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해가 방안으로 가득 퍼진다. 큰 창으로 퍼지는 햇빛이 침대 위로 화사하게 빛날때 경수가 몽롱한 눈을 뜬다. 어젯밤 그렇게 기절하고.. 정신을 차리고 또 한번하고.. 또 정신을 잃을때까지 세번은 한거같다. 크리스에게 매달리며 더이상 못한다며 엉엉 울어대던게 생각나 경수는 그만 이불에 고개를 푹 묻어버렸다. 부끄러워.. 그러다가 문득 음영이 진거같아 고개를 드니 이미 나간줄 알았던 크리스가 옆에 누워 멀뚱멀뚱 경수를 바라보고있었다.
" 안... 나갔어요? "
" 응.. 뭐해 아침부터.. "
귀엽게, 경수의 볼을 살짝 톡 친 크리스가 웃자 볼이 발그레 해진다. 그냥.. 제법 쉰 목소리가 놀라워서 눈을 크게 뜬 경수가 크리스를 올려다 본다. 섹시해.. 경수의 허리를 끌어당겨 품에 안은 크리스가 귓가에 작게 속삭이자 경수는 부끄러운듯 고개를 묻는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이 집에 온지도 이틀이 지났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학교는 어떻게 된걸까, 친구들이 걱정할텐데.. 가만히 생각하던 경수가 고개를 들어 크리스에게 어렵사리 말문을 연다.
" 크리스.. 저기... "
" 응? "
다정스럽게 경수의 머리를 쓸던 크리스가 다정스레 답하자 경수는 순간 머뭇거렸다. 또 화내면 어쩌지.. 말해도 되는걸까.. 눈만 이리저리 굴리던 경수가 하고싶은 말이 대충 무엇인지 크리스는 짐작 할 수 있었다. 보나마나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말이겠군. 어찌 해야되나 곰곰히 생각하던 크리스가 경수를 안은 손에 좀 더 힘을 줬다. 분명 이대로 나간다면 두가지의 일이 벌어질것이다. 백현이 경수를 데리고 다닌다던가 아니면... 카이가 경수를 데리고 간다던가. 둘 중 하나겠지. 그나마 첫번째가 나을꺼같다는 생각을 한 크리스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나가자 밖에, 네 학교문제나.. 집문제나.. 해결할것이 많아. "
" ... 정말 나가도 되는거예요? 나.. "
" ... 그럼 "
깜짝 놀라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크리스를 바라본 경수가 웃었다. 같이 나가자. 내 차로.. 경수의 부드러운 뺨을 한번 쓸어준 크리스가 경수의 볼에 짧게 키스를 했다. 거기다가.. 오늘은 몸도 안좋잖아? 야하게 속삭이는 크리스의 말에 고새 또 얼굴이 빨개진 경수는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다가 어깨에 기대버린다. 몰라요.. 모른다는 말이 이렇게 어찌 이렇게 야한건지, 이대로 있다가는 아침부터 큰 일을 치룰꺼 같아서 크리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왜그러냐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뒤 욕실로 걸어들어갔다. 어젯밤 그렇게 술에 취해 경수를 안아버렸고 기절한 경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크리스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붉어진 눈의 경수가 다시 눈을 떠 테라스에 서있던 크리스를 울먹이며 찾았고 그 모습에 다시 거칠게 안아버렸다. 짐승같군.. 자신의 모습이 그랬다는것을 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던 크리스가 머리를 한번 넘겼다. 그러다 욕실앞에서 바스락 거리며 경수가 보였다. 온 몸에 검은 시트를 둘둘 감고 무거운 시트를 놓치지 않으려 꼭 잡고 있는 것이 어린 아이같았다.
" 거기서 뭐해.. 응? 더 쉬지 "
경수의 앞으로 가 조금 부은 눈을 쓸어주자 눈을 깜박이던 경수의 목선과 어깨가 보인다. 붉은 자국이 가득한 몸. 자신의 흔적이 가득 남은 경수를 보자 묘하게 정복욕이 생겼다. 그래, 내가 어제 저 아이를 가졌지. 거만하게 웃는 모습이 꼭 왕처럼 보인다고 경수는 생각했다.
씻고 싶어서.. 근데.. 옷이.. 그러고 보니 사준 경수의 니트는 이미 사정된 정액을 묻히고 방 한쪽 구석에 팽개쳐져 있었다. 아 드라이를 맡겨야겠군. 조용히 중얼거리던 크리스가 경수를 번쩍 들었다. 갑자기 들린 몸에 깜짝 놀란 경수가 황급히 크리스의 어깨를 잡았고 시트는 조금 끌러내려져 어깨를 환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얀 어깨에 가만히 입술을 묻고있던 크리스가 경수를 욕조위에 앉혔다. 뭐하는것인지 알 수없는 경수는 눈만 깜빡거렸고 잠시 뒤 치약을 묻힌 칫솔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닦아. 어느새 제 칫솔을 들고 어깨를 으쓱하는 크리스를 보며 살풋 웃은 경수가 칫솔을 받아 이를 닦기 시작했다.
조용히 이만 닦는 소리가 들린다. 민트맛 치약은 언제 닦아도 참 코 끝이 찡하다. 싸한 코때문에 눈을 깜빡거리던 경수가 거품을 뱉으려 일어나 뒤뚱뒤뚱 세면대 앞으로 가 거품을 뱉고 입을 행궜다. 으.. 매워.. 옆에 거품을 뱉고도 가만히 서 있는 크리스를 올려다 보니 경수와 눈을 마주친 크리스가 상체를 숙여 촉하고 입을 맞췄다. 얼굴이 빨개진 경수가 순간 당황해 멍때리고 서있자 피식 웃어버리고 크리스도 입을 행군다.
***
" 아침은 나가서 먹자, 괜찮지? "
" 응응, 난 좋아요. "
이틀만의 외출에 살짝 신이 난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입을 맞춘것에 한참을 서있던 경수가 크리스가 면도크림을 짜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입술에 묻어있는 치약거품을 닦아냈다. 그리곤 신기한듯 면도크림을 바르는 크리스의 옆모습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올려다봤다. 경수는 이상하게 몸에 털이 별로 없었다. 남자라면 당연하게 나야하는 수염도 이주에 한번 밀어도 될 만큼 털이 별로 없었고 다리 또한 여자 다리 못지않게 매끈했다. 그것이 못내 컴플렉스였던 경수는 그런 크리스의 모습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한참을 꼼꼼히 바르고 있던 크리스가 그런 경수의 시선을 눈치채고 내려다 보자 눈을 반짝거리던 경수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내가.. 해주면 안되요? 그런 경수가 귀여워 크리스는 선뜻 면도기를 내밀었고 그 결과로 지금 크리스의 턱에는 영광의 밴드가 붙혀져있었다.
따끔하면서 피가 나기 시작했을때 경수는 거의 울먹거리며 어쩌냐며 허둥댔고 이 정도의 상처에도 아무렇지 않던 크리스는 경수에게서 면도기를 뺏어들어 마저 면도를 마쳤다. 제가 다치게 한 상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경수는 씻자마자 자신에게 옷을 가져다 주려온 레이에게서 밴드를 얻어 크리스의 턱에 붙혀주었다. 미안해요.. 자신의 무릎에 앉아 상처에 밴드를 붙히는 경수를 보며 종종 이렇게 경수에게 면도를 맡겨도 괜찮은 생각이 들었다.
" 학교부터 갈까? "
" 응응, 우리 학교 어딘지 알아요? "
아니, 경수가 말해줘. 차를 출발 시동거는 크리스를 보며 경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경수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공부를 잘했어? 제법 놀라 경수를 쳐다보는 크리스의 눈빛에 수줍어져서 얼굴을 두손으로 감싼 경수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꿈이 있어서.. 경수는 법 없이도 살꺼같았다. 너무 하얗고 착해서 그렇게 평생 살껏만 같았다. 그래도 저 아직 사법고시도 안봤어요. 두손을 저으며 눈꼬리를 살풋 접어가며 웃는 경수가 이뻤다. 집안에서 본 경수도 너무 이뻤지만 이렇게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경수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 아, 저기! 저기서 오른쪽으로.. "
손가락으로 가리켜 들어선 길은 제법 익숙했다. 이틀만이지만 꾀나 오랜시간이 지난거같아 새롭기까지 했다. 창문으로 고개를 붙혀 바라보는 경수의 눈이 맑았다. 이곳이 경수가 다니는 학교구나. 새삼 크리스도 경수가 다니는 이 학교가 새로웠다.
교내 학생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교문앞에 세워진 검은 외제차의 존재만 해도 놀라운데 차에선 잘생긴 남자가 내려 더 놀라웠고 그 남자가 조수석을 열어 남자 하나를 애지중지하는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주위의 시선을 경수만 느끼는건지 아니면 느껴도 크리스는 모르는 척하는건지 경수는 이렇게 자신을 호위하듯 쫒아오려는 크리스가 부담스러웠다.
" 크리스, 여기 있어요. 나 교수님 얼굴만 뵙고 금방 올께요. "
" 안돼, 위험해. "
" 뭐가 위험해요.. 금방 와요, 내가 삼십분 안에 안오면 그땐 정말 미친듯이 찾아도 되요. 그치만 지금은 여기서 기다려. "
경수의 말에 인상을 찢부리던 크리스는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탔고 경수는 학교안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삼십분 안에 교수님도 뵙고 친구들한테 괜찮다 말해주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빠르게 뛰어 교수님 방으로 들어간 경수는 걱정하시는 교수님께 괜찮다, 이사를 해서 전화도 못받았다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돌아오는길에 동기들에게 붙잡혀 설명하느라 진이 다 빠진 경수는 삼십분이 다 되가는것을 보며 다시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앞도 보지않고 이리저리 쏙쏙 피해 뛰어가는 경수가 다와가는 교문앞에서 스피드를 내다가 그만 앞에 서있는 사람과 부딪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 손바닥이 쓸렸는지 따끔따끔 거린것을 꾹 참고 고개를 드니 왠 강아지를 닮은 사람과 머리를 라면마냥 볶은 사람이 경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얘가 그 꽃이야? "
" 응, 이쁘네. 크리스가 장난칠만해. "
" 헐, 내가 더 이쁜데? 너 눈 파버린다 박찬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