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니고
: 누구세요?
"개 밥은 언제 사왔대?"
"도비 주사 맞히러 갔을 때. 왜, 이것도 탐 나냐?"
"진짜 뒤질래."
결국 등짝 한 대를 맞아서야 동생 새끼의 조잘댐이 멈춰졌다. 안 본 사이에 깝침 능력이 더 늘은 게 영 맘에 안 들었다. 그나저나 주말을 포함해 일주일의 휴가 중 벌써 6일이 지났다니. 내일 모레부터 회사 갈 생각에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어 쇼파에 엎드려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저 주방에 엄마 옆에서 개밥만 잘 먹다 별안간 뛰어오는 열매 때문에 금방 잊혀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쇼파 밖으로 삐져나와있는 내 손을 할짝대는 열매가 꽤 귀엽다고 느껴졌다.
"왠일로 겁을 안 내? 제가 알던 OOO 씨 맞으시죠?"
"예 맞아요. 근데 얘는 좀 순한 것 같아. 말도 잘 듣고."
"문제는 누나라니까."
"한 대 더 맞고 싶냐?"
"도비야. 그 누나 위험해. 얼른 이리로 와."
오세훈의 열매를 유혹하는 박수 소리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 번 안 돌리고 내가 누워있는 쇼파 쪽으로 올라오려 낑낑 대는 열매를 살짝 들어올려 내 옆에 두었다. 아직 내 품에 두기엔 마음의 준비가... 라고 생각하는데 갑작스레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드는 열매 때문에 심장이 떨어질 뻔 했다. 존나 아직은 누나가 좀 무섭고 그런데...ㅠㅠ
떨리는 손으로 열매를 옆으로 다시 옮기고, 옮겨봐도 다시 내 안으로 와버리기에 결국 포기하고 가심을 진정시켰다. 릴렉스, 진정하자. 후우. 아직 예전에 물렸던 경험이 작은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쉽게 진정되진 않았지만 몇 분 지난 후에는 어디로 둬야 할 지 모를 팔을 가볍게 쇼파에 걸칠 수 있었다. 열매도 내가 좀 무서워하는 걸 알았는지 내 다리 위에 앉아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을 뿐 별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몇 번 쓰다듬어주니 꼬리만 살랑살랑댔다.
"오오~ 귀여워 귀여워."
"열매 귀여운 거 너 밖에 몰랐다니까? 너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었을 때 얼마나 애교쟁이였는데."
"맞아. 근데 얜 누나가 좋나봐. 누나 방 앞에서 계속 얼씬거린다?"
"그건 좀 신기하더라. 맨날 자고 일어나면 얘가 바닥에서 자고 있으니까... 쬐끔한 게 문도 잘 열고 들어오고."
그 이후로도 잘 때 만큼은 열매가 들어오지 못 하게 문을 닫아놓고 잠을 잤는데 항상 아침에 일어나고 보면 바닥에서 쿨쿨 자고 있거나 이미 일어나서 침대 위로 올라오려고 낑낑 대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누나가 좀 예쁘지? 질문은 열매에게 했지만 돌아오는 건 엄마의 코웃음과 세훈이의 비속어였다. 혼잣말처럼 하려는 것 같았는데, 다 들렸거든?! 내 외침에 도리질 치며 지 방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열매보다 못한 놈. 쯧쯧 대며 마저 보던 티비를 시청했다.
"그렇게 예쁘면 네가 데려가서 키워."
"...엄마 그건 좀."
"왜? 도비는 특히 너 좋아하잖아. 얘한테 선택권을 줘야지."
"나는 선택권 없나...? 나 인간인데?"
그러자 열매가 멍! 하면서 짖어버렸다. 이놈 시끼가 누나가 말하는데 짖어?!
괘씸죄로 손가락으로 머릴 툭 치니 한 번 더 짖으면서 내 손가락을 핥았다. ...미워할 부분은 없는 거 같네.
생각해보니 딱히 나쁠 것도 없었다. 내 밥 값 외에 돈이 더 든다고 생각하니 좀 짐이 느는 것 빼고는. 아무도 없는 집에 왔을 때 꼬릴 살랑이며 반겨줄 열매를 생각하니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렇게 착한 애인데? 밥도 많이 먹는 편도 아니고. 게다가 개들 중 잘생긴 편인 시베리아 허스키인데. 볼 맛도 나겠구먼. 그렇게 내 즉흥적인 생각과 결정이 정해졌다.
"그럼 열매 우리 집에서 키우지 뭐!"
*
그날 저녁, 휴가 마지막 날은 내 오피스텔에서 보내고 싶어서 아쉬워하는 부모님과 가든 말든 상관 안 하는 듯한 오세훈을 두고 달리고 달려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먹을 것 한 뭉텅이, 짐 가방, 그리고 열매. 정신 없는 상태이고 짐도 너무 많아 열매를 들고 오지 못 해서 뒤로 잘 따라오라고만 하고 제대로 신경을 못 썼다. 애완견을 키울 수 있는 오피스텔이어서 들어올 때에 경비아저씨에게 예쁨 가득 받는 열매를 두고 올 뻔 했다. 경비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엘리베이터까지 끙끙 대며 힘겹게 집 앞으로 도착했다. 도어락 기계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이 열렸다. 열매야, 드루와! 내 말에 열매는 제 집인양 집으로 들어섰다.
냉장고에 무거움의 중심인 반찬거리들을 넣어놓고 쇼파로 직행해 철푸덕 누웠다. 열려있는 방문으로 들어갔었는지 어느새 거실로 나와 쇼파에 올라와 내 위로 올라탔다. 낮아서 그런지 쉽게 올라오네. 허리에서 가만히 있지 못 하고 바등대는 열매를 조심스레 옆으로 치워 앉았다. 제 품으로 파고드는 게 너무 귀여웠다. 나, 뒤늦게 사랑에 빠졌나봐. 이리저리 간질여주니 아까보다 더 심하게 바둥거리다가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버렸다.
"열매야!!!!!!!"
낮아서 다행이었지. 금새 몸을 일으키고 헥헥 대는 열매였다. 존나 깜짝 놀랐네. 미안 미안. 다시 제 품으로 끌어안아 쓰다듬어주니 자기도 꽤 놀랐던 모양인지 이번엔 가만히 안겨있는다. 오구, 귀여운 것. 리모컨을 집어 재밌는 프로그램이라도 할까 채널을 돌렸다. 꽤 늦은 시각인지라 예능들이 방영되고 있었다. 다시 쇼파에 엎드리고 열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오피스텔은 어느새 내가 잠이 들고, 티비소리로만 이루어지게 되었다.
*
"주인, 자?"
저도 모르게 잠들었다 깨어보니 이번엔 주인처럼 사람의 몸이 되어있었다. 우와. 이런 일은 처음인데. 신기해하며 눈을 돌리다 쇼파에서 침을 흘리며 자는 주인을 봤다. 집 구경은 아까 다 했는데. 이번엔 주인 구경이나 해야지. 쇼파에 팔을 얹히고 그 위로 얼굴을 기댔다. 바로 앞에 있는 주인의 입가로 흐르는 침을 닦아주었다. 으으응. 잠시 앓는 듯한 소리도 났다. 주인도 저런 소리를 낼 줄 아는구나. 나랑 같은 건가? 그건 아닌가.
그렇게 똑딱거리는 게 11에서 2로 바뀌었다. 똑같은 자세로 잠만 자는 주인을 뒤로한 채 천천히 걸으며 냉장고 앞에 섰다. 이게 냉장고가 맞나? 아까 주인이 냉장고라고 말한 것 같긴 한데... 개밥은 맛이 없었다. 아무 맛도 안 나는 거 대신에, 주인이랑 주인 가족들이 먹던 걸 먹어봐야지. 근데 이건 어떻게 열지? 아까 주인은 열었는데. 손잡이인가, 그것도 없고.
"흐음..."
그 앞에 앉아 몇 분을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열릴까.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다 아까 제대로 보지는 못 했지만 주인이 했던 것처럼 해보기로 결정했다. 아까 이렇게 눌렀었나? 손가락 하나로 겉 부분을 쳤다. 절망스럽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번엔 두 손가락으로 냉장고를 쳤다. 역시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손가락을 늘려 쳐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에이씨, 모르겠다!
'쾅'
몸을 던져 냉장고 문을 치니 활짝, 냉장고 문이 열렸다.
"우와아."
이렇게 해야되는 거구나. 그럼 주인은 맨날 이렇게 힘들게 문을 여는 거였어? 앞으로는 내가 해줘야지. 히히.
여러 가지가 많았는데, 마침 목이 말랐던 터라 검은 것이 담겨있던 길다란 통을 꺼내었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뭔가 이상했다. 먹어도 되는 거겠지? 뚜껑을 열어 조심스레 길다란 것을 기울여 입 안으로 넣었다.
"푸학!!!"
뭐야! 이건 뭔데 이런 맛이 나? 주인은 먹을 게 없어서 왜 이런 걸...!
이해할 수 없고, 그저 고통스러운 맛이었다. 퉤퉤. 투명한 게 담긴 길다란 것을 열어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이건 물이라는 걸 알았다. 주인의 엄마라는 사람이 나에게 이걸 주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거 먹을걸. 입 안에 아까 먹은 것이 가시질 않았다. 주이인... 왜 이런 걸 먹고 그런대. 우리 주인은 이상하다.
*
달그락 달그락.
언제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닫힌 건지 티비와 불도 끄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여섯 시를 향하는 시계를 보고 아직 더 자도 되네, 하고 티비를 껐다.
불도 끄고 싶었지만 불을 끄러가려면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그저 눈만 감았다.
달그락.
...이게 무슨 소리지?
눈이 번뜩 뜨였다. 무거운 몸뚱아리를 일으키고 바닥에 발을 짚어 쇼파에 앉았다. 달그락. 또 한 번 났다.
주방에서 나는 소린데. 별 생각 없이 눈을 옆으로 돌렸다.
"쩝쩝."
"..."
"..."
"...주,"
"누... 누구세요...?"
왠 벌거벗은 남자가 내 냉장고 앞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 거죠...?
| 암호닉 (♡) |
매력 / 핑핑이 / 블루베리 / 열매주인 |
드디어 써놨던 걸 모두 풀었네요. 모두 굿밤!
그리고 읽어주신 모든 분들, 다들 제 사랑이라는 소문이 돌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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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캡말고 찐 남주혁 최근얼굴..........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