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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어제 저녁 경수에게 그런 얘기를 한 뒤 오늘 오후까지. 경수에게 온 전화는 딱 세통이었다.
경수와 싸울때는 늘 그랬다. 저가 잘못했든, 경수가 잘못했든. 다툼이 있은뒤에는 항상 약속이라도 한듯 딱 세통의 부재중만이 떠있었다.
그리고 덜렁 세통의 부재중 만이 떠있는 그 휴대폰 화면을 보고있자면 왠지 모르게 화가 난다는 것이다.
경수는 항상 그랬다. 그 세통이 경수의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그는 저를 사랑하고 믿고 따라주었지만, 자신이 가진 그 많은 것들을 버리는것은 두려워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것이다. 경수가 가진것들이 그냥 그저 그런것들은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하지만.

 


"..이런 생각 그만하자."

 


많은 수식어들을 떨쳐내기 위해 종인은 소리내어 말을 내뱉었다.
경수의 결혼을 위해서는 할 일이 많았다. 제가 하는 일은 그 둘을 우연인척 만나게 해 연애결혼을 하게 하는것.
말로 하면 한줄로도 끝낼 수 있는 이런 우연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것에는 많은 눈치와 순발력이 필요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였을때, 아무것도 모른채 서로를 운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많은 이들을 보며 작은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돈 많은 집 사람들은, 사랑도 이렇게 하는것인가. 욕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그냥 이것도 하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자고 합리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수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해왔듯이 우연히 그 여자를 만나게 하고 또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척 만들고, 결혼에 골인하게 만들어야 했다.

경수도 저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눈칫껏 그 여자와 사랑에 빠져주는척 연기해 줄 것이다.

결혼을 하면? 애도 낳겠지. 경수를 닮아 눈이 예쁜 아이일 것이다. 키는 조금 작을지도 모르겠다.
집 걱정은, 둘 다 하지 않겠지. 신혼부터 궁전같은 집을 얻어 남부럽지 않게 생활 할 것이다.
경수는 지금과 같이 일을 하고, 이제는 퇴근하며 저에게 전화를 하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겠지. 그리고 저녁을 먹을 것이다.
그 여자가 차려놓은 밥을. 경수를 닮은 그 아이와 함께.

종인은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에 신경질 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명 어제 경수와 얘기를 할때에만 해도. 너무 담담한 자신이 냉정하다 생각했는데. 뒤늦은 분노가 종인의 속을 뒤집어놓고 있었다.

 


"씨발!"

 


종인이 제 이름 석자가 새겨진 명패를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값비싼 대리석이 긁혀지며 보기 싫은 흉터가 남겨졌다.
그리고 다시 털썩. 종인은 제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돈이라는것이, 없을 때는 그렇게 얻고 싶고 갈증이 나며 욕심이 나더니. 얻고 나니 더욱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지금 제 자신은, 곰팡이핀 벽지를 바르고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살던 18살의 김종인보다, 더 바보같고. 더 구차했다.

 


---

 


"왜 전화 안 받았어,"

 


자리에 앉자마자 따지듯 물어오는 경수의 말에 종인은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맸다.
그녀는 무슨 심보로 저와 경수의 식사자리를 만든것일까. 분명 저에게 그만하자는 말을 들은 경수가
그녀에게 찾아가 왜 저에게 그런말을 했냐고 화를 냈을터인데. 그렇다면 저희가 적당히 끝냈다는 것을 알고 있을꺼면서.
그 여자의 못된 심보야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여자는 뼛속까지, 배배 꼬여있었다.

저와 경수가 어떻게 지낼것인지 제 눈으로 보고 싶은건가.

 


"야. 김종인."

 


다시 한번 저를 부르는 경수의 말에 종인은 응. 작게 대답했다.
왜 전화 안 받았냐고. 경수는 평소보다 조금 더 화가 나있는 모양이었다.
종인은 급격히 피곤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사무실을 엉망으로 어지럽히며 분풀이를 하고 왔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보여지는 경수의 모습은 저에게 오히려 독이었다.

 


"못 봤어."

"그럼 왜 다시 전화 안했어."

 


천천히 고개를 드니 경수가 바르르 떨며 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럴때면 저는 화내는것도 귀엽다며 경수의 눈을 가려버렸었지. 경수의 눈은 너무 깊고, 맑아서 제 더러운 속내를 전부 속속들이 알아내는 것 같았다.

 


"니가 한번 더 하지 그랬어, 전화."

 


경수가 말문이 막힌듯 너..! 하고 말꼬리를 늘리고 있을때 경수의 어머니가 룸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들여다보며 종인은 내키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를 떼어내 그녀를 자리까지 에스코트 했다.
그녀가 종인의 손길을 익숙한듯 받아들이며 자리에 앉을때까지도 경수는 그녀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애꿎은 식기류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얘, 너는 엄마가 왔는데 인사하는 시늉도 안하니."

"오셨어요."

 


경수가 그녀를 향해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 애같은 모습에 종인은 작게 웃음 짓고 다시 제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그리고 언제 세팅됐는지 자신들의 앞에 놓여진 작은 에피타이저 접시를 보며 종인은 애써 목소리를 높혔다.

 


"근데 어머님, 경수랑 오랜만에 같이 밥 드시는건데 제가 껴도 되나요? 저야 맛있는 밥 얻어먹어 좋지만요."

"오랜만에 다같이 밥 먹으면 좋잖니? 예전에 너희 학생일때는 자주 같이 밥 먹고 그랬는데 말이야.."

 


경수의 어머니는 마치 정말 추억이라도 회상하는듯 저를 보며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인은 그녀를 따라 내키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내며 손목시계를 손가락으로 여러번 쓸어내렸다.
이내 들자, 하며 먼저 식기를 드는 그녀를 따라 종인과 경수는 약속이라도 한듯 따라 식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느덧 에피타이저가 끝나고 코스의 메인 요리를 반쯤 먹고 있을때쯤 숨 막히는 침묵을 깨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종인아, 경수 결혼식 언제쯤으로 생각해두고 있으면 되겠니? 아줌마는 되도록이면 내년 5월쯤에는 식 올렸으면 싶은데 말이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경수가 작게 '엄마.' 하고 그녀를 불러세웠다.
하지말라는 뜻이 함축되어있는 짧은 단어였지만 그녀는 별로 그만할 생각이 없는지
저를 가만 쳐다볼 뿐이었다. 빨리 대답하라는 제스쳐였다. 종인은 이 모자와는 밥을 편하게 먹을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경수가 제 생각대로만 따라주면 어머님 바램대로 5월쯤에는 식 올리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종인! 경수가 제 말이 끝나기를 참지 못하고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저희 룸 방문이 다시 열리며 꽤나 고상하게 생긴 여자가 경수의 어머니에게 목례를 하며 걸어들어왔다.

 


"좀 늦었구나. 경수야, 앉아라. 인혜 너도."

 


종인은 멍청하게 지금 이 상황이 뭔가 머리를 굴리다가 이내 그 여자의 얼굴을 기억해내고 이를 갈며 고개를 숙였다.
경수의 어머니가 주었던 서류봉투 안 인주그룹 둘째딸이라는 황인혜였다. 이제 곧, 경수의 아내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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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ㅜㅜㅜㅜ안돼요.ㅠㅠㅜㅠㅠㅠ종인이랑경수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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