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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다ㅡ 널 위해서 희생을 자처한 놈들이야."

 

크리스가 개중 한명의 등을 툭, 내리쳤다.
결심이라도 한듯 비장한 표정의 사내가 루한을 마주 바라봤다.
12년이었다, 그것이 끔찍하도록 긴 시간인것을 저들은 아는것인가, 루한은 의문이 들었다.

 

"전달이 잘못 됐나 봅니다, 전 제가 가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었는데요."

"아, 들었지 들었어."

 

크리스의 난잡한 손동작 하나에 방에 모여있던 앳된 사내들이 순식간에 방을 빠져나갔다.
그 사내들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던 루한에게 크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굵다란 반지가 몇개는 끼워진 손을 꿈틀대면서.

 

"너 대신 감옥 가겠다는 놈들이 수십이야. 근데 니가 직접 가겠다는건 무슨 심본지, 뭐 책임감이라도 느껴져?"

 

크리스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비웃는듯한 입꼬리, 벌써 몇년을 함께했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맹수 같은 사내, 루한은 속으로 혀를 찼다. 겉으로는 여전한 표정을 짓는것도 잊지않았다.
이 바닥에서 표정관리 하나 못하는 이들은 모가지 날아가기 쉽상이었다.

 

"큰건이라,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경찰 쪽에서도 흐지부지 넘어가진 않을꺼라 들었습니다."

 

큭, 크리스가 못 참겠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길게 이어졌지만 루한은 따라 웃지않았다.
어차피, 이 곳으로 불려온 이상 제 뜻대로 될 일은 없을것이다.
루한은 만사 귀찮아졌다,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꺼, 저 재수없는 얼굴과 독대는 이제 그만 끝내고싶었다.

 

"넌 매사에 진지한게 흠이라니까. 그런 일은 니가 걱정할께 아냐, 루한. 우리가 다 알아서 할 일이지. 넌 몸만ㅡ. 응? 몸만 제대로 써."

 

툭, 크리스의 커다란 손이 루한의 볼을 가볍게 쳐내었다.
스치는 반지의 촉감이 소름돋는다고 생각하며 루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문을 향해 걸어가는 루한의 뒤로 크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삼개월만 몸 좀 피해있어. 내가 자리 봐놨으니까."

 

여전히 웃음기가 베어있는 목소리였다.
루한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실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저 대신 죄의 벌을 받게 될 사내는 크리스의 뒷돈으로 아마 8년정도 뒤에는 출소 할 수 있을것이다.
출소 뒤에는 서울 꼬투리 지역 관리쯤 맡게 되겠지. 루한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을 그만 털어내었다.
크리스의 말대로 저는 몸만 잘 굴리면 되는것이다.
저 대신 감옥에 갈 그 누군가나 저 자신이나, 밑바닥 인생이라는 것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삼개월간 휴가네, 부럽다."

 

회사 건물 앞에서 짐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가벼운 가방을 둘러맨체, 자신을 크리스가 봐놓았다던 그 곳으로 태워다 줄 조직원을 기다리는 루한의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흘끔, 뒤돌아 준면을 확인한 루한이 별다른 대꾸없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얄쌍한 준면의 팔이 팔짱을 껴왔다.

 

"놀러가도 돼? 너 있는데."

 

준면은 몸을 쓰는 저와는 반대로 머리를 쓰며 돈놀이가 전문인 사내였다.
루한은 준면이 부담스러웠다. 겹쳐오는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 잘 알아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크리스한테 찢겨 죽는게 보고싶으면, 와."

 

스륵, 준면의 팔이 조용히 빠져나가는 걸 내려다 본 루한이 어느새 바로 앞까지 굴러와있는 차에 가볍게 몸을 실었다.
크리스가 사내질에 미쳐 지 애인이랍시고 싸고도는 김준면과 눈이라도 마주친 놈들을, 뼈채 씹어먹을 것 같이 군다는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준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것이고. 루한은 빠르게 회사를 빠져나가는 차 안에서 낮게 웃음을 흘렸다.
왠만한 일에도 제 페이스를 잃지않는 크리스가 준면의 일이라면 눈이 돌아가 난리를 피워대는게 우스웠다.

 

한참을 낮게 웃음 짓던 루한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듯 넓다란 시트에 몸을 기대었다.
휴가라, 아까 준면이 스쳐가듯 뱉어낸 말이 기억나 루한은 작게 그 단어를 소리내 중얼거렸다.

자신은 사람을 죽였다. 한 사람도 아닌 수십명이었다. 크리스가 눈독 들이던 땅을 뺏기 위한 싸움이었고, 자신은 그 싸움의 행동대장이었다.
마지막 뒤처리를 위해 사람이 남아있던 세개의 대형 창고에 불을 붙였고 그렇게 크리스가 원하던 땅은 몇십명의 죽음으로 그의 것이 되었다.
이제 와 죄책감이라고 부를 만한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남을 죽인것의 포상으로 휴가를 간다는 말은 꽤나. 찝찝했다.

 

"만났다하면 기분 엿같아지는 힘을 가지고 있네, 애인끼리."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크리스는 진짜 보스같아요 이미지도그렇고 ~~~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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