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잘 지냈냐.」
「잘 지냈지, 그럼 못 지냈겠습니까.」
「이 씨발 새끼. 하늘같은 선배님한테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하균이 준면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하균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방방 뛰는 준면을 능청스럽게 쳐다보며 웃었다. 선배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준면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정부렸다. 여섯 달 만의 재회였다. 탈북자 관련 문제로 꾸렸던 팀이 해체되고 난 이후로는 만날 틈이 없었으니 말이다. 같은 국가정보원 요원이라지만 경구와 준면은 대북정보부, 하균은 안보수사부로, 둘이 하는 일은 엄연히 구분되었다. 어깨가 뻐근한지 두어 번 돌리던 하균이 이내 외투를 벗어 책상 위에 걸쳤다. 그의 외투에서 찌든 담배향이 얼씬하게 풍겨왔다.
「아, 선배님. 이게 뭡니까. 담배 찌든내.」
「불알달고 태어난 놈들은 이래도 돼.」
「내가볼 때 너는 좆이든, 젖이든 그럴 새끼다.」
언제 들어왔는지 경구가 두툼한 서류봉투로 하균의 머리를 쳤다. 그러게 땅 같은 후배를 왜 때리고 지랄이야, 지랄은.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이야기한 경구가 검지손가락으로 책상을 쳤다. 경구의 제스처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처럼 다투던 하균과 준면의 시선은 거짓말처럼 경구를 향했다. 아마, 이미 예전부터 이목을 집중시켜야 하는 상황이 올 때 마다 경구가 했던 제스처이기에 그랬을 것이리라.
「000의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구성된 팀이니까 취지에 걸맞게 행동해. 준면이, 이 회의 끝나자마자 바로 제복 벗는다. 팀이 해체되기 전까지 내 명령이 없으면 제복 입지 마. 그리고 000 옆에 붙는다.」
「에?」
「그리고 도청장치 우리가 설치했으니까 쓸데없이 떼지 말고.」
「도청장치요?」
「그래.」
「000 지켜야 한다면서요. 그런데 왜 000 몸에 도청장치를 설치합니까!」
「예방차원이었다. 그건. 그러니까 너는 알아도 모른 체 해.」
「선배님.」
「그리고 하균이. 내가 말했던 거 준비해왔어?」
진행속도는 빨랐다. 팀장답게 경구는 맡은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고자 노력했다. 경구의 말에 하균이 노트북을 열었다. 스크린으로 하균이 준비한 자료가 띄워졌다. 첫 번째 페이지는 도경수의 가족관계도였다.
「네. 뭐……. 대충은 아시겠지만, 도경수는 북한에 뼈를 묻은 집안의 자식입니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충성심, 굉장히 높을 거라 예상하고요. 키 173센티미터에 몸무게 60킬로그램. 작고 왜소한 체형이나 어릴 적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기에 신체조건은 무의미하다고 판단됩니다. 조금 특이한 점은, 도경수의 어머니가 평양무용단 출신이었는데 도경수 출생 후 1년 만에 사형 당했어요. 원인은 국가배반. 공식적인 이유는 그렇습니다.」
「공식적인 이유가 그렇다면? 」
「도경수의 아버지가 멀쩡한 것으로 보아선 개지랄 같다, 이거죠.」
간단명료하게 답을 내린 하균이 다음페이지를 띄웠다. 오세훈의 사진과 간략한 정보였다.
「그리고 오세훈. 특별한 것 없습니다. 가족도 평범하고, 외동아들인데 여섯 살 때 예비대에 들어갔네요. 입대 이후로는 부모님과의 접촉 단 한 번도 없었고요.」
「선배님, 그럼 오세훈 부모님의 생사는 어떻습니까?」
「몰라서 묻냐. 즉시 총살됐다. 오세훈 입대와 동시에.」
경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까짓 일쯤이야, 지겹도록 봐 왔던 시나리오였기에 그러려니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면은 달랐다. 평생을 수입 공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 직업이 탐구하는 국가, 북한에 대해 준면은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경구와 하균 역시 마찬가지였겠지만, 노련했던 그들과 준면은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경구와 하균이 그런 끔찍한 실상들에 감흥이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준면과는 달리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묵묵히 삼켜낼 줄 안다는 뜻이었다.
「김준면. 이번 작전의 목표가 뭐라고 했지?」
탁한 초록빛이 도는 자켓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경구가 무심하게 물었다.
「000을 살리는 것입니다.」
「군기 바짝 들었네. 좋다. 흐트러지지 마라. 너보다 딱 두 배 고생해서 부대 들어간 놈들이야. 지독하다고, 지독해.」
경구가 고개를 내저으며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시종일관 미소를 짓던 하균이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준면의 이름을 불렀다.준면은 직감적으로, 하균이 부정적인 말을 내뱉을 것임을 눈치 챘다.
「한 달. 대한민국이 우리 셋에게 제공한 시간은 단 한 달 뿐이야.」
「한 달이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한 달 후에, 살아서보자.」
「…….」
「좆같은 후배새끼야.」
다시 미소를 되찾은 하균이 준면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겨진 회의실, 싸늘한 빈공간이 한 달 간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만 같아 준면은 문득 두려워짐을 느꼈다.
*
1945년 해방 후 한반도는 곧바로 한국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동반했던 한국전쟁은 1952년,휴전협정을 맺으며 숨을 돌렸는데, 그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비밀부대가 하나 창설되었다. 바로 '5106 화부대'가 그것이었다. 5106 화부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을 거친 후에야 그 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는데, 훈련 중 총기사용이 허용되었으며 그로인해 알게 모르게 죽어간 젊은이들 역시 상당수였다. 경구와 준면은 5106 화부대였다. 국가정보원 대북정보부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일 뿐 그들은 말 그대로 '주적(북한)을 견제하고 도발 즉시 투입되는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준면이 5106 화부대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경구는 간첩소탕작전에 투입됐다. 대부분의 간첩들이 살포되었으나 단 하나 살아남은 자ㅡ 도경수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경구의 배꼽 아래에 새겼다. 그리고 경구가 돌아왔을 때는, 준면이 우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경구의 오른팔이 될 준비를 모두 마친 후였다. 이후 그들은 5106 화부대의 일원임을 숨긴 채 국가정보원 대북정보부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것은 국방부 장관 진영과 안보수사부 요원 하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모르는 진실이었다.
「장관님.」
「자네 왔나.」
근심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주시하던 진영이 경구에게 짧게 손 인사를 하고 쇼파에 앉았다. 진영이 채 식지 않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늘따라 지독하게도 쓴 커피가 진영의 미각을 자극시켰다. 혀로 입술을 축인 진영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말해 봐.」
「예. 5016 화부대 설경구와 김준면, 그리고 안보수사부 신하균. 오중흡 7연대 대장이었던 아버지를 둔 탈북자 000을 살리기 위한 팀을 구성했습니다.」
「그 여자, 꼭 살려야 해. 그 여자에게 남북의 미래가 달려있는 것쯤은 자네들도 잘 알겠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세 명이서 되겠나. 무리 아냐?」
진영의 말에 경구가 작게 미소 지었다.
「장관님. 저희, 5106 화부대입니다. 그리고 신하균……. 어떤 놈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셋이면 충분합니다.」
「내 말은 그게 아냐……. 자네들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고. 자네도 들었잖은가. 국가에서 허락한 기간은 딱 한 달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하균을 투입한 겁니다. 박해일, 도경수, 오세훈, 그리고 백현. 네 사람 쯤이야 저희 둘이서 목숨만 구걸하지 않는다면 함께 죽을 수 있는 상대입니다. 김준면과 제가 몸, 그리고 신하균이 머리가 되어 움직일 겁니다.」
「…….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하지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세 사람 모두, 살아 돌아와야 해.」
「종불 팀입니다.」
뜬금없는 경구의 말에 진영이 눈썹을 들썩였다.
「종불?」
「마칠 종(終)에 아니 불(不).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끝나지 않았다'라…….」
「전쟁 말입니다. 장관님, 전쟁…….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정적이 맴돌았다. 김정은까지 3대 세습을 이루어 낸 북한은 최근 연이어 도발행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유야 다양했다. 그게 그들의 룰이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일단 지르고 보는, 유치하기 그지없는 발상이었다. 그럴 때 마다 기자들은 진영에게 몰려들어 그런 부분들에 대한 견해라던가, 생각을 물어댔다. 진영으로써는 고통이었다. 도발에 대한 생각. 그런 게 애초부터 있을 리가 없었다. 도발경고를 해올 때 마다 군의 긴장을 최고조로 달구어놓는 것뿐이었다. 연평도 포격 직후, 대한민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이들이 전쟁의 위험에 대비해 맞대응 할 수 없게끔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발을 샀던 전(前)국방부 장관은 사퇴했다. 진영은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으리라고.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낸 쌀밥을 먹는 나는, 국민을 위한 삶을 살겠노라고.
「장관님.」
힘없이 고개를 숙인 경구가 진영을 불렀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
「살아 돌아온다는 약속, 못하겠습니다.」
경구가 거수경례를 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나라를 위해 죽겠습니다.' 경구의 경례에는 의미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정예 비밀특수부대 5106 화부대의 설경구와 김준면,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안부수사부 요원이자 5106 화부대의 마지막으로 가는 관문에서 한쪽 귀를 잃어 가차 없이 떨어진 신하균. 세 사람이 만들어낸 종불 팀은 대한민국의 품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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