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붉게 물들다
w. 안개비
“시시콜콜한 말 나눌 사이 아니야.
대충 알아들었으면 됐어.”
“야, 니만 결혼 억지로 했어? 나도 억지로 한거야.
대충 알아듣긴 뭘 알아들었다고? 난 뭐 니랑 대화하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니가 나 오해하고 있잖아”
”오해를 푸는 것도 뭐라도 될때 푸는거지.
사실 어떻든, 상관안해. 난 그저 나한테 피해 오지 않게만 행동해주길 바라는 거니깐”
못됐다.
내 얘기를 들어주라고,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뭐 그런 유치한 투정부리는거 나 또한 싫어한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더더욱 관심없고.
애초에 어렸을 때부터 수없이 왜곡되고 왜곡되게 나를 폄하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익숙해졌다고 표현해야할려나, 무뎌졌다고 표현하는게 맞으려나.
그런 생각도 하지 않을만큼 그렇게 일부분이 되어 살아왔다.
적어도 오늘같은 일은 나도 좀 억울하단 생각 들었다.
전정국은 더이상 말을 아끼는 나를 짧게 보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뭐가 저렇게, 싸가지도 없고 차가운지
지멋대로 행동하는 쟤가 짜증이 났다.
꼭 내가 지는 사람 같아서.
02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이다.
그러니깐, 월요일.
아, 나도 월요병 같은거 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10분거리다.
짧은거리가 좋다고 해야하나, 싫다고 해야하나.
그럼에도 나를 출퇴근 시켜주는 기사를 붙여준다는 아버지의 뜻을 거절했다.
나도 왔다갔다 그 10분의 자유는 있어야 살 것 같으니깐.
준비하고 나와 주방으로 가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먹었다.
원래도 아침은 잘 챙겨먹는 타입이 아니라서
간단하게 시리얼과 우유로 떼웠다.
오늘부터 집안일을 봐주실 새 가정부도 온다고 했다.
물론, 집에서 같이살기엔 아파트라 별채가 없어 출퇴근을 하시는데, 아침은 되었다고 학교간 시간부터 저녁까지만 챙겨주면 된다고 했다.
대충먹고 정리하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전정국이 교복으로 갈아입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힐끔 쳐다보고 내 할 일을 하는동안 전정국은 이쪽으로 시선한 번 주지 않았다. 뭐, 상관없지만 쟤도 참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 들었다.
전정국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는 주방에서 나갔다.
03
학교에 들어올 때부터 시선들이 느껴졌다.
하긴. 주말 내내 인터넷엔 내 결혼현장 기사들이 판을 쳤지.
안그래도 나를 아니꼽게 보는 시선들이 이젠 측은함도 포함되어 나를 본다. 그냥 그런 시선들로 끝이나면
참 좋을텐데.
“야, 결혼하니깐 좋디?”
“...”
“얘봐라? 말을 해야지?”
교실에 들어와 앉으면 서서히 나를 향해 껄렁하게 걸어오는 무리가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자격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거 같은데. 그걸 얘들은 자각 하는지 못하는지 나만 보면 못잡아 먹어 안달이다.
똥은 무서워 피하는게 아니다. 더러워 피하지
괜히 나의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기 쉽상인 위치에서
나의 최선은 대적하지 않는거라 생각한다.
온갖 듣기 거북한 단어들로 나를 조롱하고 희롱하는 것도 모자라, 그래도 입을 열지않자 종국에는 내 뺨까지 살살 때려가며 수치를 주려고 안달을 낸다.
“재밌어?”
“뭐?”
“이러면 재미있는지 궁금해서”
조롱하려는게 아니다. 진짜 궁금했다.
이렇게하면 쟤들의 자격지심이 조금 나아지는지.
그렇다면 뭐 계속 놀잇감 해주면 되고.
그렇다는데.
“야, 얘봐라.”
“존나 싸가지 없어. 야, 니지금 우리 무시하냐?”
어이가 없었다. 무시한게 누군데.
손가락으로 기분나쁘게 머리를 쿡쿡 찌르며 열등감을 채우려는게, 결국엔..
참지 못했다.
더러워 피해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
나는 나를 조롱하는 이혜주를 밀었고 방심하고 있던 이혜주는 크게 넘어졌다.
“강윤, 너 지금 뭐하는거니”
하필이면 타이밍은 항상 그랬다.
내가 불리한 순간에 가장 불리한 상황이 온다.
“...”
“윤이, 교무실로 따라와.”
이혜주를 둘러싸고 괜찮냐, 다치지는 않았냐.
깡패년, 쓰레기년을 외치는 무리애들을 지나쳐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04
“윤이 넌 공인이나 마찬가지야. 그런 애가 이런 문란을 일으키면 어떡하니, 자칫 학폭위라도 열리면?”
“...”
“일단, 혜주를 잘 달래서 최대한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게 할테니깐 무조건,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그래.
물론 네 잘못이 맞고”
담임선생님은 할 말을 끝냈다는 듯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 서류들을 보았고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나왔다.
뭐가 이렇게 엿같은지 모르겠다.
이게 익숙한건데,
내 인생에는 진실보다는 허상이 더 잘 어울리는 건데 그럴때마다 이렇게 공허한 느낌을 받는 내가 너무 짜증이 났다.
담배생각이 난다. 여긴 학교인데.
수업에 곧장 들어가지 않고 학교 건물 뒷뜰로 갔다.
“....”
담배연기가 내 시야를 뿌옇게 덮었다.
담배를 다 피고나면 또 다시 꺼내어 입에 물었다.
줄담배는 처음인데.
연속해서 4개비를 피고나니 어지러워지는 느낌에 순간 휘청했다.
교복치마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확인하니, 아저씨였다.
“네”
“아가씨 오늘 저녁에 참석하실 자리가 있습니다.
아가씨와 정국도련님 결혼 축하파티 정도로 아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학교에는 연락 취해놓겠습니다. 5시까지 학교 앞으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
“아, 죄송합니다. 수업시간인거 깜빡하고.
전화 어떻게 받으셨어요.”
“잠시 나와있어요.
답답해서”
“ 또 담배 피셨어요?”
“...”
“무슨 일 있으세요?”
“..없습니다. 5시까지 나갈게요. 수업에 들어가야해서..”
“아, 네.”
전화를 끊고 나는 교실로 돌아갔다.
이미 수업중이었고 나는 자리에 가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여기저기 눈치를 주고 받는거 같았다.
05
결국 그 다음 쉬는시간
담임선생님 앞에서 이혜주한테 사과를 했다.
이혜주는 선생님 앞에서 온갖 피해자 연기를 하며 괜찮다고 누구보다 착한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조용히 일을 넘기는게 중요하니깐.
다시는 나서지 않을거다. 내가 맞아터지고 온갖 방법으로 나를 끌어내리려고 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다.
그게 가장 나에게 맞는 행동이라는 걸 깨달았다.
5시가 되어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나왔다.
검은 차 한대가 학교앞에 세워져 있었다.
내가 그 차에 다달으자 아저씨가 내려 내게 인사를 하고 차 문을 열어주었다.
“7시부터 늦어도 10시 안에는 끝이 날겁니다.
오늘은 아가씨 결혼이 주된 이유이기에 먼저 나오시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아가씨께서 이슈를 받으시는 만큼 시선이 많이 갈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혹여 인적드문 공간이어도 행동 조심 하셔야 합니다.”
“네”
“도련님께서도, 연회장을 오시기로 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같이 만나서 들어가기로 그쪽 기사와도 통화 끝냈습니다.”
“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가씨”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혜주와 그 무리애들은 이런 삶에 열등감을 가지고 자격지심을 가지는건데 과연 이게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가질만한 삶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돈이 많은 것. 돈 걱정 없이 먹고 살 걱정없이 살 수 있다는 것 말고는 하나도 정상인게 없는 이런 삶을 남들은 왜 부럽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은, 괜찮습니까?”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떠 백미러로 운전하는 아저씨를 보았다.
“빨리도 물어보십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라고 한 말 아닌데. 참, 아저씨는 한결같이 농담을 몰라.”
“...”
“좋을 일 있을리가 없잖아요. 삭막하고 어색하고 낯설고
전정국은 남이나 다름없고.”
“그렇다고, 내가 언제는 행복하고 편했나. 새삼스럽게.”
자조적인 웃음이 났다.
“그래도,”
“그래도 아가씨께서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그때, 결혼식장에서 제대로 인사를 못드려서...”
다시 백미러로 아저씨를 보면
나만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어떤 말들을 감추고 해야하고 하고자하는 말들을 할때
짓는 표정.
난 그게 싫다.
06
“하,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침부터 태형은 마구 어지럽혀져 있는 집에
어제의 흔적들을 맞추려 머리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