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투 노멀 00)
새벽 4시. 피아노와 침대를 번갈아보다 결극 내가 앉은, 책상 앞. 까끌한 눈꺼풀을 비비며 책을 꺼냈다. 미적분학, 물리학. 책을 폈다. 글자가 춤춘다. 책 위로 엎드렸다. 아래층 소리가 들린다.
"안자고 뭐해. 네시인데."
"요즘 밤에 자본 적이 없어."
"휴, 또 시작이야."
"밤새 니가 죽는 상상만 해."
"멋지네, 오늘은 어떻게 죽었는데?"
"어느 미친 9월. 눈보라, 폭풍."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고."
"폭탄 테러, 신종 플루, 쓰나미."
"뉴스 보지 말랬잖아."
"착한 척 연기하지마. 집에 일찍 온단 말도, 다 거짓말이면서."
"엄마, 이제 그만 내버려둬. 나 벌써 열아홉이야."
말소리가 잠시 멈춘다. 아빠의 목소리.
"이 시간에 누구야?"
"아빠다, 얼른 올라가."
"아빤 왜 날 미워해?"
"니가 찐따니까."
"아들한테 찐따가 뭐야?"
엄마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준면은 마지못해 방으로 올라간다.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대화도 멈춘다. 엄마의 혼잣말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나, 둘, 셋. 방문이 열린다. 난 급히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새벽 4시야. 괜찮은거니?"
"너무 좋아. 아니, 좋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미적분학 세장만 더 공부하면 되고 물리학 문제랑 역사 쪽지시험, 그리고 '알제논을 위한 꽃'을 읽고 감상문을 내라는 거지같은 숙제가 남긴 했지만. 어쨋든 잘 돌아가. 모든게."
"...."
"아주, 평화롭지."
난 손을 뻗어 콜라캔을 집었다. 벌컥벌컥 삼킨다. 목이 따끔하게 쓰리다. 기분이 좋다.
"살살좀해. 널 위한 시간도 좀 갖고. 난 아빠랑 섹스하러 올라갈거다."
콜라를 뿜을 뻔 했다. 씨발.
"고마워, 엄마. 그런 것 까지 다 알려줘서."
"얘, 난 가끔 니가 천재지만 또라이같아."
엄마가 나갔다. 젠장. 콜라를 마시는게 아니였어. 헛구역질. 이딴 좆같은 집에서 가출하지 않은건 기적이다. 다른 애들도 다 이렇게 시는 걸까, 묻고싶다. 답이 없다. 난 늘 혼자야. 죽고싶어. 너무 아파, 그냥 죽지 못해 버티는 거야. 난 완벽해지려했어. 쉬지않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그러다 보면.
근데 잘 안돼. 이딴 집에서는.
준면이 방에 들어섰다. 여주는 느끼지 못한다.
"한시간, 빌렸어."
당연하게, 대답이 없다.
"영원히 살 것 같아."
"절대 못 벗어나."
여주의 혼잣말. 결코 준면의 말에 대한 대답은 아닌 듯.
준면이 그녀의 뒷모습에 말을 흩뿌린다.
"집에만 오면 아파."
"나 겨울 연주회 일정잡혔어. 아빠랑 올거지?"
"달력에 표시해 둘게."
"지금 달력은 작년 4월에 멈췄어!"
"그럼 해피 부활절!"
"응, 참 해피."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엄마를 뒤로하고 나왔다.
"네가 갈 때만 아파."
아침에 집에서 나오기 전 엄마의 혼잣말. 결코 내게 하는 말은 아닐거라 확신한다. 오빠, 김준면이겠지. 또.
선택형 수업. 마음에 든다. 공강을 만들어 연습시간을 늘릴 수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조용한 연습실. 피아노 한대. 그리고 모차르트. 완전 또라이에 맛이간 천재 음악가. 하지만 그의 음악은 다르다. 가볍고 투명해, 맑아. 그의 천재성이 빚어낸 논리적 화성에 귀기울이면 고통도 가난도 질병도, 다 사라져. 그 또라이가 내게 말을 건다.
'자 악보를 따라서 건반 위를 걸어봐. 그럼 모든게 다 사라져. 모든게 다 사라져, 다 사라져...'
완벽해질 때까지 죽도록 연습, 또 연습. 손톱, 건반 전부 깨질때 까지 연습. 그럼 연주회는 대박나고 서울대 조기입학허가 받고. 거지같은 학교도 이 집도 모두 안녕이다. 벗어날거야. 피해망상증 부모도, 전부.
소나타. 이것만 익히면 돼. 그럼 모든게 다 사라져. 모든게. 다 사라져, 다....
"모든게 다 사라져!!"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연주를 멈췄다. 누군가 내 앞에 서있다.
"좋은데?"
"이 연습실 아직 7분하고도 30초 남았어."
"그래 알아. 그냥 듣는 걸 좋아해서. 난 경수야, 도경수."
"김여주."
"그래, 그건 알아."
"안다니 좀 무섭다."
"우리 이 학교 같이 다닌게 6년이야."
"정말."
"니 바로 뒷자리에 앉는 수업만 네개야."
"에휴, 그건 더 무섭다, 야."
"수업 전에도, 방과후에도 이 방에 자주 와."
"그래, 7분 남았어."
난 다시 피아노로 눈을 돌렸다. 짜증나. 경수도 잠시 후 돌아서 나간다. 어이없어.
"넌 포기가 빠르구나."
내 말에 다시 뒤돌아본다.
".... 넌 사람 헷갈리게 해."
"니가 울엄마를 못봐서 하는 말이야."
피아노 건반을 강하게 눌렀다. 부서질 정도로.
"엄마?"
"우리 엄마. 미쳤거든. 지금도 병원에 계실거야."
"왜?"
"넌 포기가 빨라."
"약하셔?"
"약?"
"응, 약."
"약쟁이 할때 그 약 말하는거지? 마약."
"응."
"말해줄 이유 없다."
"....."
"....너."
"......."
"왕따지?"
내 말에 경수는 가볍게 웃고 연습실을 나간다. 씨발.
집에선 엄마가 또 약을 하셨다. 정신병원은 하루 적절량이란 걸 모르는 건지. 엄마의 혼잣말이 이어진다. 귀를 막았다. 새로운 치료가 꼭 효과를 보기 바라면서.
연습실 문을 열었다. 이번엔 도경수가 앉아있다. 재즈 왈츠를 연주하고 있다.
"내가 재즈가 이해 안되는건, 이게 맞는건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는 거야. 어차피 대충 지어내는 거잖아."
"그런걸 창작이라고 하는 거야."
"아, 넌 가식적인 약쟁이 아티스트에 속하는구나."
"말도 안돼. 난 가식적이지 않아. 클래식이 안 맞을 뿐이지. 너무 딱딱하고 틀에 박혀있잖아. 거기엔 어떤 즉흥도 용납이 안된다고. 악보에 있는 음만 연주해야 하잖아."
"그럼 모차르트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 마리화나나 하고 반짝반짝 작은 별을 잼으로 했어야 했나?"
"오, 우리 그거나 해보자."
경수를 봤다. 클래식이 싫다. 자유롭게 연주한다. 약빤 사람들 처럼.... 잠깐,
"하,"
"왜?"
"됐어, 꺼져."
연습실을 나왔다.
엄마의 치료. 삼주차다. 차이가 있기는 한 걸까. 모르겠다. 알아서 하겠지.
경수와 연습실에서 계속 만났다. 그는 날 일부러 찾아왔다.
"앉아도 돼?"
피아노 의자 옆을 가리키며 물었다.
"알아서 해."
경수가 앉았다. 가깝다.
"너 때문에 몇 주 동안 연습을 다 망쳤어. 너랑 앉아서 하는 이 즉흥연주 때문에."
"키스 자렛도 너처럼 클래식을 하던 사람이었어."
"베토벤은 코케인을 했지."
"마일스 데이비스는 줄리어드 출신이야.'
"모짜르트는 방구에 대한 시를 썼어."
도대체 서로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는 대화. 도경수와의 대화는 이런식이였다. 고개를 돌렸다.
그와 매우 가깝다. 숨이 느껴진다. 키스할 것 같다. 우린 둘다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연탄곡을 미친듯이 연주했다.
"아빠."
연주가 멈췄다.
"아버지?"
"나 간다."
"다음에 우리집 올래?"
"미친놈."
'사랑은 맹목'이란 말. 실은 광기다. 아빠. 아빠에게 우리 엄마는 어떤 존재길래. 도경수의 숨결이 코끝에 여전히 남아있다. 코를 툭툭 털어냈다.
<넥스트 투 노멀> 소설화 ㅎㅎ
뮤덕 작가의 뮤지컬 작품 소개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