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게 불어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어김없이 내 방 창문에는 톡톡,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어린 호기심에 창문을 열어 밖을 확인해보니 창문 바로 앞 커다란 나무의 두터운 나뭇가지에 한 남자가 덩치에 안 맞게 쪼그려 앉아 있었다.
“얘! 나 좀 재워주겠니?”
어렸던 나에게 그는 어딘가의 네버랜드에서 날아온 외로운 피터팬 같았을 뿐이었다. 나는 겁도 없이 그 남자를 들였다.
“엄마아빠는?”
“1층 안방에 계세요.”
“외동이니?”
“누나는 집을 나갔어요.”
나의 하나뿐인 누나는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나가서는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착하고 예쁘던 누나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누나가 가출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열두 살이 되던 해, 학교서 버스를 타고 1시간가량을 더 가면 나오는 시내의 한 모텔촌에서 누나를 봤다.
누나는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검고 길어서 청순했던 머리는 밝게 탈색되어 더 이상 찰랑거리지 않았고, 여리한 분홍빛으로 빛나던 입술에는 새빨간 립스틱이 앉아있었다. 항상 입고 다니던 새하얀 원피스와 대조되는 무언가가 주렁주렁달린 까만 가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누나를 보았다는 말을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쓸쓸하겠구나.”
“….”
나는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것 또한 이유는 없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남자는 창틀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신고 있던 슬리퍼를 창틀에 놔두고 내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털썩 앉는 순간 들려있는 그의 발이 새까맸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의 새하얀 침대에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상상을 했다.
“…재워줄 테니깐 일단 씻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샤워실을 알려주고 나는 그가 입을만한 옷을 찾아보았다. 한때 럭비부에 들어 샀던 럭비티셔츠가 가장 컸다. 그때당시 나의 허벅지의 반을 가릴 정도였다. 팬티는 아빠팬티를 몰래 훔쳤다. 아빠가 코를 심하게 고는 바람에 가슴의 쿵쾅거림이 잊어지지 않는 듯 했다. 한손에는 럭비티와 한 번도 입지 않은 체육복바지, 다른 한손에는 아빠팬티와 하얀 수건 하나를 들고 남자가 다 씻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물기를 뚝뚝 흘리며 나왔다. 아무 곳도 가리지 않은 나체의 남자에게 손에 들린 모든 것을 넘겨주고 뒤돌아 기다렸다.
“부끄러워하는 거야?”
“조용히 해요.”
내 대답에 남자는 픽 웃어버렸다. 꼭 나를 조롱하는 듯 했다. 어두운 복도에 샤워실의 불빛만이 빛나고 있었다. 달칵, 소리와 함께 샤워실의 그 불빛마저 꺼졌다. 남자가 내 옆에 서는 것이 느껴졌다.
“다 입었어. 조금 구리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면서 걸어갔다. 샤워실은 내 방과 그리 멀지 않아 금방 내 방의 불빛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불을 한 번, 그리고 두 번이나 털었다. 남자는 여전히 내 방문 근처에 서서 나를 보고만 있었다. 이불을 제자리에 깔아놓고 나는 남자가 했던 것처럼 내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새벽공기가 들어왔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자기가 말하겠다며 다투는 것 같았다. 알고 싶었다. 남자의 이름을.
하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어버렸다.
“이제 와서 좀 그렇지만. 이름이 뭐니?”
“이태민.”
“보아하니 어려 보이는데.”
“15이에요. 당신은요?”
“김종인, 이고. 25살이야.”
남자는 자신을 김종인이라고 소개했다. 나와는 열 살이나 차이나는 아저씨였지만 외관상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천천히 문을 닫고 내 침대 바로 옆에 앉았다. 그의 대답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도 끝이 난 듯싶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2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원래 사람을 좋아하니?”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졸린듯한 눈이었지만 분명한 시선이 나에게로 향해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1층의 괘종시계가 데엥, 데엥, 조금은 간격을 두고 두 번 울렸다. 정적 속에 울리는 종소리는 마치 집 전체를 진동시키는 듯 했다.
“한동안 내가 여기서 지내도 될까?”
“집은 어떡하구요.”
“나는 집이 없어.”
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어이없는 대답을 돌려보냈다. 입고 있던 옷들은, 조금 더러워지긴 했지만, 모두 다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한 거절의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는 기색조차 없이 나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불쌍하니?”
“전혀요.”
“내일이 돼서 다시오면, 한 번 더 재워줄래?”
나는 다시 한 번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올곧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본 이래로 그가 가장 활짝 웃었다. 내 방 안의 불빛은 여전히 밝게 빛나는 중이었다.
* * *
새벽 감수성으로 각각의 의미를 왕창 부여해서 쓴 조각글...★☆
문학시간이 된 기분으로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보는 재미로 읽어쥬세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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