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dplay - sparks
별로 한 것도 없었는데 해는 벌써 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고, 푸르렀던 하늘은 어느새 붉은 황혼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2차로 술이나 먹으러 가자는 박찬열의 말은 가뿐히 무시하고 집으로 가던 중 버릇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자마자 그 자리에 멈춰 서 버렸다.
…내 폰. 앞주머니부터 뒷주머니, 가방 속까지 모두 탈탈 털어봐도 있어야 할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애꿎은 머리만 쥐어뜯어가며 기억을 더듬었다.
일단 카페에서 박찬열이랑 카톡 했으니까 그때까진 있었고, 밥 먹으러 갔을 땐 핸드폰 안 꺼냈었는데….
아, 카페! 카페 이후로 핸드폰을 안 꺼낸 게 아니라 못 꺼낸 거였나.
설마 벌써 문을 닫았을까 헐레벌떡 일어나 카페를 향해 뛰었다. 제발, 문 안 닫았어라.
아이스 라떼 두 번째 잔
w. 란케
숨 가쁘게 뛰어 도착한 카페는 다행히도 이제 막 문을 닫고 있었다. 카페 주인인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쪼그려 앉아 문을 잠그고 있었으니.
그 모습에 안도하며 남자에게로 다가가 언제 말을 걸어야 하나 타이밍만 노리며 어물쩍거리다 작게 저기요-하고 말을 걸자 남자는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바라봤다.
오전에 카페에 갔을 때, 내게 아이스 라떼라는 내 새끼를 찾아줬던 그 남자였다. 오세훈이란 이름이 박힌 명찰을 달고 있던.
"혹시 핸드폰…."
"아, 아이스 라떼?"
"…네? 아, 네."
"핸드폰 찾으러 왔죠."
"네, 네."
"여기, 핸드폰."
"아, 감사합니…."
핸드폰 받기 전에 답례로 그쪽 번호, 가져가도 되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담담하게 내 번호를 따는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담백했다.
새까만 흑발에 흰 와이셔츠 때문인지 더 돋보이는 떡 벌어진 꽤나 넓어 보이는 어깨, 구부렸던 무릎을 펴고 일어나니 드러나는 큰 키.
에, 에? 내가 당황해 실없는 소리를 내자 이내 헤실헤실 웃으며 응? 되죠? 하고 다시 되물어오는 남자에 내 고개는 의지와는 다르게 끄덕여졌다.
내 작은 끄덕임을 본 남자는 제 큰 손에 쥐어져 있던 내 핸드폰의 잠금 화면을 손쉽게 풀어냈다. 아, 패턴, 걸어둘걸….
뒤늦게 찾아온 후회는 노크를 하는 나를 보고도 그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능숙하게 내 핸드폰으로 제게 전화를 거는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에 뜬 내 번호를 보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저장해요, 잘생긴 사장님 오세훈이라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오세훈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웃는 나를 보고 더 해맑게 웃던 오세훈은 앞만 보고 걷는 것 같더니 갑자기 뒤로 돌아 나를 보며 말했다.
"나이는 23살, 이름은 오세훈, 보시다시피 카페 사장. 그쪽은요?"
"…25살. 직업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이름은, 김종대."
"25살? 형이네? 어, 잠깐만 이름이 김종대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
"네. 별로 유명하진 않은데 꽤 재밌어서 계속하는 중이에요."
"어, 근데 내가 형보다 두 살 적은데. 말 놔도 돼요."
"…편해지면, 말 놓을게요."
"뭐, 그래요 그럼. 근데 별로 유명하지 않은 게 아닐 텐데?"
"네?"
"나 형 짱팬인데. 형이 그린 책들 다 샀었어요-"
말 끝을 길게 늘려가며 장난기 묻어나는 오세훈의 말투에 웃음이 났다. 23살이라더니, 완전 하는 짓은 고등학생이었다. 매사에 장난기가 남치는 그런 고등학생.
내 짱팬이라는 오세훈은 어딘가 조금 들떠 보였다. 그나저나 내가 그린 책들을 모두 살 정도라면 완전 짱팬인데…? 한 두 권이 아닌 이 삼십 권쯤 되는 꽤나 많은 양인데.
그중 몇 권은 카페에 장식 겸 내 심심풀이 겸으로 놔뒀었는데, 못 봤어요?
…그러고 보니 카페에 갔을 때 뭔가 눈에 익은 익숙한 책들을 본 것 같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오늘 처음 만났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오세훈의 친화력은 어마어마했다. 덕분에 편해지면 말을 놓겠다 했던 내 말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지 오래였다.
진짜 누가 보면 알고 지낸 지 꽤나 된 줄 알겠다. 저기요- 하던 말이 어느새 야 나 세훈아로 바뀌었을 정도이니.
집으로 가는 내내 따라오던 오세훈이 의아함과 의심이 잔뜩 담긴 눈빛을 보내는 나를 발견하곤 피식피식 웃어댔다.
따라가는 거 아니에요, 나 여기 사는데.
…여기 산다고?
조금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몇 층에 사냐 묻자 맨 꼭대기, 5층이라 대답하는 오세훈의 표정은 여전히 웃음기 가득했다.
"…난 4층 사는데."
"아, 진짜요? 형 4층 살아요?"
"어, 어."
"잘 됐네, 한 층 차이면 자주 놀러 가야지."
근데 나 형 한 번도 본 적 없는데?라고 물어오는 오세훈은 싱글벙글 뭐가 그리도 신 나는지 웃는 얼굴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내 직업이 굳이 밖에 안 나가도 될 직업인데, 게다가 나가는 것도 귀찮기도 하고. 그리고 최근에 이사 온 것도 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집에 나도 모르게 아쉽다 비스름한 생각이 들었다.
"다 왔네, 4층."
"그러게요, 아쉽다."
"…됐고, 얼른 너도 올라가."
"알았어요. 밀지 마요, 형-"
"그래, 그래."
"아, 맞아. 형, 팬사인회도 했었잖아요. 나 그때 형한테 하트 하나만 더 그려주면 안 되냐고 졸랐었는데-"
형은 나 다- 까먹었나 봐. 뭐, 나도 형이 말해서 형인 거 확신했지만.
약간의 서운함이 담긴 어투로 말하며 손 인사를 하고 계단을 올라가는 오세훈에 나는 잠시 멘붕상태에 빠졌다.
2년 전 프리랜서로 일하기 전 출판사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근무할 때 내가 무슨 팬사인회냐며, 낯부끄럽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준면이 형은 팬사인회를 강행했다.
그림책뿐만 아니라 잡지나 광고 등 다양한 방면으로 그림을 그려서 인지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많은 분들이 와주었었다.
아이돌이나 배우, 작가, 모델도 아닌데 팬사인회를 가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부끄러웠었는데 팬이라고 오신 분들 모두의 응원들이 모여 큰 힘이 되기도 했다.
팬사인회가 끝난 후 저려오는 손목을 털며 준면이 형에게 고맙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런데 그 팬사인회에 오세훈이 왔었다니. 비밀번호를 누르려던 손도 멈추고 골똘히 상념에 잠겼다.
…아, 기억났다. 샛노란 머리를 큰 키의 한 남자가 하나만 그려진 하트를 보곤 하나만 더 그려주면 안 되냐고 졸랐었다.
그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하나가 아닌 다섯 개나 더 그려주자 남자는 나 감동 받았어요- 하는 얼굴을 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오세훈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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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분량이 적으니 5포인트! 그리고 아이스 라떼는 별로 길지 않은 단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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