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 상술의 시대
{03}
(부제: 그렇게 근검절약은 자린고비가 되고)
written by Miss 氷 (미스 빙)
"...저렇게 말 잘하는 남자도 매력이다......"
라고 혼잣말로 뱉어버렸다.
옆에 있던 종대가 놀란 눈으로 미스징을 쳐다봤다.
미스징은 3초간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 종대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뱉었단 걸 알았다.
순식간이었다, 그건.
생각으로만 남겨두려던 말이 입밖으로 나오고, 종대가 놀라고, 미스징도 놀란 건.
미스징 본인보다도 종대가 더 놀랐다는 건, 미스징이 미처 알지 못했다.
"다들 여기서 뭐해?"
민석(23, 자린고비 1호)이 나타났다.
찬열은 기대했다. 이 지겨운 하극상을 끝내 줄 구원자...!
"민석아, 좀 비싼 데로 가서 먹어도 괜찮지? 그렇지?"
"안돼요, 한푼이라도 아껴야죠. 거창한 회식은 다음에 해요, 다음에."
루한과 종인의 의견을 번갈아 들어본 민석이 드디어 판결을 내렸다.
"종인아, 너 저번에도 거창한 회식은 다음에 하자고 하지 않았냐? 오늘을 다음으로 치면 되지.
미스징 들어온 지 한 달 된 기념으로 정한 거야. 간만에 좋은 거 먹자고! 안토니오 파스타 갈래?"
"아 거기 비싼데..."
"부장님 짱짱맨!"
종인은 의외의 배신감을 느꼈다. 나와 함께 자린고비 멤버였는데...!
종인을 제외한 모두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특히 찬열이 제일 기뻐하며 '부장님 짱짱맨'을 외쳤다.
또 미스징의 팔을 붙잡고 강강술래를 하려는 걸, 종대가 미리 제지했다.
미스징은 기뻤다. 그리고 민석에게 감사했다. 날 위해서 외식을 시켜주시다니.
(주)힘찬하루에 들어온 첫날부터 자상하게 가르쳐주던 김부장님이었다.
미스징은 생각했다. 나도 김부장님처럼 저렇게 따뜻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사람이 많은 시가지로 들어섰다. 노점상은 낮시간보다 많이 줄어있었다.
곳곳의 술집에서 남자들이 떠드는 소리, 호탕한 웃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술집을 몇개 지나치고 찻집을 지나치려는 순간, 누군가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어? 김부장님!"
민석이 가장 먼저 뒤를 돌아봤다. 몇몇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목소리 만으로 주인공을 알아챘다.
(주)힘찬하루의 영업부 직원 오세훈(21, 얻어먹기 킹)이었다.
부서도 다르고 일하는 곳도 달라서 마주칠 일이 극히 드문지라, 서로 반갑게 인사했다.
"어쩐 일로 다 같이? 아, 회식이에요?"
"응. 간만에 비싼 데서 한턱 내려고."
"아 그으~래요? 그럼 저도 살짝 끼면 안 될까요?"
세훈은 슬쩍 눈웃음치며 자신도 낄 것을 물었다. 그러나 자린고비 1호는 칼같았다.
"응, 안돼."
오세훈이 얻어먹기 킹인 것을 설마 민석이 모르지는 않을 터. 민석은 세훈의 꼽사리 공격에 담담하게 철벽을 쳤다.
민석의 칼같은 대답에, 자린고비 2호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저 오늘 점심도 못 먹었는데. 오늘만 좀 끼면 안 돼요?"
"응, 안돼."
민석이 나머지에게 말했다.
"애들아, 먼저 가 있어. 얘 떨구고 좀 이따 갈게."
"네. 빨리 오세요!"
(...20분 후...)
"야, 오세훈, 누가 제일 비싼 거 주문하래. 종인아, 가서 바꾸고 와라."
"네."
"아이고야, 진짜 너무하시네."
세훈은 얻어먹기에 성공했으나 성과는 그다지였다. 세훈의 앞접시에는 초라한 음식들만이 올려졌다.
아무리 세훈이라도, 김부장의 방패를 완전히 뚫을 수는 없었다.
세훈은 마카로니를 깨작대다가 제 앞자리의 미스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얜 처음 보네요?"
"네? 네, 한 달 차 신입이에요."
미스징은 음식을 먹다 말고 황급히 대답했다.
미스징은 입사 당시 본사 건물에서 세훈을 본 적이 있는데 세훈은 저를 처음 본다고 하니, 조금 뻘쭘했다.
"그래? 막내, 나 이것 좀 같이 먹어도 되지?"
세훈은 은근슬쩍 미스징 접시의 고구마 피자에 포크를 갖다댔다.
그러자 미스징의 옆에 앉은 종대가 재빨리 포크를 들이밀며 세훈의 포크를 막았다.
포크끼리 부딪혀 챙- 하는 소리가 났다. 미스징은 생각했다. 칼싸움이야 뭐야.
미스징은 종대를 쳐다봤다. 왜인지 아까부터 계속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속이 안 좋으신 걸까.
To Be Continued, {04} _종대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