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말이 사형선고처럼 들려왔어
손님은 안을 볼 수 없도록 칸막이가 쳐져있어서
엑소들은 아직 너징을 발견하지 못 했어
너징은 대답대신 숨만 뱉어댔어
가슴이 덜컥 주저앉았어
“뭐하니? 물 달라시잖아.”
사장이 뒤이어 소리쳐왔어
너징은 항상 그랬듯 애써 미소 지어본 채
또 눈물이 흐르려는 눈가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어
그리곤 행주로 앞치마를 벅벅 닦기 시작했어
이미 눌러붙어 굳어버린 양념 소스 및 잡다한 것들은
쉽게 닦여지지가 않았어 앞치마가 원망스럽긴 처음이었어
마감을 막 시작 할 때 앞치마를 먼저 빨았던
제 자신이 미웠어
너징은 미쳐버릴 것 같은 이 상황에서도
애써 웃었어 그저 웃었지
저 뒷 방에서 자고있을 박하를 생각했어
냉장고에서 물을 집어 들고 컵을 챙킨 너징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홀에 나왔어
왁자지껄 호탕치는 소리가 가게 안을 울렸지만
너징의 귀는 변백현의 음성만을 찾고있었어
살짝 고개를 든 너징은 티비에서 봤던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있는게 시야에 들어왔어
그 와중에도 동그란 뒷통수가 유독 눈에 띄었지
너징은 단번에 저 사람이 변백현이라는 걸 알아차렸어
다행인건 변백현이 뒤로 앉았기 때문에 너징을
볼 수 없었어 변백현의 뒤로 다가간 너징은
후들거리는 손에 힘을 주고 물병과 컵을 테이블에 올려놨어
그리곤 빠르게 뒤돌아서 상 차리는 곳으로
돌아왔어 너징의 상황을 모르는 주방 아줌마는
이 시간에 뭔 예약손님이냐며 꿍얼대고 있었어
너징은 그 어떤 소리도 귓가에 들어오지 않았어
주문은 카운터에서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예약 손님들 중 누구 한명이 카운터에 있는
사장님께 주문을 몰아서 하기 시작했고
빨리 집에 가야 했던지 주방 아줌마는
순식간에 음식을 빼주기 시작했어
커다란 은색 쟁반에 고기를 담은 너징은
다시 홀로 나가야 할 생각을 하니까
다리가 무거워졌어
그래도 힘내서 쟁반을 들고 홀로 나가는데
서있었어
변백현이 너징 앞에 서있었어
화장실을 가려던 거 였는지 핸드폰을 하며
걸어오던 변백현이 커다란 쟁반에
고기 몇 인분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너징을 봤어
그리곤 제 자리에 얼어붙었어
그렇게 두 사람의 시간은 멈춰버린 것 같았어
너징은 입 안쪽 살을 깨물며 변백현을 스쳐 지나갔어
변백현은 너징을 붙잡지 않았어
그 어떤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
변백현은 직접적으로 말을 걸지 않았어
그저 자리를 바꾼 뒤 너징을 정면으로
말 없이 응시 할 뿐이었어
너징은 변백현의 그런 행동이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어
광이나는 가죽 재킷을 입고 한껏 뽐을 낸 변백현과
펌이 다 풀어져 헤진 머리와 음식물이 딱지앉은
앞치마를 둘러맨 너징
너징은 자신의 모습이 참 기구하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너징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나 봐
시간은 이미 12시를 넘겼어
박하의 생일은 지나갔어
케이크로 밥을 때울거라며 일찍 잠에 든 박하
제 아빠가 여기에 와 있다는 걸 모르는 박하
박하를 생각하는 너징의 가슴이 무너졌어
“……엄마아.”
그 때 너징의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들려왔어
박하가 눈을 비비며 나왔어 이 시간 쯤에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홀이 꽉 찬 모습을
본 박하가 엄마 힘들었겠다 하며
다리를 팡팡 두드려줬어
너징의 시선은 변백현으로 향했어
변백현의 시선은 박하로 향했어
박하의 시선은 너의 우는 얼굴로 향했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른 채
박하와 함께 쪽방에 숨어있었어
그저 손님이 벨을 누를 때만 나가 볼 뿐이었지
그렇게 얼마나 더 쪽방에서 숨죽였을까
사람들이 마무리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계산은 사장의 몫이었기에 너징은
그저 홀이 빌 때 까지 방 안에 숨어있었어
홀이 다 빈 뒤에 밖으로 나온 너징은
사장님께 먼저 퇴근하시라고 말했고
피곤한 사장은 수고하라며 가게를 나섰어
테이블 위에 놓인 빈 그릇들이
산처럼 쌓여있었어 일단 간판 불을 먼저 끈 너징은
출입문을 걸어잠궜어
윙윙 돌아가는 냉장고 앞에 선 너징은
시간을 놓쳐버린 케이크를 내려다봤어
환하게 불타는 초가 어두운 가게 안을 밝혔어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박하의~ 생일 축하합니다!!”
즐겁게 노래 부르는 너징과 박수를 치는 박하
곧 후~! 박하의 볼이 빵빵해 짐과 동시에
가게 안은 어둠으로 가득찼어
“박하, 소원 빌어야지?”
어둠 안에서 너징은 박하의 손을 붙잡고 울었어
오늘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더 건지
아직까지도 어안이 벙벙했어
“소원 다 빌었다!”
“응, 우리 딸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요?”
너징이 훌쩍이며 박하에게 물었고
박하는 소원은 말 하는거 아니라고 잠시 뜸을 들였어
너징은 울지 않으려고 장난 치 듯 박하를 간지럽혔어
“에이, 딸! 엄마한테는 말 해도 되요!”
“…응, 박하는 아빠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빌었어요. 그래서. 아빠를 만나서.
우리 엄마 그만 힘들게 했으면 좋겠다고 빌었어요.”
“……….”
“하나님이 들어주실까요?”
너징은 박하의 물음에 답하지 못 했어
잠에 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쓰다듬기를 반복했어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밖에 쌓여있는 일거리를
생각해낸 너징은 홀로 나왔어
그렇게 상을 치우고 있는데
톡, 톡,
출입문 유리가 무언가에 두드려졌어
야채 아저씨가 일찍 오셨나? 싶은
너징은 출입문으로 다가섰어
그리고 들려오는 음성은 야채가게 아저씨가 아니었어
“…○○아.”
문을 열려고 하는 너징을 부른 이는
다름 아닌 변백현이었어
너징은 그 순간 다시 굳어버렸고
입 조차 떼어내지 못 했어
“일단, 내가 너무 미안해.”
무작정 미안하다는 변백현의 목소리에 너징은
눈물부터 흘렸어
“잠깐 들어가도 될까? 문 좀 열어줄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아까는 보는 눈이 많아서,
그래서 말 걸지 못 했어. 미안해.”
그 무엇보다 따듯한 목소리가 너징의
가슴을 녹였어 타들어가는 너징은
변백현에게 차갑게 말했어
“돌아가. 난 할 말 없어.”
그렇게 말 한 너징은 후다닥 홀로 돌아왔어
여전히 출입문 밖에는 변백현이 서있는
실루엣이 비춰졌어
소리 없는 시간이 흘렀어
너징은 가게 뒷정리도 하지 못한 채
테이블에 쓰러지듯 누워있다가
누군가가 들어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어
“○○씨.”
가게에 들어 온 사람은 야채가게 아저씨였어
“…아, 네. 오셨어요.”
“에구구, 여기 영수증.”
무거운 야채를 내려 놓은 아저씨가 영수증을 건냈어
받아들고 카운터에 넣어 두려고 하는데
뒤에서 아저씨가 너징을 불렀어
“아, 그리고 ○○씨.”
“네?”
“입구에 이런게 놓여 있었어. 자.”
아저씨가 건네준 것은 A4 용지 크기의 종이가
반으로 접힌 쪽지였어 그걸 받아 든 너징은
아저씨께 인사한 뒤 박하가 자고있는
쪽방으로 들어왔어 그리고 작게 불을 켜고
쪽지를 폈어
‘갑자기 사라진 너를 탓하지 않아
내가 너에게 할 말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 밖에 없어
나쁜 나는 그동안 너무 잘 지냈어
그래서 좋은 사람들도 만나서 가수로 데뷔했어
그런데 ○○아 이거 하나만 알아줄래?
난 행복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어
어제도 보고싶었고 엊그제도 보고싶었어
내일도 보고싶을거고 내일 모레도 보고싶을거야
너무너무 나쁜 나를 용서 해 달라고 안 할께
다만 너에게 지은 죄를 갚을 기회를 줘
010-3933-XXXX 여기로 연락 해 줄래?
지금도 그리운 너에게 할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아
연락 기다릴께.’
종이는 어느새 너징이 흘린 눈물로 젖어가고 있었어
그리고 쪽지 문단의 제일 아래엔 이렇게 적혀 있었어
‘아이를 봐서라도 연락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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