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 그림자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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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몸으로 맞는다.
하늘이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추적추적 찝찝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을 온통 어둡고 적막하게 만드는 그런 비.
비는 차다. 차고도 따가웠다. 구름에 가려 어두워지던 하늘이 이제는 캄캄하다. 내 눈앞도 캄캄하다.
지하로 가는 계단에는 이미 누가 다녀갔는지 물이 발바닥 모양을 따라 나 있었고 그 모양은 한 문의 입구까지 이어졌다. 발자국을 보자 떨어지는 빗방울을 따라 급격하게 하락하던 마음이 금새 붕 떠올라 나도 모르게 계단을 폴짝 폴짝 뛰어 내려갔었다. 문 앞에는 잔뜩 때가 탄 푯말이 있었다. 누가 적었는지 삐뚤빼뚤하게 쓰여진 그 이름, ‘낙원’. 푯말을 바라보다 비에 맞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굳어버린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쭉 찢어 한껏 웃었다. 너흰 내 웃는 모습을 좋아했으니까.
“……왔네.”
“김민석.”
그래. 있을리가 없지. 실망감이 표정에서 나타났다. 억지로 끌어 올리던 입꼬리는 힘을 잃고 땅과 가까워졌고 고개는 떨어졌다. 주먹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타나는 건 지들 멋대로 해놓고.
문을 열었을 때 보인 건 가운데에 위치한 테이블에 걸터앉아 있는 김민석이였다. 이곳에 왔을 때 제일 재수 없던 그 얼굴. 지금은 가장 많이 보는 그 얼굴.
“오랜만이네.”
“웬일이에요. 그 후로 안 왔었잖아요…….”
내 말에 잠시 얼굴이 굳더니 테이블 옆자리를 툭툭 턴다. 앉으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앉으니 내 이마에 붙어있는 밴드는 만지작댄다. 왜요. 라고 묻는 내 말에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아직도 아프냐고 물었다.
아직도 아프냐고? 상처가 아문 건 오래 전이지만, 그 위에 새로 자리잡은 상처는 아직 낫질 않았는데 난 아직도 아픈걸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그럼 그렇지. 아무 이유도 없이 ‘낙원’을 다시 찾을 민석이 아니였다. 민석은 더이상 그림자가 아니였으니까. 그래도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식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들어 민석을 쳐다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반짝 하고 투명하게 빛났다. 전엔 그리도 빨갛던 입술이 지금은 핏기를 잃어 벌어지려다 만다. 그렇게 입술을 달짝이다가 내뱉는다.
“애들 만나러 가자.”
##
그들을 처음 만나던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다. 이마에서 흐르던 끈적한 피는 비와 겹쳐져 더 빠르게 흘렀고, 닦으려 해도 닦을 수가 없었다. 삶에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때가 내 끝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정말 그때를 내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기껏 아버지라고, 내 하나뿐인 가족이라고, 진심이 아닐 거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주변 이웃들이 쉬쉬하며 떠들던 것들도 사실은 다 맞는 거였다.
난 버림받았다.
이 세상에 선택받은 적도 없었고, 기껏 선택받은 가족은 날 버렸다. 주위에서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내게 입버릇처럼 말해도, 오히려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멀리했다. 아버지가 내게 거친 손을 뻗을 때면 이건 다 술 때문이다, 절대 진심이 아닐거다, 하는 말들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았었다. 흔한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가정폭력의 주인공이 나일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아무 쓸모없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아버지의 곁에서 껍데기가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때 내게 빛이 되어준 건 ‘낙원’이었다.
그날엔 나도, 아버지도 제정신이 아니였다.
아버지는 내게 재떨이를 던졌었다.
잠을 자던 사이에 당한 봉변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니 이마에서 축축한 게 얼굴을 타고 쏟아지듯 흐르고 있었다. 너무도 생생한 느낌에 손을 들어 이마에 대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이마에서 흐르는 게 피라는 것을.
일의 원인을 찾고자 바라본 아버지는 손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카터칼이 있었다.
“감히 내 집에서 그 더러운 목숨을 끊으려 해?!”
“…아버지.”
“누가 니 아버지야!”
저 카터칼이 자살을 하려고 마음먹고 산 건 맞았다. 그래서 더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분명 잘 숨겨뒀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토록 어이없게 들킬 줄 몰랐다.
당황함에 이불에 앉은 자세로 가만히 있자 아버지는 카터칼을 내게 집어 던졌다. 매끄럽게 서있던 날은 내 팔에 길게 한 일(一)자를 쭉 긋고 방바닥에 떨어졌다. 상처가 점점 벌어지더니 붉은 피가 하얀 이불을 물들게 하였다.
“나가서 더러운 몸 굴리고 돈이나 벌어와!”
언젠가 꼭 죽을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인 것 같았다.
어머니,
곧 어머니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낙원 : 그림자의 세상
“하아…….”
아무리 아프게 살았어도 죽음 앞에서는 두려움이 클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더이상 쉴 필요도 없는 숨을 몰아쉬며 난간을 붙잡고 고민하고 있었다. 비 오는 거리를 우산도 쓰지 않고 얇은 옷만 입고 뛰어왔다. 코 앞의 물웅덩이를 피할 수가 없어 첨벙-하고 밟기도 많이 밟았다. 어머니를 보고 싶었지만, 죽는다는 건 꽤 인생에 중대한 선택이었다.
몰아쉴 숨도, 닦을 피도 없앤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흐윽, 씨발…….”
가슴이 턱턱 막혔다. 쿡쿡 찌르듯이 아프기도 했다. 어릴 적 꿈 많을 땐, 내가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 믿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할 수 있는 게 고작 내 목숨 버리기라는 사실에 내가 아깝고 가엽고 안타까웠다. 누구보다 소중하게 다루고, 빛나는 사람이 되려고 했었던 9살의 나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야금야금 갉아 먹어 껍데기만 남았다. 그리고 그 껍데기마저도 허물로 가득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했다. 머릿속 가득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잉크처럼 번져나갔다. 죽기 싫다.
거리를 뛰어다닐 때만 해도 가득하던 죽겠다던 생각은 뿌옇게 흩어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그 빈자리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차지했다. 결국 잡고 있던 난간을 등지고 집의 반대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일부러 골목, 더 깊숙한 골목을 찾아 헤맸고 점점 무거워지는 몸에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한 지하를 들어가게 되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정신이 아득해져 가고 있었다. 게다가 하루 종일 비를 맞은 탓에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터벅터벅, 누군가가 본다면 깜짝 놀랄 비주얼로 천천히 한 계단씩 밟았다. 지하에 있는 방에 사는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었다. 콜록,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까지 나오고 머리가 윙윙댔다. 겨우 계단을 다 내려와 지하에 있는 방을 세게 쳤다.
“살려주세요!”
온 힘을 다해 소리치고 몇차례 더 문을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제 다 끝인건가, 하는 생각에 문에 기대 쓰러지듯 무너졌다. 이정도면 잘 버텼다 생각하고 아늑해져 가는 정신을 놓기 시작했다. 머리가 윙윙대는 게, 얼마 남지 않은 듯 했다.
“저기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희망이다. 저 사람을 잡으면 내가 살 수 있다. 그 생각에 힘겹게 몸을 돌려 마주했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는 오히려 자기가 흠칫 놀란다. 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까닭에 남자에게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 하기가 힘들었다. 가뜩이나 피가 눈앞을 가려 시야가 뿌옇게 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슥- 발소리도 없이 다가온 남자는 내 손을 꼭 잡았고 나도 놓칠라 두 손으로 꽉 잡은 그 손은
차가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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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유지태 못알아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