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됐어. "
" ..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워낙 발이 빠른 놈이라서.. "
당황해 말을 제대로 잊지 못하는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일어나 강현의 얼굴에 그대로 주먹을 날렸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벌벌 떠는 강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피곤하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수트 안쪽에 있는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무니 옆에 있던 레이가 익숙하게 불을 붙힌다.
이러라고 내가 니 입에 돈을 쑤셔넣어줬어? 왜 이래 처녀처럼, 감당안되게.. 조용조용 속삭이듯 말하던 크리스는 마침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강하게 발로 차버렸다. 새 것처럼 반짝거리던 구두코에 피가 묻어버렸다. 몸을 숙여 이미 피로 얼굴이 만신창이가 되버린채 정신을 잃은 강현의 얼굴을 보곤 그의 손등에 담배를 비벼껐다. 그리곤 그의 넥타이를 잡아 끌어 구두코를 닦곤 일어났다. 도영현, 몇달전에 새로 구한 로비스트의 이름이었다. 제법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길래 신뢰가 생겨 경계를 느슨하게 했더니 일이 터져버렸다. 러시아에서 밀수해온 마약을 가지고 그대로 도망간 것이었다.
잔망스러웠다. 이미 중국에 거점을 두고 한국에서 아시아로 넓게 손을 쓰고있는 자신의 구역안에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로비스트답게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갔고 잡힐만하면 빠져나가고 뒷통수가 보일듯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슬슬 약이 오르던 참에 무언가 건질만한 것이 있을듯해서 뒷조사를 해봤더니 아내는 삼년전 자살. 큰 아들은 외국에서 의사를 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 레이. "
" 네. "
" 그 새끼, 작은 아들이 서울에 있다고 했지. "
" 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
" 잡아와, 반항하면 쳐 그렇다고 죽이진 말고. "
그리고 저 쓰레기 치워. 고개를 숙여 작게 인사를 한 레이가 방에서 빠져나가고 조직원 두명이 들어와 강현을 들고 나갔다. 쇼파에 앉아 넓은 창으로 밖을 바라보던 크리스는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아이에게서 뭘 얻을 수 있을까. 도영현의 행동으로 봐서는 그닥 자신의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거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되나.. 천천히 생각을 하던 크리스는 작게 미소를 지어버리며 거추장스럽게 내려와있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촌에라도 팔아버리지 뭐. 아무렇지 않게 섬뜩한 말을 내뱉곤 이내 다시 내려와 시야를 가리는 머리를 잘라야겠다 생각을 하며 방 밖으로 나갔다.
***
" 뭐예요! 당장 이거 놔요, 신고 할ㄲ.. "
쫘악.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돌아간 경수의 얼굴이 머리카락에 가려졌다. 왜 이러는걸까. 누구인데 나를 이렇게 잡아가는걸까. 빨개져버린 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오전수업을 끝내고 돌아온 경수의 집앞에는 레이가 서있었다. 작은 체구에 하얀 피부, 레이는 경수가 꼭 안개꽃같다고 생각했다. 누구냐 물어오는 경수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짓으로 신호를 주니 따라온 두명이 경수를 양쪽에서 결박했다. 제법 앙칼지게 반응해오는 경수가 귀엽다고 생각했지만 큰소리를 내면 일이 커진다. 보스가 때려도 된다고 했으니깐.. 진정 시킬 심산으로 뺨을 때렸더니 고개가 돌려지고 잠시 뒤 울기 시작했다.
귀엽네, 근데 보스는 우는 사람을 싫어하시는데..
무서운지 고분고분해진 경수를 차에 태웠고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경수는 벌벌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려 주먹 꽉 쥐었다. 그렇다고 진정이 되진 않았지만. 눈을 감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못했다. 그냥 이 상황이 너무 무서웠고 아무것도 하지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레이는 어디로 가는건지 설명조차 없었고 경수는 굳이 설명을 하지않아도 알 수있었다.
아무런 행동도 없이 한참을 달려 시내를 지나친 차가 멈추고 거친 손에 끌려 내린 곳은 경수가 태어나서 처음봤다고 해도 믿을 만큼의 큰 집이었다.
이대로 들어가긴 제 자존심이 상해 버텨보려 했으나 외소한 경수가 일반인보다 훨씬 큰 남자 둘을 이겨낼 순 없었다. 거의 끌려가듯이 집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남자들이 검은 수트를 입은 채 경수를 쳐다봤다. 경수는 남자들의 숫자를 얼추 보곤 이 곳이 그리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라는걸 짐작할 수 있었다. 넓은 집안을 걸어 큰 방문 앞에 섰다. 그제서야 경수를 결박하던 남자들의 손이 풀어졌고 레이가 노크를 두번한 뒤 방문을 열었다.
눈물 범벅이 된 경수가 레이를 노려보자 레이는 뭐하냐는 듯이 쳐다보다가 쎈 힘으로 경수의 등을 밀었다.
예상치 못하게 밀쳐진 경수는 바닥으로 쓰러졌고 뒤를 돌아 나가려하기도 전에 문은 닫혀버렸다. 방안을 둘러보던 경수가 발걸음을 옮겨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뻑뻑했고 또 숨은 가파져왔다.
" 도경수? "
쇼파뒤에 서있던 경수가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크고.. 무서운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애기잖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경수를 향해 걸어가자 경수는 뒷걸음질을 쳤다. 한걸음 한걸을 걸어올수록 가까워져 오는 자신과 그 남자의 사이에 경수는 다리가 풀릴꺼같았고 이윽코 주저앉았다.
주저 앉은 경수는 앞에 서 있는 크리스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씹어먹을듯이 쳐다보고 있어서. 그게 다 였다.
경수의 앞에 쭈그려앉은 크리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경수는 예상보다 너무 작았다. 마치 아기같았다. 빨개진 눈가가 알수없는 감정을 일으켰다. 큰 눈을 어디다가 둬야할지 모르겠는지 흔들리고 있었고 작은 손은 벌벌 떨려왔다. 경수의 턱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작은 얼굴이 자신의 큰 손에 알맞게 잡혔다. 마주친 눈에는 공포가 선명했다. 가만히 바라만 보고있던 크리스가 웃어버렸다.
" 물건이네 이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