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 그림자의 세상
one
욱씬-
칼에 베였던 상처가 날 자극한다. 이마에 있는 상처도 두근두근하며 제 위치를 내게 알린다. 등이 따뜻하다. 마치 얇고 푹신한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이곳이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죽었다고 하기엔 상처가 아팠고, 살았다고 하기엔 너무도 편안했다.
“ …… 잖아!”
“그럼 쟤가 ……단 말이야?”
그건 모르는 일이지.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그때야 생각났다. 어제 날 불렀던 구릿빛 남자가.
그럼 이곳이 사후세계는 아니겠구나.
안심을 하고 쾅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지금의 상황을 인식하려고 했다.
방금까지 시끄럽게 소리내던 남자 중에 한 명이 날 불렀던 구릿빛 남자였다. 그가 날 살렸다. 주위를 더 보려고 고개를 홱하고 돌렸더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으-하고 소리를 내자 언제부터 옆에 있던 건지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아직 크게 움직이지 말라고 내게 말한다.
“누구세요?”
“음……저승사자?”
“네?!”
그의 말에 내가 놀라자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장난이고, 루한이에요. 루한? 아버지가 중국분이시거든.
아버지. 그 단어를 듣자 무의식에서 깨달았는지 몸이 움찔하고 크게 떨었다. 단번에 보일 정도의 떨림에 루한이 내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단어 하나로 상처가 욱신댈 정도였다.
“근데 여기가 어……”
어디에요?
곧 크게 열린 입은 고개를 돌리면서 마주친 눈들때문에 다시 닫혔다.
서너 명의 남자들이-구릿빛 남자도 포함한-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각각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말을 하던 내가 어떤 곳을 쳐다보며 입을 다물자 루한이 내가 보는 곳을 같이 보더니 아-하고 감탄사를 뱉었다.
“지금 쟤네들 보고 있는 거야?”
“……네.”
씨익-
“얘들아, 너네 보고 있잖아.”
루한은 그들을 향해 손짓했고 루한을 보자마자 그들은 경계를 풀고 다가왔다. 마치 잘 길들여진 동물처럼. 그리고는 나름대로 인사를 하더니 자신들의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이 무리의 대장은 루한인 것처럼 모두 루한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20살 박찬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종인이가 여자를 데려왔다길래 놀라서 나왔는데……
뭐, 나쁘진 않네.”
“박찬열.”
“아무튼 잘부탁해.”
키가 꽤 큰 남자가 먼저 자신을 소개했다.
초면에 좀 이상한 말을 해서 얼굴이 구겨지려는데 그런 찬열을 루한이 막았다. 찬열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맞잡자 위아래로 요란하게 흔들었다. 입꼬리가 쭉 찢어져 위에 있는 게 지금 상황이 마냥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잡았던 손을 놓으려는데 빼려는 손을 세게 꽉 잡더니 얼굴이 점점 다가온다. 놀란 마음에 움츠러드니 귀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너, 재미있을 것 같아. 흥미로워.”
이게 무슨 소린가 당황해서 가만히 있는데 곧 다시 얼굴이 멀어진다. 그리고는 말한다.
“it's my toy.”
그리고 바로 루한에게 꿀밤을 맞았지만 루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구부정한 자세로 날 쳐다보며 실실 웃는다.
기분이 나쁘다 못해 불쾌했다.
눈썹을 꿈틀 움직이고 찬열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동그란 얼굴 하나가 쏙 그 사이를 방해한다.
“전 도경수예요. 19살 고등학생이구요.”
“저도 19살인데요?”
“으아, 그래요? 그럼……친구네요?”
“그렇죠. 잘 부탁해요.”
19살 같은 나이라는 걸 알게 되자 혼자 흐흐-하고 웃는다. 그러더니 잠시 자리를 비운다는 말을 하고는 어디론가 향한다. 그 뒷모습이 마치 중학생이 신 나는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폴짝폴짝 뛰어가는 게 귀여웠다. 다시 시선을 돌려 구릿빛 남자를 쳐다보았다. 여기서 제일 처음 봤던 얼굴이 그 얼굴이라서 그런지 유일하게 아는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마주 잡아 주었던 손이 차가웠던 사람.
손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던데 아버지는 손이 따뜻한 사람이셨다. 뺨에 닿는 커다란 손바닥이 늘 얼얼했으니까. 반대로 나는 손이 차가운 사람이지만 마음이 따뜻하지 않았다. 바로 아까는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진짜 19살?”
“네. 왜요?”
“그냥. 난 김종인. 동갑이야.”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종인이 머리를 긁적인다. 무안할 때 하는 습관인 것 같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연다.
“우리가 더 고맙지 뭐.”
알 수 없는 말에 응? 하고 되물으니 이미 등을 돌린 상태에서 반쯤 보이는 얼굴로 중얼거린다. 우리 앞에 나타나줘서.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그냥 무심히 넘겼다. 말장난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다들 소개한 거야?”
부엌에서 하얀 컵을 가지고 들고 있는 컵만큼이나 얼굴이 하얀 사람이 다가왔다. 까만 머리카락은 흰 피부와 대조되어 오묘한 분위기를 내뿜었다. 게다가 살짝 감긴 듯 한 눈은 그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응. 형도 와서 소개해.”
종인이 남자에게 다가가서 들고 있는 컵을 뺏어 들었다.
“물?”
“응. 너 줄 건 아니고, 이 여자분 꺼.”
하얀 컵을 내게 내밀며 웃는다.
“그리고 나는 20살 레이라고 합니다.”
장난스럽게 웃는 게 꽤 순수해 보이는 사람이다.
컵을 받지 않고 있자 무슨 문제 있냐며 초롱초롱히 빛나는 눈을 들이밀길래 컵을 받아들었다.
컵에는 아주 차가운 물이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자고 일어나면 목 타잖아요. 그치?”
“아, 감사합니다.”
“다 마시면 나한테 줘요.”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정말 순수해보였다. 세상에 저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나?
벌컥, 물을 한 번에 다 마시고 레이에게 넘겨주었다. 물을 거칠게 먹은 탓에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나 바로 표정을 고쳐 다시 싱긋 웃는다.
“목 많이 말랐구나?”
그리고는 내가 내민 컵을 들고 종인, 찬열을 데리고 나간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루한이 머리에 얹혀진 물수건을 갈아주고는 이불을 꼭 덮어주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창문을 반 닫는다.
“집에 안 가도 괜찮아?”
“……네.”
“에이. 지금은 밤이 너무 늦었으니까 자고, 집에는 내일 가.”
“아…….”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순 없는 일이었다. 작게 한숨을 쉬자 루한이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쉬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아쉬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럼 언제든지 놀러와.”
“그래도 돼요?”
“그럼. 아마 여기 있는 놈들이라면 한 명 빼고 다 좋아할 거야.”
한 명이 거슬렸지만 그냥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루한이 촉촉한 눈으로 내 이마를 매만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를 만진다. 가뜩이나 예쁜 얼굴이 달빛을 받으니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게다가 눈까지 촉촉해 그 분위기는 말로 할 수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그냥, 뭐. 넘어졌어요.”
거짓말을 한다. 절대 영원히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내가 아버지께 맞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또 아무렇지 않게 넘어진 상처라며 얼버무린다.
실제 상처는 지금도 쿵쾅대고 있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가고 있을건데.
“호- 불어줄까?”
그러더니 대답할 새도 없이 눈을 감고 호-하고 분다. 자칫 어린애 같은 모습이지만 두 눈을 꼭 감은 얼굴이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슬플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동시에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다치면 안 돼. 죽는 건 더 안 되고.”
“그게 무슨…….”
“피곤할텐데 자. 내일 깨우러 올게.”
머리를 툭툭 치고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간다.
모두가 나가고 기억났다. 아까의 모든 상황들이. 온통 피를 묻히고 빗속을 거닐었을 생각을 하니 한심했다. 차라리 죽기라도 하지, 죽지도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니. 내 꼴이 처참했다. 그리고 지금도 느끼는 으슬으슬 함에 주먹을 꽉 쥐었다. 결국 넌 아무것도 못했구나. 자신있게 집을 뛰쳐나가던 나는 이미 증발한 물처럼 흔적도 없었다.
근데 비에 젖어 축축해야 할 몸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옷도 바뀌어 있었다. 묘한 수치심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가라앉았다. 대체 나란 년은 어떤 년이길래 상황 파악도 못하는지. 죽기로 결심한 몸에 웃기도 잘 웃고 말도 잘하고 이제는 부끄러움까지 느낀다. 감정 따위 아버지의 축축하고 얼얼한 손바닥에 다 날아간 줄 알았는데 그때 느끼던 분노도 감정이라는 걸 잠시 잊었나 보다.
제일 간사한 게 사람이라더니 틀린 거 하나 없다. 이대로.
정말 이대로.
그냥 쭉 이곳에 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이곳엔 나를 때리는 사람은 없으니까.
*오타, 맞춤법 틀린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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