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물었다. 비스듬하게 입가에 걸린 얄쌍한 담배는 알게 모르게 김진환이랑 닮았다고 종종 생각했다. 김진환한테 그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간 백해무익한 담배 나부랭이랑 자기가 뭐가 닮았냐며, 특유의 목소리로 성질이란 성질은 다 낼 거다. 그러고보면, 김진환은 내가 담배피는 걸 정말 싫어했다. 어린 새끼가, 폐병걸려 뒤지려고 그러지. 그래봤자 김진환과의 나이차는 고작 두 살이었지만, 그 말을 할 때의 그는 유독 나이들어 보였다. 이러저러하게 겪은 삶의 무게가 달라서 그럴까. 결국 그 쟁쟁한 목소리를 귓가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아직 반도 넘게 남은 담배를 바닥에 지져 껐다. 씨발, 존나 아까워. 김진환의 집으로 가는 골목길의 지저분한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아 아직 뜨거운 담배꽁초를 툭툭 치며 김진환을 생각했다. 사실 새삼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지. 항상 김진환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김진환의 이십일년은 지독하게 기구했다.
돈이라면 먹고 죽을래도 없는 달동네 판자촌에 태어나 스무살이 되자마자 여기서 벗어나는게 유일한 삶의 목표였음에도, 스무살 하고도 한 살 더 먹은 지금까지도 김진환은 여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다 너 때문이야. 어느 날 아침, 남은 우유 하나를 뜯어서 건네며 김진환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스무살이 되는 해의 1월 1일, 네 손을 잡고 여기를 뜨겠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진환은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이 판자촌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한다.
김진환의 아버지가 폐병에 걸려 죽은지 딱 삼 개월 후, 김진환의 어머니도 조직의 마약을 빼돌리다가 걸려서 죽었다. 시체안치소에서 온 연락을 받은 김진환이 부리나케 달려가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온 날 밤, 김진환이 우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피 대신 소주가 도는 듯 한 김진환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울면서 웃었다. 웃으면서 울었다. 그 씨발놈들이 우리 엄마 장기를 다 팔아먹었어. 우리 엄마, 눈이 진짜 예뻤는데. 그것까지 빼갔더라, 개새끼들이. 내가 욕을 쓰면 뒤통수를 때리던 김진환의 입술 사이에서 나오는 욕은 찬란했다. 김진환이 만들어낸 것 중 찬란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그 찬란함에 눈이 멀어 나는 입을 맞췄다. 벌어진 입 사이에서 나오는 울음 섞인 욕지거리는 그대로 내 목으로 넘어갔다. 저녁의 판자촌에 흠뻑 젖은 얼굴로 내 옷자락을 붙들고 엉엉 우는 김진환과 한 키스가 내 인생의 첫키스였다. 키스가 끝나고, 우리는 아주 어색하게 끌어안았다. 김진환은 여전히 숨이 넘어갈 듯 울었지만, 그의 꽉 쥔 주먹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진환아, 김진환.
"나 스무살 되는 날, 내가 반지 끼워줄게. 우리 여기 뜨자. 둘이서 살자, 김진환."
그 날 포장마차에서, 자기를 감싸고 안은 내 팔이, 내 말이 아주 서툴게나마 자기를 위로한다는 걸 알았는지, 김진환은 내 팔을 붙들고 그 말을 듣자마자 기절해서 그대로 삼일 밤낮을 눈도 못 뜨고 심하게 앓았다. 그리고 삼일이 지난 뒤,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일어나 다시 새벽 배달을 나갔다. 가지 마, 쉬어. 눈에 띄게 가늘어진 손목을 붙든 내게 까만색 학교 가방을 던져주며 김진환은 고개를 저었다. 너 스무살 될 때 까진 내가 너 먹여살려야지. 얼른 나이 먹어라. 그 때 처음으로 나는 김진환에 대한 존경심 비슷한 어떤 감정을 느꼈다. 이전까지 느껴왔던 감정에 조금 더 더해진,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었다. 김진환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여윈 등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아리도록 깨달았다.
아, 나는 저 등을 사랑하는구나.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등이, 김진환이구나.
그 사실을 쉴새없이 각인하며 울었다. 슬퍼서 운 건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그 여윈 등이, 김진환이 너무 찬란해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
쪼그려 앉아 있던 다리가 약간 저려올 무렵, 속으로 열을 셌다. 삼, 이, 일. 일을 셈과 동시에 김진환은 마법같이 나타났다. 너 또 담배 폈지. 발 앞에 떨어진, 반쯤 남은 담배꽁초를 발로 꾹 눌러밟은 김진환이 못마땅하게 나를 내려다봤다. 담배 살 돈이 있으면 그거 모아서 집 살 돈에나 보태. 다분히 현실적인 김진환의 말에 나는 목젖이 보이게 웃었다. 허파에 바람 들었냐, 왜 웃어. 시니컬한 말을 하면서도 손을 뻗어 내미는 김진환. 그래, 김진환이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잃고 엄마를 잃어도, 일 년 후를 생각하며 지친 다리를 굴려 배달을 나가는 김진환. 독하지만 여린 김진환. 찬란한 김진환.
김진환의 손을 잡고 일어나 바지를 털었다. 나는 김진환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김진환은 자전거의 핸들에 손을 얹어 끌면서 어두운 골목을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이 더없이 익숙하다. 오늘은 뭐 먹을까, 짜파게티? 아니면 라면? 똑같잖아, 멍청아.
투덜거리는 김진환의 목소리마저 감싸안은 채, 우리는 골목을 빠져나간다.
지는 노을이 찬란하다. 마치 김진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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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잡에는 글을 처음 올려보네요ㅠㅠ안녕하세요 프리메로입니다!
사실 구독료 받기도 죄송스러운 글이라ㅠㅠㅠㅠㅠㅠ읽어주신 분들 굉장히 감사합니다!
제 개인홈에 올렸던 글을 수정해서 가져온거라 어디서 보신 분도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둘 다 제가 쓴거예요. 하하
명절 연휴도 슬슬 끝이 보이네요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마아안약 암호닉 신청 원하시는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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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