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카드가 시야에 들어 찼을 때
너징이 떠올린 생각은 딱 한가지였어
보고싶다. 만나고 싶다. 가 아닌
도망치자.
“바, 박하야 빨리 일어나. 어서.”
너징의 말에 응! 하고 힘차게 벤치에서
뛰어내린 박하는 여전히 의아한듯한 표정으로
저 멀리 있는 무대를 흘깃대
너징은 박하의 팔을 빨리오라며 세게 당겨
갑작스런 너의 행동에도 박하는 한 점의
의구심을 품 지 않아 널 사랑하니까
“다녀왔습니다.”
가게는 아직 영업준비 시간이었어
너징 대신 청소를 하고있던 사장님이
가게로 들어오는 너징과 박하를 반겨
사장님은 너징을 아끼고 친 딸처럼 보살펴주시는 분이야
“○○아, 장거리는 어디있고?”
“아, 네?”
“안 사왔니? 어서 가서 사와. 오늘 모자랄거야.”
사장님의 말에 혼이 빠져있던 너징은 정신을 차려
너징의 손엔 박하의 팔만이 붙들려있었지
“아, 그게, 저기, 사 왔는데. 놓고 왔나봐요.”
당황한 너징이 말을 더듬으면서
금방 가지고 오겠다며 뒤 돌았어
“엄마, 박하도 가요.”
까랑까랑한 맑은 음성이 너징의 가슴을 후벼팠어
너징은 괜히 들은척도 안 하고
문을 쾅 닫고 나와 분명 너징의 뒤에선
밤톨만한 박하가 발꿈치를 들고
문고리를 열려고 하고 있을거고 사장님은 박하를
말리고 있었을거야
장거리를 두고 온 공원은 가까웠어
그 잠깐 새 너징의 얼굴은 또 눈물 범벅이 됬어
빨간 단풍잎이 머리 위로 쏟아졌어
가로수가 심어진 길을 걸으면서 너징은
변백현을 피해 도망다니는 제가 너무 웃겨서
실성한 여자 마냥 눈물을 흘려대며 웃었어
벤치에 장거리는 그대로 놓여져 있었어
마치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듯
너징이 놓고 온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었어
너징이 장거리를 손가락에 걸쳤을 때
등 뒤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 멀리 위치한 무대 주변에
많은 팬들이 자리를 깔고 있었고
그 팬들이 향하는 시선엔 엑소가 있었어
너징은 굳어버린 밀랍인형 처럼 제 자리에 굳었어
단지 눈으로 그들의 걸음을 쫓았을뿐이야
너징은 반짝이는 수 명의 남자 사이에서
단번에 변백현을 찾아냈어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나요?”
마이크를 잡은 변백현이 말했어
그토록 기다려온 변백현이 눈 앞에 있었어
“꺄악!!!!!!!!!!!!”
팬들이 자지러졌어 그 모습이 즐거운지
변백현은 눈을 휘어가며 웃어댔어
너징은 마치 주박에라도 걸린 것 처럼
그 자리 그대로 굳어버린 채 눈과 귀로
변백현이라는 존재에게 다가갔어
그러다 순간, 마이크를 잡은 변백현의 눈동자가
너징 쪽으로 향했어
제 앞으로 자리를 깔고 앉은 여자들과
저 멀리서 커다란 장거리를 양 손에 들고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바로 너징
깜짝놀란 너징은 훽 몸을 돌렸어
어느새 터져나온 눈물을 어깨에 닦아내며
너징은 그렇게 도망치듯 공원을 빠져나왔어
식당으로 돌아와서도 너징은 혼이 빠진 사람 처럼
행동했어 여러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지
결국 사장님한테 한 소리 들은 너징은
애써 웃으며 힘차게 오픈 준비를 했어
박하는 작고 여린 손으로 너징이 쓸 걸레를
참방참방 물을 튀겨가며 빨아주고 있었어
박하는 착했어
변백현을 닮은 박하는
무척이나 이쁘고 착했어
시간은 지났고 밀려들어오는 손님 탓에
너징은 오전의 일을 기억 할 새도 없이 바빴어
박하는 손님들께 물 컵을 배달했어
가게의 얼굴마담 그런거였어
유치원에 다녀야 할 박하는
예쁘게 미소짓고 손님들께 물 컵을 들고 가
박하의 딱함을 아는 단골들은
박하 손에 사탕을 쥐어주기도 했어
너징이 그런 박하를 말렸지만 박하는
뭘 알고 하는 소리인지
“티비에서 걸으면서 운동하랬어요!”
너징이 그럴 때 마다 저렇게 대답했어
이제는 일상이 되어갔어
13개 남짓한 테이블을 너징 혼자서 서빙하고 치워
가게가 마감에 들어가는 시간은 10시였어
10시 부터 손님은 받지 않았지
그리고 10시.
가게 앞을 쓸던 너징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어
자연스레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너징은 이쁘게 미소짓고 말 해
“저,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 영업이 끝나서요.”
들어오던 사람들이 당연하단 듯
너징의 말을 무시하고 들어섰어
원래 같았으면 영업 끝났다고 해야 할 사장님이
어째서 인지 고개를 조아려댔어
“아이고 어서오세요. 저리로 앉으세요.”
자리 안내까지 하는 사장에게 다가간 너징이 물었어
“사장님 뭐에요?”
“응? 아까 예악 있다고 했잖아. 정신 놓고 있더니
못 들었어? 총 사 십명 쯤 될거야 세팅 먼저 해.”
“…네.”
너징은 이제서야 앞치마를 푸나 했더니
가게의 반을 채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또 들이닥쳤어
너징은 티 내지 않고 작게 한숨쉬며
화장실 옆에 창고로 쓰이는 쪽방으로 갔어
요리저리 물컵을 들고 뛰어다니던 박하가
잠들어있었어 너징은 허리를 숙여서 방으로 들어갔어
인기척에 잠에서 깬 박하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어
“박하야, 어떡하지? 오늘 생일 케이크가 좀 늦어질 것 같은데”
“으응? 왜?”
케잌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박하였기에
아쉬운 표정을 감출 수 없었어 오늘은 박하의 생일이었어
5번 째 맞이하는 사랑스러운 딸의 생일
“예약 손님이 있었다네? 엄마도 지금 알아서, 자고있어.
엄마가 손님들 다 가시고 가게 문 닫으면 박하 깨울 께.”
“응, 엄마 박하 코 자고 있을께요!!”
“응 내 딸 나쁜 꿈 꾸지 말고 잘 자요.”
너징은 부드러운 박하의 뺨에 입을 맞추고
쪽방을 나왔어 그 새 많은 일행들이 가게에 들어와 있었어
“물 좀 주세요!”
누군가의 부름이 시작이 되어 여기 저기서
너징을 찾기 시작했어
“주문이요!”
“물 좀 주세요!”
“술 먼저 주시죠!”
너징은 들어오는 사람들을 볼 새도 없이
그저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하며
상을 차리고 물을 줬어
주문은 나머지 일행들이 오면
한꺼번에 하기로 한게 다행이었지
너징은 이마로 흘러내리는 땀을 팔로 닦아내고
뛰어다녔어 사 십명의 예약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오기 시작했지
사장은 카운터에서 서서 얼굴 도장을 찍고 있었어
그녀는 너징을 돕 지 않았어 몸이 안좋았기 때문이야
사장의 일과는 늦은 오전 가게로 출근해서
너징과 박하와 함께 밥을 먹고
카운터에 앉아서 티비를 보며 손님들의 계산을 맡아
그게 그녀의 하루일과의 전부였어
나머지 가게 일은 오로지 너징의 책임이었어
너징은 불만이 없었어 사장은 착했으니까
나중에 박하를 교육할 때 쓰라고 몇 푼 더 쥐어주기도 하고
비록 쪽방일지라도 잠도 재워줬어
한참을 그렇게 반찬을 세팅하고 있는데
먼저 앉아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 시작했어
뭔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든 너징은 그대로 굳어버렸어
뒤늦게 가게로 들어 온 사람들은
다름아닌 엑소였어
모든 시간이 정지 한 것 같았어
그리고 곧 그 영겁 같은 시간을 누군가가 깨뜨렸어
“아가씨. 이쪽 물 먼저 가져다 주세요!”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신입이 출근때마다 아메리카노 손에 들고 출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