇게 잘해줬을까 과연? 한참을 고르더니 이내 코끼리 인형 하나를 들곤 나에게 와서 사달라며 졸라댔다. 인형 집에 많잖아.. 에휴.
"윤아, 너 이거 몇 일 갖고 놀다 또 버릴 거잖아."
"이거.. 갖고시픈데.."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윤이 덕분에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알겠어. 이번 딱 한 번만이다? 인형을 챙겨들곤 계산대로 가는데 박팀장님이 슬쩍 인형을 뺏어들곤 잽싸게 지갑을 열었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안 그래도 되는데.. 내가 계산하겠다며 카드를 내밀자 박팀장님은 기어코 자신이 계산하겠다며 한 번 더 카드를 직원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윤이한테 선물해 주고 싶어서 그래요."
"그래도.. 너무 민폐 같은데.."
입장비도 다 박팀장님이 계산해 주셨잖아요.. 잔뜩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누가 사주던 말던 윤이의 관심은 오로지 인형이였다. 계산이 끝난 인형을 꼭 챙겨들며 이리저리 살피는 윤이를 보곤 박팀장님은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다음에 보답이라도 해 드릴게요. 오늘따라 유난히 더 햇빛이 쨍쨍했다. 걷기만 해도 땀이 나는 날씨에 탈수 증세가 올 것만 같았다. 모자라도 챙겨 나올 걸. 넓은 동물원을 보며 한숨부터 나왔다. 언제 다 돌지. 벌써부터 다리가 아파온다.
***
"이건 진짜 제가 계산할게요."
여러 동물들을 보며 한참을 돌아다니다 배고프다는 윤이의 말에 근처 푸드코트로 들어왔다. 푸드코트의 특성상 선결제라 음식을 먼저 고르곤 계산을 하러 갔는데, 어김없이 자신이 계산한다는 박팀장님의 말에 극구 사양을 하며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자기 돈 많다며 내 팔을 아예 잡아버리는 덕에 또 박팀장님이 계산하게 되었다. 진짜 미안해서 어떡해. 동물원 안을 돌아다닐 때도 아이스크림이며 음료수며 과자며 윤이 군것질거리도 다 사줬는데.. 집 밖으로 나와서는 한 푼도 안 쓴 내가 왠지 초라해 보였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박팀장님에게 말을 건넸는데, 본의 아니게 정색하는 꼴이 돼버렸다.
"팀장님 이러시면 진짜 곤란해요. 저 부담스러워요."
"여주씨도 이렇게 사람 많은데 밖에서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저 곤란해요."
"......"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주위를 둘러보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할 만한 말이긴 하지만.. 밖에서는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이 생각나서 괜히 또 난감해졌다. 왠지 또 오빠 드립이 나올 거 같아서 "다음부턴 진짜 제가 살게요."라는 말을 남기곤 잽싸게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박팀장님도 곧 절레절레 웃으며 내 뒤를 따랐다. 자리에 앉아서는 괜히 뻘쭘해진 마음에 순서표를 만지작거렸다. 옆에 앉은 윤이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식수대에서 물을 떠오겠다며 총총 뛰어갔다.
"윤아, 조심해서 갔다 와!"
컵을 집으며 정수기에서 물을 따르는 윤이 뒷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박팀장님이 하는 말에 시선을 또 다시 박팀장님 쪽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거 알아요?"
"네?"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한테 돈 안 쓴대."
이게 무슨 말이람? 박팀장님은 손을 테이블에 올려 깍지를 끼고 그 위에 제 얼굴을 괴며 말을 건네왔다.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을 건네길래 시선을 피했더니 살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윤이가 들고오는 컵을 받아들었다. 물이 가득 담겨진 컵을 나에게 건네길래 조금은 당황한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했더니, 귀엽다는 듯이 또 웃으셨다. 괜히 이상한 기분에 물만 잔뜩 마셔 버렸다. 물 배 찰 것 같아.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 됐으면 알아차릴만 하다. 박팀장님의 행동은 어딜 봐도 나한테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호감? 아님 날 좋아하나? 대체 왜? 호감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면 어장인가? 그냥 아무한테나 다 잘해주나.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눈에 초점이 풀렸다. 멍하니 번호표를 보고 있는데 박팀장님이 이상한 소리를 하시길래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나도 좋아해."
"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멍해져 있는 정신을 차리고 놀란 눈으로 팀장님을 바라봤다. 박팀장님과 윤이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로 쏠렸다. 마치 눈동자에는 물음표가 크게 써져있는 것 같았다. 박팀장님이 윤이의 장난감을 들고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 것을 보니, 아마 윤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나 보다. 씨발? 나 지금 뭐한 거야?
"아. 나도 코끼리 좋아한다고."
"아.."
괜히 뻘쭘해 져서는 고개를 숙였다. 뭐야 나 병신인가 진짜. 박팀장님이 나를 힐끔 보며 웃더니 윤이와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 쪽팔려 진짜.. 고개를 돌리고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거기서 크게 소리를 왜 냈을까 병신같이.. 민망해지는 순간이였다. 빨리 밥이나 나와서 얼른 먹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밥은 왜 안 나... 나왔다! "밥 가지고 올게요!" 하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순간만이라도 자리에서 피하고 싶었는데 뒤에서 같이 가자는 팀장님에 말에 또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나 막 불편한데 왜 따라와.. 쟁반이 3개나 된다는 걸 순간 인지하지 못했나 보다. 여차저차 테이블까지 쟁반을 나르고는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윤이의 밥부터 떴다.
"내가 챙길게. 밥 먹어요."
박팀장님은 자신이 챙기겠다며 내가 들고 있는 윤이의 수저를 뺐어갔다. 얼른 먹으라며 턱짓을 하는데, 좀 전에 일 때문에 괜히 또 안 된다며 나서긴 뭐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곧 수저를 들었다. 고마움 반, 미안함 반. 윤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면 항상 식은 밥만 먹었는데. 따뜻한 밥을 먹으니 기분이 좀 이상했다.
윤이한테 아빠가 생기면 이런 기분일까. 혹시 그 녀석도 윤이한테 이렇게 대해줬을까. 괜한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을 크게 떠서 한 입에 넣었다.
밥을 먹고 난 후로도 한바탕 신나게 놀고는 저녁이 되어서야 동물원 밖으로 나왔다. 동물원 나오기 전에 윤이가 자꾸 칭얼대길래 안아줬더니 그 새 잠들었나 보네. 박팀장님이 잠든 윤이를 보더니 자신이 안겠다며 윤이를 뺐어서 안아 들었다. 나 끝까지 민폐만 끼친다 진짜.. 처음 안아본다며 신기해 하는 박팀장님을 보곤 고맙다며 웃었다. 근데, 처음 안아보는 것 치고는 되게 잘 안네. 팀장님 애기 낳으면 되게 잘 볼 거 같아. 자상하지, 잘생겼지, 유머러스 하지, 돈 많지. 빠지는 게 없어 진짜. 미래 와이프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거야 아마. 박팀장님이 뒷자석에 윤이를 눕히고 내가 탈 조수석 문을 열어주고 나서야 차는 출발했다. 차에 타서는 한참을 달렸는데도 왠지 집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도대체 오빠라고는 언제 불러줄 거야."
어색한 적막을 깨고 박팀장님이 건넨 첫마디였다. 윤이 앞에서는 차마 못하겠고 지금이라도 말하는 건가. 박팀장님을 보곤 웃으며 "나중에요." 라고 대답했다.저 놈의 오빠타령. 저렇게 원하는데 나중에는 꼭 한 번 불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알게 모르게 중간중간 자꾸 뚝뚝 끊기는 대화에 말 붙이는 것을 포기했다. 회사 다닐 때는 이렇게 어색하지 않은데, 괜히 더 어색해 지는 것 같은 느낌에 차라리 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빨리 집에 도착했으면.
***
일어나라며 나를 깨우는 박팀장님의 말에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벌써 집 앞이구나. 윤이도 깨워야 하냐는 팀장님에 질문에 손사레를 쳤다.
"어우, 깨우면 엄청 찡찡대요." 깜빡 잠들어 버렸다며 멋쩍게 웃고는 즐거웠다고 인사를 건넸다.
"감사했어요, 오늘."
뒷자석에서 윤이를 살금살금 안아들었다. 미동도 없는 걸 보니까 많이 피곤했나 보네. 인기척이 느껴지는지 윤이는 내 품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윤이를 안은 채 팀장님과 마주 보고는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더니 다음에 또 셋이 놀자며 자기도 즐거웠다며 웃어 주셨다. 다음에는 진짜 제가 산다며 빚지고는 못사는 성격이라고 당차게 말을 건넸더니알았다며 다음에 크게 얻어 먹을 거라며 나를 어루듯이 말했다. 뭐야 나.. 뭔가 지는 기분인데.
"그렇게 미안하면 오빠라고 한 번 불러주던가."
자신이 내뱉고는 자기도 뻘쭘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나와 눈을 맞추더니 웃었다. 오빠 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나?
"오늘도 못 듣는 건가?" 하는 팀장님의 말에 갈등을 했다. 진짜 고맙기도 하고, 그냥 눈감고 딱 한 번 불러줄까. 아직 어색하긴 한데.
"오ㅃ.."
"오빠."
결심을 하고 입을 떼려는데 어디선가 내 목소리와 겹쳐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 내 목소리 아닌데.
"오빠 진짜 연애하세요?"
"......"
"오빠는 무슨 씨발."
어디서 나타났는지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팀장님을 노려보며 쏘아대는 녀석 때문에 순간 얼음이 됐다. 딱 듣기에도 가시가 잔뜩 돋힌 말이였다. 팀장님도 갑작스런 녀석의 등장에 당황한 듯 어쩔줄을 몰라했다. 박팀장님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어떡하냐는 눈빛을 보내는데 어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씨발." 이라며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녀석 덕에 꿀먹은 벙어리가 된 느낌이였다. 내가 왜 이러지. 나 잘못한 거 하나도 없는데.
"남의 여자친구한테 작업 걸지 마."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팀장님을 한 번 훑어보더니 녀석은 이내 윤이를 안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 사담 (클릭) |
아니요.. 제가요.. 일찍 오려고.. 했는데요..! 다음 편을 쓰고 자야지 원.. 사랑합니다ㅜㅜㅜㅜㅜ 혹시 보시다가 이해 안가는 부분 있으시면 말씀해 드릴게요! 앞으로의 내용으로 나올 것은 빼구요! 그냥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간다 싶으면 말해주세요! 답글로 달아 드리겠습니다. 오늘 제 생일이에요ㅎㅎㅎ 꺄오 생일 날도 케세라세라랑 함께 ♥ 분량 좀 짧아요ㅠㅠ 다음 편엔 길게해서 오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시는 독자님들 진짜 너무너무 사랑해요! 암호닉 베베님 메리님 오구후나님 봄같은아이님 플라운더님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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