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종이비행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이스 라떼 첫 번째 잔
w. 란케
별일 없는 토요일 오전은 늘 그렇듯 무료했다.
눈을 뜬 진 꽤 오래되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내 몸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두 팔을 크게 벌려 편하게 누운 나는 그냥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전 집주인 부부가 아들을 위해 붙여놓았다던 야광 별들이 밝게 갠 방 안에서 작게 빛났다.
그렇게 별 생각 없이 누워있기만 한지 삼십분쯤이나 지났을까, 나는 결국 무겁던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어기적 어기적 피곤함이 가득 묻어난 발걸음으로 간 화장실에선 퉁퉁 부은 눈을 한 내가 있었다. 하,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은 왜 마셔가지고.
구시렁구시렁 마음속으로 별의별 생각들을 하며 세면대의 물을 틀어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피부에 닿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으- 시원하다.
대충 세수하고, 머리를 감은 나는 젖은 머리를 털며 거실로 나왔다.
베란다의 큰 창문을 통해 들어온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어느새 거실을 데우고 나를 반겼다.
눈부신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티비 옆에 길고 큰 스피커 위에 놓인 어항에서 헤엄치는 작은 금붕어에게 밥을 주고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바쁘거나 할 일이 많을 때만 해도 넘쳐나던 재밌는 프로그램들은 나를 약 올리듯 모두 숨어 버린 건지 돌리는 채널마다 하는 프로그램들은 눈곱만큼의 재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갑자기 확 다가온 심심함과 지루함에 나는 다 먹은 사과를 싱크대 안으로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대충 흰 티에 청바지를 주워 입고 핸드폰과 지갑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무작정 나가고 보는 거지, 뭐.
-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집을 나선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보같이 후회나 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어디 시원한 곳, 들어가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을 찾는 내 눈에 못 보던 카페가 들어왔다.
유레카! 끝없는 사막 속을 걷다 신기루가 아닌 진짜 오아시스를 찾은 듯 한 기분을 억누르며 그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모던 해 보이던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작고 꽤 아기자기했다. 게다가 정말 새로 생긴 곳이 맞는지 마냥 깨끗했고, 시간이 오전이라 그런 건지 아닌 지 사람들 또한 없었다.
시원한 것도 합격, 시간 때울 수 있는 것도 합격, 게다가 사람도 별로 없다니! 모두 합격이었다.
내부를 천천히 구경하던 나는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시선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운터에 선 되게 키 크고 잘생긴 남자가 멍한 표정으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눈을 내려 그 남자의 앞치마에 붙어있는 명찰을 봤다. 오세훈. 이름이랑 얼굴이랑 뭔데 씽크가 이렇게 쩌냐.
왜 쳐다보나 생각했던 것도 잠시 들어와선 주문도 안 하고 카페 내부만 둘러보고 있었던 것을 깨닫자 얼굴이 조금 빨개진 듯 화끈했다.
종종걸음으로 카운터로 다가간 나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남자의 시간을 애써 무시하며 메뉴판을 바라봤다. 뭘 먹어야 하나.
무엇을 먹어야 하나하고 골똘히 고민에 잠긴 것이 얼굴에 다 티가 난 건지 남자는 꽤나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스 라떼, 맛있어요.“
"…어, …네? 아이스 라떼요?"
"네, 제 추천메뉴요."
"…아, 그럼 그걸로 주세요."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말을 걸어오는 남자에 생전 잘 하지도 않던 당황을 해가며 어색하게 대답을 하고 계산을 했다.
근데 아이스 라떼라니, 커피는 별로 내 취향 아닌데. 하지만 이미 계산은 했으니….
영수증을 받아 들곤 밖이 잘 보이는 창가 쪽의 좌석으로 향했다.
앉아 매고 왔던 백팩을 열어 노트북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노트북을 켜 별거 없는 인터넷만 보고 있던 중 노트북 옆에 놔둔 핸드폰이 울렸다.
웬 카톡이래, 박찬열이 보낸 별 볼일 없는 카톡에 그냥 집 주변 카페에서 놀고 있다고 하자 저도 심심했던 것인지 바로 읽은 박찬열은 어디 카페냐 묻자 대충 답해주곤 핸드폰을 엎었다.
넌 나한테 이런 존재야, 박찬열. 매우 귀찮아. 다시 컴퓨터로 시선이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스 라떼를 든 남자가 내 쪽으로 왔다.
맛있게 드세요 하며 웃는 남자에 나도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라떼를 내 쪽으로 끌었다. 뭔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것 같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넘기고 빨대를 물고 한 입 크게 마셨다.
…뭔데 이거, 내 취향 아니라 한 거 당장 취소. 뭔데 진짜… 겁나 맛있잖아!! 미아가 됐었던 내 새끼를 찾은 것 마냥 내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역시 맛있는 걸 먹어야 기운이 보충돼. 먹기 위해 살지, 살기 위해 먹는 건 아니잖아? 와, 진짜 맛있다….
나 지금 행복해요-라고 얼굴에 잔뜩 써 놓은 듯 행복한 얼굴을 하며 라떼를 쭉쭉 들이키고 있던 중 내 앞에 웬 검은 게 앉았다. 뭐야 저건.
여전히 빨대에 입을 붙이고 고개를 들어 내 맞은편에 앉은 것을 보았다.
……? 뭐야, 박찬열이 왜 있냐.
"……."
"맛있냐, 김종대. 나 한 입만-"
"…야, 내가 니 한테 이 맛있는 걸 줄 것 같냐."
"…아 치사한 새끼. 존나 내가 사먹고 말지."
"그러시던가요-"
"그거 뭔데, 맛있냐?"
"이거? 아이스 라떼. 완전 맛있어."
완전 맛있다는 내 말에 박찬열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번뜩이며 그으래? 하더니 제 지갑을 들고 진격의 거인 마냥 성큼성큼 카운터로 향했다.
주문을 하고 돌아온 박찬열은 다시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제 폰만 연신 만지작거리며 입을 뗐다. 야, 근데 무겁게 노트북은 왜 갖고 왔냐.
무심하게 내뱉어진 그 말에 나는 여전히 아이스라떼에 내 영혼을 바치며 대답했다. 간지나잖아, 해보고 싶었어.
유치한 초딩 같은 내 대답에 박찬열은 기가 찼는지 피식피식 웃어대다 갑자기 울리는 진동벨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동벨? 뭐야, 왜 난 안 줬지.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건가. 문득 떠오른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지려는 순간 박찬열이 아이스 라떼를 들고 돌아오자 그 의문은 끊겼다.
한눈에 봐도 시원해 보이는 아이스 라떼를 한 손에 들고 자리에 앉는 박찬열의 표정은 어딘가 언짢았다.
"…뭐지?"
"뭐가."
"…야, 저 남자 이상해."
"왜?"
"…진동벨 울려서 갔더니, 막 째려보면서 라떼 줘."
"…째려봤다고? 니가 잘 못 본거 아니야?"
"아니야, 삼백안으로 째려보는데…무서울 뻔."
"…병신이냐."
뭔가 들으면 들을수록 오세훈이라는 남자가 이상하다고 느껴지기보단 지금 내 앞에 서서 미주알고주알 말을 해대는 박찬열만 하찮게 느껴졌다.
투덜대는 박찬열을 달래주고, 아이스 라떼를 마시고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작은 바늘은 1시를 가리켰다.
슬슬 고파오는 배에 밥이라도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에 박찬열에게 당연하다는 듯 밥 안 먹었지라고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안 먹었지 였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는 내 말에 박찬열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가자 하며 내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켰다.
노트북을 접어 가방에 넣고, 아이스 라떼를 들고 카운터로 가 잔을 둔 나는 나도 모르게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정신차린 순간 인사를 한 내가 쪽팔려지려 할 때 즈음 남자는 웃으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받아쳐주었다.
카페를 나오자마자 박찬열은 안녕히계세요가 뭐냐며 호탕하게 웃어댔고,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발을 들어 박찬열의 종아리를 차 주었다.
여전히 내리쬐는 햇볕은 더웠고, 강렬했다. 눈이 부시리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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