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예부터 신의 촉망을 받으며 태어나는 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가예(嘉藝 : 아름다울 가 , 재주 예 / 아름다운 재주)라 불렀다 한다. 한 해에 그들이 태어나는 수는 알 수 없었으며, 같은 힘을 사용하는 이들이 둘 이상씩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아이들이 태어난 고을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 (疫病)이 돌고 재해(災害) 가 끊임없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가예족들의 힘이 불행을 안겨준다 하여 그에 불만을 품고 그들을 狩獵 (수렵=사냥)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가예라 불리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체를 숨긴 체 살아가며 적어도 100년 전 그 형태(形態)를 완전히 감추었다고 학자들은 말했다.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으나, 당시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각각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하여 水 , 火 , 風 , 土 의 힘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고 쓰여 있었으며, 그를 제외한 힘을 가진 이들이나 힘을 악(惡)에 사용하는 이들, 그리고 유난히 위험한 힘을 가진 이들을 현비(玄費 : 검을 현 , 쓸 비)라고 불렀다고 남겨져 있다. 가예와 현비의 기록은 당시에 매우 많은 사람이 기록을 남겼으리라 학자들은 예상했으나 어떠한 이유에선지 모두 불에 타고 책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들이 기억을 더듬어 생긴 책이 바로 현시대까지 남겨져 있는 人藝費蒐錄 (인예비수록) 이다.
많은 사람이 이 가예족이 살았다는 것을 人藝費蒐錄의 담긴 내용만으로는 입증하기 어려우며, 그것은 만화책이나 소설에서만 나오는 이야기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마을에서 발견된 세 권의 낡은 책자에 실린 이야기 중 단 한 권 한 쪽 페이지에 짧게 쓰여있던 가예족의 이야기 한 구절은 세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 아름다웠던 그대들 嘉藝(가예)여, 그대들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
人藝費蒐錄 : 인예비수록
靑 / 김 준면 (金(김)가 潒水(상수) 金彛貞 (김이정) 의 자제) / 20
5대 가문 중, 가장 기품과 품위를 가장 중시하는 상수(潒水)의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김이정(金彛貞 : 떳떳할 이 , 곧은 정 / 변하지 않는 충정(충실하고 올바름))의 둘째 아들, 아주 오래전 상수(潒水)에는 가예가 태어난 적이 있었으나.
당시 마을에 많은 가예가 태어나, 흉(凶)이 많다고 하여 죽였다고 한다. 준면은 그 이후 물을 다루는 水의 법칙을 타고 태어났으며 집안에서는 홀로 선택받은 이가 되었다.
본래의 법칙이라는 것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증상이 나타나나, 준면은 다섯을 먹은 해에 갑자기 힘이 사용하게 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힘에 대한 지식도, 깨우침도 없이 그저 어쩔 수 없이 이리저리 능력에 휘둘리던 도중, 준면은 계속해서 그것을 사용하며 스스로 제어를 하게 만들었다.
열한 살을 먹어가는 해에는 타인에게 작은 물방울 같은 것을 만들어 던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 큰 방울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을 가둘 수도 있었으며,
본인을 지킬 수 있는 막을 생성할 수도 있도록 발전시켰다.
물이라는 것은 평소엔 잔잔하나, 한번 일렁이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큰 파도를 몰고 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그런 물의 특성을 매우 닮아있는 준면 역시 위험하기는 하나. 본래의 침착함과 이성적인 성격 탓에 그는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人藝費蒐錄 : 인예비수록
" 성격이 아주 포악하나 그 속은 여리고 겉은 타오르는 불이나 속은 잔잔한 파도이니. 과연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매우 궁금합니다만. 5대 가문(家主)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화원(火原 : 불 화 , 근원 원 / 불의 근원)의 영식(令息 :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이 선택을 받은 아이라니. 허허, 거참. 무슨 일이 어찌 되려고 그러는 건지 원. 그래서 그 아들의 이름이 무어라 했지요? "
" 본래의 이름은 박찬열이라 하나. 이 마을 사람들은 주(朱 : 붉을 주) 라고 하덥니다. 게다가 인물도 훤하니 생겨서는 여인네들에게 인기가 많은가 본데. 계집년 마냥 붉은색의 옷은 물론이고 그의 장신구까지 붉은빛을 띄고 있어 그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 붉은색이다 하여 주라고 부르는 듯합니다. "
" 허허. 이번 해에는 유난히 선택을 받았다 하는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하던데. "
" 예. 알아보니 가예라고 확실하게 판명이 난 아이만 주를 포함해 넷이라고 합니다. "
" 이번 년은, 해(害) 와 흉(凶)이 가득하겠군요.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좌상(左相) "
人藝費蒐錄 : 인예비수록
" 기생집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것은 기본이고 장난을 좋아하여 주위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는 하나. 잔머리가 좋고 행동이 빠르며 周到綿密(주도면밀)한 모습이 보이는 자입니다. 특히 다른 이의 약점을 잘 파고들 줄 알며, 거래와 협상에 능통한 자이니 많은 말은 금(禁)하시옵소서, 그 입과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허점까지 모두 술술 불어버리게 된다는 자로 이 동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서면 거짓은 없다 하여 무(無 : 없을 무) 라고들 부릅니다 "
" 풍속(風速 : 바람 풍 , 빠를 속 / 빠른 바람)가(家)에 막내아들이라고 하지요. 그 집안사람들은 특이한 관례가 있지 않습니까? "
" 예, 맞습니다. 풍속가(家)에서는 아비가 여러 명의 첩을 두고 그 첩들이 낳은 아들들을 싸움에 붙여 가장 강한 이가 아비의 성을 물려받는 관례입니다. "
" 이번엔 누가 그 성을 물려받았다 합니까? "
" 바로, 이 자입니다. "
無 / 오 세훈 (吳(오)가 風速(풍속) 吳刃噜 (오인로) 의 자제) / 18
5대 가문 중, 가장 비범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후손들이 많은 풍속(風速)의 총 책임을 맡고있는
오인로(吳刃噜 : 칼날 인 , 말할 로 / 칼날과 같은 말)의 막내아들. 한 번도 선택을 받은 이가 풍속(風速)의 집안에서는 한 명도 태어난 적이 없었으며
風의 법칙을 타고 태어난 세훈이 유일한 가예이다.
세훈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바람의 氣流(기류)가 바뀐다는 것을 이미 태어난 그 순간부터 알았으리라. 그가 울거나 화가 날 때는 바람은 날카로워졌으며
그가 기분이 좋거나 행복함을 느낄 때에는 바람은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집안사람들은 세훈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쉽게 바람을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흥미를 잃어 잘 사용하지는 않게 되었으나.
그의 기분에 따라 바뀌는 氣流(기류)와 본인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힘은 본인에게 분명 득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바람은 공기와 같고 세상을 움직이게 하니, 조금이라도 바람이 뒤틀리면 그것은 많은 변화를 만든다.
그렇기에 가장 위험한 법칙으로 분류되기도 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법칙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바람은 태초에 현비로 분류되었으나, 현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분류되기도 한다.
人藝費蒐錄 : 인예비수록
" 사려(思慮)가 깊고 말에는 무게가 있으며, 판단(判斷)에 있어 흐림이 없고, 총명하며 주위에 있는 사람을 챙길 줄 알고 배려(配慮)를 잘하는 아이이니. 성격도 온순(溫順)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責任)을 다하며 불평(不平)을 하지 않으며 주어진 상황이 좋지 아니하더라도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자 입니다. 혼자 하는 일에도 빛을 발하나, 동료가 있을 때에는 그 빛을 더욱 발하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 이자가, 근래에 여인들의 입에 자주 오른다는 그 금(黅 : 누른빛 금) 입니까. "
" 예, 맞습니다. 바로 이 아이가 금(黅) 입니다. "
" 지훤(地煊 : 땅 지 , 따뜻할 훤 : 빛나는 땅)도 가예라…. 이번 해에는, 마치 붉은 꽃들이 가득 피어나길 바란 해 같습니다. "
人藝費蒐錄 : 인예비수록